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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공회 예배의 기원(펌)
  • 조회 수: 3002, 2007-07-26 14:54:52(2007-07-26)

  • 예배의 기원과 발달

    1) 성찬식적 규범  

    처음에는 그리스도인들이 유대인인 만큼 회당예배는 기도(고정된)와 찬양(시편)이 수반되는 율법낭독과 해석(예언서들이 낭독)이었는데 이들이 쫓겨나서 변형되어 강조점이 율법서에서 예언서로 옮겨졌고, 그것을 그리스도의 빛으로 재해석하려 했다.
    여기에 주의만찬에 대한 주님의 명령이 실행되었다.
    사도시대의 교회에는 두 가지 요소가 불가분리로 연합되어 있었는데 이것은 바로 ‘주의만찬’ 곧 떡을 떼는 일과 예배(말씀)드리는 일이었다(행2:42).
    로마의 2세기 예배는 기도와 성서낭독과 교훈이 연합된 성찬식예배였다.
    어느 한 가지도 빼놓지 못할 것이었다. 주요 크라이막스는 성찬식이었다.
    이로부터 동방과 서방교회의 특징 있는 예배의식들이 발전되었다.
    둘은 기본 구조가 동일하다(말씀과 성례전). 동방은 풍부한 상징적 요소를 가진 정교한 의식으로 성장하였고, 보다 간략하고 직접적인 의식이 서방교회에서 성장했다.
    이러한 동방교회의 의식의 정교와 서방교회의 원시적 예배에 대한 곡해와 함께 중세기에 있던 동서 교회의 설교의 쇠퇴를 보게 된다. 곧 성찬예배가 설교 없이 행해졌던 것이다.



    2) 성무일과

    중세에 있어서 미사라고 알려진 이러한 그리스도교 예배의 중심적 행위를 둘러싸고 일련의 부수적 일과(日課)가 생겼다.
    곧 기도의 시간인데 수도원에 있어서 중요한 officium이 office(성무)로 알려졌다.
    3세기 초 로마의 개종자들을 위한 신앙지침서에는 하루 여섯 번(일어날 때, 제3시-오전9시, 제6시-정오, 제9시-오후3시, 취침 시, 한밤중)을 의무로 기도할 것을 가르친다.
    이것이 4세기 말엽에 이르러 매일 6회의 고정된 시간에 드리는 공중예배로 행해지게 되었다.
    이중 아침과 저녁은 특히 중요한 시간이었으며, 이 시간을 위한 시편과 기도문이 규정되었다.
    이것이 후에 조과와 종과까지 합해 8회가 되었고, (오전2시-Vigil,Nocturns(Mattins), 새벽에 Lauds, 이른 아침에 Prime, 오전9시에 Trace, 정오에 Sext, 오후2시반에 드리는None, 오후6시에 Vaspers, 오후8시의 Compline이다.) 시편119편164절에 따라 7회로 줄어든다.
    이 성무일과의 두 초점은 1주1회의 시편낭송과 성서의 연속적인 낭송이다. 구약은 1년에 한 번, 신약은 두 번 통독된다.



    3) 종교개혁 시기에 있어서의 발달

    중세기 말엽에 서방교회의 예배는 사실상 성직자와 수도사들의 분야였다.
    성무일과와 미사는 라틴어였고, 설교의 쇠퇴와 더불어 일반인은 에배로부터 덕성 함양의 요소를 찾을 수 없었다.(주로 성체봉거의 ‘미신과 혼합된 숭경’만이 있었고 일년 한 번 참여하는 부활제에 포도주를 제외한 떡만 받았다) 공동체적인 요소는 없어지고 말았다. \
    쯔빙글리를 제외한 모든 개혁장로는 주의만찬 식탁에서의 예배자들의 교제에서 말씀의 설교가 절정을 이루었던 최초의 성만찬식을 매주 드리는 예배의 표준으로 회복하려 시도하였다.
    나아가 그 강조점에는 완전한 변화가 일어났는데, 성례전적 행위가 말씀의 봉사를 실질적으로 배제할 만큼 우세할 수 없었다.
    ‘종교개혁은 중요 강조점을 신앙과 예배의 기초로서의 말씀 위에다 두었다’ 말씀을 기본적 중심사로 간주한 때문에, 개혁자들은 예배가 마땅히 합리적이며 이해가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이의 필요에 따라 자국어의 사용이 모든 프로테스탄트 공통의 특색이 되었던 것이다...
    영국의 종교개혁은 특이한 것으로, 로마와 제네바의 중간코오스를 취하고 있다.
    그 결과 영국교회는 혼합적인 성격을 가지게 되었는데 이것이 약점이자 강점이다.
    그 교리는 그 신조에 구체화되어 있듯이 철두철미 칼빈주의적인 데 반하여, 그 예배는 중세기의 원천으로부터 자료를 수집하여 만든 기도서에 의하여 지배되고 있다.
    예배의식의 관례에서 본다면, 영국교회의 예배는 비록 칼빈의 영향을 볼 수 있긴 하지만 루터의 신조와 매우 흡사한 점을 가진다.(토마스 크랜머-1549년판, 1662년판 - 모든 것은 회중이 신앙심을 높일 수 있도록 영어로 읽고 불릴 것, 예배는 단순화하여야 하며 성서를 찾은 것을 읽는 일보다 읽을 곳을 찾는데 수고를 하게 할 것, 서구의 예전적 전통의 본질요소들이 그 초기의 위치로 환원될 것-불확실하고 무익하며 미신적인 것들을 제거할 것, 온 왕국은 동일한 예배양식을 가질 것-예배양식의 통일성)
    성무일과는 조도(Mattins)와 만도(Evensong)로 대폭 조정되었고, 중심에 시편이 아니라 성서낭독을 두었다. 이렇게 성무일과를 보존하고 개주함으로써 크랜머는 성찬식의 보완이 될 만한 예배의 형식을 준비하는데 성공하였다.
    영국교회전통의 특이성은 성무일과와 성찬식, 즉 성서적 예배와 성례전적 예배에 대한 동일한 강조에 있으며 이 균형이 깨지면 그 전통의 특이성은 상실된다.
    카톨릭이나 극단적 프로테스탄트와 같이 상대방에 대한 반대수나 대적수로 한 것이 아니라, 초대교회의 패턴에 충실하며 또한 이 두 채녈에 따라 교회원들을 하느님께로 인도한다고 볼 수 있다.
    - 성서적 요소와 성례전적 요소!!!



