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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희년신학 - 코이노니아
  • 신현우(성토모 자문위원,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신약학 교수)


    구약의 안식년 빚탕감법과 대신 빚을 갚아 주는 고엘제도는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와서, 소유의 포기를 통한 "거저 줌"의 원리로 완성됩니다. 초대교회는 예수님의 이러한 가르침을 지키는데 그것은 물질의 소유를 포기하고 서로 나누어 주는 "코이노니아" 즉 나눔으로 실행됩니다. 또한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 나라를 함께 가지기 위하여 복음을 전하여 복음을 함께 소유하는 영적인 코이노니아로 발전합니다.


    I 물질의 코이노니아

    우선 물질의 코이노니아를 살펴보겠습니다.

    1. 예루살렘 교회의 코이노니아

    오순절 성령 강림 후에 제자들의 복음 전파로 형성된 예루살렘 교회는 코이노니아에 힘썼습니다.

    행 4:42: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여기서 '교제'란 '코이노니아'의 번역어인데, '코이노니아'는 문맥에 따라 정신적인 것을 서로 나누는 것이나 일을 함께 하는 것에도 쓰이지만, 문맥상 여기서는 무었을 가리키는 지 애매하지만, 물질을 서로 나누는 것을 포함하는 교제를 뜻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이어서 나오는 44-45절이 물질의 나눔을 언급하기 때문입니다.

    행 4:44-45: "44.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이러한 물질을 나누는 교제는 예루살렘 교회에 단회적으로 일어났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성경은 물질적 코이노니아가 다른 초대교회들에서도 행해졌음을 보여줍니다.


    2. 이방지역 교회들의 코이노니아

    예루살렘 교회 뿐만 아니라 고린도 교회도 물질 나눔에 힘썼습니다.

    고후 9:13: "이 직무로 증거를 삼아 너희의 그리스도의 복음을 진실히 믿고 복종하는 것과 저희와 모든 사람을 섬기는 너희의 후한 연보를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여기서 '연보'는 '코이노니아'의 번역어로서 문맥상 물질을 나누기 위해 내어 놓는 행위를 뜻합니다. 고후 9:9은 이것은 물질적인 것임을 명확히 합니다.

    “기록한 바 저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롬 15:26은 이 코이노니아가 아가야와 마게도냐 지역의 성도들이 예루살렘 지역의 가난한 성도들을 위하여 행해졌음을 알려줍니다: "이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동정하였음이라" 여기서 '동정하였음이라'는 코이노니아를 행했다는 의미의 원어를 번역한 것입니다.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코이노니아를 행했다면 문맥상 여기서 코이노니아는 물질적인 것임이 분명합니다.

    여기서 사도바울은 이방교회 성도들이 물질적인 나눔을 실행해야 마땅한 이유를 말씀합니다.

    롬 15:27: "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또한 저희는 그들에게 빚을 진 자니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신령한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신의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

    즉, 이방인들은 예루살렘으로부터 신령한 것 즉 복음을 받아 나눠 가졌으므로, 이제 육신의 것 즉 물질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물질을 나눠 주는 코이노니아가 빚을 탕감하는 자의 입장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빚을 진 자가 빚을 갚는 입장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매우 특이합니다. 이처럼 코이노니아는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 나라를 귀한 그리스도의 보혈로 인해 거저 받은 성도들이 마땅히 해야 할 바이며 베푸는 자의 입장에서 행해지는 덕목이 아닌 것입니다.

    빌립보 교회도 물질의 코이노니아를 행하였습니다.
    빌 4:15를 보겠습니다: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예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여기서 '참예한'은 코이노니아하였다는 원어의 번역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빌립보 교회의 선교 후원을 빌립보 성도들이 바울의 고난을 코이노니아했다고 칭찬합니다. 빌 4:14: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예하였으니 잘하였도다."

    여기서도 '참예하였으니'는 코이노니아하였다는 동사의 번역입니다. 즉 빌립보 성도들은 물질적인 선교후원을 위해 절제하는 생활을 하며 바울의 고난을 함께 나누어 가졌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물질적 지원을 단순히 물질적인 것으로 여기지 않고 선교사의 고난에 동참한 것으로 평가합니다.


    3. 사도 바울과 코이노니아

    초대교회가 코이노니아를 실제로 행했다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도바울이 코이노니아를 격려하고 권면했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격려와 권면은 오늘의 초대교회만이 아니라 오늘의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사실을 넘어선 당위성으로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세 성도들의 결핍을 코이노니아하라고 권합니다. 롬 12:13: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여기서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는 '성도들의 결핍을 코이노니아하며'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물질을 나누는 행위는 남의 결핍을 나누는 행위로 묘사됩니다. 즉, 물질의 코이노니아가 나의 풍요를 나누어 주고, 남의 결핍을 나누어 가지는 교환으로 해석된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디모데에게 특히 부유한 자들에게 물질의 코이노니아를 명하라고 가르쳤습니다.

