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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년 8월 29일]루가 14:7-14 자기를 낮추는 자
  • 청지기
    조회 수: 1885, 2010-08-29 20:19:20(2010-08-29)
  •   세계적으로 유명한 지휘자인 ‘레오나드 번스타인’에게 기자가 질문을 했습니다.
    “가장 연주하기 어려운 악기가 무엇입니까?”
    번스타인은 주저하지 않고 “제2 바이올린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의아해 하는 기자에게 부연 설명을 했습니다.
      “나는 제1 바이올린 주자들은 얼마든지 구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같은 열정을 가지고 제2 바이올린이나 제2 프렌치 혼이나 제2 플롯을 연주 할 사람을 구하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이것이 큰 문제입니다. 누구도 제2 악기를 연주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조화를 이룰 수가 없거든요.”
      제2 악기를 연주한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나타나지 않는 뒷 자석에 앉는 것을 의미하며, 제1주자를 보좌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낮은 자리를 싫어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낮은 자리는 종이 된다는 것이며, 제2악기를 연주하는 것이며, 공로를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지난주에는 새로운 총리, 장관을 임명하기 전 인사청문회가 진행되었습니다. 총리와 장관 등은 국무위원으로 나라와 국민을 위해서 봉사할 수 있는 좋은 자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자리에 합당한 사람을 검증하기 위해서 청문회를 합니다. 진짜 정직하게 국민을 위해서 섬길 수 있는 사람, 그 자리에 합당한 사람을 앉히기 위한 것이죠.

      그런데 청문회를 진행하면서 몇 몇 분들은 그 자리에 합당하지 않은 사람임이 드러났습니다. 그럼에도 당사자들은 죄송하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 스스로 자기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자진 사퇴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국민을 섬기는 좋은 자리를 자신의 출세와 성공의 자리로 여기기 때문이죠.

      오늘 복음 말씀을 보면, 이런 류의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예수님이 한 바리사이파 지도자의 집에 식사 초대를 받아 가셨습니다. 물론 그 자리에는 다른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여러 사람들이 손님으로 초대받아 왔습니다.

      유대인 사회에서 잔치 자리에는 윗자리가 있었습니다. 잔치에 초대된 사람 중에 존경받는 사람, 그 잔치를 빛내 줄만한 사람이 앉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식사에 초대받은 사람들을 보니 그들의 행동거지가 이상합니다. 너도 나도 윗자리에 가서 앉으려고 신경전을 벌이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그 자리에 만물의 창조주이시고 민유의 주인이신 예수님이 계신데... 최고의 자리에 앉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신데... 사람들에게는 예수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자기가 윗자리에 앉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이왕이면 제2 바이올린 주자보다는 앞자리에 앉아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는 제1주자가 되어야지요.
      대통령이 총리 후보로 장차관 후보로 지명해주었고 여당만 밀어주면 그 자리에 오를 수 있는데 스스로 사퇴를 하지 말아야지요.
      이왕이면 윗자리에 앉아 거들먹거려야지요.
      이게 우리의 생각 아닌가요?

      교육전도사 시절부터 약 20여년 목회를 하면서 발견하게 되는 우리들의 모습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교회를 위해서 봉사했는데 주변에서 알아주지 않으면 서운합니다. 계속 알아주지 않으면 상처받고 봉사의 자리에서 물러나 버립니다.
      자랑하고 싶고 칭찬받고 싶고 남이 좀 알아줬으면 합니다.
      할 수만 있다면 윗자리에 앉고 싶어합니다.
      다른 교회 어떤 분은 교회위원에 선출되지 않았다고 교회에 안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교회위원도 자리를 드러내는 자리인가 봅니다.

      예수님은 우리 사람들의 이런 모습을 보시고 말씀하십니다.
      11절,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다."
      한 마디로 ‘교만하지 말고 겸손하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을 보면, 에수님 말씀 그대로 ‘자기를 높이려다 낮아진 존재’가 있습니다.
      사탄입니다.

