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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트릭스의 성서적 접근 (펌)
  • 조회 수: 4035, 2003-06-25 16:42:39(2003-06-25)
  • 우리가 존재하는 세계 매트릭스는 육체의 욕구에 종속된 세계입니다.
    먹고 마시고 오감의 욕구에 종속되어 욕의 충족을 위해 살아가도록 프로그래밍된 세계이지요.
    생로병사에 휘둘려야하고 꿈이라고 쫓아가는 모든 것들 또한 이에 종속되어 있습니다.

    매트릭스를 성서적 관점에서 이해하려면 먼저 영,혼,육에관한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성서는 인간은 영,혼,육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육은 신이 흙으로 빚은 형상이고 영은 그 흙에 불어넣은 신의 생기(일부)입니다.
    혼은 영이 육에 들어갈때 파생되어진 운영체제라고 볼수 있겠습니다.
    윈도우나 리눅스같은 오퍼레이팅 시스템이라고나 할까요.
    타락으로 말미암아 인간은 영은 죽고 혼은 육에 종속된 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육에 종속된 영혼은 매트릭스의 법칙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매트릭스의 실체에서 벗어난 네오는 매트릭스의 법칙에 종속되지 않습니다. 총알을 피하기도하고 하늘 날아다니기도 합니다. 이는 실상은 혼에 내재된 능력의 발현입니다.

    영화속의 매트릭스처럼 육체에 종속된 혼을 해방시켜 그 잠재력을 훈련(네오처럼)하기만 하면 현실의 우리도 네오처럼 초능력자가 될 수 있습니다. 모두들 비웃었지만 네오가 슈퍼맨처럼 하늘을 난건 공중부양을 빗댄 표현입니다. 인도의 구루나 참선가들이 공중부양, 투시, 자가치유같은 초능력을 보이는 일은 실재합니다. 이는 혼에 잠재되어있던 능력들이 발현된 것입니다. 매트릭스의 법칙을 초월하는 것이지요.

    기독교는 영의 존재를 믿는 종교이고 불교,동양사상은 영의 존재를 믿지 않습니다. 불교나 동양사상은 인간이 죽으면 혼도 같이 죽는 것이고 다시 자연 즉 흙으로 돌아가 또 다른 생으로 태어난다고 말합니다. 반면에 기독교의 죽음은 혼과 육의 죽음입니다. 영은 불멸의 존재이므로 내세에서 천국에 가던 지옥에 가던 여전히 존재합니다.매트릭스는 혼과 육으로 살아가는 현실이고 매트릭스밖의 현실은 영의 세계입니다.

    네오가 선택한 붉은 알약은 구원을 상징하는 것이고 이로 말미암아 네오의 영은 다시 살아나게됩니다.

    여기에 기독교가 배타적일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진리는 하나이지만 진리에 이르는 길은 여러가지다라는 말을 기독교가 받아들일 수 없는건 기독교가 말하는 진리는 여타의 종교나 철학이 말하는 진리와 다르기 때문입니다.이는 영의 존재 여부를 인정하는가 안하는가에 달려있습니다.

    기독교의 관점에서 볼때 불교,동양사상에서 말하는 진리는 매트릭스내에서 매트릭스를 초월하는 것 그것입니다. 매트릭스내의 법칙을 초월해 하늘을 날아다니고 초인적인 힘을 자랑하거나 더 나아가서는 매트릭스 자체에서 자신의 의식을 delete 시켜서 무 "0"로 돌아가는 것이지요. 매트릭스 시스템속에서 스스로 삭제되어 거대한 매트릭스 코드속의 기호들로 흩어지는 것 그래서 다음 매트릭스에서는 또다른 연산의 총합으로 존재하는 걸 말하는 거죠. 매트릭스를 부정하지 않으면서 그 안에서의 구원을 말하고 있습니다.

    결국 해탈은 기독교적 관점에서 볼때 혼과 육의 기능을 스스로 정지시키는 것입니다. 동양사상의 관점으로 보면 네오는 결코 매트릭스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인간이 자연이라는 거대한 흐름의 일부인것처럼 네오도 거대한 매트릭스의 부속품에 불과한 것이지요.

    기독교적 관점에서 동양사상이나 불교, 철학의 진리는 바로 거기까지 입니다. 매트릭스는 어디로부터 왔는가에 대한 물음에는 답하지 못한채 어디로 부터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암튼 매트릭스에서 해방될 수는 있다라고 말하고 있는것이지요.

    매트릭스 밖의 현실은 그러면 무엇인가?
    기독교적 관점으로 보자면 이는 영의 세계입니다. 붉은 알약으로 상징된 구원, 죽었던 영이 다시 살아난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영화에서 보듯 영의 세계 또한 전투가 난무하는 곳입니다.
    아직 재림 메시야가 오지 않았기에 영의 세계 또한 처절하고 치열한 전투가 난무하지요.
    기독교에선 이를 영적전쟁이라 부릅니다.
    악한영들과의 전쟁..
    (참고로 반지의 제왕의 배경인 중간계 또한 영의 세계를 그린 이야기입니다.)

