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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캔터베리 대주교 크리스마스 메시지
  • 조회 수: 1390, 2007-12-15 09:34:43(2007-12-15)


  • 신약성서에서 가장 낯설면서도 가장 감동적인 표현 가운데 하나는 히브리서에 있는 한 구절입니다(11:16): “하느님께서는 그들이 당신을 자기들의 하느님이라고 부르는 것을 수치로 여기시지 않으십니다.” 성서 기자는 하느님 백성의 역사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하느님께 신실하고, 자기 만족에 안주하기보다는 신앙으로 앞을 향해 나가는 일에 신실했을 때, 그들이 진정한 순례자로 살아갈 때, 바로 그때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하느님으로 알려지는 것을 즐거워 하신다는 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순례자들의 하느님으로, 즉 자신들의 삶이 완전하지 않기에, 여전히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온전함을 향하는 여정을 이끌고 있는 사람들의 하느님으로 선포하십니다.
    올 10월에 내가 그랬던 것처럼, 중동에 있는 피난민 캠프에 방문해 본다면, 말 그대로, 철저히 집없는 자(홈리스)가 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그 어떤 삶의 방책도 확신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이같은 처참한 상황에 놓여 있는 사람들은 결코 어떤 만족의 기쁨도 누리지 못하며, 항상 어떤 미래를 바라 볼 것입니다.
    바로 이런 점에서 그들은 하느님께서 어떤 수치감도 없이 함께 하시려는 이들입니다.
    그들이야 말로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들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집없는 이들과 함께 집을 만들어 거하시는 분입니다.
    하지만 이는 또한 다른 의미에서 집 없이 떠돌아다니는 사람들에 대한 하느님의 관계를 드러내 줍니다.

    하느님께서 “수치”로 여기시지 않는다니, 이 얼마나 괴상한 표현입니까.
    이는 그 어떤 것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그분의 동반자로 삼는데 절대 괘념치 않으시는 분임을 다시 확인시켜 줍니다.
    함께 하는 어떤 사람이 우리를  당황하게 하는 경험을 우리 대부분은 잘 알고 있습니다.
    자녀들이 부모님때문에 당황하고, 자녀들 때문에 부모님이 당황하는 그런 경험 말입니다.
    때로 누군가와 함께 길을 걷다가 그 사람이 고함쳐 말하거나, 이상하게 행동하거나 하면, 그 자리에 함께 하지 않았으면 하는 내 자신을 발견하곤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우리 인간이라는 동반자가 자기 만족에서 벗어나와 앞으로 움직여 나가려 할 때, 우리와 동행하는 것을 당황해 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이렇게 생각할런지도 모릅니다. ‘하느님은 불완전하고 혼란스럽고, 게다가 죄많은 인간을 동반자로 삼는 걸 “수치”로 여기실 지 몰라.’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이 자신의 혼란스러움을 인정하고, 그들이 필요로하는 진리에 직면하려 할 때, 그 혼란스럽고 죄 많은 사람의 하느님이 되는 것을 행복해 하십니다.
    바로 이것이 성 루가의 복음에 있는 예수님의 비유 이야기, 특히 바리사이파 사람과 세리에 관한 이야기에서 그토록 자주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탄절에, 하느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하는 것을 수치로 여기시지 않음을 보여 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나약함과 자기 의심과 기쁨 없는 갈망에서 나오는 흐느낌을 들으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이러저리 헤매며 불안해 하는 것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 속에서 그런 우리와 함께 하는 것을 전혀 부끄럽게 여기지 않으시고, 우리의 순례 길에서 함께 걷고 계십니다.
    그분은 우리와 함께 걷는 것을 즐거워 하시기에, 우리가 함께 걷는 것을 부끄러워 하는 그 어떤 사람들은 우리에게 도전이 됩니다.
    우리는 아주 쉽사리, 죄 많고, 의심 많고, 또 쫓겨난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은 수치스럽다고 판단하고 맙니다.
    그러나 하느님께는 이런 사람들과 함께 걷는 일이 전혀 수치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그분이 정말로 수치로 여기는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면, 히브리서의 말씀이 강력하게 지적하는 것처럼, 자신들은 이미 그 여정의 종점에 도착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이미 완전함을 얻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1고린 4:8에 나온 성 바울로의 분노어린 경멸의 말씀과 비교해 보십시오. - “여러분은 벌써 배가 불렀습니다. 벌써 부자가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런 사람들과 함께 하는 걸 정말로 당황해 하실 것입니다.
    또한 하느님께서 이런 사람들을 수치로 여기시는 까닭은 분명합니다.
    이들은 마치 자신들은 하느님이 필요없는 듯이, 하느님의 은총과 희망과 용서가 필요 없는 듯이 말하고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자신의 곤궁함을 아는 사람들을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바로 이 때문에 성탄절에 그들과 함께 하시러 오십니다.
    그들과 함께 살고, 죽고, 그들을 위하여 부활하시러 오십니다.
    그분은 가난한 이들을 축복하시는 하느님이십니다.
    물질적인 가난 뿐만 아니라, 자기 만족이라는 “부요함”이 없는 이들, 진정한 만족이 없는 이들, 자신들이 진정하고 온전한 인간성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 지를 잘 알고 있는 이들을 축복하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이러한 축복을 모든 형태의 가난한 이들, 바로 물질적인 재원이 없는 이들과 “마음이 가난한 이들”에게 건네 주어야 합니다.
    그들은 그들의 배고픔과 필요를 알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 스스로에게 솔직하게 물어 봅시다. 함께 하면 수치스럽겠다고 느껴지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런 다음, 하느님은 어디에 계실까 하고 물어 봅시다.
    만일 하느님께서 자신들의 곤궁함을 알고 있는 사람들로 가득 찬 이 연약하고 깨지기 쉬운 세상을 껴안고 계신다면, 이제 우리는 그분과 함께 해야 합니다.

    이 성탄절기에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축복과 기쁨 주시기를 빕니다.

    + 로완 윌리암스, 캔터베리 대주교

      번역/주낙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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