      성경학자에 의하면, 사탄은 원래 영적인 피조물인 루시퍼라는 천사장 이었습니다. 그에게 ‘나도 하느님처럼 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 마음으로 하느님을 대적하고는 하늘나라에서 추방되어 하느님을 대적하는 악령들의 두목인 사탄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사야 14:12-15, "웬일이냐, 너 새벽 여신의 아들 샛별아, 네가 하늘에서 떨어지다니! 민족들을 짓밟던 네가 찍혀서 땅에서 넘어지다니! 네가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지 아니하였더냐? '내가 하늘에 오르리라. 나의 보좌를 저 높은 하느님의 별들 위에 두고 신들의 회의장이 있는 저 북극산에 자리 잡으리라. 나는 저 구름 꼭대기에 올라 가 가장 높으신 분처럼 되리라."

      이렇게 교만의 화신인 사탄은 하느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아담에게 와서 자신이 저질렀던 똑같은 죄악을 부추겼습니다.
      창세 3:5, 그 나무 열매를 따먹기만 하면 너희의 눈이 밝아져서 하느님처럼 선과 악을 알게 될 줄을 하느님이 아시고 그렇게 말하신 것이다."

      스스로가 자기를 높이는 마음이란 하느님처럼 되고 싶은 마음입니다.
      이것을 교만입니다. 잠언 16장 18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우리 안에 윗자리를 차지하고 싶은 교만한 마음이 꿈틀거리고 있고 나도 모르게 그렇게 행동한다면 사탄처럼 하느님께 내침을 받을까 두렵습니다.

      하지만, 자기를 낮춤으로 높아진 분이 계십니다.
      예수님이십니다.
      필립 2:6-8, “그리스도 예수는 하느님과 본질이 같은 분이셨지만 굳이 하느님과 동등한 존재가 되려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의 것을 다 내어놓고 종의 신분을 취하셔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셔서 죽기까지, 아니, 십자가에 달려서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느님과 사람 앞에서 스스로 낮추는 태도를 겸손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겸손의 왕이라고 합니다.

      하느님은 죽기까지 자기를 낮추신 예수님을 높여주셨습니다.
      필립 2:9-11,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모든 것이 예수의 이름을 받들어 무릎을 꿇고 모두가 입을 모아 예수 그리스도가 주님이시라 찬미하며 하느님 아버지를 찬양하게 되었습니다.”

      세례요한은 그렇습니다.
      요한 3:30, 그는 흥하여야 하고, 나는 쇠하여야 한다.

      바나바도 그렇습니다.
      사도 13장을 보면 안티오키아교회의 최고 리더십이 바나바였습니다.
      1, “그 때 안티오키아 교회에는 예언자와 교사 몇 사람이 있었는데 그들은 바르나바와 니게르라고 불리는 시므온과 키레네 사람 루기오와 영주 헤로데와 함께 자라난 마나엔과 사울이었다.”
      4, “바르나바와 사울은 성령께서 보내시는 대로 셀류기아로 내려가서 배를 타고 키프로스 섬으로 건너갔다.”
      사울은 바울의 옛 이름입니다.

      그런데 뒤를 보면 그 이름의 순서가 바꿔서 바울이 바나바 앞에 나옵니다. 바울이 바나바보다 서열이 앞선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13:43, “회중이 흩어진 뒤에도, 유대 사람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 가운데서 많은 사람이 바울과 바나바를 따랐다. 바울과 바나바는 그들에게 말을 건네며, 늘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고 권하였다.”
      
      바나바는 바울이라 불리는 사울을 교회에 이끌어준 바울의 리더였습니다. 그런데도 나중에는 바울이 앞섭니다. 바울을 섬김으로 리더로 세워지는 바나바 실로 그는 겸손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천국에 가면 해같이 빛나는 이분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겸손한 사람인지, 교만한 사람인지를 그 행동거지를 보면 쉽게 분별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속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어떤 사람이 참 겸손해 보입니다. 그런데 그 겸손이 ‘저 사람은 참 겸손해’라고 말해주는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 싶은 교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겉모습일 수 있습니다. 그 사람 자신도 자기가 보여주는 겸손한 모습에 스스로 겸손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속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 자신이나 어떤 사람이 겸손한 사람인지 교만한 사람인지를 분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계속된 말씀을 보면, 그 분별의 기준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식사의 자리에 누구를 초대할 것인가를 말씀하십니다.
      
      식사의 자리는 교제의 자리입니다.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그 관계를 깊게 하고 싶다면 예나 지금이나 밥상을 둘러앉는 것이 최고의 방법입니다.
      그래서 내 마음에 있는 사람들을 초대하게 됩니다. 그리고 초대하는 그 사람들이 누구냐를 보면 그 사람의 마음 상태를 알 수 있습니다.

