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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성공회 제자교회대한성공회 제자교회

  • 기독교적 식민주의와 제3세계의 빈곤
  • -- 대천덕 지음 / 전강수·홍종락 옮김

      이슬람은 공산주의와 마찬가지로 교회가 가난한 자들을 위한 복음을 제시하는 데 실패한 데서 시작되었다. 교회가 대지주들의 손에 넘어간 이후, 정치가와 성직자, 신학자들은 추상적인 문제에 대해서만 논했고 실제적인 문제는 조심스럽게 회피했다. 그러다가 여러 세기가 지난 후에 권리를 박탈당한 사람들, 즉 토지가 없는 대중이 봉기하여 이슬람 혹은 공산주의를 받아들였다. 교회는 이슬람과 공산주의에 대항해 성전(聖戰)을 선포했다. 나는 AD 7~12세기뿐 아니라 20세기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우리는 이제까지 단 한 번도 우리 잘못을 인정하거나 보상해 주려고 노력한 적이 없다.

      식민제국들은 지주제로부터 이득을 보았다. 지주제를 이용하여 식민지로부터 부와 자연자원을 쥐어짰으며, 그것으로 제1세계를 살찌웠다. 지주들은 제국주의자들의 하수인이 되어 제국주의자들이 ‘토착민’들과 직접 접촉하는 번거로움을 없애 주었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멍청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을 착취하고 있는 존재가 토착 지주들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게다가 그 지주들이 기독교국가인 제국주의 열강의 비호를 받고 있을 뿐 아니라 그들에게 이용당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식민지에 ‘자유’를 주어야 한다는 여론이 제1세계 내에서 높아질 즈음, 기독교가 외국인과 ‘제국주의자들의 주구(走狗)’를 위한 종교라는 인상이 확고해졌다. 몇몇 선교사들이 깊은 헌신과 희생으로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했으나 그 영향력은 직접 관계를 맺었던 사람들에 그쳤다. 그들은 건강한 토착 교회를 세우는 데 실패했던 것이다.

      선교사들이 토착민들과 얼마나 다른지 극명하게 보여 주는 것은, 그들이 선교지에서의 임기를 마친 뒤 풍요로운 제1세계의 고향으로 돌아갈 때였다. 본국으로 돌아가 식민 국가의 독립운동을 위해 노력한 선교사들이 있었던 것은 틀림없으나, 그런 경우에도 그들은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결코 이해하지 못했다. 순전히 정치적인 문제로 파악했을 뿐이다. 경제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그들은, 많은 교육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무지했다.

      식민지들이 마침내 독립했을 때 이미 그 나라는 거의 황폐화되어 있었다. 국민들은 서로 싸웠고 증오와 분노에 가득 차 있었다. 경제는 파탄지경이었고 수익성이 있는 것은 모두 지주 계급이나 구 식민 모국에 사는 보이지 않는 투자자들의 수중에 있었다. 이 투자자들은 그 나라에 남겨 두고 온 민간 기업을 통해 여전히 이익을 볼 수 있었다. 그들에게는 더 이상 정치가 필요하지 않았다.

      많은 신생독립국가가 공산화한 까닭은 경제를 회생시키기 위한 노력에서였으나 공산주의는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이제 그 나라들은 이슬람 쪽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그렇다고 이슬람에 무슨 경제 프로그램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들은 이슬람을 통해 그 많은 세월 자신들을 착취하고 나라를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분노를 표현하고 있을 뿐이다.

      제국주의자들의 탐욕과 권력욕으로 인해 이내 이들의 나라는 혼란에 빠져 들었다. ‘10-40창’에 있는 나라들 중에는 독립 이후 매년 정권이 바뀐 나라들도 있다. 불행과 가난에 찌들려 건강을 잃고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환경에서 지내거나, 아예 거처도 없고 직장을 얻을 가능성도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분노와 원한으로 가득 차 있다. 산업과 농장, 관개 시설은 모두 내전으로 파괴되어 버렸다.

      그러한 사람들에게 우리가 어떻게 설교할 수 있는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그림의 떡’이론으로 구원을 설명하면 그들이 받아들이겠는가. 우리는 지극히 겸손하게 참회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렇게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은 장본인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지 않겠는가. 어쩌면 한국 선교사들은 자신들만큼은 결코 제국주의자가 아니었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럼 그렇다고 치자. 하지만 그들이 볼 때, 선교사들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은 곧 그들을 제국주의의 도구로 여기게 한다. 왜냐하면 일본인을 제외하고는 모든 제국주의자들이 그리스도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한국에서는 기독교에 대한 태도가 다른가? 이곳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이 자유를 얻기 위해 분연히 일어섰고, 독립운동으로 고통을 겪었으며, 결코 일제 식민지 권력에 영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일은 세계에서 거의 유일무이한 일이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애로라지 하나밖에 없다. 그리고 교회의 죄악은 우리의 죄악이다. 교회의 실수는 우리의 실수이다. 우리는 그러한 죄악과 실수, 우리가 야기한 그 모든 고통에 대해 회개해야만 한다. 용서를 구해야 하며 성경이 진정으로 가르치고 있는 바를 사람들에게 말해 주어야만 한다. 복음은 가난한 자. 압제받는 자, 절름발이, 소경, 노숙자, 고아 과부, 토지가 없는 자들을 위한 것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고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할 때 이것이 온전히 성취되리라고 가르쳐야 한다.

      또한 우리는 바로 지금 성령의 코이노니아 안에서 우리가 한 가족이 되며 평생 서로에 대해 전적인 책임을 지게 된다는 사실을 입증해 보여야 한다. 그렇게 되면 토지개혁이 시행되기 전이라도 그리스도인 가운데 가난은 사라질 것이다. 가진 것을 서로 나누기 때문이다. 들의 백합화를 입히시고 공중의 새를 먹이시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기적적인 공급의 원천으로부터 무엇이든지 부족한 면을 공급하신다. 미가서 6장 8절1)을 생각하라. 공의가 첫 번째, 자비가 두 번째, 기적은 세 번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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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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