    네오는 예수그리스도 뿐만아니라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을 상징합니다.
    영에속한 그리스도인은 매트릭스속에 여전히 존재하나 매트릭스의 법칙을 초월해 살아갑니다. 어떤이들은 네오처럼 병을 고치거나 공중부양을 하기도 하고 썩은이빨을 금니로 바꾸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건 별로 중요한것이 아닙니다. 시온이 습격당하고 있는 마당에 네오가 스미스랑 슈퍼맨놀이나 하고 있어서 되겠습니까.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 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엡6:12)'

    어느것이 현실인가?
    그러면 매트릭스 밖의 현실은 도대체 무얼 의미하는 걸까요?
    그것은 과연 진정한 현실일까요?
    이는 매트릭스 3:레볼루션이 어떻게 전개 될것인가의 관한 예상이 될것입니다.

    저자가 불교나 동양사상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간다면 매트릭스밖의 현실은 또다른 매트릭스에 불과한 것입니다. 네오도 프로그램 된것이고 시온도 모피어스, 트리니티도 시온이라는 매트릭스의 일부인 것이죠. 결국 매트릭스 시스템의 버그인 네오는 또다른 매트릭스 시스템인 시온을 보호하기위해 스스로 죽음(자기삭제)를 선택하지 않을까요? 인간이 다만 인간 삶의 본질인 매트릭스에 일부가 되어 살아가다 다시 흩어지듯이 세상은 매트릭스의 윤회를 통해 유전되어가는 것이라면 말이죠.

    그러나 워쇼스키 형제가 그렇게 풀어갈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마도 극적인 요소도 덜하고 이제까지 기독교적관점을 축으로 다른 사상들을 끌어다 살을 붙힌걸 보면 아마도 초감각 디지털 액션의 완결판이 될 3편의 이야기 구조론 스펙타클한 성서적 결말이 더 효과적일 것 같습니다.

    그러면 성서적으로 볼때 매트릭스 밖의 현실은 무엇인가?
    성서적 관점으로도 매트릭스 밖의 현실은 또 다른 매트릭스 입니다.
    태초의 에덴이 신이 만든 매트릭스 였듯이 우리의 현실세계가 매트릭스라면 매트릭스의 현실같은 우리의 영의세계 또한 신에 의한 매트릭스 일수 밖에 없습니다.
    꿈에서 꿈을 꾸고 매트릭스 속에서 또다른 매트릭스에 갇혀 사는 인생.
    그러나 원래 매트릭스는 하나였고 그곳은 사랑과 정의가 충만한 진리에 움직이는 낙원이었다면 단지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고통의 매트릭스속에 스스로를 갇히게 만들고 그속에 종속시켰던 것이라면 구원을 갈망할 만 하지 않습니까?  본 매트릭스의 창조주의 예언에 따라 어서 시온이 회복되길 갈망할만 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매트릭스 2:리로디드는 예수의 공생애와 닮아 있습니다.
    예언을 믿고 선동하는 모피어스는 정치적혁명을 꿈꾸던 예수의 제자들과 같고 예수의 무력한 죽음앞에 제자들의 꿈이 좌절되었듯이 모피어스의 꿈도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메시야를 기다리는 영의 세계 시온도 일개 소돔의 도시마냥 헛된 욕망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매트릭스를 파괴하고자 하면서 그들이 따르는 방법은 아이러니하게도 파괴하고자하는 매트릭스의 것입니다.

    매트릭스 밖에 있으면서도 여전히 매트릭스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영의세계의 인간들..
    차라리 매트릭스 내부는 안정적이기라도 할텐데.. 사이퍼가 다시 그리워 할만도 하지 않습니까?


    매트릭스 3의 네오는 아마도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이제야 제대로 된 이해를 하게 될 것입니다. 시온은 해방을 맞게 될것이고 그것은 3편의 주제처럼 죽음에 관한 것이 되겠지요. 다시 매트릭스 속으로 들어가
    버그로서의 죽음을 선택함으로 매트릭스와 함께 자폭하던지 무엇이 되었던 그것은 아키텍쳐가 예상치 못했던 방식의 대응이겠지요. 예수그리스도의 죽음이 세상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구원의 방식이었던 것처럼 네오의 죽음이 그것과 닮아있기를 개인적으로는 바랍니다만...

    암튼 이것은 어디까지나 성서적 관점의 예견이었고 워쇼스키형제가 어떻게 만들었을지는 아직 알수 없죠.

    아주 포스트 모더니즘적으로 너도 나고 나도 너고 네오도 스미스고 스미스도 네오고 시온도 또다른 매트릭스인게 밝혀진 이상 다들 친구하며 잘 살았다 머이런식의 결론도 나올수 있겠네요..

    이영화의 우수성은 여러가지 사상과 종교의 담론을 기가막히게 재구성해 새로운 사유의 장을 열었다는데 있습니다.어떤 종교와 사상의 입장에서도 기꺼이 자신들의 메타포로 사용할만한 꺼리들을 다양하게 함유하고 있기에 그토록 많은 해석과 토론들이 있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안타깝게도 그 많은 해석중에 성서적 해석은 영화에 차용된 단순한 기독교적 이미지에 대한 해설과 선악 이분법적인 논리로 일관하는 것같아 안타깝습니다.

    영화를 메타포로 사용할 줄 안다면 이영화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안겨 줍니다. 특히 매트릭스 밖으로 초대받고서도 여전히 매트릭스에 종속되어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모습.. 그리고 세상의 방법으로 구원을 이루려 하는 혁명가들의 결과..이미 성서가 말하고 있는 것임에도 깨닫지 못하는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아무쪼록 그리스도인으로서 네오가 3편에서는 예수그리스도의 방법으로 시온을 구원하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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