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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회, 장기적 보수화의 일등공신(한겨레 21에서 퍼온 글)

  • 한국인은 왜 계급의식이 약한가, 한국인은 왜 웬만하면 파업하지 않는가

    ▣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 · 한국학


      거의 한 세기 전인 1906년에, 자칭 마르크스주의자였던 독일의 저명한 경제사학자 좀바르트(Werner Sombart·1863∼1941)는, <미국에 왜 사회주의가 존재하지 않는가?>라는 책을 펴낸 적이 있었다. 노동자 사이에서 이미 헤게모니를 확립한 독일 사민당과 정반대로 미국 사회주의자들이 주변적 위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좀바르트가 문제의식을 갖게 된 출발점이었다. 좀바르트는 노동계급의 권리투쟁에 자극을 줄 수 있는 봉건적 잔재의 부재나 비교적 높은 임금 수준, ‘기회 균등’ 신화의 설득력 등을 들어 미국의 ‘예외성’을 설파했다. 이후 미국에서 좌파 운동이 지지부진한 이유를 고민해본 진보적 지식인들은 인종들 사이에 위계서열을 두어 교묘한 분리통치를 해온 미국 지배층의 사회통제 정책과 ‘적색 공포’ 등을 그 이유로 꼽았다.

      그리고 늘 지적되는 또 한 가지 사실이 있다. 일부 정통 가톨릭 국가들을 논외로 한다면 어떤 산업사회보다도 미국인들의 의식 세계에 종교가 강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대체로 미국 성인의 약 40∼44%가 교회에 정기적으로 출석하고, 약 73% 정도는 신의 존재를 믿는다. 교회에 출석하는 이들이 성인의 3∼4%에 불과한 스칸디나비아 같은 지역과는 천양지차다. 빈곤과 같은 사회적 문제들을 ‘개인 문제’로 환원하고 권리투쟁 대신에 신앙적인 ‘개인적 해결’ 방향을 제시하는 교회가 사회적 헤게모니를 장악한다면 과연 ‘모두를 위한 해결’을 모색하는 좌파적 담론이 쉽게 확산될 수 있겠는가?


    해방 당시 2~3%에서 오늘날 24%까지

    그런데 교회의 영향력이 사회 전체의 보수화를 가져온다는 것은 미국만의 상황인가? 한국의 경우에도 1980년대 후반까지 자본주의에 대한 본격적 문제 제기의 결여를, 단지 ‘위로부터의 억압’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물론 근본적으로는 한국 평민들을 ‘시키는 대로 일하는’ 순치된 ‘산업 전사’로 만든 것은 학교에서의 체벌부터 군대에서의 ‘얼차려’까지 병영국가의 폭력적 ‘국민화’ 과정, 그리고 중앙정보부의 고문실로 상징되는 ‘백색 공포’였다. 그런데 박정희 체제와 크게 다를 것이 없는 싱가포르에서조차도 1970년대에 노동자 1천 명당 쟁의로 인한 노동 손실 일수가 한국(연평균 약 4천 일)에 비해서 두 배나 높았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1980년대 후반까지 한국 노동자들은 다른 권위주의 국가의 노동자에 비해서는 물론, 일제 강점기의 노동자들에 비해서도 매우 순치된 모습을 보였다. 예컨대 노동자 수가 식민지 시절에 비해 몇 배로 늘어난데다 정치적 분위기까지 자유로웠던 1960년에 파업 참가자 수(6만4천 명)는, 일제의 탄압이 자행됐던 1923년 노동쟁의 참가 인원(6만1천 명)과 비슷한 수준이다.

    이와 같은 순치 효과를, 박정희 시대를 ‘대중 독재’로 개념화하는 일군의 연구자들처럼 애국주의적 ‘이념적 동원’으로만 이해할 수 있을까? 물론 탄압과 국가주의적 ‘민족주의’의 철저한 주입이 노동자들 사이에 계급의식이 형성되는 것을 원천 봉쇄했음이 틀림없다. 그런데 이와 동시에 자신의 계급적 존재를 깨닫지 못하는 ‘국민화된’ 노동자의 탄생을 이끌었던 주역은 반공주의, 성공 이데올로기, 자본주의와 친미주의의 기수 노릇을 해온 이른바 ‘대형 교회’들이 아니었나 싶다. 어떤 측면에서는 대형 교회들이 보급했던 신앙 형태야말로 1950∼80년대 무수한 민초들의 진정한 이데올로기였기 때문이다.

