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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퍼온 글 - '노숙인 다시서기 지원센터' 임영인 신부의 글!
  • 임영인 신부입니다.

    다들 평안하신지요?

    이런 글을 쓰고 다른 이들에게 소개를 하는 것이 옳은지 망설였습니다.

    제 글을 이종수 선생이 읽고 몇몇 사람들에게 돌렸는데 뜻밖에 몇통의 전화가 왔습니다.

    외면하고 싶은 현실이지만...이런 이야기를 통해서 마음을 나누는 것이 좋겠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말에 용기를 얻어 마음을 나누고 싶은 분들에게 이글을 전합니다.

    조금 길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분은 “차라리 소설을 써라”라고 놀려대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중요한 것은 마음이 아니겠습니까?

    어제 하루종일 눈이 오더니...오늘은 햇살이 무척 맑았습니다.

    이제 겨울이 다 지나간 느낌입니다.

    행복하게 사시길 빕니다.

    임영인 신부 합장

    ===================================================

    거리의 아이에게 축복을!

      
    사무실에 출근을 하니 실무자들의 인사하는 목소리가 제법 크다. 눈길이 마주치자 무엇인가 좋은 일이 있는 지 슬며시 웃는다. 기분 좋은 일이 있는가 보군. 아침인사 목소리가 이렇게 큰 날은 틀림없이 기분 좋은 하루가 된다. 그러나 사무실 문을 열자 당혹스러운 일이 벌어져 있었다. 행운과 불행은 늘 시간 속에 매복한 채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번갈아가며 달려든다. 오늘 하루가 행운일까, 불행일까? 그러나 오늘 하루는 행운도 불행도 아닌 그저 소중한 하루의 삶일 수도 있다.

    사무실에는, 평소에 가지런하게 놓여있던 소파가 흩어져있고 그 위에는 수건과 아기 옷이 널려 있었다. 책상위에 놓여있던 파일과 책들은 한편으로 치워져 있었고 대신 분유통, 기저귀, 젖병 같은 것이 놓여있다. 어디서 가져왔는지 전기난로도 켜져 있다. 게다가 방안에서는 지린내도 나고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채 말을 마치기도 전에 여성 상담원이 등 뒤에 다가와서 한마디를 한다.

    “급해서 데려다 놨어요. 해림 씨 아기예요.”

    “이...해...림의 아기?”

    내가 되물으며 소파를 보니 그 위에 아이가 눕혀져 있었다. 나도 모르게 혼자 말이 나왔다.

    “병원에 입원한지가 얼마나 됐다고...”

    그리고 갑자기 “허허...참!”하는 헛웃음소리가 나왔다. 그 헛웃음 소리에 실무자는 미안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데려다 놓을 데가 마땅치 않아서 그랬는데 일하시기 불편해서 어쩌죠?”

    뭐가 미안하다고 그러는지 모르겠다. 이런 일이야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닌가. 거리에서 데려온 아이를 위한 일인데. 현실적으로도 사람들이 많이 드나드는 사무실 책상위에 눕혀 놓고 있기도 좀 뭣한 일이고 썰렁한 회의실에 데려다 놓기도 망설여지는 일이다. 그렇게 볼 때 내 사무실이 가장 안정적이다. 그래 잘 데려왔다.

    찬찬히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니 잘생겼다. 이마가 넓고 이목구비가 뚜렷했다. ‘늙은 총각’이 지내는 방에 갓 태어난 아이가 들어와 누워있다는 것이 특별한 느낌이 든다. 늦게까지 일하고 사람만나는 곳으로만 쓰이던 딱딱한 분위기의 공간이 아이가 쉴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었다는 것도 감사한 일이다.

    아이의 이름은 ‘성민’(가명)이라고 했다. 해림 씨가 자신의 성을 붙이겠다고 하니 ‘이성민’이다. 태어난 것이 지난 1월 4일이니 세상구경을 시작한 지가 불과 열흘 밖에 안 된다. 아마 기록상 최연소 노숙인일 게다. 배꼽에는 아직 반창고가 붙어있었다. 농담으로 한마디를 덧붙였다.

    “아직 딱지도 안 떨어진 녀석이네.”

