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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성공회 제자교회대한성공회 제자교회

  • 행동으로 진실하게 사랑하는 모범 - 신동욱목사님과 감자탕교회

  •   - 71호 서울역거리교회를 세웁니다  

      
      2009년 마지막 주일 낮, 네 번의 설교를 마치고 저녁 예배를 앞두고 있는 시간에 성도님
      한 분이 내 방으로 들어왔습니다. 내 방으로 들어온 신성덕권사님은 한참을 울었습니다.
      기다렸습니다.

      어렵게 오빠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목사인 오빠가 서울역에서 노숙자 사역을 한다고
      했습니다. 오빠는 개척교회를 하다 중국선교사로 가서 7년간 사역하고 돌아와 노숙자
      사역을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오빠는 자녀가 셋인데 자녀들은 올케 언니와 함께 영월에서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권사님이 오빠를 생각하며 마음 아파하는 것은 오빠가 노숙자들과
      거의 같은 수준으로 생활하면서 이 사역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후원이나 지원해 주는
      곳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어려운 사람을 향한 오빠의 마음 때문이기도 하다고 했습니다.
      가족들이 오빠를 위해 무엇이라도 하나 마련해 주면 그것을 자신을 위해 사용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월요일, 예약해 놓은 진료 일정이 있어 일찍 집을 나섰습니다. 진료를 마치고 점심을
      먹고나니 하나님께서 마음을 서울역으로 향하게 하셨습니다. 지하철을 타고 서울역에
      내려 광장으로 갔습니다. 내린 눈이 광장에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대낮인데도
      여기 저기 노숙자들이 보였습니다. 광장 북쪽으로 올라가니 민족사랑교회 팀들이 나와
      점심 배식을 하고 있었습니다. 광장을 한 바퀴 돌아본 후에 권사님에게 전화해서
      오빠 전화번호를 받았습니다. 통화가 되었습니다. 광장에서 식사 배식하는 일을 돕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로 찾아가서 신동욱목사님을 만났습니다.

      신목사님이 저를 알아봐서 신분은 나중에 밝히려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목사님이 기거하는 곳을 가 보자고 했습니다. 서울역 대합실 로비를 가로질러 서부역
      쪽으로 가면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 언제부터 노숙 사역을 했습니까?
      지난해 4월이니 이제 1년 6개월 정도 된 것 같습니다.  

      # 노숙자 사역을 어떻게 준비했습니까?
      노숙자쉼터 들어가서 1년간 생활을 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노숙자들을 많이 이해하게
      되었고 사역의 방향도 잡았습니다.

      # 주로 어떤 사역을 하고 있습니까?
      서울역 광장에서 매일 아침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9시에 시작해 열시 반에 마칩니다.

      # 서울역 광장에서 주일 예배를 드린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매일 예배를 드린다는
      이야기는 처음 듣습니다. 왜 매일 예배를 드립니까?
      노숙자들을 일으켜 회복시킬 수 있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예배를 통해 이들이 회복되어
      세상으로 나가기를 원합니다. 외람되지만 노숙자들과 함께 이 땅과 세계복음화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 예배를 드리러 노숙자들이 옵니까?
      네, 많이는 오지 않지만 열 명에서 서른 명 정도가 꾸준히 오고 있습니다.

      # 설교는 매일 목사님이 합니까?
      아닙니다. 이 일에 관심 있는 목사님 몇 분이 돌아가면서 합니다. 그 중에 저도 설교를
      할 때가 있습니다. 이 거리예배를 준비하고, 이어가는 것이 제가 하는 일입니다.

      # 예배만 드립니까?
      무엇을 주지 않기 때문에 어쩌면 예배를 드리기 원하는 사람들만 오는지 모릅니다.
      팥죽을 쑤어 가지고 나올 때도 있고, 때로 빵이나 차를 가지고 나와 함께 먹습니다.
      어떤 때는 그냥 나올 때도 있습니다.

