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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회는 부동산 투기에서 자유로운가? (펌)
  • 교회는 부동산 투기 문제에서 자유한가?


    방인성(ispang) ispang@schurch.net


    출처: <뉴스앤조이>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심화된 양극화 현상은 우리사회의 빈곤문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최근 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빈곤층은 전체 인구의 15%에 해당하는 700만 명을 넘어서고 있다. 빈곤층의 확대는 경기침체와 높은 실업률, 부익부 빈익빈이라는 사회의 양극화 현상을 가져온다.

    우리사회의 큰 질병 중 하나인 양극화 즉 구조적 불평등이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이정우 전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장은 "빈부격차의 주된 이유는 자산의 불평등, 특히 부동산 문제에 있다"고 밝힌바 있다. 우리 사회의 불평등 구조의 주범은 부동산 투기에 있다는 것이다. 신광영 교수의 <한국의 계급과 불평등>이라는 책에서는 "한국사회가 특별한 직업 없이 금융이나 부동산, 증권 등의 소유로 고수익을 누리는 '큰손'과 전문직 종사자들의 막강한 영향력이며, 지역간 불균등한 성장으로 주택 자산의 가치가 큰 격차를 보이며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현상, 그리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종사자 간의 임금 격차 심화로 노동계급 내부의 불평등이 발생하는 독특한 계급 불평등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행정자치부가 발표한 전국 토지 소유 현황 조사 결과는 더 충격적이다. 1%의 국민(48만7천여명)이 우리나라 전체 개인 소유 토지의 51.5%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과는 반대로 총인구의 71%인 3474만 명은 한 조각의 땅도 갖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했다.

    지금 우리사회는 어느 지역의, 어떤 평수의 아파트에 사는가가 그 사람의 계급적, 계층 구분을 자신의 고유 가치와는 관계없이 형성한다. 이런 불평등의 구조적 문제는 사회의 모든 분야에 걸쳐 뿌리 깊게 일어나고 있어 심각한 사회의 위협 요소가 되고 있다.

    교회는 부동산 투기 문제에 자유로운가?
    교회마다 각종 사업을 펼치면서 부동산 문제에 깨끗한 교회는 얼마나 될까? 교회들마다 목 좋은(?) 땅을 구입해 건물 짓기에 급급하고, 수련원, 기도원, 교회묘지, 대안학교 등을 가지려고 앞다투어 부동산 사재기에 앞장서고 있다. 교회에서 각종 건축할 때의 상황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대부분은 땅을 무리하게 구입하거나 아주 힘 있는 교회는 각종의 정보를 통해 편법을 사용해서라도 토지를 마련한다. 그리고 그 땅을 담보로 또 다시 무리한 대출을 받아 건축을 하게 된다. 그동안 성도들은 대출을 갚기 위해 헌금을 강요당한다. 이러는 중에 부동산 가격은 뛰고 교회는 부를 축적하게 된다.

    대형교회들의 세습도 이러한 과정을 통해 쌓은 엄청난 부를 아무에게나 맡길 수 없어 양심의 꺼림이 있지만 수렁에 빠진 결과이다. 특히 요즈음은 교회마다 학교를 세우는 열풍으로 땅을 사고 건물 짓기에 열심이다. 지금 사회가 앓고 있는 병을 생각한다면 교회는 여러 가지 사업으로 자신도 모르게 세상이 파고 있는 수렁으로 빠져서는 안 된다. 좋은 의도일지는 몰라도 교회가 앞장설 일은 아니다. 여러 가지 사업으로 인해 교회가 과도한 부를 갖는 것은 성경이 가르치는 바도 아니고 부패로 가는 길이다.

    수련원, 각종 복지사업, 대안학교 등은 전문가에게 맡기고 공공기관 또는 국가기관이 잘하도록 도와야 한다. 목회자나 교회가 독점하려고 하는 것은 교회이기주의이고 사회를 변화시키기보다는 벽을 쌓는 갈등을 만들어 낸다. 오히려 교회는 사회가 앓고 있는 병의 치유를 위해 바른 메시지를 전하려면 깨끗하고 청빈해야 한다.

