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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흥과 리서치, 그리고 중보기도자 (최용준 - YWAM 중보기도 사역자)
  • 리서치와 영적도해의 적용은 그 광위성으로 볼 때 나라와 도시, 지역을 넘어서서 공동체와 가족관계, 개인에게까지 두루 적용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은 특별히 도시나 지역을 포커스로 하여 내용을 나누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도시의 전략 도출을 위한 리서치와 영적도해(Spritual Mapping)는 2가지 범주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Soft Ware 체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지역 부흥의 돌격대장격인 중보기도자들을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고, 두 번째는 지역의 부흥을 위해 헌신한 목양자들을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리서치와 영적도해의 실용도가 다분히 사역자들에게 집중되어져 있는 것은 도시의 부흥을 타겟한 전략 도출이 그 최종적 목표하는 바가 되기 때문입니다. - 사역자들은 전략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지요)
    제가 오늘 이 두 범주의 사역자들 중 집중하여 나누어 보고 싶은 대상은 지역 부흥의 돌격대장격인 중보기도자들에 관한 것입니다.

    리서치와 영적도해의 존재 가치는 사실상 중보기도자들에 의해서 생성되어지고 유지되어 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리서치 코디네이터들과 중보기도자들은 뗄래야 뗄 수 없는 상관관계 가운데 늘 놓여져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리서치 코디네이터로 부르심 받은 자들은 이미도 중보기도자로 먼저 부르심 받은 자들로 이루어지게 됨을 어디서나 쉽게 보게 됩니다.

    혹 여러분들 중 제가 말하고 있는 리서치와 영적도해에 관하여 조금 다른 각도에서 이해하고 계시는 분들도 있으시리라 여깁니다만 제가 이 칼럼에서 계속해서 다루고자 하는 리서치와 영적도해는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갤럽 조사라든지 정보를 수집하여서 객관적인 내용들을 나열하는 차원의 일반적인 리서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계시와 객관적인 역사들을 영적인 차원에서 재해석함으로 한 도시나 지역 전체를 총체적인 하나님 나라로 만드는 Methode 들을 연구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리서치와 도해는 우리의 지역이나 도시 안에 하나님 말씀에 어긋나 있는 그 어떤 것과(사상, 체제, 법, 제도, 문화, 관습 등등) 또한 그처럼 어그러지게 하는 근본인자가 되는 강한 영적 세력이 무엇인지를 발견해 내는 것을 가장 비중 있는 임무라고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굳이 중보기도사역자들의 용어로 표현하자면 'Strong Hold'(견고한 진-어떤 지역이나 도시 또한, 지역을 관장하는 사상이나 체제, 장소 등에 어두움이 극렬하여 그 지역이나 그 체제에 속한 자들에게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른 지역이나 다른 그룹의 사람들에게까지 많은 영향력을 전파하는 강한 영적 묶임이 있는 곳)를 찾아내는 것과도 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겠지요.
    도시전략을 도출해 내는 영적인 코디네이터들이 이러한 영적인 견고한 진들과 그것을 깨뜨릴 영적인 전략들을 밝혀내는 일을 마치면 바로 그 다음에 움직일 자들은 선택의 여지없이 부흥을 가져오는 원동력이 되는 중보기도자 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리서치와 영적도해의 세계적인 선구자로 소개되어져 있고 우리나라에서는 ‘Transfomation’(변화)의 제작자로 더 잘 알려진 ‘조지 오티스 주니어’의 ‘Informed Intercession’이라는 책에서도 그가 소개하고 있듯이 그는 전 세계의 여러 나라나 도시의 부흥을 연구해 볼 때 아래와 같은 약 5가지의 공통적인 요인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1. 변화를 꾀하는 지도자의 끈기 있는 지도력
    2. 열정적이며 연합된 중보기도
    3. 사회적인 화해의 운동
    4. 공공의 힘과의 만남
    5. 문제를 진단한 연구와(리서치) 영적도해

