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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회복의 목회
  • 회복의 목회 (이재철목사님, 홍성사)


    -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교회로의 회복’이 목표였고, ‘회복의 목회’란 바로, ‘말씀의 회복’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런 말씀의 회복 방법도, 필요한 본문을 발췌하여 설교를 하였다면, 개인 취향에 따라 교인들을 편식시킬 수 있는 오류를 범할 수 있었기에, 10년동안 순서대로 말씀을 살폈기에, 목사님 자신이 먼저 그 묵상에 따라 성숙하여졌다고 고백합니다.

    -  교회본질의 회복 차원에서 고전1:1-3, 마16:18,마5:1-3, 마13:1-3, 고전3:16-7, 고전6:19-20,엡2:20-22에 의거하여 부르심을 입은 사람 그 자체가 교회이기에, 예배하는 곳 그곳이 바로 예배당으로서 “움직이는 예배당(PORTABLE TEMPLE)”의 회복을 우선시했고, 교회건물을 소유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16:15-18에서 주님께서 ‘내교회’를 세우신 것처럼, 교회의 주인을 회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교황이 그 직책에 앉았다는 이유만으로 죽을 때까지 단 한 번의 오류을 범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잘못된 것처럼, 인간의 교회화를 벗어나는 노력으로 목사를 비롯해 임직자들의 임기제를 실행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목사는 개척을 했기에 안정된 목회철학을 위해 5년을 고민하다 10년으로, 장로님은 13년으로, 안수집사님과 권사님은 각각 10년과 12년으로 적용했다고 합니다. 안식년 포함은 다 다름) 이렇게 함으로써 부지중에 주님의 자리에 앉는 죄를 범할까봐, 노력했고, 장로와 목사의 이름을 주보앞에 기재하지 않고, 순서를 맡은 자들만 밝혔다고 합니다. (참조 : 대부분의 교회는 현직 목사님의 이름 글씨체는 크기는 보통 사람들의 두배로, 좀 굵은 글씨체로 표기될 것입니다.)

    -  헌금중 십일조는 톰슨Ⅱ주석성경에 따라, 보통의 10분의 1은 제사장용으로, 축제나 이웃구제를 위해 나머지 10분의 9중, 이것에 대한 10분의 1로 드렸다는 말씀에 근거해서, 50%는 교회안에서, 50%는 교회밖을 위하여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특히, 연말연시에 예산을 편성한 적이 없다고 합니다. 예산을 편성하면 하나님께서 허락하실 헌금을 모르는데, 인간이 정하고 인간이 독려하고 집행하게 되면 인간이 주인행세를 할 수 있어, 단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하나님뜻에 따라 사용되도록 애썼을 뿐이랍니다. 헌금봉투에 이름을 기록하지 않기로 했답니다. 풀타임 사명자외에는 모든 봉사자에게 사례비를 지급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대가를 요구하는 봉사는 봉사일 수없고, 봉사를 사기 위해 지급되는 것이라면 헌금일 수 없기 때문이랍니다.
      (P.37. 나는 지난 10년동안 하나님께 바친 헌금을 직접 관리해 본적이 없고, 전표나 재정관련 서류에 결재를 해 본적이 단 한번도 없다. 헌금 단돈 1우너도 만져 본적이 없다. 행6:1-6에 목회자의 역할은 기도하는 것과 말씀전하기를 전적으로 담당하는 것(전무:專務)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헌금관리는 목회자의 몫이 아니다. 목회자가 헌금과 거리를 둘수록, 주님께서 주인이신 헌금의 진정한 의미는 회복된다”고 말합니다.)
      (참조: 어떤 교회에서는 유학양육비를 더 올려 달라, 목회자 차량이 LPG차가 뭐냐, 7만킬로미터도 안된 차를 바꾸어 달라, 전세살이가 뭐냐 창피하다, 안식년을 달라고 한답니다)

