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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 동네 이야기 - 퍼온 글
  • 박지선 / 성토모 회원



      남편과 나는 선교지에서 처음만나고, 얼핏 들으면 멋있기도 하고 애틋하기도 한 장거리 연애를 하고 귀국과 동시에 결혼을 했다. 한번 만나고 ' 이 사람이 아닐까' 확인을 했고 , 연초에 날 만나러 선교지로 방문해서 두 번째 보고 날짜를 잡고는 혼자서 한국으로 돌아가 결혼준비를 한 것. 그래서 처음에는, 결혼한다는 소식을 전했을 때, 왜 그렇게 급하게 날짜를 잡고 사람을 정하냐는 식의 걱정을 많이 들어야 했다.


      그도 그럴것이, 양쪽 집안 어른들은 만나보지도 못한 채 결혼 날짜를 잡는 것에 찬성했고, 심지어 나의 시부모님은 귀국하기 전까지 내 얼굴도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채로 결혼을 승낙하셨다.(이 부분이 생각할수록 놀라울 따름이지만 하나님의 크나큰 도우심과 남편이 그동안 부모님께 신뢰를 주며 잘 살아온 거겠지 라고 스스로 자랑스러워하며 얼른(?) 결론을 내버린다.)


      한국에서, 결혼을 하겠다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어야 할 재정적 사회적 요구를 나는 하나도 가지고 있지 못했다. 그래서 인지 '요즈음은... 이렇다' 는 통념과도 같은 결혼에 대한 암묵적인 룰을 따르지 않은 것도(이것 또한 나중에 지나고 나서 보니 알게 된 거다.) 많이 있는데  그중 한 가지가 시댁에 들어가서 살겠다고 자발 적으로 결정한 것.

      
      이 또한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선교지에 있으면서  실제적으로는 결혼준비에 대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면서도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는 늘 내 의견을 필요로 했기 때문에 '기도' 할 수밖에 없었고  또 엄청나게 느린 인터넷 덕분으로 사람들이 가진 정보를 공유하기에는 한계가 있었기에 결혼이란 제도를 만드신 하나님께 질문할 수밖에 없었다.


      선교지에서 귀국하자마자  결혼을 하고 또 결혼을 하자마자 다시 낯선 환경으로 떠나는 날 붙잡고 부모님께서 '다시 , 우리 딸을 선교지로 보냅니다.' 라고 기도해 주시면서 그야말로 선교지 같은 곳에서의 결혼생활은 시작 되었다.


      요즘 인터넷 기사를 보면 점점 고령화 되는 한국 사회를 걱정하면서 '대한민국 국민 10명중 1명은 노인' 이라는 헤드라인을 본적이 있는데 난 이 말을 실감하면서 살고 있다. 우리 동네(강서쪽에 위치한 S동)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따닥따닥 , 빽빽이 3층 주택이 몰려있는 곳이다. 보통 3층은 주인집으로 꾸며져 있고, 아래층 두층은 반 혹은 세 등분해서 한집에 평균 5세대가 모여 산다. 십의 자리 호수를 가르는 기준은 어른걸음으로 다섯 걸음정도 밖에 되지 않는 좁은 골목인데, 어느 집에서 싸우는지 TV프로그램은 어떤걸 보는지 밥을 먹고 있는지 집집마다의 사정이 다 들리는 아주 좁은 거리이다.


      이 좁은 골목에 낮이 되면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세 집 걸러 한집 대문에 앉아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곤 하시는데 그 중에는 거동이 불편하거나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기운 없는 채로 앉아있는 분들도 상당히 많다. 또 어떤 분들은 하루 종일 박스를 주으러 다닌다. 몸이 너무 가녀린 할머니가 커다란 수레를 끌고 언덕길에 오르는걸 보고는 급히 뛰어가서 함께 밀었는데 할머니 손가락 마디마디가 큰 남자의 그것처럼 두껍고 거친 것을 보면서 울컥했던 일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동네 화분가게 주인의 표현처럼 ' 먹고 사는 것이 바쁜 동네'라서 그런지 삶의 고단함을 술로써 위로를 받는 건지, 재활용을 버리는 날이 되면 집집마다 술병이 내 생각에 좀 심하다 싶을 만큼 많이 버려지고, 술을 많이 마시는 것에 대한 반증인건지 며칠을 조용히 넘어가는 법이 없이 정말, 하루가 멀다 하고 동네 이곳저곳에서는 싸우는 소리가 들린다.


