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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촛불을 켜는 그리스도인들’ 창립선언문(초안)
  • 촛불을 켜는 그리스도인들’ 창립선언문(초안)


      기독교는 냉혹한 군사독재시대에도 굴하지 않고 신앙인의 양심에서 우러나오는 투쟁을 이어왔습니다. 민주화투쟁과 통일운동에 선봉에 서왔으며 6월 항쟁을 이끄는 핵심적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또한 암울한 시대에 목요기도회 등을 통하여 인권 사각지대에서 희생당하는 사람들의 인권을 지켜오는 역할을 이어왔습니다. 이런 선배들의 신앙적 전통을 이어받아 2008년도 여름 촛불정국, 촛불봉기에서도 기독교진보세력이 결집하여 중요한 투쟁을 수행했습니다. 광우병 기독교대책위와 촛불교회를 통해 기독인의 신앙적인 양심을 지켜갈 수 있었습니다.


    삶과 참여의 영성을 새롭게 하는 기독운동

      그러나 통속적인 한국교회는 하나님께서 활동하시는 역사적 현장을 유기하고 예수를 따르는 삶을 단지 개인심령 속에서만 찾는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잃어버린 삶을 회복하는 새로운 기독운동이 절실한 때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삶과 영성을 근본적으로 새롭게 확립할 수 있는 기독운동이 필요합니다.
      
      한국교회 일반이 지극히 개인적 영성에 치우쳐 있는 한,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의 양심을 정치투쟁만으로 표현하는 데는 지극히 한계를 가집니다. 그러기에 새로운 참여의 영성을 키워나갈 장이 절실하게 요청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영성을 훈련하는 장은 예배입니다. 우리들이 주님을 통해 우리들의 영을 새롭게 하지 못한다면 이 시대를 통하여 말씀하시고 역사하시는 주님을 따라갈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촛불을 켜는 그리스도인들”은 정기적인 열린 기도회, 열린 예배를 통하여 한국교회가 참여의 영성을 북돋고 우리들 자신을 회개하는 마음으로 새롭게 결단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주님께서 우리 보다 앞서서 이 역사의 현장, 고난 받는 민중의 현장에 참여하고 계시며 그들과 함께 싸우고 계심을 믿습니다.

      기독인은 예배로 말합니다. 예배는 어느 장소, 어떤 시간에 드리느냐에 따라 때로는 가장 강력한 정치적 저항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종교적 자유를 통하여 가장 필요한 현장을 찾아가 예배함으로 우리가 사는 시대에 가장 절실한 예배를 드리게 될 것이며 때로 이것은 가장 강력한 기독교적인 투쟁의 방법이 될 것입니다.


    진정한 예배는 사건의 예배입니다.

      진정한 예배는 사건의 예배이며 역사의 현장, 고난의 현장에서 드려지는 예배입니다. 성서시대의 예배는 하나님과 만났거나 하나님의 위대한 해방사건이 일어난 현장입니다. 시편에 나오는 예배의 중심 주제들은 제국으로부터 해방을 이루어가는 출애굽 사건, 그들이 경제적 기반인 땅을 얻게 된 사건, 새로운 나라를 세우게 된 사건을 기념하는 의식들입니다. 성서시대의 유명한 제의적 축제들 역시 하나님의 해방사건을 기념하는 절기들입니다. 무릇 예배는 해방의 사건을 기억하고 나아가 새로운 해방의 사건을 일으키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시대적 사건과는 상관없이 단순히 이천년 삼천년전의 성서의 이야기를 반복하거나 그 사건들의 회고 차원에 머문다면 예배의 생명력은 이미 사라진 것입니다.

      오늘의 예배는 정형화된 형태로 각 교단의 법에 따라 그 기본적인 틀이 규정됩니다. 예배가 오늘 같이 전례화되고 움직일 수 없는 엄숙한 틀로 고정된 것은 중세 때입니다. 이 때 모든 의식은 성직자의 독점물이 되었고 이러한 전통은 서구의 식민지 확장정책을 따라 문화제국주의적의 양상을 띄게 되었습니다. 피점령국의 고유한 문화를 파괴하고 그 나라의 고유한 문화들을 저급하고 미신적이고 타도해야될 대상으로 규정하였습니다. 기독교문화는 그 민족의 고유한 역사와 문화를 말살하는 대립적 틀을 가지고 토착문화와의 전쟁을 시도하였습니다. 각 나라의 고유한 문화들은 소멸될 위기를 맞게 되었으며 무력시위를 배경에 두고 승리한 서구문화가 자기표현의 양식을 서구적 예배의 방식에 담아 모든 민족들이 가진 문화적 창의성을 버리고 단지 서구적인 양식을 반복할 것을 교조적으로 강요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배는 각자가 처한 상황 속에서 구원을 이루어가기 원하는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이 만나는 장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해방사건,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해방)사건을 극으로, 이야기로, 상징으로, 즉 그들의 문화적 도구-시, 노래, 춤, 연주, 제사를 통해 현재화하는 것입니다. 거기서 예배 참여자들은 하나님의 임재를 맛보고 예수 그리스도의 현존을 느끼게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해방사건이 일어나는 예배는 지난 이야기를 반복하는 과거적 사건에만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 안에 있는 미래의 세계를 엿보고 그 나라에 대한 희망을 가지며 동시에 그 미래적 사건을 현재화하는 축제입니다.