    딤전 6:17-18: "17.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18.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여기서 18절에 '동정하는'은 '코이노니아 하고자 하는'이라 번역할 수 있는 말을 의역한 것입니다. '코이노니아 하고자 하는'이란 말의 의미는 앞에 나오는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에 의해 규정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동일한 의미의 말을 표현을 바꾸어 반복하는 것은 매우 자주 쓰이는 성경의 표현법입니다.

    이러한 물질의 코이노니아는 부유한 자들에게 엄청난 물질적 손해를 주는 가르침이지만 실제로는 이것이 부유한 자들에게 유익하며 참된 생명을 취하게 하는 길임을 사도바울을 지적하였습니다.

    딤전 6:19: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4. 베드로,야고보,요한과 코이노니아

    코이노니아는 단지 사도 바울에 의해 강조된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 야고보, 요한은 바울의 복음을 인정하는 교제 즉 코이노니아의 악수를 나누면서 가난한 자들을 생각하는 것을 당부했습니다.

    갈 2:9-10: "9. 또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기둥 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나와 바나바에게 교제의 악수를 하였으니 이는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저희는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 10. 다만 우리에게 가난한 자들 생각하는 것을 부탁하였으니 이것을 나도 본래 힘써 행하노라."


    5. 신약시대의 제사로서의 코이노니아

    코이노니아는 신약시대의 성도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입니다. 그래서 마치 인간과 인간 사이에 이루어지는 물질의 이동처럼 보이는 코이노니아가 실제로는 하나님께 드려지는 귀한 예물인 것입니다.

    히 13:16: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주기를 잊지 말라 이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니라."

    여기서 '서로 나눠주기'란 '코이노니아'의 번역어입니다.


    II 영적인 코이노니아

    코이노니아는 단지 물질적인 차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차원을 포함합니다. 그럼 이제 영적인 코이노니아를 살펴보겠습니다.

    1. 복음의 코이노니아

    빌 1:5은 복음의 코이노니아를 말씀합니다: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함을 인함이라."
    이 구절은 "첫날부터 이제까지 너희가 복음에로의 코이노니아함을 인함이라"고 번역될 수 있을 것입니다. 복음에로 코이노니아한다는 것은 성도들이 서로 동일한 복음을 소유하는 것을 가리킬 것입니다.

    갈 2:9은 사도들 간의 코이노니아의 악수에 대해 언급합니다:
    "또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기둥 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나와 바나바에게 교제의 악수를 하였으니 이는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저희는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

    이것은 단순한 교제의 악수라기보다는 서로 동일한 복음을 가졌음을 인정하는 상호인정의 악수일 것입니다. 이러한 악수는 바울이 자신의 복음을 그들에게 제출한 후에 이루어진 것이므로 바울복음인정의 악수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갈 2:2: "계시를 인하여 올라가 내가 이방 가운데서 전파하는 복음을 저희에게 제출하되 유명한 자들에게 사사로이 한 것은 내가 달음질 하는 것이나 달음질 한 것이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2. 복음전파와 코이노니아

    복음을 혼자만 알고 가지고 있지 않고 아직 모르는 자들에게 전해주어 함께 복음을 나누어 가지는 것도 성경은 '코이노니아'라고 부릅니다. 롬 15:27은 유대인들이 복음을 이방인들에게 전한 것을 복음을 함께 공유하기 위하여 나누어 가지는 행위 즉 코이노니아라고 부릅니다.

    롬 15:27: "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또한 저희는 그들에게 빚을 진 자니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신령한 것을 나눠가졌으면 육신의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

    '나눠가졌으면'은 여기서 '에코이노-네산' 즉 '코이노니아하였다'란 말의 번역입니다. 여기서 "신령한 것"이란 복음을 뜻할 것입니다. 복음은 물질보다 훨씬 더 귀한 것이므로 복음을 나누어 가지는 코이노니아 또한 매우 귀중한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코이노니아 사역은 전도와 선교를 통하여 이루어지는데, 이러한 일을 하는 사람들은 많은 것을 세상에 베푸는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선교의 코이노니아의 모범을 우리는 예수님의 성육신에서 볼 수 있습니다. 히 2:14: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예수께서 우리의 혈과 육을 코이노니아하면서 하나님 나라 복음을 우리에게 전해 주신 것처럼 우리도 이방인의 문화와 삶을 코이노니아하면서 복음을 전하여야 할 것입니다.