      # 예배를 방해하는 사람은 없습니까?
      있었지요. 하지만 지금은 늘 하는 일이기 때문에 괜찮습니다.

      # 그 외에 또 어떤 사역을 하고 있습니까?
      서계동에 가면 민족사랑교회가 있습니다. 오늘 밥을 나눠준 교회입니다. 이 교회는
      10년 전부터 노숙사역을 하는 교회입니다. 지하실을 하나 얻어 예배를 드리는 교회인데
      그 안에 노숙자 쉼터도 있습니다. 지하이기 때문에 정부로부터 공식 쉼터로 인정받지
      못해 운영은 어렵지만 여기는 예배가 있습니다. 매일 새벽기도를 하는데 제가 6시에
      이 예배를 인도하고 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신목사님이 새벽기도를 인도하는 민족사랑교회에 도착했습니다.
      예배당은 50여 평 정도 되어 보이는 지하였습니다. 예배당 한쪽을 막아 노숙자 쉼터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2층 침대가 여러 개 놓여 있었습니다. 침구와 옷가지가 잘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한 30여 명이 여기서 생활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신목사님이 기거하는 곳으로 가보자고 했습니다. 목사님이 머뭇거렸습니다. 민족사랑교회
      바로 앞에 있었습니다. 아주 허름한 구옥이었습니다. 사람이 살지 않던 집인데 얼마 전
      무상으로 2년간 사용할 수 있게 된 집이라고 했습니다. 찬바람이 그대로 들어오는 방에는
      이부자리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네 명이 잔다고 했습니다. 난방시설이
      전혀 안 돼 있었습니다. 밖이나 안의 차이를 거의 느낄 수 없었습니다. 목사님은 노숙자
      두 명과 봉사자 한 명과 함께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노숙생활을 하면서
      노숙사역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곳에 오면 그렇게 마음이 편하다고 하는 신목사님 말에
      할 말을 잊었습니다. 왜 권사님이 와서 그렇게 울었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신목사님에게 가족 이야기를 물었습니다. 아내와 세 자녀가 있다고 했습니다. 권사님에게
      들은 대로였습니다. 아내와 두 자녀는 영월에서 살고 있고, 큰 자녀는 경기도에서 삼촌과
      함께 있다고 했습니다. 나보다 목사님이 나이도 위고, 목사 안수를 받은 것도 먼저지만
      “노숙자를 돌아보는 것이 중요한 일이지만 가족을 부양하고 돌아봐야 한다”고 한마디
      했습니다. 일부러 그렇게 한 것은 아니지만 가정을 돌아볼 수 없는 상황으로 인한
      안타까움이 목사님에게서 느껴졌습니다. 머쓱해하며 사모님과 자주 통화하면서
      지낸다고 했습니다.

      사랑의집 1호를 만든 것이 2002년 성탄절입니다. 하나님께서 빈방 있느냐고 물으셔서
      엉겁결에 있다고 대답한 것이 계기가 되어 1050만원을 주고 모녀를 위해 작은 방 하나를
      전세로 얻었습니다. 이것이 사랑의집 1호입니다.  그 후로 우리는 성탄절이 되면
      성탄헌금으로 거의 매해 사랑의집을 마련했습니다. 금년에는 성탄헌금 8천 5백만 원으로
      한국교회 이름으로 성탄선물을 돌렸습니다. 얼마 전 여수에 외국인노동자를 위한
      사랑의집 37호를 마련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성탄 사랑의집으로 생각해 주시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금년을 나흘 남겨놓고 사랑의집 하나를 마련해야 할
      상황 앞으로 이끌어 가셨습니다.

      사랑의집운영부 김한기 부장님과 현장에서 전화로 의논하고 바로 방을 얻으러 나갔습니다.
      한편에서는 월요일이라 쉬고 있는 교역자들 몇이 구제창고에 들러 사랑의집에 필요한
      집기를 챙겨 싣고 출동했습니다. 가능하면 빈 집, 오늘 바로 입주할 수 있는 집을
      찾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해가 넘어가고도 한참 뒤에 방이 두 개인 작은 집 하나를
      5천만 원에 전세로 계약할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늘 그러했듯이 우리 이름으로
      계약하고 전세권 설정을 했습니다.

      계약을 마치자마자 대기하고 있던 우리 팀들이 차에 싣고 온 짐들을 집으로 들였습니다.
      또 한 팀은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기 위해 근처 대형마트로 갔습니다. 사랑의집
      운영부장님도 퇴근 후에 현장으로 달려왔습니다. 짐을 들여 놓고 정리를 하고 나니
      밤 열한 시가 되었습니다.


      


      신목사님은 어안이 벙벙해 했습니다. 목사님께 부탁을 했습니다. "이 집은 목사님
      가정을 위한 집입니다. 노숙자를 집으로 데리고 오면 안 됩니다. 가능하면 빨리 가족을
      데리고 와서 이 집에서 함께 살기 바랍니다." 이 이야기를 몇 번 했습니다. 동생을
      통해 듣고, 현장에서 본 목사님에게 이것이 쉬운 일 같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목사님이
      그렇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점심을 먹고 시작한 일이 하루를 넘기기 전에 마무리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준비하심이 있었습니다. 집에 도착하니 자정이 넘었습니다. 주님과 함께 잠이
      들었습니다.