      우리가 과거 현재 미래 이렇게 시간을 구분하지만 이것은 관념이나 개념의 세계 안에 있는 구분에 불과합니다. 사실 우리의 경험 안에는 이런 모든 것이 통합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성서의 출애굽 사건을 말하면서 동시에 우리들의 출애굽을 생각하고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말할 때도 그것은 동시에 우리들의 십자가이기도 한 것입니다.

      우리가 지나간 성서의 해방사건을 재현하면서 미래에 우리들의 해방을 꿈꾸고, 동시에 우리가 해방을 지향하는 인격을 갖고, 오늘 우리의 해방사건으로 연결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해석학적인 순환”이 이루어지는 것이 바로 과거의 사건을 반복하는 예배가 갖는 기능이요 그 안에 오늘과 내일이 함께 들어있는 신비입니다. 이는 과거적 사건은 오늘 그와 유사한 사건들로 재현되어야할 당위성과 필연성을 가진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것이 단지 지나간 과거의 이야기로만 되었을 때 우리는 지나간 화석을 예배하는 것이요, 기억과 관념으로만 해방을 즐기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 안에는 모든 것이 해석학적인 통합이 이루어져야합니다.

      예수님께서 "이산에서도 아니고 저산에서도 아니고.... 참되게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이, 영과 진리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 때다.... 하나님은 영이시다.그러므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사람은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요 4:21-24)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진실로 드리는 예배는 우리들의 사건으로 드리는 예배를 말한다고 봅니다. 그것이 이 시대의 영이고 우리들의 영으로 드리는 예배이기도 한 것입니다.

      또한 바울은 "여러분은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이 드릴 합당한 예배입니다."(롬 12:1)라고 합니다. 우리 몸을 산제사로 드리는 것이 ‘우리들의 삶으로 예배드리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에게 절실하지도 않은 문제에 대해 어찌 우리의 몸을 산제사로 드릴 수 있겠습니까? 예배는 우리들의 해방이야기, 개인적이던 집단적이던 우리의 몸으로 살아가는 이야기, 그 안에 있는 하나님의 구원사건, 해방사건의 이야기를 말해야 합니다.

      이에 ‘촛불을 켜는 그리스도인들’은 초대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이 로마제국 치하에서 핍박 속에도 까따꼼베(지하 동굴 무덤)를 밝히는 등불을 켜고 모여 기도했던 전통을 이어받아 다음과 같은 원칙을 가지고 오직 그리스도인를 따르는 순례의 길을 가고자 합니다.


      1. 우리는 고난 받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을 위로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난 받는 사람들의 외침을 들으십니다. 가슴에 맺힌 한을 울부짖는 소리는 기도보다 더 원초적인 하나님과의 소통입니다. 교회는 당연히 이러한 한을 가진 사람들과 소통하고 그들 가운데 함께 하시는 주님을 만나야 할 것입니다.

      유신-군사독재로 이어오는 시기에 목요기도회가 고난 받는 사람들을 초청하여 증언을 듣는 예배였다면 ‘촛불을 켜는 그리스도인들’은 아픔의 현장에 찾아가서 가장 큰 아픔이 있는 사람들과 함께 소통하며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위로하는 예배를 중심으로 하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2. 한국교회 갱신을 위해 필수적인 교회이기도 합니다.

      “촛불의 켜는 그리스도인들”(촛불교회)이 드리는 예배는 살아있는 예배이며 동시에 미래를 지향하는 한국교회의 새로운 교회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이 예배는 평신도와 목회자가 함께 만들고 함께하는 예배가 될 것이며 한국교회의 갱신된 모습을 미리 밝혀주는 모델이 될 것입니다.

      진보적인 의식을 가진 목회자라고 하더라도 목회자가 자기 교회의 평신도들과 함께 현장에 나오는 노력을 게을리 한다면 한국교회는 절대로 개혁되지 못합니다. 목회자와 평신도가 서로 긴장하는 한, 그 결과는 뻔합니다. 목회자는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 시간을 온전히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목회를 복원하는데 힘을 다할 것이며, 평신도들은 수동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만인 사제적인 의식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교회를 변화시키는 노력과 기도에 참여할 것입니다.