      한번은 하루 종일 집안의 집기를 던지고 부시는 소리에 여자 우는 소리가 들려서 몇 번이나 경찰이 다녀가고 난리가 난적이 있었는데 남편, 아내 모두 알콜중독자에다가 고등학생 아들은 집 나간지 오래 되었고, 그나마 중학생 딸이 함께 산다는 말을 듣고는 저녁 내내 우울했던 기억도 있다.

      이곳에서 10K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김포공항이 있다. 그래서 아침 7시 반 정도부터 저녁 10까지 비행기가 지나다닌다. 실제로는 눈에 보이는 것보단 먼 거리겠지만 돌 던지면 닿을 것 같은 크기로 보일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큰 괴성을 지르며(이건 아직 비행기 소리에 적응 못한 나의 느낌이다) 동네 위를 날아다닌다. 한번은 옥상에서 빨래 널다가 푸른색의 태극마크를 단 비행기가 내 머리위로 지나가는지 모르고 뒤돌아 봤다가 비행기가 내 위로 떨어지는 줄 알고 주저앉기도 했었다.

      '아니, 한국 정부는 어떻게 사람이 사는 동네위로 비행기가 날아다니게 만들어 놨데.. 어떻게 이 동네를 사람들이 살도록 허가를 내주었냐고 .." 한참 이 동네의 풍경에 쓸쓸해하며 이야기 하자, 실은 김포공항이 만들어진 이후에 가난한 사람들이 판자를 대고 살기 시작해서 이렇게 큰 동네가 만들어 진거라고 한다 .


      이것 말고도 우리 동네 풍경은 어떻게 정의하고 표현하느냐에 따라서 더 처참하게도 보일 수 있다. 처음에 이곳에 살기 시작하면서는 밖에 잘 나가고 싶지 않았다. 때로는 그  못산다는 선교지 보다도 더 마음 아픈 광경을 보기도 했고 젊어서 고생하신 노인들이 대접은커녕 홀대받으면서 사시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 또한 없다고 생각하니 비참하기 까지 했다.


      한번은 시장 다녀오는데 좁은 문 앞에서 쭈그리고 앉아 지나가는 사람 구경하는 할머니의 무기력한 모습을 보고는 시장에서 산 과일을 다 드리고 펑펑 울면서 집으로 돌아온 적도 있었다. 남편도 나도 TV를 보지 않기로 결정하고 TV 없이 살면서 우리의 귀와 영혼을 풍요롭게 해주리라 믿고 클래식 음악 채널을 들으며 음악에 빠져보고자 하면 여지없이 드륵드륵 전파가 흔들리며 거대한 괴성을 지르며 그것이 지나간다.


      아침에 새벽예배를 가고자 가뿐한 마음으로 동네를 나서면 가뿐한 발놀림으로 어지럽게 퍼져있는 변들을 피해야 한다. 저녁 먹고 산책이라도 하고자 동네를 돌아다녀보면 그냥 걷기에도 버거워 보이는 노인들이 박스를 주워 모은 큰 수레를 혼자 끌고 가거나 음식물 쓰레기 통을 청소하는 모습을 보면서 둘 다 숙연하게 '우리 더 검소하게 살고, 비싼 거 많이 먹지 말고, 옷도 최소한으로 가지고 살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사람들 도우면서 살자.' 이런 다짐을 조용히 하게도 한다.


      '가난'은 내 잘못인가?  젊은 시절 게으르고 모으지 못하고 투기하지 못해서 받은 벌 같은 것인가. 그래 그럼 가난해 졌다고 치면, 가난하다고 해서 편안하고 깨끗한 공간을 누리지 못하면서 살아야 하는 건 당연한 건가?


      선교지 같은  우리 동네에서 결혼생활을 시작하면서 가난에 대한 고민은  가정 살림을 맡아서 해야 하는 주부로서 돈을 어디에 어떻게 써야할지 더 실제적으로 되었다.

      피에르 신부님의 말처럼 ' 이웃의 가난은 나의 수치이다.' 이 말이 우리 동네 가난하고 힘없는 노인인구를 보면서 더 가슴이 저려오고 실제적으로 내가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또, 이 광경을 보여주신 하나님께서 우리가정에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아주 작은 고민을 하면서 또 내 그릇의 분량답게 작은 대안을 생각하고 작게 실천하면서 그렇게 부끄럽게 나의 선교지 같은 곳에서의 결혼생활은 오늘도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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