    누구나 세상에 태어난다는 것은 축복이다. 부자로 태어나건 가난한 사람으로 태어나건, 건강하게 태어나건 장애를 갖고 태어나건, 생명을 갖고 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그것자체만으로도 축복이다.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질문을 해 보았다. “그렇다면 이렇게 거리에서 시작한 아이의 삶도 축복받은 삶일까?” 이런 질문에 ‘그렇다’는 대답이 쉽지 않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아이의 삶도 축복받은 삶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성노숙인 이해림(가명, 25세). 그녀를 서울역에서 처음 만난 것은 재작년 6월이다. 그러다가 뜬금없이 사라졌다가 작년 초에 또 서울역에 나타났다. 그녀는 언제나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사라졌다가 잊을만하면 다시 나타나곤 했다. 게다가 그렇게 불숙 나타날 때마다 만삭의 몸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사람마다 안쓰럽게 만들었다. 그래서 다가가서 말을 건네었지만 그때마다 얼굴을 돌리며 외면했다. 기껏 한다는 말이 “걱정할 것 없어요. 다른 사람일이나 걱정하세요.”하는 정도였다. 다른 사람들이나 걱정하라고? 상담원들이 대책을 마련해서 다시 찾아 나서면 그때마다 사라져 보이질 않았다.

    또다시 만삭의 몸으로 서울역에 나타난 것이 지난 연말이었다. 이번이 벌써 세 번째였다. 그녀는 임신 9개월이라고 하면서도 술에 취해있었고 연신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설득을 해서 시립병원에 보내 고주파 검사를 하기도 했다. 그게 올해 년 초의 일이다. 태아의 상태도 걱정이 되고 산모를 설득하여 입원을 권하기 위해서였다. 다행히도 병원을 따라나섰다. 병원에서 검사를 하여 태아가 건강하다는 것을 확인을 하자 입원은 안하겠다고 했다. 조만간 출산을 하게 될 것 같다는 말에도 “내가 알아서 할 거예요.”라며 말을 잘랐다. 그러다가 며칠 동안 거리에서 보이질 않았다. 의례 그랬던 것처럼 때가 되어 병원에 입원을 했던가 어떤 시설에 들어갔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며칠 지나지 않아 또다시 서울역에 나타난 것이다. 그것도 낳은 지 열흘도 채 안 된 아이를 안고! 이번에는 정말 당혹스러웠다.

    그녀는 정신지체 장애가 있어서 판단력이 흐리다. 게다가 술을 자주 마시고 젊은 남성 노숙인들과 함께 어울려 다녔다. 그래서 늘 유리그릇을 대할 때처럼 조심스러웠다. 그런데 그젊은 남자들 중에 이창현(26세), 장성만(28세)이라는 두 남자는 항상 곁에 있었다. 이해림, 이창현, 장성만 이 세 사람 사이에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도 일어나고 있어 어떤 사이라고 이해해야 할 지 잘 모르겠다. 다만 해림 씨는 이창현을 애인이라고 해서 그런 사이로 알고만 있다.

    그녀의 애인이라고 하는 이창현은 생김새는 멀쩡해 보이지만 정신지체 3급의 장애인이다. 그는 가난하기 때문에 노숙생활을 하는 것같아보이지는 않다. 그에게는 가족도 있고, 가족들도 집으로 돌아오라고 한다는데 신용불량에 걸려 있어서 못 들어간다고 했다. 집에 있는 어머니와는 한 달에 한번 꼴로 전화 통화를 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의 형은 치과의사라고 했다.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지만 가족들의 살림살이가 궁색한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그래도 호주머니가 빈털터리가 될 때면 일주일에 한 번꼴로 ‘노가다’ 일을 나가기는 했다. 가끔 영화 찍는 데에 가서 엑스트라 일을 하기도 했다. 엑스트라 이야기가 나올 때면 예전에 “태극기 휘날리며”를 찍을 때 출연을 했다고 들떠 자랑을 하기도 한다.

    “그때 일당 육만 사천 원을 받았어.”

