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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희년 신학 - 디아코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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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현우(성토모 자문위원,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신약학 교수)

    1. 시작하는 말 (노예해방과 섬김)

    신약시대의 윤리인 섬김은 구약의 노예 해방법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섬김은 마치 내가 남의 종인 것처럼 봉사하며 종노릇을 하는 것인데 어찌 노예 해방법을 완성하는 것입니까? 적극적으로 내가 형제의 종이 됨으로써 그가 나의 종이 되지 않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권력추구의 본성을 가지고 있어서 인간의 관계는 남을 지배하거나 이용하려는 시도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인 교회에서 형성되는 인간관계는 세상과는 완전히 달리 섬김의 원리에 토대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섬김의 원리를 실행하는 것을 이용하여 오히려 우리를 이용하려는 자들에게는 우리가 오직 하나님과 그의 백성을 섬기는 자들이며, 마귀의 종이 아님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섬김의 원리를 교회에 주셨습니다. 교회는 권력추구를 위한 정당도 아니고, 이윤추구를 위한 기업도 아닙니다. 교회는 섬김을 위한 공동체입니다. 섬김 그것은 교회가 세상과 다른 교회의 특징입니다. 마 20:25-27: "25.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가라사대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26.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27.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이익과 권력의 추구의 본성에 기초한 세상에서 힘의 균형이란 원리로 적응하여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피곤하고 고달픈 지 우리는 느끼고 있습니다. 서로 섬기는 자세로 산다면 세상은 훨씬 더 좋아질 터인데 말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어쩔 수 없다고 쳐도 교회나 기독교인의 가정 안에서도 힘의 균형의 원리가 지배하기 시작한 것은 엄청난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교회에는 장로라는 명예와 권력이 있는 직책이 생겨나서 성도들은 이것을 추구하고, 목사세계에는 총회장, 노회장 등의 명예와 권력의 자리가 추구되고 있습니다. 또한 신학교 교수 자리가 신학자들의 추구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특히 세상에서 포기한 권력과 명예를 교회와 신학을 통해서 추구하여 보상받으려는 시도를 하는 비참한 현실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섬기기 위해 만든 각 교회의 당회는 이제 목회자와 장로들 간의 권력투쟁의 장으로 변신하여 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순종의 길을 가야하는 교회 속에서 그리스도 대신 머리 역할을 하려는 교권주의자들이 자라나면서 이제 교황주의에 대항해 개혁된 교회 속에 어처구니없이 수많은 교황들이 득실거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당회를 장악하려는 교권주의자들에 의해 깨어진 교회, 총회를 장악하려는 교권주의자들에 의해 깨어진 교단, 총장권력 추구함으로 깨어진 신학교 들은 상처받은 영적 자녀들을 고통당하게 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인의 가정도 세상 가정처럼 이제 가장의 권위가 무너지면서 힘의 균형 상태에서 권력투쟁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서로 섬김의 원리를 따라 성경적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서로 지배하려고 시도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가정이 깨어지고 안식의 처소를 잃은 상처받은 자녀들은 세상을 원망하며 삐뚤어져 나가고 있습니다.

    이처럼 세상과 동일한 권력추구와 힘의 균형의 원리가 지배하는 교회와 가정은 더 이상 세상의 소금과 빛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할 것입니다. 섬김의 정신의 회복 그것은 맛 잃은 교회와 가정이 맛을 회복하는 길일 것입니다. 이것은 생사를 걸고 추구해야 할 교회와 가정개혁입니다. 우리는 권력추구를 위한 시도를 모두 그쳐야 합니다. 그것은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2. 예수님과 섬김

    우리는 주변의 성도들보다는 우선 예수님을 섬기려고 합니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는 권력을 추구하면서도 종교적인 삶을 영위하며 만족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섬기는 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요 12:26: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저를 귀히 여기시리라."

    또한 예수님을 따르는 삶은 바로 예수님의 섬김의 삶을 따르는 것입니다. 섬김은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이며 사신 방식이었습니다. 마 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눅 22:27: "...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느니라." 이렇게 섬김의 본을 보이신 예수님은 섬김을 명하셨습니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요 13:14).

    성도가 서로 섬기는 것은 곧 하나님을 섬기는 방식입니다. 마 25:40: "...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


    3. 사도바울과 섬김

    사도바울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다시 명합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갈 5:13) 이러한 종노릇은 예수님의 여호와의 종으로서의 종노릇을 모범으로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죄악의 짐과 수고하고 무거운 고난의 짐을 대신 지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종노릇을 짐을 짐으로 표현합니다.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갈 6:2). 남의 무거운 짐을 대신 지는 것, 즉 서로 도와주는 삶은 예수님의 명령하신 서로 발을 씻기라는 섬김의 명령을 지켜 성취하는 것입니다.


    4. 복음전파사역으로서의 섬김

    사도바울은 복음전파사역을 섬김이라고 부릅니다. 바울의 복음전파는 예수께서 많은 사람을 구원하시려고 십자가를 향하여 가신 여호와의 종으로서의 섬김의 길을 따르는 섬김이었던 것입니다.

    행 20:24: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섬김)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바울은 자신을 여호와의 종 예수의 복음전파를 위한 종으로 보고 있습니다. 골 1:23: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군(디아코노스, 종)이 되었노라."


    5. 코이노니아로서의 섬김

    영적인 복음을 전하는 섬김과 함께 물질을 나누는 섬김이 있습니다. 마 25: 35-41의 비유는 주린 자에게 음식을, 목마른 자에게 물을, 나그네 된 자에게 쉴 곳을, 헐벗은 자에게 의복을, 병든 자에게 약을, 옥에 갇힌 자에게 위로를 주는 행위를 바로 예수님을 섬기는 행위로 간주합니다.

    사도바울은 예루살렘 교회의 가난한 자들을 돕기 위해 이방교회에서 헌물을 걷어서 전달하는 물질적 코이노니아를 행하였는데, 이것을 또한 섬김이라 부릅니다. 롬 15:25-26: "25.그러나 이제는 내가 성도를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가노니 26. 이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동정하였음이라." 고후 9:1에서는 바울은 물질적 코이노니아를 "성도를 섬기는 일"이라고 표현합니다.


    6. 맺음말

    섬김은 노예상태에 있는 자들을 풀어주기 위해 대신 값을 지불하는 고엘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영적 노예상태에 있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들이 노예 상태에서 풀려나게 하고, 물질적 궁핍 가운데 있는 자들에게 물질을 전하여 그들이 물질이 없어 노예로 팔려가지 않게 방지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께서 우리의 고엘이 되어주신 것처럼 우리도 세상사람들의 고엘의 역할을 감당하는 제자의 길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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