    그가 말한 것에 주목하여 볼만한 것은 부흥을 가져오는 요인에 있어서 중보기도와 리서치가 함께 움직여지고 있다는 것인데, 그가 덧붙여 말하고 있는 또 다른 내용은 부흥을 위한 중보기도자들의 기도를 계속해서 이어줄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 바로 리서치와 영적도해라는 것입니다.
    부흥을 위해 기도하는 많은 중보기도팀들이 한 지역에 무수히 만들어져도 그 팀이 지속적일 수 없도록 하는 요인이 되었던 것은 실제적인 정보들이 실시간으로 계속해서 제공되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과녁을 정확히 맞추는 전략적이고도 날카로운 중보기도는 바로 실제적인 정보전략 에서부터 나오게 된다는 그의 이론은 아르헨티나의 부흥을 연구해 보더라도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이제껏 역사 속에서의 부흥을 연구해 볼 때 아르헨티나의 부흥처럼 흥미로운 것은 없었습니다. 그 간의 세계 역사 속에서 어떤 한 지역이나 도시, 나라에 부흥이 있었을 때 처음에는 뜨겁게 타오르던 부흥의 불길은 수 년을 이어가지 못하고 이내 사그러드는 동일한 현상을 보여왔습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는 특이하게도 전 국가적인 부흥이 15년을 넘도록 지속해 왔습니다.

    그 놀랄만한 부흥의 시작은 어느 한 목사님으로부터 시작되었던 일입니다. 그 목사님은 아르헨티나의 109개 도시를 돌며 리서치와 영적도해를 만들어 내었고 그것을 통해서 그 나라의 가장 큰 영적인 걸림이('Strong Hold') 무엇인지를 발견하게 되었으며 뒤이어 전국적으로 중보기도자들을 연합시켜 열정적으로 기도한 결과 아르헨티나를 잡고 있던 가장 강한 주술의 힘이 깨어지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부터 109개 도시에서 높은 수치의 교회 성장률이 동시에 나타나게 되었고 급기야 나라의 대통령이 그 나라를 주님께 드리는 거룩한 예식을 통해 아르헨티나는 지속적인 부흥의 단계가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부흥이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시는 가장 실제적인 축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부흥은 단순히 믿지 않는 영혼들이 주께 돌아오는 것 그 이상을 담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온전히 의롭고 자비로우신 통치가 시작된 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부흥은 가난한 자가 기뻐하게 되고, 마음이 상한 자가 위로받게 되며, 영과 혼과 육의 모든 묶임 가운데 있는 자들이 자유를 경험하게 되는 인간의 가장 실제적인 문제들이 해결되는 것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럼으로 인간의 전인격적인 회복과 함께 결국 이 회복의 물결은 사회, 문화 전역으로까지 확대되는 능력까지 갖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부흥을 진정으로 원하는 자들이라면 우리는 부흥에 관해 그 이상의 것을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부흥이 한순간의 싸움으로부터 오게 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싸움이 요구된다는 것과 그 부흥을 지속시키기 위한 특별한 일들이 요구된다는 것입니다.

    ‘부흥의 지속성!’

    전략가들의 도움과 중보기도자들의 기도로 한 나라나 도시에 부흥이 시작되는 것은 그리 큰 놀라움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성경의 역사 속에서나 근대, 현대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 죄를 회개하고 전심으로 주님을 구하였을 때 늘 우리의 주님은 당신의 간섭하심을 그 세대에 나타내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신실하신 성품에 기초되어 있지 않은 인간들로서는 하나님의 기대에 신실하게 반응하지 못함으로 인해 늘상 그 영광의 역사를 스스로 포기해 왔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부흥의 지속성에 관한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역사 안에서 여러 다른 나라와 다를 바 없는 축소된 부흥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세계 몇 나라를 제외하고 부흥이 왔던 곳들이 수 년이 못가서 쇠퇴되어지고 오히려 그 이전보다도 더 황폐화되었던 것을 감안해 볼 때 부흥이 오는 것보다도 그 부흥을 지속하기 위해 더 큰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렇다면 과연 리서치 코디네이터들과 중보기도자들은 이 일을 이루기 위한 자신의 위치가 어디여야 할까요?
    두 번째 칼럼에서 이미 언급했지만 아르헨티나의 부흥이 15년간을 지속할 수 있었던 이유가 한 사역자의 109개 도시의 리서치 사역을 통해서와 중보기도자들의 연합이 그 주된 이유였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그것을 지켜낼 수 있는 열쇠를 쥐고 있는 자들도 리서치 코디네이터들과(전략가) 중보기도자들 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한 나라의 부흥이 꼭 이 두 부류의 사역자들로 인하여서만은 아닙니다.
    지역 교회의 연합과 목회자들의 연합, 사회변혁을 위한 사회사역자들 또한 부흥에 있어서 가장 중추적인 존재들입니다.
    다만 제가 이곳에서 더욱 강조점을 두고 싶은 것은 리서치사역자와 중보기도 사역자일 뿐입니다.

