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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려놓음' 요약 정리
  • 조회 수: 5761, 2007-04-03 17:11:43(2007-04-03)
  • 내 려 놓 음

      1부 복의 통로가 되는 광야로의 부르심

      1장 하느님은 왜 내려놓으라고 하실까?

      우리가 하느님께 묻지 않는 이유는 그분으로부터 들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듣지 못하는 이유는 순종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우리의 인생의 계획을 하느님께 맡기지 못하는 이유는 하느님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내려놓으라고 하시는 이유는, 우리가 내려놓을 때 그것이 진정 우리의 것이 되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내려놓으라고 하신다. 와내하면 더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서이다. 내려놓을 때 주어지는 가장 좋은 것은 세상이 줄 수 없는 자유와 평강이다.
      
    우리가 자녀에게 무엇이든지 주고 싶어 하듯이 하느님도 그러하시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때때로 주지 않고 기다리신다. 그 이유는 우리가 훈련되고 성장해야 하기 때문이며 우리가 갖고 싶은 것이 우리의 성장을 저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고 싶지만 때로 주지 못하는 마음, 그것이 하느님께서 우리를 향해 가지신 마음이다. 영적으로 어린 아이인 우리들은 움켜진 것을 내려놓아야 진정한 것을 얻을 수 있다.

      2장 믿음으로 걷는 광야의 길

      하느님의 계획에는 타이밍이 있다. 내가 앞서지 않고 기다리며 정직하고 순전함 가운데 서 있을 때 하느님께서 정확한 타이밍에 예비하신 것을 주신다. 믿음이란 내가 아는 익히 익숙한 길을 가는 것이 아닌, 하느님을 신뢰함으로 그 인도하심을 따라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그런 길을 선택해 나가는 것이다.

      그런데 하느님은 우리에게 순종을 바라실 때 미래의 모든 것을 보여주신 다음에 선택하게 하지는 않으신다. 저 멀리 있는 곳에 대해서는 방향만 제시하실 뿐 그곳에서 실제 우리를 기다리는 것이 무엇인지는 가리시고 보여주지 않으신다. 그것은 오직 순종으로 그 길을 택해 걸어가는 과정에서만 볼 수 있도록 허락된 것이 때문이다(시편 119:105).

      3장 광야에서 만나주신 하느님

      겉으로는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산다고 하지만, 속에 하느님의 것과 내 것이 섞여 있을 때 그것들은 고난을 통해서 정제되어 진다. 그리고 내 능력의 한계에 대한 절망을 딛고 하느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성장하고자 하는 열망이 자라난다. 하느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작정하시고 그 가문을 이룰 자로 아브라함을 택하신 이래로 당신이 쓰시기로 작정한 다수의 인물을 광야로 몰아가셨다. 그곳에서 그들을 만나주셨고 그곳에서 그들을 훈련시켰다.

      성경에서 제시하는 하느님의 한 단면은 광야의 하느님, 나그네의 하느님이다. 이 하느님을 만난다는 것은 많은 고난을 동반하게 마련이다. 세상과 분리되어 옛 자아가 죽고 하느님의 빛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세상과의 마찰이 빚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가 일관되게 기술했듯이(히11:13) 하느님의 백성은 이 세상에 속한 자들이 아니기 때문에 이 땅에 대해서는 나그네이고 이방인이다.

      나그네 된 삶! 크리스천은 하늘나라 시민권을 가진 자들이지만 허락된 기간을 이 세상 가운데서 살아야 한다. 이 세상에서는 이방인의 신분으로 사는 것이다. 그리고 잠시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것을 가지고 그것을 사용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단, 우리는 이방인지만, 복의 통로로 사용되기 위해서 부르심을 받았다. 우이가 복의 근원이 되어 복을 끼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우리가 복의 근원임을 모르고 지낸다. 또한 복 있는 곳을 찾아서 그곳으로 가려고만 한다. 서울로, 강남으로, 그리고 미국으로 가고 싶어 한다. 하느님께서 우리가 어느 땅에 있기를 원하시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이 어디가 안전하게 살기 좋은 곳인지를 늘 생각하며 살아간다.
      기독교인들이 하느님을 믿지만, 여전히 하느님 앞에 자신의 것을 내려놓기 어려워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세상에 발하나를 걸쳐놓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자기 것을 포기할 수 없게 된다. 마지못해 빼앗기기는 할지언정 자기 스스로 내려놓지 못하게 된다. 양이 세상의 유혹이라는 이리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목자 곁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양이 목자와 함께 있는 한 안전하다. 유혹을 이길 수 있다. 좁아 보이는 길이지만, 하느님께서 인도하시는 그 길을 갈 때 우리는 그곳에서 주어지는 하느님의 축복과 형통함을 소유하게 된다.

    2부 가장 좋은 것을 붙들기 위한 내려놓음

      1장 하느님의 때를 기다리며 미래의 계획을 내려놓는다.