    3. 예수 그리스도의 코이노니아

    복음을 코이노니아함은 그 복음의 내용인 예수 그리스도를 코이노니아함입니다.

    고전 1:9은 이것을 말씀합니다.
    고전 1:9: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더불어 교제케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여기서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더불어 교제케 하시는"에 해당하는 헬라어 원어는 "그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코이노니아로 우리를 부르신"으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코이노니아"란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한다는 의미로 볼 수도 있지만은 이것은 성도들이 서로 함께 동일한 예수 그리스도를 공유한다는 의미로 보는 것이 문맥상 더 적합합니다. 왜냐하면, 헬라어 소유격은 목적의 소유격으로 쓰일 수 있고, 또한 이어지는 10절은 서로 한 마음과 한 뜻을 가지라고 권면하기 때문입니다.

    고전 1:10: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다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한 마음과 한 뜻이란 바로 동일한 한 분 예수님의 마음과 예수님의 뜻이라 할 수 있을 것이며,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공유한 사람들이 당연히 공유하여야 하는 마음과 뜻일 것입니다. 그래서, 9절은 10절의 전제로서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고, 따라서, "성도들이 함께 예수 그리스도를 코이노니아함"으로 9절을 해석하는 것이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함"으로 해석하는 것보다 적합할 것입니다.


    4. 성령의 코이노니아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코이노이아와 함께 성령의 코이노니아를 말씀합니다.
    빌 2:1: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에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여기서 "성령의 무슨 교제"나는 "성령의 무슨 코이노니아"로 번역될 수 있고 역시 헬라어 목적의 소유격 용법을 고려하여 "성령을 코이노니아함"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성도들이 함께 동일한 성령을 공유한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성령을 공유한다면 성령께서 주시는 동일한 마음, 동일한 사랑, 동일한 뜻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빌 2:2: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성령이 주시는 이 동일한 마음은 바로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겸손한 마음입니다.
    빌 2: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이러한 겸손의 마음은 바로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빌 2:5-8: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III 맺음말

    물질을 넉넉히 가진 자가 물질에 결핍된 자와 물질을 나누는 코이노니아는 풍요와 결핍이 서로 교환되는, 세상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놀라운 교환행위입니다. 이것은 하늘 영광을 버리고 이 땅에 오시어 우리의 비천함을 나누어 가지시고, 우리에게 하늘의 영광을 주신 그리스도를 본받는 행위입니다. 십자가 고난으로 예수님은 우리의 고난을 나누어 가지시고 사망도 나누어 가지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구원과 생명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구약의 안식일이 마치 창조후에 쉬신 하나님을 본받는 imitatio Dei 하나님을 본받음이듯이 신약의 코이노니아는 십자가 고난과 부활의 영광으로 놀라운 나눔을 실행하신 그리스도를 본받은 imitatio Christi인 것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를 본받은 영성운동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코이노니아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입니다.


    굶주린 북한 탈북자들에게 양식을 전하고 또한 복음을 전하려고 영하 20도를 밑도는 위 속에 두만강변에서 숨어 기다리고, 그들이 다시 잡혀 가지 않도록 은밀히 숨겨주는 익명의 선교사들, 그들은 바로 그들에게 주어진 영광을 버리고 동포의 고난을 나누어 가지는 코이노니아의 실천자들입니다.

    유럽에서의 신학자, 음악가, 철학자로서의 명성을 버리고 아프리카 오지의 주민들의 고난을 나누어 가지고 자신이 가진 의술을 베풀어 준 슈바이처, 그는 그리스도를 본받아 코이노니아를 실천한 사람입니다. 박사학위를 포기하고 아프리카 오지에서 이름 없이 복음을 전하는 알려지지 않은 어느 선교사, 유학의 길을 포기하고 가난한 자들과 함께 살기 위해 빈민촌에 들어간 어느 목사의 길, 그리고 수많은 믿음의 성도들이 묵묵히 포기하며 내려간 길 그것이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길이요, 하나님을 닮아가는 길일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무언가 추구하고 있더라도 결국 그것은 포기하고 나누어주기 위한 것이지 않고는 그리스도와 관계없는 세상 영광의 길일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본받는다는 것은 영광을 자꾸만 취해가고 명성을 얻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히려 영광과 명예를 버릴 때 이루어질 것입니다. 자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 평생 나의 가진 것을 나누어 주고 남의 고난을 나누어 가지는 길 그것이 그리스도를 본받는 코이노니아의 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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