    부흥의 지속성을 위해 리서치 사역자들과 중보기도자들에게 제안하고 싶은 것은 ‘24시간 지역 중보기도 센타’와 ‘지역 정보 네트웍’을 형성하는 것입니다.
    부흥을 지켜내기 위해 중보기도자들이 할 수 있는 가장 실제적인 일은 말하나 마나 기도하는 일일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역사는 기도보다 앞설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의 기도도 보다 더 전략적일 필요가 있습니다.
    Target을 분명히 한 목적있는 기도와 과녁을 맞출 경로를 향해 곧바로 날라 갈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화살 뒤의 깃털이 바로 그것입니다.

    "나는 시온의 공의가 빛 같이, 예루살렘의 구원이 횃불 같이 나타나도록 시온을 위하여 잠잠하지 아니하며 예루살렘을 위하여 쉬지 아니할 것인즉 ~~~~~~" - 이사야 62:1 -
    "예루살렘이여 내가 너의 성벽 위에 파숫군을 세우고 그들로 종일 종야에 잠잠치 않게 하였느니라 너희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아 너희는 쉬지 말며 또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 - 이사야 62:6~7 -

    24시간 하나님께서 쉬지 못하시도록 부흥을 위하여 부르짖는 세대가 일어나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이사야 62장 1절에 하나님께서 결단하고 계시는 것도 시온(주의 나라)을 위해서라면 더 이상 쉬지 않으시겠다는 내용의 것입니다. 심지어 주님은 우리의 성벽에 아예 파숫군을 세우고 그들로 24시간(종일 종야) 하나님께 부르짖어 주님의 쉬지 않으시겠다는 결단을 계속해서 촉구시키도록 이미 행하셨다고 까지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 성벽 위에서 24시간(종일 종야) 부르짖을 수 있는 파숫군이 과연 누구이겠습니까?
    그들은 곧 한 지역에 대한 영적인 책임을 가진 중보기도자들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어두운 중세 시대에 복음적 기독교 정신을 이끌어낸 마틴 루터조차도 "내가 하루에 3시간을 기도하는데에 바치지 못했다면 그 외로운 싸움을 온전한 승리로 바꿀 수 없었을 것"이라고 고백했다고 합니다.
    루터 개인이 매일 3시간을 기도함으로써 기독교적 정신을 온 세계에 퍼트릴 수 있었다면 다수의 중보기도자들이 24시간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은 과연 한 지역 사회 안에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되겠습니까?

    저는 국내 모든 도시 안에 전 도시 중보기도 네트워크 System 과 지역을 대표하는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뜻을 묻는 지역 전략 회의실을 갖춘 '전략적인 24시간 중보기도 하우스'를 건립하는 것이 향후 몇 년간의 비젼 중 하나입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능력만을 바라며 그 분의 일하심만을 소망하는 중보기도자들은 인간의 야심찬 계획을 의지함보다 하나님의 일하심을 온전히 기다립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이루어지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제 아무리 뛰어난 인물이라 할 지라도 인간의 조야한 기술과 이성으로는 하나님의 역사를 온전하게 이루지 못합니다.