      익숙한 곳에서 벗어날 때 우리는 내일을 예상할 수 없고, 위지할 대상이 없기 때문에 하느님을 더 찾게 되고 하느님의 뜻을 더 구하게 된다. 하느님께서 믿음의 선진들을 광야로 불러내신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느님은 광야에서 우리를 만나주신다. 광야에서 우리는 우리의 지식과 경험으로 하느님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그분의 일을 우리 가운데 이루시는 것을 목도하게 된다.

      “나는 누구를, 그리고 무엇을 두려워하는가”가 그 사람의 삶의 방향과 방식을 결정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한다는 것은 권리(미래를 결정하는 권한)양도증서를 서명하는 것이다.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 인생의 중요한 문제를 결정하는 방식을 일견해 보면 그가 하느님과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가를 알 수 있다. 그리고 그의 삶에서 하느님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 분이신지 쉽게 느낄 수 있다. 만약 우리가 기도 가운데 그 길이 하느님이 정하신 길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움직인다면 어려운 일 가운데도 하느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나아갈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겪는 어려움은 하느님에 대한 신뢰를 더욱 쌓아가게 만드는 도구에 불과할 뿐임을 깨닫게 된다.

      응답을 받기위해서는 하느님께서는 결코 늦게 응답하지 않으시며 가장 좋은 타이밍을 알고 계신다는 것을 신뢰해야 한다. 미래의 계획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어느 날 갑자기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하느님과의 오랜 교제 가운데 하느님의 성품을 이해하고 하느님을 더욱 사랑하고 신뢰하면서 조금씩 내려놓을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실수의 과정도 포함되고 그것으로 하느님을 더 깊이 알아가게 된다.

      어떤 방향을 향해, 어떤 방식으로 시간을 쓰는가가 중요하다. 어떤 사람이 시간을 쓰는 방식을 보면 그 사람이 자신을 위한 인생을 사는 것인지 아니면 그의 안에 계신 하느님께서 사시는 것인지를 분별할 수 있다.  하느님과 동행하는 삶은 초원의 강이 가는 길과 비슷하다. 목적을 이루는 것보다 과정이 중요한 것이다. 돌아가면 돌아갈수록 우리의 주변은 풍성해 진다.

      하느님께  미래를 내려놓을 때 하느님은 우리를 성장시키거나 구원을 이루시기 위함이 아니라면 우리가 원치 않는 것을 억지로 시키지 않으신다. 그분은 선한 일을 시작하실 때 먼저 우리 안에 기쁨의 소원을 일으키신다. 모든 일 가운데 하느님의 선이 이루어질 것을 신뢰할 때, 우리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리게 된다. 그리고 이 진리에 대한 믿음이 우리 삶을 평강으로 인도할 것이다. 우리 삶의 목표는 하느님이 가지신 비전이 무엇인지를 묻고 그 비전에 자신을 의탁하는 것이다. 내 것을 내려놓고 하느님의 것을 붙드는 것이다.

      2장 텅 빈 물질 창고까지 하느님께 내려놓는다.

      물질과 관련된 주된 훈련은 하느님의 채워주심을 신뢰하는 것이다. 하느님은 창의적이신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생각지 못한 방법으로 물질을 제공하시며 우리의 믿음을 키워 가신다. 때로는 큰 돈이 나가지 않도록 돈 나갈 구멍을 막아주시기도 한다. 조미 뮬러가 경험한 기도 응답은 하느님의 뜻을 구하며 사는 사람들에게는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공통된 현상이다. 특히 사역자에게 있어서 물질에 대한 걱정은 하느님이 하실 부분이지 사역자 자신이 걱정할 부분이 아니다.
      사탄의 계략은 우리가 사탄의 생각과는 반대 방향으로 행할 때 분쇄된다. 내 것을 간직하려는 마음을 버리고 적극적으로 나누려고 할 때 더 풍성하게 하느님을 누리고 체험할 수 있다. 돈의 영과 하느님을 동시에 섬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돈을 따르는 한 결코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잡을 수 없다.
      베풀고자 하는 마음도 내려놓아야 한다. 우리는 하느님으로부터 물질을 의탁 받은 청지기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줄때 누군가에게 영향력을 미치기 위해서나 어떤 대가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면 그것은 옳지 않다. 우리가 순전한 동기로 주는 것인지 기도 중에 확인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우리 손에 있는 물질을 사용할 때 하느님의 뜻을 묻고 사용하는 훈련을 한다면 우리는 선한 청지기의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3장 생명과 안전에 대한 염려 까지고 내려놓는다.

      하느님의 허락 없이는 그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삶의 주권은 하느님께 있다. 다만 우리는 나를 포함한 가족의 죽음에 대해 늘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안전과 건강의 문제를 주님께 의탁해야 한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건강과 안전에 관심이 많으시고 우리를 소중하고 존귀하게 여기시기에 우리가 의탁하기에 합당하신 분이시다.