    4) 자유교회의 예배

    영국의 청교도들은 성서속에 명백히 인정한 것만이 예배의 어떤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는 칼빈의 주장을, 영국교도들은 성서에서 명백히 거부된 것만이 예배에서 배제되어야 한다는 루터의 주장을 유지하였다.
    이로 인하여, 16세기 후기에 청교도운동에 두 파가 생겼는데, 이것이 장로교회와 조합교회이다-모두 제네바의 개혁교회의식에 기초하고 있었다.
    더 극단적인 분리주의자들, 재세례파는 주의기도를 포함한 일체의 의식형태를 거부했음에 반하여 청교도들은 일반적으로 이런 것을 반대하지는 않았다.
    청교도의 반대는 영국교회 기도서에 대한 것으로, ‘너무나도 로마교회의 예배형식과 유사하다는 것’과 ‘다른 곳에 있는 개혁파 교회들이 인정하며 지키는 예배형식과 너무 상이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요한 낙스의 제네바 예배서를 널리 이용하였으며 이것이 ‘스코틀란드와 영국에 있어서의 청교도 예배의 본원’이 되었다.
    청교도 예배의 본질적 성격 곧 ‘하느님의 말씀이 하느님 예배의 충분한 기초이며 사도적 단순성을 예배의 관례로 함’‘기도의 어법은 성서적이며, 시편은 그것이 성서적인 찬송가보다 우선권이 있다는 사실을 같다.
    주기도문을 사용한다.
    설교의 중심성은 예배에 있어서의 하느님의 말씀의 중요성을 입증 한다’고 말한다.-1644년 웨스트민스터 예배규칙서.
    또한 청교도들은 제네바의 예배 의식 전통위에 서 있었으므로 그들의 예배구조는 성찬 중심적이었다.
    감리교회의 창시자인 요한 웨슬리과 찰스 웨슬리는 복음전도적이며 친교적 예배를 영국교회의 정규 예배의 보완으로 언제나 간주하던 고교파인이었다.
    이들은 끝까지 성찬식을 예배의 중심이며 규범으로 간주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5) 쇠퇴, 혼란, 갱신

    18세기는 전 영국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예배가 쇠퇴하기 시작한 시대이다.
    영국교회는 마틴스가 교회의 대중예배로서 성찬식과 성찬전 예배의 양자를 대신하여 행세하게 되었고, 장로교회와 조합교회, 그리고 침례교회, 즉 비국교도들 사이에서는 옛 청교도 예배의 성찬식 규범은 설교에 지나치게 강조를 둔 나머지 모호하게 되어 버렸고, 개혁파의 전통인 장엄한 예전적 기도는 교훈적인 즉석기도에 밀리고 말았다.
    감리교회도 그 객관적 특징과 성례전적 강조를 상실하게 되었다.
    19세기 중엽에 옥스포드 운동이 이러한 풍조를 전환한다.
    곧 성찬식을 영국교회 예배의 중심이 되도록 회복하려 하였고, 전에 국교회에 속하였던 옛 예배 의식의 일부를 부활시키려 시도하였다.
    이것은 너무 ‘의식’을 중요시한 나머지 속칭 ‘의식주의(Ritualism)’라고 비난받기까지 했다.
    이 결과로 하이와 로우로 갈라지는 분열을 초래하고 말았으며 이것이 오늘에 이른다.
    청교도 전통을 가진 교회들은 19세기 말엽에 예배를 개선하여 윤택한 것으로 만들려 한다.
    그런데 이것이 불행히도 주일예배의 구조를 영국교회의 아침예배의 구조와 동화시키고 말았다.
    예배의 많은 첨가물을 가져오긴 했어도 원래의 기본구조가 아침기도예배 형식이니 예배는 필연적으로 성찬식 혹은 성찬전 예배의 특징적인 중심성과 객관성을 결여할 수밖에 없었다....
    현대예전운동, 즉 그 강조점에 있어서는 성례전적이면서도 그 범위에 있어서 에큐메니칼한 운동에 관하여 신앙과 직제 위원회의 보고서는 ...‘예배는 생활의 중심적 위치로 회복되어야 하며, 또 다만 모든 교회가 초대교회의 모형으로 되돌아갈 때에만 가능한 것이 명백하다...
    전통의 주장과 성서적 근거, 즉 고전적 혹은 전통적이라는 감정적 매력과 하느님의 명령을 순종함으로 된 것에 기초를 둔 요청과의 사이에 있는 명확한 구별을 할 필요가 있다.
    어떻게든 본래의 모형을 회복시키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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