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대한성공회 제자교회대한성공회 제자교회

  • 기도에 관한 가르침 2 - 김홍일신부
  • 어려움 : 나는 침묵가운데 기도하기가 힘이 듭니다.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앉으면 이내 분심들이 떠올라, 기도를 마치고 나면 시간을 낭비했다는 느낌이 들곤 합니다.


    가르침 :

      자기중심적인 생각들이나 자기관심과의 싸움이라는 여정을 거치지 않고 기도는 발전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실재로는 기도 중에 자기관심에 몰두하여 있으면서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일은 소용없는 일입니다. 기도 중에 생각할 수 있지만 그 생각은 하느님 안에서, 하느님과 함께, 하느님과의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교제이어야 합니다. 기도 중에 하느님이 부재한 자기관심과 자기본위적인 상태를 극복하려면 다음과 같은 노력들이 필요합니다. 기도 중에 우리 안에 있는 악을 볼 수 있는 빛과 그것에 저항할 수 있는 힘과 반복되는 실수를 견디어 낼 수 있는 인내와, 하느님 안에서 자기 자신에 대한 자신감을 내려놓을 수 있는 의지와, 우리 안에서 우리를 향하여 하느님께서 하시고 계신 일에 협력하려는 열망과 의탁, 마침내 승리하실 하느님의 은혜와 희망을 향한 간절하고 진정성있는 요청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묵상기도와 생각이 고요해진 상태에서 드리는 기도 사이에는 많고 다양한 영역의 기도들이 있습니다. 하느님께 가까이 나아가고자 하는 갈망을 담은 단순한 단어로 청원하는 기도가 한 예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간절함을 담은 단순한 단어를 열정적인 마음이 아니라 조용하고 평화롭게 반복적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몇 단어면 족합니다. (나의 주님, 나의 전부 / 주님 이 죄인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등) 가끔 우리가 드리는 단순한 기도문이나 단어는 하느님과의 접촉을 간직한 채 오랜 시간 동안 유지되기도 합니다. 이때 우리는 하느님이나 기도문의 의미를 생각하기보다 그저 하느님을 바라보거나 하느님 안에 머물게 됩니다.

      
      이같은 단순한 기도는 자주 우리가 순전한 침묵기도로 인도될 수 있도록 돕습니다. 단순한 기도를 되풀이하는 중에 생각이나 감정이 잠잠해 지고, 그저 하느님을 고요하게 응시하고 있는데 다시 어떤 분심이 떠오르면, 그 때 다시 기도문을 반복하며 기도할 수 있습니다. 만일 기도 중에 마음 깊이에서 단어나 소리로 기도하고 싶은 열망이 생기면 주저하지 말고 하십시오. 만일 마음 깊이에서 침묵 가운데 머물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 주저하지 말고 침묵 가운데 머무십시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당신의 마음을 하느님을 향하여 계속 돌리는 일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당신 자신을 하느님을 향하여 내어드리는 일입니다. 행복을 향한 자신의 갈망과 유혹의 생각들을 거절하는 일입니다. 그러면 하느님과 당신 사이에 소통라인은 더 넓어지게 되고, 하느님의 은총이 당신에게 흘러갈 것입니다.

      
    - 하느님을 어떻게 발견할 수 있나요?

      하느님은 우리의 생각, 감정, 느낌 그보다 크시고 무한하십니다. 기도 중에 우리는 어떤 깨달음이나, 평화와 위안, 뉘우치는 마음, 용기 등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를 만져주시는 하느님을 체험할 수 있지만 체험 자체가 곧 하느님은 아닙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체험보다 훨씬 크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기도하는 사람은 기도 중에 경험하는 체험보다 체험을 주시는 하느님을 더 사모하여야 합니다. 내적인 기도를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이란 우리가 도달할 수 없는 먼 곳에 계신 분입니다. 하느님에 대하여 지적으로나 과학적인 방법으로 생각하는 것, 그 자체로는 우리가 하느님과 가까워 질 수 없습니다. 논리는 그 속성상 자기 이고(Ego)를 세우고, 스스로의 자존감과 만족을 추구합니다. 사람이 자신의 신학적 논리를 자랑스러워하는 사람은 때로 그 자랑을 하느님이 아니라 자기숭배와 연결시킵니다. 그 사람은 그 순간 하느님이 아니라 자신을 관상하게 됩니다. 이런 사람들은 쉽게 결론에 도달하고, 자신의 삶을 자신의 현명함으로 경영합니다. 그곳에서 하느님은 우리의 삶과 멀리 떨어져 계시며, 우리는 생활 가운데 하느님과 친밀함이나 인격적인 접촉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반면, 하느님은 당신 스스로를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나를 찾아라. 그러면 나를 발견할 것이다. 네가 네 마음을 다해 나를 찾을 때, 나는 너에게 나를 드러내 보일 것이다.” 사람들이 하느님을 발견하지 못하는 원인은 단순한데 그것은 마음을 다하여 하느님을 찾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느님을 발견하는 일은 자판기에서 동전을 넣고 음료수를 구매하듯 자명하게 한 번에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마치 우리가 한 번의 행동으로 마음을 다해 온전히 우리 자신을 하느님께 다 내어드릴 수 없듯이...우리의 마음은 세속적인 욕망과 두려움들에 의해서 헝클어져 있고, 우리는 때로는 오랜 시간을 거쳐, 때로는 좀 더 짧은 시간을 경과하면서 그것들로부터 자유롭게 됩니다. 사람들은 이 과정을 ‘영혼의 정화’라고 합니다.

      
      하느님께서 하시는 이 정화작업에 협력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은 항상 실재가 아닌 것으로 경험될 것이고, 멀게 느껴질 것입니다. 하지만 하느님과의 친밀함을 갈망하는 사람들은 “내가 하느님을 발견하기 위하여 무엇을 하여야 할 것인가?”를 묻습니다. 답은 “너의 삶을 그의 손에 맡기라.”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에게 하시고자 하는 일을 하시도록 허락하고, 하느님과 함께 하려는 싸움을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 모든 것들 안에서 당신을 인도하실 것이고, 당신은 당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하느님 손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손에 꼭 쥐고 있던 부질없는 세상적인 것들을 놓게 하실 것이며, 그것들로부터 당신을 자유롭게 하실 것이며, 당신 가슴 깊이에서 진정으로 갈망하는 것들에 당신 시선을 돌리도록 하실 것입니다. 그 여정에 들어선 사람은 자신의 경험으로 하느님이 살아계심과 하느님의 사랑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사랑과 믿음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는 체험은 위대한 성인들이 경험하였던 어떤 고차원의 신비적 경험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방식대로 하느님을 발견하도록 부름 받았고, 하느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맞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우리 시대에 만일 하느님을 발견하는 사람이 소수라는 것이 진실이라면, 그것은 소수의 사람들만이 마음을 다하여 하느님을 찾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야훼를 찾아라. 만나주실 때가 되었다. 그를 불러라, 옆에 와 계신다.” (이사 55:6)

      

댓글 0

번호 제목 닉네임 조회  등록일 
573 관리자 6325 2003-02-28
572 관리자 4533 2003-02-28
571 관리자 4575 2003-02-28
570 이종림 4636 2003-03-02
569 김바우로 6840 2003-03-04
568 공양순 4014 2003-05-27
567 청지기 3910 2003-06-30
566 임용우(요한) 9216 2003-07-18
565 김장환 7522 2003-08-27
564 이지용(어거스틴) 4376 2003-10-24
태그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