    교회 내에서도 부자 교인치고 부동산 투기에 자유로운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우리교회에 와서 두 번 간증을 하신 모 탤런트 장로님도 오래 전 투기 목적으로 아파트당첨 된 것을 하나님의 축복으로 여겼다고 하며 부끄러워했다. 부동산 투기를 자행하면서 번 돈을 하나님이 주신 복으로 간주하고 십일조와 감사헌금을 드리며 교회에서 힘을 과시한다. 다 그렇지는 않지만 대부분 부자가 되려면 부동산을 갖지 않고는 매우 힘든 사회구조에서 교인들도 다를 바 없다. 그러다보니 부동산 문제를 성경적 원칙에 맞추어 설교한다는 것은 많은 용기가 있어야 한다. 설사 설교한다 하더라도 변죽만 울리기가 일수이다.

    그것보다 더욱 심각한 것은 많은 목회자가 그것을 축복으로 가르치는 물량적 성공주의에 빠져 있으니 부동산 투기를 막는 설교는 생각도 못할 일이다. 교회와 교회간의, 목회자와 목회자간의 빈익빈 부익부가 심각한 상태이니 어떻게 이 문제로 설교할 수 있을까? 부동산 투기 행위로 서민들을 울리고 빈익빈 부익부의 양극단 현상을 조장하고, 불로소득으로 위화감을 조장해온 행위는 교회와 그리스도인도 자유롭지 못하다.

    교회는 어떻게 할 것인가?
    진정한 축복의 의미를 바르게 가르쳐 성경에서 제시하는 축복 또는 경제관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있어야 한다. 구약 창세기에 나오는 신앙인(족장)들의 축복이 가족 혹은 집단을 통해서 나타나고 있고 신명기에는 국가를 통해서 나타난다. 창세기12:1-3의 아브라함의 축복은 개인이라기보다 장차 이루어질 민족, 더 나아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시는 복이다. 신명기 7:13,14, 28:2-6, 12-13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의식주 생활에 부족함이 없게 하신다는 것이고, 공동체 전체에게 번영과 윤택한 경제적 생활의 축복을 말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축복은 공동체적인 것이지 개인적인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약에서의 축복관은 예수께서 산상수훈에 말씀하신 것과 같이 하나님의 의를 함께 누리는 것이다. 함께 더불어 축복과 평화를 누리는 하나님나라의 목표를 갖고 이 땅에 적용하며 사는 삶이 그리스도인의 축복된 삶인 것이다. 이러한 축복관에 비추어 볼 때 토지문제는 성경에서 제시하는 확실한 잣대가 있기에 그리스도인이 실천해야할 중대한 사명을 갖고 있다.

    구약성경 레위기 25장은 성경의 토지 제도를 가장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다. 구약성경 여호수아 12∼22장에서도 토지 분배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요약하면 성경은 우리는 하나님의 것을 일정 기간 빌려서 사용하는 소작농으로 정의하고 있으며 청지기의 개념도 여기에서 출발한다. 신명기 19:14에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어 얻게 하시는 땅 곧 네 기업 된 소유의 땅에서 선인의 정한 네 이웃의 경계표를 이동하지 말지니라"고 인간이 토지 소유에 대한 욕심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다.

    헨리 조지는 존 로크(John Locke)를 해석하면서 노동에 의한 생산물의 사유는 정당하지만 토지의 사유는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레위기 25장 23절-28절은 "토지를 영영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 너희는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너희 기업의 온 땅에서 그 토지 무르기를 허락할지니 만일 너희 형제가 가난하여 그 기업 얼마를 팔았으면 그 근족이 와서 동족이 판 것을 무를 것이요 만일 그것을 무를 사람이 없고 자기가 부요하게 되어 무를 힘이 있거든 그 판 해를 계수하여 그 남은 값을 산 자에게 주고 그 기업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그러나 자기가 무를 힘이 없으면 그 판 것이 희년이 이르기까지 산 자의 손에 있다가 희년에 미쳐 돌아올지니 그가 곧 그 기업으로 돌아갈 것이니라"고 하였다. 여기에서 토지는 하나님이 직접 만드셨기에 절대적 소유권이 개인에게 있지 않다고 말씀하셨다.

