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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성공회 제자교회대한성공회 제자교회

  • 인터넷 돌아다니다 인상깊게 읽고 퍼왔습니다.
  • 조회 수: 1435, 2010-10-13 15:55:30(2010-10-13)
  • “아이들 때리지 않으면 얘들이 바르게 크겠어요? 버릇만 나빠지지.”

    ‘체벌 없는 평화로운 학교 만들기’라는 제목의 통신문을 보고 과외 학생의 어머님이 언짢아 하시며 한 마디 하신다. 나는 이미 문제 안 풀고 게으름 피는 아이의 등짝을 후려친 후였다. 눈을 샐쭉하게 뜬 선호는,

    “선생님은 체벌 어떻게 생각해요?”

    라고 묻는다. 머쓱해진 나는 눈도 마주치지 않고 대답했다.

    “선생님은 체벌 없는 학교, 완전 반대야.”

    오, 하느님 어머니. ‘아이는 나와 같은 하나의 인격체이므로 때려서 가르치려 들면 안 된다’라고 두 손 모아 외치던 연사 전혜영은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요?

    ▲ 가정통신문에는 ‘문제 상황에 어떻게 지도하겠다’라는 자세한 방침까지 나와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선생님을 불신하는 아이들이 정말로 반성할 것인가’가 아닐까?

    손 따로, 발 따로, 아이도 따로?

    과외를 하다 보면 자연스레 학부모님과 육아(?) 방법에 대해서 머리를 맞대고 의논하게 된다. 첫 과외를 시작하기 전 부모님과 상담할 때 내가 누누이 강조하는 말은 ‘아이를 때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냐면 맞은 아픔은 금방 가실 뿐더러 동기 부여도 안 되고 때리는 선생도 힘이 든다. 무엇보다 만일 맞아서 아이가 변하더라도 때리는 사람이 소홀히 ‘감시’하는 틈을 타 그새 예전과 같아질 뿐이라는 것을 가장 큰 이유로 꼽을 수 있다. 친구들끼리는 ‘오히려 내가 맞을까봐 그래’라고 우스갯소리를 하곤 하지만.

    하지만 막상 현장에 투입되고 나면 그 말은 안드로메다로~. 처음 몇 번이야 ‘00야, 너 왜 이렇게 선생님을 속상하게 하니?’라며 죄책감을 유발하거나 ‘너 말고도 가르칠 다른 아이 많아’라고 협박 또는 ‘괜찮아. 이러면 너 손해지, 나 손해니?’하며 아쉽게 만드는 여러 가지 시도를 하며 좋게 타이르려고 한다. 과외 초기에는 아이도 나도 서로의 ‘간을 보는’ 상태이기 때문에 이런 방법이 먹혀 들어가기도 하지만 서로 익숙해지고 긴장이 풀리기 시작하면 다시 또 딜레마에 빠진다.

    숙제를 안 해올 때마다, 공부 안 하려고 잔꾀를 부릴 때마다, 가끔씩 버릇없이 굴 때마다 나는 끊임없이 고민한다. 때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아이가 공감할 수 없는 일장연설은 씨알도 안 먹힌다. 그렇다고 때리고 나면 마음이 찜찜하다. 아이들이 아파하는 것도 그렇지만 전혀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것을 더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나의 손은 수업시간마다 허공을 오르락내리락한다.

    일전에 상원이가(과외 하는 집 큰아이) 너무나도 오랜 동안 숙제를 잃어버리거나 하지 않고 변명만 늘어놓아 ‘다음 번에 한 번만 더 그러면 혼쭐을 내주겠다’고 벼른 적이 있었다. 말로 타이르는 것의 한계를 느꼈고 꼬집거나 찰싹찰싹 때리는 수학 선생님의 말을 더 잘 듣는 아이를 보고 ‘말로만 해서는 안 되겠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다.

    ‘거실에서 야구방망이로 흠씬 두들겨 패주면 작은아이도 보고 뭔가 느끼겠지’라며 비장한 각오로 과외 하는 집에 도착. 아이는 ‘한 번만 더 봐주세요’ 하는 눈빛으로 또 이런 저런 사정을 늘어 놓는다.

    야구방망이는 커녕 온몸에 힘이 빠졌다. 나는 누구를 흠씬 두들겨 팰 위인은 못되는 데다 아이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커서 실망감부터 몰려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구 소리치기 시작했다. 아이에게는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하는 그저 그런 잔소리의 반복으로 느껴질 그런 말들로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아이는 반성을 했을까? 아니, 빨리 나의 잔소리가 끝나기를 바랐을 것이다. 나중에서야 내가 신체적 폭력이 아닌 언어적 폭력을 쓰고, 게다가 짜증을 부렸으니 아무런 공감도 얻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너무나도 후회했다.    

    나는 두드려 패고 고함 치고 협박하는 것보다 지극한 관심과 사랑이 아이를 적극적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실제 상황에서 나는 내가 커온 방식에서, 내가 보고 배운 ‘폭력’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여기에 나의 기대가 더해지면 상황은 더 악화됐다. 내가 무어나 된다고 아이를 바꿀 수 있다는 정의감에 넘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일까. 나의 방식대로 아이가 따라 주지 않는다고 해서 종종거리고 답답해 했던 것이 오히려 문제가 아니었을까.  