      우리가 최후나 극한 상황을 어떤 모습으로 맞이하는가가 곧 우리가 하느님 앞에서 양인지 염소인지를 분별해 줄 것이다. 또한 우리가 실패했을 때 어떤 모습으로 서 있는가가 우리 신앙의 성숙도를 보여줄 것이다. 우리의 건강이나 생명은 하느님의 주권아래에 있다. 우리가 가족에 대한 걱정을 붙잡고 d있다고 한들, 우리에게는 그 생명을 지킬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죽음이나 질병,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자유함을 누리기 위해서는 우리는 가족의 안전에 대해서도 주님 앞에 내려놓아야 한다.

      4장 결과를 예상하는 경험과 지식을 내려놓는다.

      특별한 것을 소망하고 기도 가운데 그것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려면 특별한 믿음이 필요하다. 우리가 하느님께 묻지 않고 우리의 경험과 지식에 의거해서 일상적으로 일을 계획하고 진행시킨다면 그 사역 가운데 하느님의 영광을 보기는 어렵다. 하느님께서는 때로는 상식적이지 않은 것을 요구하기도 하시고 때로는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으로 우리가 전진하기를 원하신다. 우리의 믿음의 분량을 키워주시기 위해서이다. 믿음은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낳게 마련이다. 더 가진 사람이 더 갖는 것이다. 믿음으로 나아가는 사람이 더 큰 믿음을 누리게 된다.

      5장 죄와 판단의 짐을 내려놓는다.

      하느님은 우리가 하느님의 거룩함을 옷 입기를 원하신다. 그리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나기를 원하신다. 하느님의 관심은 우리를 온전케 하시려는 것이다. 우리가 하느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우상이 된다. 많은 경우 나쁜 습관을 우상으로 가지고 있다. 죄가 주는 은밀한 달콤함이나 습관을 따라 사는 편리함을 하느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다. 우리가 하느님의 눈으로 죄를 바라볼 때 우리는 죄를 이길 수 있다.

      예수님이 판단하지 말라고 하신 이유는 우리를 그 판단의 흉악한 결과로부터 보호하시기 위해서 이다. 분별은 영적인 지혜에서 오는 것으로 하느님의 사랑의 눈으로 상대방을 보는 것이지만, 판단은 분노의 영과 미움의 영에서 오는 것으로 나의 의의 기준을 가지고 상대방을 재는 것이다. 판단의 마음으로는 영혼을 만질 수 없다.

      하나 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상대방이 더 잘되기를 빌어주고 축복해 주는 것이다. 내가 진심으로 상대방을 높여줄 때 비로소 사탄이 우리의 사역 가운데 방해하기 위해 침투하려는 통로를 막을 수 있게 된다.

      “나는 당신을 섬기기 원합니다. 나는 당신이 나보다 더 성장하고 당신의 사역이 내 사역보다 더 커지기를 바랍니다.”

      6장 명예와 인정받기의 욕구를 내려놓는다.

      인정받고자 하는 것은 사람의 중요한 본능이며 권리이다. 우리는 주변 사람들의 사랑과 관심을 받으며 성장한다. 하지만 우리가 주변 사람들의 인정에 집착할 때 우리의 영적 성장에 큰 방해가 된다. 우리가 우리의 모습을 직시하고 인정하는 것이 영적 성장을 이루는데 중요한 기초가 된다.
      나의 약하고 모난 부분, 내가 싫어하고 깊이 가리웠던 부분을 찾아 그것을 나의 진짜 모습으로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 모습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가 필요한 모습이기에, 우리는 그 모습을 가지고 하느님께 나가야 한다.

      사탄은 끊임없이 우리가 우리에게 없는 것을 집착하게 만든다. 우리가 없는 것에 집착하는 한, 우리가 받은 것을 기쁨으로 누릴 수 가 없다. 우리가 세상의 인정을 추구하는 만큼 우리는 세상에 붙들리게 된다. 그만큼 우리는 하늘에서 오는 자유를 놓치게 된다.

      “나는 네가 어디에 속해 있는가를 가지고 너를 평가하지 않는다. 네가 나에게 누구이며 어떤 모습으로 내 앞에 서 있는가가 나에게는 중요하단다.”

      리더로서 사람들을 섬기기 위해서는 묵묵히 아픔을 견디는 것이 필요하다. 하느님께서 그만 낮추라고 하실 때까지 낮아지는 것이다.

      C.S.루이스는 ‘순전한 기독교’라는 책에서 영적으로 가장 핵심적이고 궁극적인 악이 교만이라고 설명하면서 교만은 하느님과 전적으로 맞서는 마음 상태이고 남들보다 우월하다는 데서 오는 즐거움이 사람을 고만하게 만든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우리는 다른 사람과의 비교의식을 버리고 하느님만 바라보아야 한다.

      7장 사역의 열매를 내려놓는다.
      
      사역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부담 대신에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서 있으려는 열만이 내 안을 채워야 하며, 하느님의 사역은 내가 내려놓을 때 얻어지는 것이다. 사역의 동기 가운데 자신을 드러내려는 욕구가 섞이지 않기를 원한다. 거룩하신 하느님은 무엇이 섞여 있는지를 정확하게 보시고 불순한 목적을 받지 않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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