      화요일 아침, 이른 아침에 눈을 떴습니다. 하나님께서 서울역에 마음을 더 주셨습니다.
      신목사님의 사역공간을 마련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마음에 "서울역거리교회"가
      들어와 있었습니다. 김태환 장로님에게 전화를 해서 이 마음이 하나님이 주신
      마음인지를 점검 받았습니다. 내 마음을 전해들은 김장로님이 기쁨으로 그렇게
      하자고 했습니다.

      신목사님의 주된 사역은 서울역 광장에서 노숙자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다른 교회는 예배당이 필요하지만 이 교회는 예배당은 필요 없습니다. 광장이
      예배당이고, 거리가 예배당입니다. 그렇지만 그 예배를 준비하고 섬길 사역공간은
      필요합니다. 팥죽도 쑬 수 있는 주방시설이 있고, 목사님과 함께 사역하고 있는
      봉사자가 기거할 방도 하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었으면 했습니다.

      신목사님을 위해 등산화 하나와 따뜻한 옷 하나를 등산복 가게에서 사서 들고
      서울역으로 또 갔습니다. 서울역 서쪽에 있는 서계동으로 갔습니다. 공덕동 넘어가는
      언덕 왼쪽이 서계동입니다.

      윤성원목사님과 함께 나는 먼저 가고 나머지 팀들은 창고에서 구제키트용 박스 등
      서울역거리교회 사역센타에 필요할 만한 물품들을 싣고 뒤 따라 오기로 했습니다.
      전날에 이어 또 부동산중개인사무소 순례를 시작했습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의
      준비하심이 있었습니다. 첫번째 들린 부동산중개인사무소에서 보여준 가게가 이 일을
      위해 준비된 곳이었습니다. 전에는 미용실 자리였는데 근래에는 한 회사에서 직원들
      식당으로 사용하던 곳입니다. 조리 시설도 되어 있고, 식탁과 의자도 있었습니다.
      방도 하나 있었습니다. 보일러 시설도 되어 있었습니다. 거기다 비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마음에 넣어주신 용도와 너무나 꼭 맞는 곳이었습니다. 세입자가 오늘 계약을
      하면 시설을 무상으로 다 넘겨주겠다고 했습니다. 혹이라도 하나님이 준비하신 다른
      곳이 있는지를 잠시 확인한 후에 이 가게를 계약했습니다. 500만원 보증금에 월세
      45만원입니다. 이것은 신목사님 이름으로 계약했습니다. 계약과 동시에 대기하고 있던
      우리 팀들이 들어가서 수리와 청소를 했습니다. 필요한 물품들도 구입했습니다.

      아침에 서울역을 향해 나오면서 유영훈집사님에게 "서울역거리교회"라는 이름을 주면서
      로고를 하나 만들어 달라고 했습니다. 현장에서 스마트폰으로 만들어진 로고를 확인하고
      첨탑모양을 십자가 모양으로 교체한 후에 바로 현판을 제작하도록 했습니다. 밤 9시쯤에
      서울역거리교회 사역센타 현판이 도착했습니다. 어둠 가운데 현판을 달았습니다.

      
      


      서울역거리교회, 이 이름은 우리가 지었습니다. 신목사님 사역을 잘 담을 수 있는 이름을
      월요일 돌아가는 차 안에서 우리 팀들과 찾아보았습니다. 서울역거리교회를 신목사님에게
      제안했습니다. 신목사님이 기도해 보겠다고 했습니다. 하룻밤을 자고 이른 아침에
      그 이름이 참 좋다고 했습니다. 서울역거리교회 사역센타를 통해 하나님께서 영혼을
      구원하고 살리는 역사를 이루실 것입니다.

      서울역거리교회, 우리는 이 교회를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세우신 일흔 한 번째(71호)
      교회로 하기로 했습니다. 매달 여러분들이 드린 십일조에서 100만원을 지원합니다.
      일반적으로 교회가 세워질 때 2년을 기한으로 지원합니다. 2년 후에는 자립하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서울역거리교회는 어떻게 하실지 모릅니다. 일단은 동일하게
      2년을 지원하는 것으로 출발합니다. 그 후 일은 그때 가서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을
      따라 했으면 합니다.

      서울역거리교회 계좌도 하나 만들었습니다. 신한은행 100-025-835081
      (예금주: 서울역거리교회). 이틀간 만나본 신목사님은 영혼에 대한, 특별히 노숙자들에
      대한 특별한 사랑이 있는 분입니다. 노숙자에 대한 기본 인식이 그분에게는 가족입니다.
      월요일 밤에 신목사님이 잠을 어디서 잤을까요? 우리 팀들이 돌아간 뒤에 신목사님은
      지금까지 생활하던 그 집, 노숙자 두 명과 봉사자와 함께 살던 바로 그 방에 가서
      잤습니다. 아직 봉사자에게 설명을 하지도 못한 상태이고, 민족사랑교회 담임
      목사님에게도 이 상황을 이야기하지 못한 상태에서 새 집에서 자는 것이 부담스러워
      그랬다고 했습니다. 신목사님 마음이 전해지기에 봉사자에게는 대면해서, 또
      민족사랑교회 담임목사님에게는 전화로 내가 자초지종을 설명했습니다. 모두 다 좋아하며
      자신의 일같이 기뻐해 주었습니다.