    해방 당시 겨우 조선인의 2∼3%에 불과하고 주로 서북 등 일부 지역에서만 밀집해 거주했던 기독교인들은 과연 어떻게 해서 오늘날처럼 총인구의 약 24%를 차지하게 됐는가? 물론 6·25 전쟁 이후의 폐허 속에서 ‘근대·문명’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였던데다 미국의 구호물자를 재분배할 능력을 갖추고 ‘기독교인 대통령’ 이승만을 그 ‘힘’의 표징으로 자랑할 수 있었던 교회는 이미 제1공화국 시절에 남한 사회의 새로운 구심점으로 부상했다. 하지만 1950년대에 교회의 성장은 빠르지 않았다. 개신교의 경우 1950년 50만 명 정도였던 신도 수가 1960년에 70만 명 정도까지 늘어났을 뿐이다.


    이농시대, 국가 안의 국가를 형성하다

    기독교의 ‘붐’은 고속성장과 대량이농의 시대인 1960∼80년대에 일어났다. 개신교의 경우 교인 수가 1980년 600만 명, 1990년 약 800만 명에 이르러 한국 도회지의 야경은 네온 빛이 번쩍이는 ‘십자가의 숲’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교회는 해체된 농촌 공동체를 대체해 이농 인구를 통합하면서 국가가 제공하지 못하던 일부 복지 서비스(자녀 장학금, 직업 알선 등)를 제공해주는 사실상의 ‘국가 안의 또 하나의 국가’로서 위치를 굳혔다. 물론 교회가 열악한 생활에 지친 서민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그들의 만성적인 불안을 약간이나마 덜어주었던 것은 긍정적 구실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른다. 문제는, 그 시대의 경제가 몇 개 재벌들을 위주로 해서 성장했듯이, 그 성장에 편승한 교회의 성장도 ‘교계의 재벌’이라고 할 대형 교회들의 주도로 이루어진 것이다. 예컨대 이미 1980년에 대표적 ‘초거대형 교회’라 할 순복음교회가 10만 교인을 기록해 단일 교회로는 ‘세계 최고의 규모’를 자랑했다. 이 ‘종교 재벌’들이 서민들의 눈물을 닦아주면서 그 귀에 무엇을 속삭여온 것인가?

    ‘민족의 중흥’과 보조를 맞춘 ‘민족의 복음화’를 외치고, ‘기독교인들의 총화안보와 반공궐기’를 이끌고 ‘해방신학, 혁명신학, 흑인신학’을 ‘악마적 공산주의의 앞잡이’로 봤던 한국대학생선교회의 김준곤 목사나 순복음교회의 조용기 목사 등이 유신 독재를 열성적으로 지지하면서 반공 담론 대중화의 일익을 맡은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문제는 단순히 그들이 외쳤던 ‘상징적 반공국가 만들기 위한 분골쇄신’(‘기독교와 공산주의 갈림길에서’, 김준곤, <크리스챤신문>, 1975년 7월26일)과 같은 끔찍한 전체주의적 언설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초고속으로 늘어나는 교인들이, 주일마다 교회에 출석하고, 정기적으로 헌금을 내고 ‘평신도 합숙전도훈련’이니 ‘철야기도’니 특정 도시의 ‘성시화’를 위한 집회니 하는 각종 대형 행사에 동원되면서 권력에의 복종으로서 ‘규율적 근대’를 교회를 통해 익히게 됐다. 그런데 예컨대 1992년에 한국의 가장 독자적인 신학자이었던 변선환 목사를 감리교 교단에서 출교하는 데 앞장서면서 “자유주의 신학이 사탄의 도구다!”라고 외쳤던 김홍도 목사의 모습에서 그 신도들이 주체적 개체들 위주의 ‘해방으로서 근대’를 발견할 수 있었겠는가? 교련 수업과 ‘얼차려’의 군사주의 못지않게 극우적 교회의 ‘유일사상’은 민중 사이의 비판적 이성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었다.


    예수의 재발견이 절실하다

    지금부터 한국이 장기적 보수화에 들어간다면 그 일등공신 중 하나는 바로 여태까지 ‘한국적 파시즘’의 버팀목 구실을 해온 대형 교회들일 것이다. 이 섬뜩한 시나리오를 막기 위해 무엇보다 기독교 신도 사이에 사랑과 평화의 화신으로서, 일종의 ‘원시 무정부 공산주의자’로서 예수의 재발견이 절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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