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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옮김 - 구원물자 자원활동 보고 (일본성공회 중부교구 파송 정윤식 신부)
  • <구원물자 지원활동 보고>


    기도로 시작해서 기도로 마친 일정이었습니다

    3월23일(수)마츠모토 히로시 씨의 운전으로 중부교구, 세컨드하베스트 (푸드뱅크), 사사시마 공생회(노숙자지원)와 그 밖의 개인지원 물자를 실은 봉고차 차량이 나고야를 출발했습니다. 저는 나가노 근처 오부세에서 합류해서 일단 니가타 방면을 향했습니다. 니가타 성바우로교회의 나카오 신부님과 다나카 교우로부터 현지정보(도로 및 노숙자 지원 상황 등)를 들었습니다.

      그 날은 니가타에서 1박을 하고, 3월 24일(목) 아침 8시에 니가타를 떠났습니다. 이 날부터 토호쿠 도로와 반에츠 도로가 완전 개통되어 야마가타로 돌지 않고 센다이에 갈 수 있었습니다. 센다이가 가까워질수록 파란 비닐을 덮은 건물과, 지진복구 공사후 도로에 남은 굴곡이 여기저기서 우리를 맞이했습니다. 이날부터 일반차량은 제한적이지만 자동차 기름 급유가 개시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센다이에 들어가기 전 가능한 모든 주유소에 들러 보충하면서 달렸습니다. 도로개통 첫날이라서인지 비교적 막히지 않고 센다이 그리스도교회(주교좌)에 도착했습니다.


      교회 홀에서 준비해간 컵라면과 주먹밥으로 식사를 해결하자, 모두 선 채로 와꾸이(涌井康福) 신부님 집전으로 점심기도를 드렸습니다. 현지에서의 지원활동이 기도로부터 시작되는 것을 목격한 순간이었습니다. 하야시(林国秀) 신부님의 전화내용을 우연히 듣게 되었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찾았니?” 라고 누군가에게 안부를 묻고 계셨습니다. 교우의 안부를 확인 중이었습니다. “피해지”이기는 하지만 센다이 시내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듯한 광경 이었습니다만, 전화내용을 들었을 때 긴박함이 느껴졌습니다. 12시반 경 타고간 봉고차에서 기저귀, 화장지, 손난로, 식량 등 지원물자를 내려 성당으로 옮겨, 종류별로 나누었습니다. “괜찮으시다면 함께”라는 부탁을 드리고 동북교구의 배려로, 후쿠시마현 신치마치 이소야마 (福島県新地町磯山)까지 갈수 있었습니다 (문제의 원자로에서 45키로 정도 떨어진 곳). 8명이 긴급차량 2대로 (중부교구 차량포함) 움직였습니다. 1시간반 정도 걸려 현지에 도착했습니다. 우선은 피난소로 사용되는 후쿠다 (福田)초등학교에 갔습니다. 다행히 초등학생 이하의 어린이는 없었습니다. 방사능 때문에 다른 지역으로 이주했다고 합니다. 농가지역이기 때문에 쌀 등의 곡물은 충분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지역에서는 가설주택 계획이 진행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일행 8명 에는, 특히 여성의 필요사항을 확인하기 위해, 카토 아키코 주교 부인이 동행했는데, 피난소에서 여성용 의류 등의 구원물자를 필요로 하는 분들에게 전달했습니다. 다른 분들의 필요사항을 듣는 것도 잊지 않고 점검했습니다. 이소야마 성요한교회 신자분들을 확인하던 중, 돌아가신 분, 행방불명된 분이 계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피난소에는 쓰나미로 어머니를 잃고(행방불명) 서로를 의지하며 생활하고 있는 두자매(신자가정)도 있었습니다. 다른 신자 분들의 안부도 확인하고 또 만나뵙고, 피난소 직원에게 의류 등 지원물자를 전달한 후에, 피난소의 신자분들과 함께 기도하고 후쿠다 초등학교를 떠났습니다.

      차로 5분 정도 거리에 있는 이소야마 성요한교회 (磯山聖ヨハネ教会)로 갔습니다. 그곳은 쓰나미로 마을 전체가 떠내려간 지역으로, 건물과 논밭 무엇하나 남아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도중에 자위대가 해변에서 피해자 시체를 발견, 이송 작업 중이었기에 (교회에서 50미터 정도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 차량통과에 제한이 있어서 약 1킬로미터 정도를 걸었습니다.

      교회를 향해 걸어가는 중, 길 좌우양측의 참상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큰 길에서 교회로 가는 길이 쌓여진 잔해로 막혀 있어서 멀리 돌아서 겨우 교회 앞에 도착했습니다. 교회는 다른 일반 집들보다 약간 높은 곳에 있었기 때문에 침수피해는 없었습니다. 밖에서 보니, 벽의 일부가 떨어져 나갔고, 현관 앞의 돌계단이 뒤틀어져 있었습니다. 성당내에는 가재도구가 쓰러져있고 누군가가 난로를 켜서 피난한 흔적이 있었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3명 정도가 급하게 교회로 도망쳐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성당 안쪽 벽에는, 쓰나미와 지진이 있었던 오후 2시 47분에 바늘이 멈춘 시계가 그때의 긴박감을 전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좌우에 끝없이 이어진 광범위한 참상을 눈에 담으며, 해변에 뚫려 무너진 제방이 있던 자리까지 갔다가 돌아왔습니다. 2시간 길로 센다이 그리스도교회로 돌아와, 감사함으로 오늘 하루의 활동을 내일에 이어갈 수 있도록, 함께 기도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날은, 한국에서 선교협동자로 와서, 동북교구에서 사역하고 있는 이찬희 신부의 자택에서 하루밤 신세지고, 다음날 아침, 다시 센다이 그리스도교회에 갔습니다. 그때 때마침, 동경에서도 구원물자가 도착했기에, 그것을 함께 분류한 후에, 3월 25일(금) 마리아 수태고지 성찬식에 참석한 후 돌아왔습니다.

      토호쿠교구내의 큰 피해지를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어떤 형식의 지원활동을 할 지 아직 선명하게 보이는 것이 없습니다만, 토호쿠교구를 중심으로, 다른 피해 교구 즉 키타칸토, 홋카이도, 요꼬하마교구와 관구가 기도하며, 동시에 피해자 지원에 필요한 정보를 면밀히 교환하며 일치하여 접근해야 한다고 절실히 느꼈습니다. 특히 교회로써는, 행정부에서도 손이 잘 가지 않는 인원이 부족한 곳, 즉 피해자 중에서도 “최약자”라고 할 수 있는 분들을 우선해서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카토 주교님으로부터, 2주전 지진과 쓰나미가 있던 주일은 교회에 아무도 못 올지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30명 이상이 모여서 예배를 지켰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주교인 당신의 생각이 너무 부끄러웠다고 하셨습니다. 성찬식이라는 것은 함께 나누어 먹는 것인데, 가까운 곳에 있으나 함께 나누어 먹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는 현실 속에서, 이런 때일수록 우리가 살아가는 힘의 원천, 신앙의 원점으로 돌아가, 우리가 어디에 눈을 두어야 할지를 생각하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기도로 시작해서 기도로 마친” 참으로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2011년 3월 26일(토)


    대한성공회 서울교구파송

    일본성공회 중부교구 성구주교회

    정윤식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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