      
      



      재정적인 관리 부분은 우리 팀들이 좀 도와줘야 할 것 같았습니다. 우리 중에서 한 명을
      회계로 세워 도와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지원하는 100만원으로 월세와 공과금
      등을 납부하고, 혹 남는 것이 있거나 혹 하나님께서 주시는 후원금이 있으면
      신동욱목사님(사진 오른쪽) 생활비로 드리는 일을 맡아서 했으면 좋겠습니다. 생활비는
      월 100만원 한도 안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만큼 드렸으면 합니다. 교역자 중에서는
      오세민 전도사님이 이 일을 섬기게 됩니다.

      노숙자를 가족이라고 생각하는 목사님, 노숙자와 함께 살면 마음이 편하다는 신목사님을
      만나면서 "맨발의 천사, 최춘선 할아버지"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그분 생전에 지하철
      안에서 한두 번 뵌 적이 있습니다. 정신이 좀 나간 할아버지 정도로만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그 할아버지의 삶을 다룬 DVD와 책을 보면서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
      송구스러웠습니다. 신목사님을 보면서 최춘선 할아버지 생각이 많이 나게 하신
      하나님의 뜻이 있을 것입니다.

      신목사님 아버지는 장로님이었습니다. 주물 사업을 크게 했다고 합니다. 직원들이
      많을 때는 280명 정도 되었다고 합니다. 공장 안에 교회도 세우고 학사도 마련해서
      어려운 이웃을 많이 도운 분이라고 합니다. 회사가 부도가 나면서 가세가 기울어지면서
      자녀들이 여러 일들을 겪었다고 했습니다. 신목사님이 처음 들어간 대학이 연세대학교
      기계과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 대학을 졸업하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힘들고 어려운
      시간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나중에 총신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71호 교회인 서울역거리교회를 통해 몇 명이 될지 모르지만 구원의 역사를
      이루실 것입니다. 지옥에서 구원해서 천국으로, 서울역에서 구원해서 가정으로 가게
      하실 것입니다. 거리에서 드려지는 예배를 통해 이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어제, 현장에서 한참 공사를 하고 있는데 박현덕 목사님이 보낸 동영상 문자가
      날아왔습니다. 8개월 동안 의식불명상태로 병원에 입원해 있던 조병근집사님이 자리에
      앉아 제게 인사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병원에 심방을 가서 의식불명인 조집사님을
      봤던 터라 저도 모르게 "이것은 기적이다"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박목사님에게
      전화를 바로 했더니 아직 병원이었습니다. 조집사님을 바꿔 줘서 통화를 했습니다.
      감격, 또 감격이었습니다. 얼마 전 기적을 설교했습니다. 그 며칠 후 서울역거리교회
      사역센타에서 기적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하나님이 이 일을
      기뻐하신다는 사인같이 느껴졌기에 감동이 더 컸습니다.

      서울역거리교회 사역센타에서 공사와 청소를 마친 후에 우리는 라면을 사다 끓여
      먹었습니다. 아, 참으로 맛있는 라면이었습니다. 참, 신목사님이 노숙자와 함께 살던
      그 집에 전기판넬을 설치하고 도배하는 비용 50만원을 우리가 섬기기로 했습니다.
      구제부에서 민족사랑교회 계좌로 여러분들이 드린 성탄헌금 중에서 송금했습니다.
      
      사랑합니다.  





댓글 6

  • 김장환 엘리야

    2010.01.10 21:26

    퍼오는 제 손길이 부끄러웠지만.....

    닮고 싶은 마음으로 옮겨왔습니다.

  • Profile

    ♬♪♫강인구

    2010.01.11 12:07

    네....
  • 이병준

    2010.01.11 14:39

    정말 부끄럽습니다. ....
  • 조기호

    2010.01.12 10:13

    읽고 있는 동안 행복했습니다.

    정말 행복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천국에서 살고 있는 것 같아 부럽기도 했습니다.
  • 니니안

    2010.01.14 11:57

    작은것 한번으로 가 아니길 바라면서 곧 내 머리에서 사라 질지 몰라도 나눔이 필요하네요.
  • 이필근

    2010.01.19 10:49

    부럽고 부끄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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