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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가올 세상 - 이민규교수
  • [다가올 세상]

    “새 하늘 새 땅”은 성경에서 말하는 천국의 완성된 모습이다. 이 개념의 이해는 플라톤주의가 아닌 구약에서 시작해야 한다. 고대 히브리 전통은 유별날 정도로 형이상학적인 것에 관심이 없다. 거의 고대사회의 유물론자요 무신론자들이라 봐도 과장이 아니다. 칼 마르크스가 유대인이였다는 사실도 우연이 아닐 것이다. 사실 공산주의는 유대교의 사생아로 봐도 된다.

    그래서 구약은 내세보다는 현세의 삶(Olam Ha Ze)의 소중함을 훨씬 더 많이 강조한다. 그럼으로그들이 꿈꾸는 세상을 위한 대조는 “이 세상”과 “저 세상”이 아니고 “이 세상”과 “다가올 세상”(Olam Ha Ba)이다. 유대인들과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천국은 저 세상 어디엔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 임재하고 이루어져야 할 현실...이었다. 그리고 성경의 천국은 이를 반영한다. 그러기에 천국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시작된 그리고 미래에 완성될 세상이지, 결코 이 세상을 떠난 저 세상이 아니다.

    그런데 신플라톤주의가 기독교에 들어보면서 천국은 이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저 세상 어딘가로 변질되기 시작하였다. 죽음 이후 가야 하는 그곳, 내 영혼이 몸을 빠져나갈 때 갈 수 있는 천국! 천국은 오로지 형이상학적이고 초월적인 영의 세계다. 그런 천국을 강조할수록 사람들은 이 세상에 관심이 적어진다. 그럼 빨리 죽는 것이 복이 된다. 빨리 천국 가는데 나쁠 것이 뭐가 있겠는가! 그런데 왜 예수님은 죽은 나사로를 다시 살리셨을까? 어차피 빨리 천국에 가는 것이 더 유익한 것이 아닐까?

    그러나 성경의 천국은 이 땅에 임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뜻은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이 땅에서 이루어질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래도 상당 수의 사람들은 기존의 천국 개념을 버리질 못한다. 그리고 천국과 하나님 나라를 구분한다. 천국은 죽어서 가는 나라고 하나님 나라는 이 땅에 이루어지는 곳이라 믿고 싶어 한다. 사실일까? 마태복음 18:23-24절을 보라. 이 두 용어는 의미상 거의 같은 내용이기에 교차하여 사용할 수 있다.

    23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24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신대.

    고대 유대인들이 꿈꾸던 다가올 나라는 어떤 곳일까? 예전에 부르던 찬양이 기억난다.

    “사막에 샘이 넘쳐 흐르리라 사막에 꽃이 피어 향내 내리리 주님이 다스릴 그 나라가 되면은 사막이 꽃동산 되리 사자들이 어린양과 뛰놀고 어린이도 함께 뒹구는 참사랑과 기쁨의 그 나라가 이제 속히 오리라 사막에 숲이 우거지리라 사막에 예쁜 새들 노래하리라 주님이 다스릴 그 나라가 되면은 사막이 낙원 되리라 독사굴에 어린이가 손 넣고 장난쳐도 물지 않는 참사랑과 기쁨의 그 나라가 이제 속히 오리라.”

    이 찬양은 이사야의 천국(하나님 나라)에 대한 환상에 근거한다(사 11:6-9). 사 11:1-5절을 보면 원래 다윗의 후손에게 왕권을 영원히 승계해 주리는 약속(삼하 7:12-16)과 달리 하나님은 다윗 왕조를 끝장내실 것이라고 선언하신다. 다윗 왕조는 베인 나무 그루터기가 될 것이다. 그러나 다윗왕조가 심판을 받은 후 그 뿌리에서 새로운 시작이 나타난다. 그루터기에서 새싹이 돋아나고 뿌리에서 가지가 나는데 이 새싹과 가지는 새로운 왕이다. 흥미롭게 그 왕의 뿌리, 즉 기원은 죄 많은 다윗이 아니라 왕이 아닌 이새다.

    그에겐 하나님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한다(사 11:1-2). 그는 지금까지 존재하던 모든 왕과 전혀 다르다. 하나님의 경외(지혜 잠 1:7)가 넘치는(사 11:3) 그의 특징은 “공의와 성실”이다(“5 공의로 그의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그의 몸의 띠를 삼으리라.”개역성경의 “띠”는 오역이다. 이 히브리 단어는 “허리 띠”(belt)가 아니라 겉옷 안 맨몸 어깨 또는 허리에 두르는 띠 모양의 아마천이다. NIV는 이를 sash around his waist ASV는 이를 girdle [거들] of his loins로 번역했다.).

    흥미로운 곳은 공의와 성실이 나란히 나오는 구절들은 모두 하나님의 속성을 설명할 때 뿐이다(시40:10 96:13 119:75,138 참조. 개역성경은 “공의”와 “성실”을 각각 '의'와 '진실하심'으로 번역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그는 평화의 왕이다. 어느 정도냐 하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그가 님의 뜻대로 세상을 다스리기 때문에 세상이 온전해 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동물 세계와 인간 세상, 인간과 환경이 모두 평화롭고 풍요롭게 공존하게 된다는 것이다(사 11:6-9).

    신약은 이 평화의 왕이 예수 그리스도를 암시한다고 믿는다. 여기서 우리는 천국이 결코 인간만을 위한 인간 중심의 세상이 아닌 것을 배워야 한다. 기독교인이라면 동물도 인격적으로 대하고 환경도 보호해야 한다. 인간의 편리함에 대한 추구로 환경을 파괴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를 공격하는 행위이다. 갑자기 사대강이 생각나고 사대강을 옹호한 사람의 교회 담임 목회자가 머리에 떠오른다. 모두 성경에 대한 무지와 신학의 빈곤이 낳은 현상이다.

    계속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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