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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형 교회 건축 문제의 대안, 성육신 모델에서 찾아야(고영근 / 희년토지정의실천운동 협동사무처장
  • 조회 수: 1175, 2009-12-14 18:40:54(2009-12-14)
  • 대형 교회 건축 문제의 대안, 성육신 모델에서 찾아야

    (자기 비움 없이 자기를 채우려는 유혹에서 벗어나라 )


    대형 교회들의 새로운 예배당 건축 문제가 갈수록 점입가경이다. 알 만한 사람들은 이미 다 알겠지만, 예장합동 측에서 손꼽히는 대형 교회와 예장통합 측의 한 대형 교회가 수천억 원에 달하는 새로운 예배당 건축을 추진하고 있다. 해당 교회에서는 건축 헌금을 모으기 위해 벤츠를 타는 사람은 얼마, 티코를 타는 사람은 얼마라는 식의 기상천외(?)한 발상마저 나왔다고 한다.

    사실 교회들의 부동산 늘리기는 어제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교회들이 재산을 늘리기 위해서는 부동산만큼 좋은 것이 없다. 교회는 많은 현금을 쌓아 놓고 있지 않기 때문에 교회의 재정은 매주 들어오는 헌금으로 감당해야만 한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는 일단 빚을 내서라도 예배당·교육관·수련원·기도원·교회 묘지 등의 명목으로 땅이나 건물 같은 부동산을 사 놓은 다음 매주 들어오는 헌금으로 빚을 갚아 나가면서 재산을 늘리는 것이 가장 좋은 재테크(?) 방법이다. 이러한 방식은 부동산 불로소득을 얻기 위해 대출로 집을 사는 일반 국민들의 투기 방식과 별 다를 것이 없다.

    현재 우리나라 전 국민의 가계 부채는 700조 원이 넘고, 한 가구당 4,000만 원이 넘는 빚을 지고 있다. 빚을 진 가장 큰 이유는 부동산 구입 때문이다. 집값이 올라갈 것이라고 예상하고 너도나도 빚을 내 집을 사 두었기 때문이다. 교회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다. 아니 오히려 교회들은 빚을 내 부동산을 늘려 나가는 데 있어 일반 국민들보다 더 앞서 가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국민들뿐만 아니라 교회들도 빚지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고 빚 무서운 줄 모르게 되었다. 예전에는 빚을 지면 모두들 빚쟁이라고 했지만 지금은 빚을 져도 대출이니 신용이니 유동성이니 모두 다 그럴싸한 말로 바뀌었다. 일반 세상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롬 13:8)는 성경 말씀은 교회에서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지난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부동산 투기로 인한 가계 부채에서 발생한 것을 정녕 모르는 것일까?

    흩어짐을 면하고 우리의 이름을 내자

    이런 말을 하면 "사람들이 너무 많아 예배드릴 공간도 부족하고 모여서 교제할 곳도 없는데 교회 건물을 짓는 건 당연한 것 아니냐?"는 질문이 곧바로 튀어나온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계속 오는데 그럼 어쩌란 말이냐?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거냐? 교회가 부흥해서 건물을 짓는 게 무슨 잘못이냐?"라고 되묻는다.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사람들이 몰려들면 교회 건물을 더 크게 짓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그게 바로 교회 부흥의 증거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몰려들어 교회 건물을 더 크게 짓는 것이 과연 성경이 말하는 부흥인가?

    대형 교회는 나쁘고 중형 교회나 소형 교회가 좋다는 말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대형 교회 건축 대신에 분리 개척이나 셀 교회·가정교회·공동체·무교회주의 등이 더 좋다는 말을 하는 것도 아니다. 어느 특정한 교회 모델을 일반화하려는 시도는 역사상 매우 위험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바로 지금 우리나라 기독교인들이 대형 교회를 모든 교회들이 지향해야 할 부흥의 궁극적 목표나 모델로 생각하는 것이 매우 위험한 것처럼 말이다.

    대형 교회 문제의 핵심은 "대형 교회가 과연 예수그리스도를 닮고자 하는가?"에 달려 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힘과 부를 믿고 하나님을 떠나 스스로 서려는 인간들의 시도를 여지없이 무너뜨리신다. 구약에 나오는 바벨탑 사건의 핵심은 인간들이 도시를 세우고, 그 안에 탑을 쌓고서, 탑 꼭대기가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창 11:4)라는 것이었다.

    지금 대형 교회들이 추구하는 대형화의 이면에는 흩어짐을 면하고 힘과 부를 집중하여 자신들의 이름으로 복음을 전하고, 세계 선교를 하고, 자신들의 이름을 만방에 알리자는 생각이 깔려 있다. 그들이 주장하는 것은 결코 나쁜 짓을 하자는 게 아니다. 복음을 전하고, 세계 선교를 하고, 세상을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자는 것이다. 단 '오직 하나님의 신'(슥 4:6)으로가 아닌 똘똘 뭉쳐 힘과 부를 집중하여 자신들의 '힘과 능'으로 하자는 것이다.

    신약을 보아도, 하나님께서는 흩어져 복음을 전하려 하지 않고 모여 있는 교회를 치셔서 디아스포라로 만드시는 것을 볼 수 있다. 사실 태초부터 하나님의 뜻은 "온 땅에 퍼지라(fill the earth)"(창 1:28)는 것이었다. 지금 우리 한국교회는 세상 사람들에게서는 욕을 먹고 있으면서도 우리들끼리만 모여서 게토를 형성하고, 우리들끼리만 즐겁고, 우리들끼리만 하나님을 찬양한다고 그러고 있지는 않은가?

    예수그리스도의 '약하심'을 따르라

    교회의 모델은 어떤 특정한 하나의 모델보다는 예수그리스도의 성육신에서 그 근거와 모델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근본 하나님이시지만 오히려 자기를 비우시어 종의 형체를 가지시고 죽기까지 자신을 낮추시는"(빌2:6-8) 예수그리스도의 성육신을 우리 한국교회가 진심으로 닮으려 하고 있는가? 진실로 우리 한국교회에 예수그리스도의 '자기 비움(kenosis)'이 있는가?

    힘과 부를 집중하여 자신을 채우고 그 자원으로 복음을 전하고 세계 선교를 하고 세상을 바꾸는 것보다는 오히려 우리가 "약할 그때에 곧 강함이 되신다"(고후 12:10)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지금도 말씀하고 계시지 않은가? 기독교 진리의 핵심은 '강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그리스도의 '약하심'에 있지 않은가?

댓글 1

  • 양신부

    2009.12.15 15:05

    + 아멘!!
    좋은글 잘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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