    -  벧전 2:4-5, 벧전 2:9처럼, 예배의 회복은 바로 만인제사장설(중세개혁자의 핵심사상)에 입각해서, 목사와 교인을 구별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의식외에는 성의를 입지 않았고, 강단에 단 하나의 의자를 두어 순서에 따라 그 자리를 지키고, 모든 기도 순서에 전교인을 직분과 남녀 관계없이 등록순서대로 했으며, 수차례에 걸쳐 일반 신도의 간증설교를 함께 나누었고, 성극과 연주가 같이 드려졌다고 합니다. 바로 만인제사장설이 우리 개신교의 기본사상이기 때문이랍니다. 이것은 최근 유행하는 바, 안믿는 자들을 교회로 끌어들이기 위한 목적의 열린예배와는 다른 성경이 전하는 바, 만인제사장의 회복이라고 확신한다고 합니다. (참조 : 어떤 경우는 목회자가 박사학위를 받고 나면, 성찬식등 예식에 성의를 입지 않고 학위가운을 입는 것을 보았답니다. 경악할 노릇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 사고와 시야의 회복이 없다면, 바로 집단생활과 교주에 집중하는 이단이 되고 맙니다. 하나님께 향한 집중은 시야의 회복을 가져다 주고, 하나님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면,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도 귀를 기우리게 된답니다. (참조 : 그런데, 이런 경우도 있답니다, 교회가 바람직하지 않은 경우를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 원인이 장로님들에게 있든, 안수집사님들에게 있든, 권사님들에게 있든, 아니면 막말로 목회자 개인으로 인하여 발생되든간에, 사람은 실수를 할수 있기에, 함께 모여 마음을 나누고 이해하고 용서하고 새롭게 단합하고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기 위해 연석회의를 소집했는데, 이것이 목회자에 의해 소집되지 않았다고 해서, 다른 모든 모임 참석자들은 그 모임의 의의를 건설적으로 보고 참으로 잘된 일이라고 하는 데, 유독히 목회자만 ‘장로중심의 교회이다’고 하고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던 것입니다. 바로 시야를 좁히고 자신만을 주목하기를 바란다면, 큰일날 소리이지요.)

    - 참으로 인상 깊은 것은, 중단없는 회복의 은혜에서는 깨어 있기를 힘쓸 때, 우리 중심을 아시는 주님께서는 우리의 치명적인 실수나 잘못까지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끔 회복시켜주신다는 것입니다.
      1) 수련회때 한 아이의 죽음은 엄청난 상황을 낳았지만, 부모의 신실한 믿음과 이목사님의 사표는 물론 교회가 전적인 책임을 지는 모든 결정속에, 이목사님의 경우 3개월 근신으로 설교시간외에는 집에서 근신하는 당회결정등 책임자들의 근신의 모습은 매우 인간적이지만 성실함이 베어 있는 처신들로 보였답니다.
      2) 또, 헌금을 안수집사가 의도적으로 잘못 사용함으로써 교회위기가 닥쳤지만, 재발방지와 거룩성을 회복하기 위해서, 먼저 진상을 규명하고, 그 집사님을 주님의 사랑으로 포용(추후 교회를 떠남)하고, 변제를 요구하지 않았고, 제직회를 열어 진상을 설명하고, 재정관리를 잘못한 당회가 사과를 구했는데, 내가 잘못 가르친 내탓으로 진심으로 내가 바로 서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3) 큰 문제로는 장로선거시 사전 선거운동이 문제가 되었답니다. 특정인을 임직시키려는 측과 반대하는 측의 다툼으로 번졌던 것이랍니다. 이에 잘못 가르친 내탓으로 두 번째 사표를 내놓았던 사건인데, 이로 인하여 모든 임직자의 임기제가 실시되었다고 합니다. 그 이후, 나라에서 선거하는 방식으로 선거명부, 칸막이 기표소, 비밀투표를 행했다고 합니다(참조 : 이런 일은 허다 합니다. 사전 선거를 안하는 부류가 거의 없는 실정이고 심지어는 목회자가 특정인을 세우기 싶어서 선거명부도 없고 투표용지도 분리되지 않은 채, 1부, 2부 예배에 그냥 투표를 하여서 합산하는 경우도 있고, 그래도 원하는 사람이 가결투표수를 얻지 못하면, 별도 예배를 드리고 있는 청년부들을 불러 와서 투표를 하게 해야한다고 명령하는 너무나 무서운 인본주의적인 모습을 안고 목회현장을 업으로 지키는 경우도 있답니다.)