    토지는 생존 즉 삶의 근거이며 생명과 관련되어 있다. 인간이 함께 누려야 할 토지에 대한 권리를 누릴 수 없는 것은 삶의 근거를 빼앗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토지 사유화는 모든 사람의 평등한 권리를 빼앗고 삶을 위협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다른 사람의 토지를 사유화하고 독점할 경우 불로소득이 발생하게 마련이다. 불로소득은 탐욕에서 발생하며 탐심은 우상숭배이다.(엡 5:5) 또한 레위기25장에 나타난 하나님의 희년 법을 보면 사람이 살다가 여러 가지 이유(남편의 사망, 병, 천재지변, 가난 등)로 토지를 타인에게 팔았을 경우에도 영원히 파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팔았던 자가 토지 대금을 마련하여 무르기를 요구할 경우 언제든지 되찾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땅을 되찾지 못했더라도 희년에는 모든 토지를 조건 없이 주인에게 되돌려줘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것은 토지가 공기와 물 같이 모든 사람이 함께 공유하되 소유주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교회는 희년법에 근거하여 잘못된 법률과 제도의 개선에 앞장서야 한다. 정부가 빈부격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조세 불평등 완화, 빈곤계층 생활보장, 복지제도의 개선 등을 위해 사회단체 또는 전문기관과 협력하여 감시하고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특히 부동산 투기를 근절하고 토지문제를 바로잡는데 앞장을 서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를 세우는 중요한 실천이다.

    교회 건물을 짓는데 집을 팔거나 전세를 빼어 바쳤더니 새 아파트에 당첨되어 하나님이 축복하셨다는 간증은 사라져야 한다. 교회 건물 짓는데 과도하게 헌신하기보다 이웃을 위해 물질을 나누어야 한다. 교회 건물이 성전이 아니라 우리의 몸이 성전이기에 성스런 사랑의 삶으로 헌신해야 한다. 교회는 건물이 필요하지만 땅 사고 건물 세우느라고 사회가 앓고 있는 양극화 병을 더 심화시킨다는 경각심을 갖고 무리하지 않아야 한다. 하나님은 교회 건물이 초라해서가 아니라 가난한 이웃을 외면하고 사회 공의를 세우지 못하는 것에 분노하신다. 학개서에 보면 나무로 지은 보잘것없는 성전에 처음 지었던 화려한 성전보다 하나님의 영광이 크고 가득하겠고 만국을 진동시키겠다고 하셨다.(학개2:1-7) 문제는 하나님과의 관계이고 얼마나 하나님께 순종하는가에 달려 있는 것이지 결코 외형에 있지 않다.

    목회자는 부동산 투기로 땀 안 흘리고 번 거짓된 돈을 부끄러워 할 줄 알도록 설교하고 가르쳐야 한다. 주택은 주거 목적으로 구입하고 땅은 모든 사람의 이익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제도를 세우는데 헌신하고 실천해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원하시는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미가6:8)이라는 말씀이다.

    나가는 말
    교회는 세상을 치유하고 희망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이라 하면 하나님이 이 세상과 역사를 주관하신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교회는 성경의 원리가 우리의 모든 문제에 해답이라는 것을 믿고 적용해야 한다. 양극화의 병을 앓고 있는 경제, 사회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교회는 담대하게 헌신해야 한다. 교회가 하나님의 방법을 찾고 기독교적 대안을 제시하고 국가가 정책에 반영할 수 있도록 외쳐야 한다.

    무엇보다 그리스도인은 부동산 투기로 얻는 부는 축복이 아니라 범죄인 것을 깨닫고 돌이켜야 한다. 교회도 부동산으로 인한 부를 얻고자 하는 물량주의를 버리고 교회의 순수한 사명으로 돌아서야 한다. 목회자는 바른 성경적 축복을 가르치고 하나님의 공의를 세우는 구체적 설교를 해야 한다.

    지금도 삶의 터전을 마련하지 못하고 빈곤에 허덕이는 사람들의 마음에 부동산 투기로 인한 상처를 주지 말아야 한다. 이사야 5장8절 "가옥에 가옥을 연하며 전토에 전토를 더하여 빈틈이 없도록 하고 이땅 가운데서 홀로 거하려 하는 그들은 화 있을 진저"라는 경고의 말씀을 교회는 들어야 한다.



    2005년 08월 19일 15:5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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