    ▲ 영어시험 90점 넘으면 문화상품권을 주겠다며 당근을 던졌다. 물지 안 물지는 미지수. 그리고 시험 못 쳐오면 그냥 저한테 도움이 되게 오답노트를 여러 번 시키기로 했다. 내 팔이 안 아프고 네 팔이 아파 봐야 공부하겠지 ㅋㅋㅋ

    때려라, 그러면 클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밖에서 나의 고함소리를 들은 아버님이 굉장히 흡족해(?) 하셨다는 것이다. 심하게 혼난 이후 내게 겁을 먹어 조심스러워 하는 아이를 보며 나는 무척이나 미안하고 안쓰러워 하고 있었는데 그 다음부터 ‘더욱 강하게’를 주문하시는 부모님을 보며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큰 아이의 말에 따르면 할머니가 선생님이셔서 굉장히 엄격하게 자신의 아들을 훈육하셨는데 그래서 아버님도 강한 양육 방법을 고수하시는 분이라고.

    하지만 나도 맞으면서 큰 터라 별다른 훈육 방법을 모르겠다는 것도 큰 일이다. 호기심이 많아 몸이 먼저 나섰던 나는 항상 사고를 몰고 다녔다. 가끔씩 머리끝까지 화가 난 아빠는 나를 개 패듯이 때렸고(격한 표현이 아니다. 정말로 아빠는 개 패듯이 나를 때렸다.) 그 다음 날이면 멋적어서 그런 것인지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나를 대했다. 그 과정에서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왜 아빠가 화가 났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그러니 나는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나 ‘이씨, 왜 때려’, ‘언제까지 맞고 있어야 할까?’같은 생각을 하며 때로는 불쌍한 눈빛 공세를 퍼부으며 그 시간을 ‘버텨냈다’. 그저 다음부터는 ‘아빠가 화가 나지 않기’만을 바랐을 뿐.          

    그리고 얼마 전, 아빠가 나를 때렸던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화가 났다. 어떤 때는 내가 모르고 한 잘못이나 아빠가 오해해서 화가 난 일로도 맞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잘못했다는 느낌보다는 커서 복수하겠다는 분노감만이 남아 있어서 더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그리고 분노의 문자질 개시.

    “아빠, 어릴 때 나 왜 때렸어?ㅡㅡ 말해 봐, 빨리.”

    “누가 그러던데? 나는 기억 없거든.”

    “때렸으니까 기억하지. 말해 봐, 왜 때렸냐고ㅡㅡ 복수할거다”

    “니가 잘못했으니깐 그랬겠지. 다 자식 잘 되라고 한 거 아니겠냐. 나는 잘 못 없다.”

    “복수할거다. 나중에 늙어서 나랑 살고 싶다고 울어도 양로원 보낼 거야.”

    아빠는 정말로 겁을 먹은 것인지(?) 그 이후로 답장이 없었다.

    ‘다 자식 잘 되라고’라니. 나는 잊지 못한다. 분노에 가득 찬, 이성을 잃은 아빠의 눈빛을. 그것은 내가 잘 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내 행동에 화가 나서, 이해를 하지 못해서,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아서가 아니었을까? 몸은 다 큰 어른이었지만 아이를 키우고 이해하는 데 있어서는 여전히 어린아이였던 우리 아빠는 나를 ‘작은 어른’으로 생각하지 않았나 싶다. 우씨, 눈물이 난다. 아빠가 너무 미워서.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고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하고 울다 못해 끅끅 넘어간  어린 내가 불쌍해서.

    ▲ 우리 아빠, 엄마는 혼낼 때는 굉장히 무서웠는데 칭찬에는 굉장히 인색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던데, 칭찬을 더 많이 해줬으면 그게 좋아서 더 열심히 착한 짓 하려고 했을지도?

    그런데 나 역시 아이들을, 내가 좋다고 만날 같이 놀자고 조르는 아이들을 때리고 협박하고… 내가 끔찍이도 싫어했던 그 방법을 그대로 고스란히 되물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속상하고 슬프다. 아이들이 나에게 바랐던 것은 공부를 잘 가르쳐 주고 기를 바짝 서게 하는 무서운 선생님이 아니라 자신의 말을 잘 들어주고 이해해주는 친구 같은 선생님이 아니었을까.  

    체벌 없는 평화로운 학교 만들기.

    과연 그게 얼마나 가능할까? 지금 같은 한국사회에서.....

    ▲ 아이의 책장을 둘러보다 이런 책을 발견했다. <무기 팔지마세요> 일상적으로 얼마나 쉽게 아이들이 전쟁과 같은 폭력을 쉽게 접할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장난감은 한 때라고?

댓글 4

  • Profile

    ♬♪♫강인구

    2010.10.14 00:48

    세월이 더 흐르고... 시행착오가 전 세대적, 전국가적인 것이 되었을 때...
    아마 변해 있지 않을까? ^^
  • 서미애

    2010.10.14 10:26

    맞아요. 대화로 해야겠죠? 근데 무지 힘들어요! 그래도 바꾸려고
    매일 노력해야 겠네요, 생각과 마음과 행동을!!!
  • 이종림

    2010.10.14 18:21

    아이들의 눈높이로 맞추어야 하는데..

    참 힘듭니다. 어린이들, 각자의 특성을 알고
    눈높이를 맞춘다는게...

    좋은글 감사.
  • 이숙희

    2010.10.16 14:48

    손으로 때리는 것보다 더 무서운건...말로..때리는 거지요
    진정 믿고 사랑하는 마음 100%순도의 격려와 칭찬..그런마음과 말을 부어 주시길..구하며 항상 입 조심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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