    그렇지만 요즈음에는 거의 일을 안 나간다. 일거리가 없을 뿐만 아니라 친구들이랑 지내는 것이 더 좋다고 한다. 어떤 때는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며 거리생활을 즐기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창현은 해림 씨의 애인이기는 하지만 해림 씨가 낳은 아기가 자기의 아이가 아니라고 했다. 아이의 아버지는 지금 교도소에 있다고 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해림 씨 옆에서 지내는 또 한 남자는 장성만이다. 이창현보다 키가 조금 더 크고 늘씬해 보인다. 그 역시 약간의 정신지체 증상이 있다. 없어진지 5년가량 된 자유의집에서 지내기도 했다는 것으로 보아 꽤 오랫동안 노숙생활을 한 것으로 짐작된다. 그전에는 신문배달일도 하기도 했다는데 지금은 거의 일을 하지 못한다. 그의 얼굴은 누렇게 떠있다. 아무래도 간에 이상이 있는 것 같다. 진료소에서 혈액검사를 하자고 해도 항상 손사래를 친다. “내가 알아서 할 거니 관심 끄세요.” 그도 가끔 돈벌이를 한다고는 하지만 그는 정상적인 노동을 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장성만은 언제나 해림 씨에게 “네가 잘 키울 수 있을 거야. 내가 도와줄게” 하지만 기껏 술이나 사서 함께 마시는 일을 할 뿐이다. 애인인 이창현도 해림 씨에게 ‘언제나 같이 있겠다’고 한다. 그러나 기껏 해림 씨에게 담배를 권하고 술을 따라주는 것이 그의 일이다. 담배와 술 인심만큼 후덕한 것이 또 무엇이 있을까? 이창현과 장성만 두 사람 다 언제나 말뿐이다. 남자들은 언제나 책임도 못 지는 말을 한다. 이렇게 무책임한 두 남자 중에 해림 씨가 의지하는 남자는 애인인 이창현이 아니라 장성만이다. 그래서인지 성민이라는 아이의 이름 중에 ‘성’자는 장성만의 ‘성’자를 따온 것이라고 했다. 이것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도대체 이 세 사람은 어떤 관계인지 알 수가 없다. 그리고 이런 상황을 어떻게 교통정리를 해야 좋을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기껏 떠오르는 생각이 당분간 해림 씨를 시설에서 지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해림 씨는 시설에 입소하는 것을 끔찍이 싫어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자세히 하지는 않았지만 그동안의 이야기를 통해 불우한 가정환경을 짐작할 수 있었다. 어렸을 때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에게 많이 맞았다는 이야기를 가끔 했다. 어머니는 해림 씨가 어렸을 때 가출을 해서 마산 어디엔가 산다고 했다. 그녀는 고아원, 장애인 시설을 비롯해 이곳저곳 많은 시설에서 생활을 했다. 그리고 첫 번째와 두 번째 아이를 가졌을 때는 미혼모 시설에서도 생활을 한 것 같다. 이렇게 이곳저곳에서 생활을 하며 겪은 일들이 그에게 그리 좋은 기억을 남긴 것은 아니다. 그녀는 미혼모 시설에 들어가면 무조건 아이를 입양시켜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꼭 그런 것은 아니라고 설명을 해주어도 이해를 못한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그녀가 벌써 이전에 아이 두 명을 낳고 입양시설에 보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짐작에 그 미혼모 시설에서는 해림 씨가 아이를 키울 조건이 못 된다는 생각을 전한 것 같다. 나 역시 이런 상황이라면 입양을 권할 것 같다.

    그녀 곁에 있는 두 남자는 출산을 앞둔 해림 시에게 “걱정하지마라. 내가 방을 마련해주겠다”고 자주 이야기를 한다. 해림 씨는 이 말을 믿고 싶다. 물론 이 두 남자들 역시 해림 씨를 도울 능력이 못된다. 해림 씨도 자신이 처한 상황이 조금 불안하게 느껴질 때면 “애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라고 상담원들에게 이야기를 한다. 그렇지만 그 두 남자와 떨어져서 지내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러다가 서울역 화장실에서 아이를 낳았다. 그게 지난 1월 4일이다. 서울역의 직원들이 발견을 하고 112신고를 했다. 그녀는 구급차에 실려 병원에 입원했다. 그리고 불과 며칠 동안 병원에서 지낸 뒤에 다시 거리로 나온 것이다. ‘어디에서 지냈냐’는 질문에 “쪽방에서 지내기도 하고 찜질방에서 지내기도 했다”고 천연덕스럽게 대답을 한다. “산후조리를 해야 하지 않겠냐”는 책망조의 이야기에 “미역국은 먹었다”고 한다. 그것으로 그녀는 충분하다고 생각하나보다. “아이는 어떻게 데리고 있었냐”고 묻자 대답이 가관이었다. 젖이 잘 안 나와서 아이에게 분유를 먹였는데 더운물을 못 구해 찬물에 탄 분유를 먹였단다. 게다가 상담원이 그녀를 만나기 전날부터 분유마저 떨어져 아이를 굶기고 있었다. 며칠 동안 목욕도 못시킨 상태였다. 기저귀를 제때에 갈아주지를 못해 아이의 엉덩이는 짓물러 있었다. 아이의 옷에는 새까맣게 때가 끼어있었고 분유 묻은 것이 덕지덕지 굳어 있었다. 배꼽에는 고름이 끼어있었다. 세상에, 이렇게 대책 없이 아이를 데리고 있었다니……. 기가 막혔다.