      3. ‘촛불을 켜는 그리스도인들’은 고난에 현장에 서는 교회입니다.

      한국교회는 다 조직 교회의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조직은 건물과 재산을 요구하고 이를 위해 더 큰 조직을 요구합니다. 한국교회는 자체의 성장을 위해 못할 일이 없는 이상한 조직이 되어버렸습니다. 이것은 처음교회의 설립 정신과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교회는 본래 야훼신앙과 예수신앙의 출발의 자리였던 현장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최초의 천막성전은 이스라엘 민족이 이동하는 대로 따라 움직이는 현장 중심의 성전이었고, 야훼의 법궤는 전쟁과 민족의 아픔이 있는 현장으로 이동해 다니는 하나님의 현존의 상징이었습니다. 초대교회의 출발점 역시 “예수와 민중이 만나는 현장”(안병무)이라고 하였습니다. 교회가 이 현장성을 회복하지 못하고 단지 조직된 교회로 자신들의 안락한 예배 공간 안에서만 머물러 있다면 이들은 하나님 없는 예배와 우상의 교회를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역사와 민중의 고통의 현장에 계신 하나님을 만나러 들판으로 현장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우리는 현장성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교회라는 울타리 안에 갇혀서 각자 이기적인 영역 속에 머물렀던 기독교가 현장으로 나와서 민중들이 아픔을 겪는 자리에 함께 하여야 합니다. 이에 ‘촛불을 켜는 그리스도인들’의 예배는 고난의 현장, 역사의 현장에 찾아가서 함께 하며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현존을 대하는 사건의 예배를 드리게 될 것입니다.

      4. ‘촛불을 켜는 그리스도인들’은 진정한 교육의 현장이 될 것입니다.

      평신도들을 이론으로 교육한다면 뛰어난 선생이 필요하고 그것이 원활하게 잘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교육된 성원을 현장으로 접근시키는 것은 또 다른 결단이 요구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고난 현장에 직접 드리는 예배와 교회는 바로 감동이 있는 산교육의 현장이 될 수 있습니다. 자연스런 말씀의 체험과 교육과 예배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진정한 회심의 현장이 될 것입니다.

      5. ‘촛불을 켜는 그리스도인들’은 민주적인 공동체입니다.

      촛불을 켜는 그리스도인들은 특정한 담임목사나 대표에 의해서 운영되거나 일정한 단체, 교회가 주도적으로 운영하는 체제가 아니고 공동목회의 장, 목사나 평신도 모두가 공동으로 책임지고 공동으로 대표하는 형태가 되어야 합니다. 목회자들이나 평신도가 함께 가르치고 함께 배우는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굳이 교회의 정치 형태로 말한다면 회중교회 형태가 될 것입니다. 이 예배는 특정한 지도력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참여하는 대중 모두가 함께 주체가 되는 새로운 틀의 예배와 교회가 될 것입니다.

      6. 매주 드리는 예배가 중심이 되는 조직입니다.

      기독운동이 정치 투쟁 형식으로만 지속되기에는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비상한 시기에 나타난 사회적인 사안에 따른 임시적인 집회 보다는 보다 일상적이고 꾸준한 형태의 투쟁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촛불을 켜는 그리스도인들’의 예배는 교회의 전통이 오랫동안 지켜온 주례 모임을 원칙으로 하여 참여의 영성을 키워갑니다. 때로는 영성을 고양하는 실내 예배나 강연으로 때로는 현장을 찾는 예배로 이어갈 것입니다.

      7. ‘촛불을 켜는 그리스도인들’이 새로운 형태의 연합운동이 되기를 바랍니다.

      ‘촛불을 켜는 그리스도인들’의 예배에는 에큐메니컬 진영이나 복음주의 진영이 함께 참여하였듯이 앞으로 이 예배는 모든 교파, 단체, 연령, 성별, 지역을 초월하여 하나로 연합하는 장이 될 것입니다. 모든 사회적 구분의 정체성을 벗어나서 오직 그리스도를 따르고자 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예수께서 가신 길을 함께 나아가고자 하는 순수한 열정으로 하나가 되어 진리 안에 연대되고 일치된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어 나갈 것입니다.

      ‘촛불을 켜는 그리스도인들’은 새로운 형태의 연합교회운동이 될 것입니다. 또한 사건의 현장이 꼭 수도권에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촛불을 켜는 그리스도인들의 예배가 전국적으로 열리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사건의 현장에 모두가 내려갈 수는 없지만 해당지역에서 촛불을 켜는 그리스도인들과 연대하고 기도함으로 전국적인 연대와 참여를 강화해 나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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