    그 옛날 모세가 나이 40이 되매 자신이 애굽의 왕자 자리에서 모든 학문과 체계를 심도있게 배우게 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것이었다는 자신의 삶에 있어서의 새로운 비젼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부르심을 발견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러자 곧 그는 자신의 이 비젼을 실행할 좋은 구실을 찾게 됩니다.
    수많은 이스라엘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압제받는 한 이스라엘인을 구하기 위해 애굽사람을 쳐죽인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 때 모세는 이러한 생각을 했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애굽 사람의 학술을 다 배워 그 말과 행사가 능하더라
    나이 사십이 되매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을 돌아볼 생각이 나더니 한 사람의 원통한 일 당함을 보고 보호하여 압제받는 자를 위하여 원수를 갚아 애굽 사람을 쳐 죽이니라
    저는 그 형제들이 하나님께서 자기의 손을 빌어 구원하여 주시는 것을 깨달으리라고 생각하였으나 저희가 깨닫지 못하였더라" - 사도행전 7:22~25 -

    모세는 자신의 그 행동을 통해 이스라엘인들이 모세가 자신들의 영도자임을 알아주기를 바랬습니다. 자신이 가진 왕자로서의 권력의 힘과 장정만 60만이 넘는 이스라엘인들은 그 비젼을 이루어 줄만한 훌륭한 도구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옳다고 여겼던 그 한 번의 행동으로 인해 결국 미디안 광야로 쫓겨가는 나그네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광야에서의 40년, 모세의 지식도 모세의 능력도 이제 모두 사라졌을 쯤 결국 하나님께서는 가시나무 떨기 위에 임하셔서 모세를 부르십니다.
    왜 하나님께서 광야의 하고많은 것들 중 가시나무 떨기 위에 임하셨을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마지막으로 모세 자신의 모습을 상기시켜 주기 위함이셨지요.
    가시나무 떨기는 모세 자신을 의미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혈육으로 그 권력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의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거하지 않는 땅에 거하리라" - 예레미야 17:5~6 -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비젼을 이루기 위해 사용하려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수와 자신이 가진 권력의 힘은 결정적으로 하나님 그 분을 신뢰하지 못한 것이었다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다시 한번 교훈 해주고 싶으셨습니다. 모세에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모세야, 네가 나를 위해 너의 삶을 바치려고 했던 것은 가상하지만 나의 비젼은 너의 능력과 힘과 지식으로는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란다. 사람과 권력을 의지했던 현재 너의 모습을 보아라. 아무 사람도 살지 않는 외로운 땅에서 아무 열매도 맺지 못하는 이 마른 가시나무 떨기와 같이 되었구나.
    그러나 아들아! 이제 보아라. 네가 네 실수로 마른 가시나무 떨기처럼 되어서 이제 아무 열매도 맺을 수 없게 되었다 해도 내가 이 마른 가시나무 떨기 위에 능력의 불로 임한 이 때부터는 이제 40년 전 내가 네게 주었던 그 비젼을 이룰 수 있는 이스라엘의 영도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너는 내가 가게 하는 곳으로 가고 내가 행하라 하는 것을 하며 내가 말하게 하는 것을 말해야 한다. 너는 내게 모든 것을 물어야 하며 그러면 나는 네가 마땅히 행할 바를 말하겠다. 네가 그렇게 이 비젼을 이루어 나가기 시작할 때 그것이 세상을 놀라게 할 나의 능력을 가져오게 할 것이다."

    이 후로 모세는 늘 하나님께 묻는 자가 되었습니다.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보다 앞선 일들이 더 이상 없었던 것이지요. 이러한 모세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사람으로서만이 아닌 하나님 그 분이 인정하실 수 밖에 없었던 중보기도자의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제가 24시간 중보기도 하우스를 원하는 것도 바로 이 이유에서입니다.
    하나님의 비젼을 이루기 위해서는 결코 액션이 기도보다 앞서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 충분히 묻고 그 분의 일하심이 무엇인지와 그 분의 뜻이 무엇인지 충분히 알고 단순하게 순종해 나가기 시작할 때만이 모세의 시대처럼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와 우리 지역을 바꾸어 가는 것을 진정으로 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수 년내에 하나님께서 이 한반도 땅 위에 큰 부흥을 주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러나 부흥은 믿고 준비하는 자의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부흥의 시작만을 위한 사역이 아닌 부흥의 지속을 위해 준비하는 사역들이 계속해서 일어나기를 소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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