    - 참으로 내게 신나는 문단이 있었습니다. P.76. "나에게 목회란 에덴 ~ 히브리어로 ‘간’은 울타리를 조건으로 한답니다 ~ 울타리의 회복을 도모하고 도와주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목회와 관련하여 나 자신의 비젼을 가져 본적이 없다. 하나님께서 나를 통하여 이루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비젼을 포착하기 위해서는 먼저 나 자신의, 비젼이라는 이름의 세속적 사고와 야망에 울타리를 쳐야만 했기 때문이다“라는 말입니다.
      내게 목회는, 바로 이 진리의 절대적 가치를 회복시켜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고, 이것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내가 먼저 진리의 말씀대로 살기 위해 애써야 한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나에게 있어서 목회란, 사람들의 삶속에서 봉사를 회복시켜주는 것인데, 교회안과 밖에서, 그리고, 자기보다 낮은 데서의 봉사를 회복시켜주어야 한다고 합니다. 이유는, 나보다 높은 데 있는 자를 섬기는 것은 봉사가 아니고 그것은 보수의 대가이거나 아부일 뿐이고, 오직 나보다 낮은 곳에 있는 자를 섬기는 것이 진정한 봉사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목회란 자기부인을 생활화하는 것인데, 봉사자를 양육하되 소리 없는 봉사자, 봉사를 다하고서도 자기를 그리스도 안으로 숨길 줄 아는 익명의 봉사자를 양육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주님을 따라 다닌다고 할 지라도 자기부인이 없는 것은 주님과 무관한 것입니다.

    - 목회자는 구도자이어야 합니다. 주님의 교회는 유급청소부가 없습니다. 청소가 교역자의 조건이랍니다. 교인들이 목회자의 삶을 투명히 알 수 있게 합니다. 사무실은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목회자가 구도하는 것을 아무에게나 전도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식사나 운전에도, 그리고 목회자는 목회와 무관한 것으로부터 자발적인 자기격리를 해야 합니다. 금요일 이후는 먹고 자는 것외에는 서재를 나서지 않습니다. 보다 나은 영적 설교를 위해서 토요일은 점심을 먹지 않고, 원고를 외웁니다. 교인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답니다.
      또, 모두의 목사로 살아야 한다고 합니다. 공정히 공평히 대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파벌을 만들면 안됩니다. 그런 경우, 왕당파, 목사파가 생기고 목사 때문에 곧 파멸입니다. 그래서, 목사는 교인들과 일정한 거리를 두어야 합니다. 호불호를 넘어서 모든 이들의 어려움에 찾아가야 합니다. 결국, 목회자 자신을 살리고 교회를 살리는 길입니다. 그리고, 모든 이의 목사가 되기 위해선 나의 가족에게 조차도 목사가 되어야 합니다.
      비판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합니다. 틀린 경우 지체없이 사과해야 합니다. 목회자가 모든 교인들 중에 가장 뛰어난 사람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망각해서는 안됩니다. 모두의 목사가 된다는 것은 교인 모두를 주님의 편이 되게 한다는 것입니다. 고독함 없이 어찌 모두의 목사가 될 수 있겠는가?라고 이목사님은 말합니다.
      목사는 예절자이어야 합니다. 요13:4-5,12에 보면, 에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기전 옷을 벗고 또 다 씻으신후 옷을 입고 말씀하시는 예절자였음을 알려줍니다. 결국, 하나님의 종에 불과한 목회자야말로 이 세상 누구보다도 더 확실한 예절자가 되어야 합니다. 전화를 걸때나 직접걸고, 대화시 무의식적인 반말을 하지 않고, 연장자가 오시면 나가실 때 반드시 따라나가 문밖에서 인사를 했답니다. 교인이 운전하시면 앞자리에 앉고, 운전기사가 있으면 운전석 뒤에 앉았다고 합니다. 교인댁을 심방시에는 예배때는 상석에 앉았으나, 예배후에는 그 댁의 주인이나 연장자를 상석에 앉도록 했답니다. 심방시 무릎을 꿇고 예배를 드렸고, 교인들앞에서 아내를 사모라고 부른 적이 없답니다.해외를 다녀오는 경우, 출국,귀국즉시 시무장로님들께 인사전화를 드렸고, 당회에 참석하지 못한 장로님들에게는 일일이 전화로 내용을 알려드렸답니다. 그들은 내게 모두 형님뻘이요, 인생의 선배들이기 때문이랍니다. 목회는 섬김입니다. 예의 없는 섬김이란 섬김일 수 없으니, 목회는 철저한 예절자이어야 한다고 본답니다. (PP.107-113상세히 읽어보시라)

댓글 1

  • 김장환 엘리야

    2008.05.21 17:21

    몇 년 전에 읽었던 책인데,
    요즘 새로운 도전으로 기억이 나서 실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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