    쉼터에서 당분간 지내면 어떻겠냐고 묻자 여전히 고개를 흔든다. 단지, ‘아이만 얼마동안 봐주면 안 되겠냐’고 한다. 그리고 아이를 양육할 환경이 되면 다시 데려다가 자기가 키우겠다고 한다. 상황이 이쯤 되니 하는 이야기다. 그러나 해림 씨가 아이를 키울 환경이 마련될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해림 씨는 절도 건으로 집행유예를 받고 보호관찰 중이었던 것이다. 얼마 전 임신 중일 때에도 소재지 확인이 안 되어, 그러니까 주소이전신고를 하지 않아 보호관찰소에서 보름간 있다가 나오기도 했다고 한다. 물론 자신은 절도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불량끼가 있는 다른 여자아이들이 절도를 했는데 재수 없게 자신이 그 주변에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얽혀들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그날 밤에 이렇게 대책이 안서는 모습으로 서울역 대합실에서 서성이는 해림 씨를 설득해서 그녀의 아이, 성민이를 내 사무실도 데리고 들어온 것이었다.

    다음날 오전부터 실무자 선생님들이 부산해졌다. 아이의 옷, 기저귀, 젖병, 아기용 비누, 엉덩이 발진용 분, 배꼽에 바를 연고, 분유……. 왜 그리 살 것이 많은지. 게다가 기저귀가 없어서 깔아놓았던 수건이 오줌에 젖었는데 그것도 양이 보통이 아니었다. 게다가 태어난 지 열흘밖에 안된 거리의 아이가 내 사무실에 들어왔다는 것이 신기한지, 실무자들도 수시로 드나들며 들여다보기를 원했다. 아이는 이런 부산한 상황에 긴장이 되어서인지 잘 울지도 않았다. 분유도 제대로 못 먹었다. 어디가 아픈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한참을 지나서 아이가 울기 시작했다. 그래도 의사표현을 할 줄 아니 다행이었다.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울고 나서는 우유도 조금씩 먹었다. 아무리 못난 부모라도 아이는 부모와 함께 자라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이 경우처럼 아이가 방치되고 있을 때는 부모 곁에 두는 것이 옳다고 주장을 하기가 어렵다.

    다음날, 아이를 맡길 곳을 찾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여기저기에 전화를 했다. 마땅한 시설이 없었다. 한 나라의 사회복지는 이런 것을 통해서도 그 허점이 드러난다. 제대로 된 사회복지는 예외적인 상황조차 대처할 수 있는 제도라야 한다. 구청과 아동복지센터를 통해 사정을 한 결과 저녁나절에 어느 보육원에 보낼 수 있었다. 그 보육원에서도 놀라워했다.

    “이렇게 어린 아이가 들어오기는 보육원 생긴 이래 처음이에요.”

    내게도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그러나 삶이란 어차피 매순간 ‘처음’을 대하는 것이다. 마주선 ‘처음’ 앞에 어떻게 최선을 다할 것인가가 삶의 빛깔을 나타낸다.

    내게는 또다시 ‘처음’으로 시작해야 하는 일이 하나 더 생겼다. 그것은 성민이의 출생신고를 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 일이 복잡하게 꼬였다. 거리 어디엔가 있을 해림 씨를 찾아 나섰는데 그사이에 구속 수감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녀의 주민등록은 2년 전부터 말소되어 있었다. 그래서 성민이의 출생신고가 무척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만 되었다. 왜 가난한 이들의 삶은 자꾸만 꼬이는 것일까? 그렇지만 믿고 싶다. 성민이의 삶은 이렇게 꼬이고 꼬인 밑바닥의 삶으로부터 벗어나 행복한 삶이 열릴 수도 있다는 것을! 그리고 성민이의 탄생을 축복하고 싶다. 성민이가 누웠던 소파에는 아직도 아이의 냄새가 남아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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