      윗자리를 탐하는 교만의 마음을 지닌 사람은 거의 대부분 자기와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나, 자기보다 높아 보이는 사람들을 초대합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도 있습니다. 자기보다 높은 사람들에 대해서 열등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자기보다 나아보이는 사람들은 외면하고 자기 정도나 자기보다 못한 사람하고만 어울립니다. 열등감은 교만과 동전의 양면 사이입니다. 교만한 사람이 열등감이 많습니다.
      
      이렇게 교만한 마음을 지닌 사람은 그가 맺는 인간관계가 제한적입니다. 끼리 끼리라는 말입니다. 파당을 짓기도 합니다.

      그런데 겸손한 사람,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그 교제의 대상에 제한이 없습니다. 폭이 넓습니다.

      예수님의 별명이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셨지만, 예수님은 자주 당대 지배계급의 사람들과 식사의 자리를 함께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 중에는 부자 출신들도 높은 직책에 있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잔치를 베풀 때에 가난한 사람, 불구자, 절름발이, 소경 같은 사람들을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자기보다 높아 보이는 사람하고도 어울려 지내면서도 또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을 돌아보는 마음을 지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겸손한 사람들은 누구하고도 잘 어울릴 수 있고 언제든지 누구에게나 섬김을 다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주로 어떤 사람들하고 어울리고 있습니까?
      어떤 사람들을 식사에 초대하고 싶습니까?

      내가 자기 스스로를 낮추는 겸손한 사람이라면, 교회 공동체 안에서 나이나 성별을 뛰어넘어 지체들을 돌아보고 먼저 다가가 인사하고 교제하며 주님의 사랑으로 섬기고자 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예루살렘교회에서 12사도를 도와 교회를 섬길 보조자를 뽑을 때 제시되는 자격 조건이 ‘신망이 두텁고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입니다. 여기서 ‘신망이 두터운 사람’이 바로 이런 사람일 것입니다.

      필립 2:3, “무슨 일에나 이기적인 야심이나 허영을 버리고 다만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십시오.”

      이번 교회위원 선거에서 기도하면서 겸손하여 신망이 두터운 사람을 선출하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너무나 비극적인 것은 우리 가운데 이런 사람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저를 포함해 우리 모두는 스스로를 높이고자 하는 교만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성공회에서는 교회의 직분자를 선출할 때 선거운동이라는 것을 하지 않습니다. 그저 사제 10년차 이상 중에 뽑습니다. 입후보도 없고 운동도 없습니다.
      입후보나 선거운동이란 스스로를 그 자리에 합당한 사람이라고 여기는 교만에서 나오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주교 선거도 그렇고 교회위원 선거도 그렇습니다. 다만 선거로 뽑혀 맡겨지면 죄인임에도 불러 사용하시는 주님께 감사하며 충성할 뿐입니다. 죽도록 충성하고 다만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루가 17:10, “너희도 명령대로 모든 일을 다 하고 나서는 '저희는 보잘것없는 종입니다.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따름입니다.' 하고 말하여라."
      이것이 겸손입니다.
      주님은 교만덩어리인 우리에게 겸손한 사람이 되라고 명령하십니다.
      필립 2:4,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지니셨던 마음을 여러분의 마음으로 간직하십시오.

      어떻게 내가 겸손한 사람이 되어 주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있을가요?

      앞서 말씀드린 대로 나는 언제나 스스로 높아지려는 죄인임을 처절하게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무리 결단하고 다짐해도 마음 밑바닥에는 인정받고 싶고 높아지고 싶은 죄인입니다.
      이렇게 스스로 높아지려는 마음은 언제나 나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외면하고 내 인생의 보좌에 내가 주인되어 살아가고 있는 불신앙에 그 뿌리가 있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모든 교만은 예수님을 윗자리에 모시지 않고 내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불신앙의 또 다른 모습입니다.

      하여 언제나 내 인생의 보좌에 겸손의 왕이신 예수님을 주인으로 영접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나를 통해 겸손의 왕이신 예수님이 살아 더 낮아지는 섬김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기도합시다. 내가 얼마나 교만한 죄인인지를 인정하고 회개하며 겸손의 왕이신 예수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나를 다스려 달라고 그래서 나로 겸손한 주님의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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