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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경에 기반한 올바른 신앙적 정체성을 갖는 건강한 교회가 되기 위해서 '성경적 토지 모임'에서 퍼온 글
  • 성토모는 진보일까? 보수일까?

    남 기 업 / 성토모 회장


      요즘 성토모의 주장에 대해서 걱정하고 계신 분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습니다. 장로인 이명박 대통령의 정책을 구체적으로 비판하고, 그를 옹호하는 한기총과 목회자들을 질타하는 것을 보고, 왜 성토모가 토지 이외에 이야기를 하느냐, 왜 중립을 지키지 않고 정치적인 일에 개입을 하느냐, 장로 대통령을 위해서 기도해야하지 않느냐, 성토모가 진보 좌파냐, 하는 의견을 보내오십니다.

      이에 대한 성토모의 입장을 요약하면 성토모는 좌파도 아니고 진보도 아니고,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바에 근거해서 고민하면서 보다 옳은 것, 보다 하나님 말씀에 근접한 것을 지지하고, 또 그 기준에 너무 멀다 하면 비판하고, 그것을 또 하나님께 고쳐달라고 아뢰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우리의 모든 행위는 정치적이다.


      많은 분들이 왜 정치적인 일(노 전 대통령 서거, 광우병 사태, 용산참사)에 참여하느냐, 성토모는 중립을 지켜야하지 않느냐 하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우리의 모든 행위가 ‘정치적’이라는 사실입니다.

      설교시간에 사회문제에 대해서 아무 말 하지 않는 것, 무관심한 것, 불의에 대해서 무관심한 것이 바로 대단히 정치적인 행동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행위들은 자기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행악하는 자들이 더 그 길을 가도록 방치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선거에 무관심하면 돈이 많고, 조직을 많이 동원한 사람(이런 사람일수록 성경과 거리가 먼 사람인 경우가 많습니다.)이 당선이 되고 그렇게 되면 우리의 이웃의 삶이 더 고단해집니다.


      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개인적 자살’로 국한시키는 설교를 우리가 많이 접하는데, 그런 설교는 신앙적 설교이고,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세력―청와대, 검찰, 언론―을 비판하는 것은 정치적 설교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개인적 자살뿐만 아니라 그것이 가지는 사회적 함의를 밝히는 것이 보다 성경에 부합한 신앙적 설교이고, 성경에 토대를 둔 정치적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약하면 “난 정치에 관심 없어, 난 중립이야”라고 말하는 그 자체가 정치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보다 성경에 근거해서 어떻게 정치적 행위를 할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 순도 100%의 개인은 없다!

      그러면 어떤 분은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 잘못된 구조에 희생당한 사람들은 잘못이 없느냐고 말씀하십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 앞에서 순도 100%의 개인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내가 100% 옳은 사람이나 세력이 있다면 그쪽을 지지할 뿐만 아니라 그쪽이 주장하는 것이 이뤄지기 위해서 기꺼이 헌신도 하겠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하는 순간 우리는 사회문제에 방관자가 됩니다. 왜냐면 그런 사람, 그런 세력은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쪽저쪽 다 틀렸다’는 양비론(兩非論)자가 되거나, 균형, 혹은 중도라는 이름으로 참여를 거부하고 소위 말하는 종교적인 일에 치중합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런 생각이 우리를 사적(私的) 차원에서만 열심을 내는 편협한 신앙으로 이끈다는 것입니다. 사회에 무관심한 신앙은 결국 이 세상의 (왜곡된) 구조와 권위에 순응하면서 마음에 평안을 구하고, 자기가 당면한 일 즉, 취직, 진학, 주택 구입, 노후 대비, 자녀 양육 등에만 신앙을 적용하게 됩니다. 크고 광대하신 하나님을 좁은 사적 차원에 가둬버리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보다’ 하나님의 뜻에 부합한 것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애써야 합니다. 그런 신앙이 이 땅을 바꿀 수 있고, 성경이 바로 이런 태도를 지지한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각자의 성장 배경과 경험 세계가 다르기 때문에 어떤 문제는 우리 안에서도 의견이 갈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갈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구하려는 마음이 우리 안에 있다면, 서로 상대방의 생각을 들으려는 겸손한 자세가 있다면, 그리고 무엇보다 진리의 영인 성령을 의지하고 순종하려고만 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우리를 성숙시키는 촉매제가 될 것입니다.


    - 상식만 있으면 판별할 수 있는 일들이 너무 많다.

      사실 우리사회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은 건강한 상식만 있으면 구별할 수 있는 일들이 대부분입니다. 많은 분들이 사회문제는 복잡해서 알기 어렵다고 생각하고 아예 관심을 끄는 경향이 많이 있는데, 사실 사회문제의 거의 대부분은 건강한 상식만 있으면 파악할 수 있는 일들입니다. 우리가 ‘전문가’라는 말을 많이 듣지만, 사실 전문가는 건강한 상식이 옳다고 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밝혀내는 일을 할 뿐입니다.


      - 이해관계를 뛰어넘는 신앙이 필요합니다.

      지금까지 한국교회가 사회문제를 언급하지 않는 성경적이지 못한 정치적인 자세를 취한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아마도 사회문제가 이해관계로 얽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공평과 정의를 교회가 선포하려면 기존의 잘못된 질서와 구조와 부닥칠 수밖에 없습니다. 성도들도 사회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잘못된 구조에서 큰 이익을 보는 성도가 있고, 손해를 보는 성도가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불편할 수 있습니다. 많은 교회가 공평과 정의를 말하기보다 자비와 구제를 선호하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불의한 구조에서 이익을 보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하나님의 말씀, 즉 “심령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는”(히 4: 12) ‘불편한 진리’를 선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해관계를 뛰어넘지 못하는 신앙(교회)은 건강한 신앙(교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성경 속에 등장하는 선지자들,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 대표적으로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님은 현실적 이해관계를 뛰어넘어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개인과 사회를 책망하고, 때로는 위로하고 견인하려 했습니다. 오늘날의 교회와 성도들이 마땅히 따라야 할 모범입니다. 이것이 어둡고 부패한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됩니다.



    - 성토모의 방향은?


      저희 성토모는 이런 생각을 가지고 사회문제에 발언을 하고 그 문제를 하나님 앞으로 가지고 와서 매주 토요일마다 모여 기도하고 있습니다. 특히 지금까지 하나님의 토지법을 선포하면서 깨닫게 되는 분명한 사실은, 성경의 토지법에 반대하는 사람이나 세력은 다른 불의한 일에도 직간접적으로 연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성토모가 이 땅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관여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적어도 상식선에서 생각해봐도 파악할 수 있는 불의에 대해서는 목소리를 내야할 것 같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조롱거리로 전락한 한국교회를 보면서 그냥 잠잠히 있는 것은 하나님과 역사 앞에서 죄를 짓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성토모는 좌파도 우파도 아니고, 진보도 보수도 아닙니다. 성경의 정신에 보다 부합하는 것이 있다면 진보, 보수, 좌와 우를 막론하고 다 지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회의 궁극적인 변화는 진리의 영인 성령의 역사로만 가능하다고 저희는 믿습니다. 저희가 추구하는 것은 온전한 복음을 선포하는 것, 즉 성령충만과 사회변혁이 하나가 되어 이 사회를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사회로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사회변혁은 성령의 강력한 힘으로만 가능하다고 저희는 믿습니다. 성토모가 이런 길을 계속 갈 수 있도록 기도해주시고, 혹 이견이 있으시면 언제라도 말씀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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