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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나님의 집의 완악한 사람들!!!(2) - 데이빗윌커슨
  • 조회 수: 1144, 2011-03-31 11:55:40(2011-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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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분이 듣는 복음의 진리에 따라
    다림줄을 내려서 여러분을 측정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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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이 완악함쪽으로 첫 걸음을 내디뎠는지 어떤지 시험해보기 위해 다음 질문들을 던져 보겠습니다.
      

    1. 매일 매일의 기도와 성경 읽기를 게을리 하고 있는 위험에 관한 메시지를 얼마나 자주 듣거나 읽었습니까?
    바야흐로 우리 사회가 완악한 시대가 시작된다는 것을 알고 나는 이 주제에 대한 메시지를 여러 번 썼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독자들은 성경책 보기를 즐겨하지 않거나 하늘의 아버지와 채 5분도 이야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집에서 은밀한 골방에서의 기도를 게을리 한다면, 교회에서 기도하는 것이 여러분의 모든 필요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여러분은 고난의 시간들에 앞서 결코 살아남지 못할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형통할 때에 여러분을 치유하고 강하게 해준 말씀을 마음에 두고 있지 않으면서 어떻게 앞으로 맞이하게 될 어려운 때를 이겨낼 힘이 있을 거라고 보십니까?

    친밀함을 갖기 위해 은밀한 골방으로 여러분을 이끄시는 성령님의 구애를 무시한다면, 여러분은 완악한 마음쪽으로 한 걸음 내딛는 것이 됩니다. 여러분은 온갖 선한 일을 행하고 사람을 축복하고 그리스도인을 섬기는데 시간을 사용할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그의 얼굴을 구하지도 않고 그의 말씀을 마음에 두지 않은 채 주님과의 시간을 거절한다면, 여러분은 나약해지고 두려워하고 우울해지며 결국에는 마귀의 밥이 되고 맙니다. 하늘의 아버지에 대해 개인적인 지식을 갖는 것이 다가올 것에 대해 준비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2. 험담의 두려운 결과에 대해 얼마나 자주 경고를 받고 계십니까?

    험담이란 주제에 대한 나의 경고는 부드럽고 조용한 비처럼 될 때도 있고, 어느 때는 구르는 천둥 같기도 합니다. 나는 이스라엘이 모든 것에 대해 험담하고 투덜거리는 것의 대가가 어떤 것인가에 대한 글을 썼습니다. 몇 번이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죄의 위험에 대해 경고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고집스럽게 주께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그들에게 끝없는 사막의 뱀처럼 비참한 삶을 살게 했습니다.

    자! 여러분의 삶에 다림줄을 다시 내려보겠습니다. 지난 주 동안 여러분의 형제나 자매에 대해 어떤 것을 말했습니까? 반복할 필요가 없었던 어떤 것을 말했습니까? 또는 그 사람에 대해 어떤 험담을 들은 적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그 남자 또는 여자에 대해 의심을 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여러분이 들은 모든 경고에 비추어 볼 때, 어떻게 계속해서 험담을 하실 수 있습니까? 할 수 있는 대답은 여러분이 이미 완악한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는 것입니다!

    3. 은밀한 죄를 감추는 것에 대한 경고를 얼마나 많이 들으셨습니까?

    여러분 마음속에 숨겨진 죄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영이 여러분에게 계속해서 말씀하고 계신 것은 무엇입니까? 지난 1년에 걸쳐 저는 끊지 못하는 죄를 지으며 지내는 위험에 대해 수많은 경고를 해 왔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죄에 대한 설교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부활의 능력에 대해서도 가르쳤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 우리에게 이겨낼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하시며 우리의 마음에 옳게 행하고자 하는 의지를 두셨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Times Square 교회에서 여러 해 동안 저의 설교를 들었던 사람들이 여전히 술에 취하고 담배를 피우며 저주하고 흥청망청 술을 마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것이 완악한 심령입니다! 감히 뻔뻔스럽게 매주 사랑스런 책망을 들으며 앉아 있으면서도 여전히 죄 가운데 거하면서 양심의 가책이 전혀 생기지 않습니까? 이것은 누군가가 심령의 완악함 쪽으로 발걸음을 내딛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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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된 것을 감사하고 인정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사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들으면서도 완악함은 치유할 수
    없게 깊어져만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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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분들은 그 동안 계속해서 설교를 들어왔으며 주일 저녁 내내 이것에 관해 생각하고 토론해 왔기 때문에 단순히 이것을 받아들였다고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은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는 자가 아니라 듣는 자로서만 살아갑니다.
    이스라엘의 자녀들은 에스겔의 능력있는 설교를 듣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백성이 모이는 것같이 네게 나아오며 내 백성처럼 네 앞에 앉아서 네 말을 들으나 그대로 행치 아니하니 이는 그 입으로는 사랑을 나타내어도 마음은 이욕을 좇음이라. 그들이 너를 음악을 잘하며 고운 음성으로 사랑의 노래를 하는 자같이 여겼나니 네 말을 듣고도 준행치 아니하거니와"(에스겔 33:31-32).

    집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예배 후 내게 다가와 안으며 "목사님, 오늘 말씀하신 설교는 너무나 은혜스러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걸어나가자마자 성령님께서는 제게 "그들은 네가 말한 것을 한 마디도 듣지 않았다"고 속삭이십니다.
    히브리서는 우리에게 강력한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노하심을 격동하여 광야에서 시험하던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히브리서 3:7-8). "듣고 격노케 하던 자가 누구뇨..."(16절). 이 구절은 완악함이 무신론, 공산주의 또는 다른 어떤 "주의"와 연관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는 것과 연관된 것임을 명확히 보여 주고 있습니다.
    Times Square 교회에서 친절하고 점잖으며 희생적인 많은 사람들이 점점 완악한 마음이 되어가고 있는 위험 가운데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나는 이 부분에 대해 주님께 다음과 같이 간구하고 있습니다, "아버지, 어떻게 이 헌신되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책망의 설교를 계속 들으면서도 여전히 변화되지 않습니까? 그들은 매주 주님의 집에 나아와서 주께 예배하고 찬양하나, 그들은 성숙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험담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압니다.

    게다가 그들의 삶 속에서의 다른 죄들에 대해서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당신의 말씀을 듣기를 즐겨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전혀 이것에 순종하지 않고 있습니다. 주님!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부터 어떻게 그들을 지켜야 하나요?"
    하나님은 내게 이 모든 것은 그들이 다시 돌아오도록 즉, 전환하도록 하는 것임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 게으른 사람들은 결코 첫 사랑의 장소로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알 듯이, 성경은 두 가지 종류의 전환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치유함을 받고 모든 죄로부터 인도함을 받는 전환입니다. 이것은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경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전환에는 또한 완악함과 무지함으로 이끄는 것도 있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이스라엘은 이사야 선지자가 전하는 하나님의 강력한 말씀을 청종하기를 즐겨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계속해서 자신들의 죄를 심판 받았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사야에게 말씀하시기를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이 백성의 마음으로 둔하게 하며 그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컨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이사야 6:9-10).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을 에워 싸고있는 죄를 내버릴 의사가 없음을 아셨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육신의 기쁨과 신을 섬기지 않는 동반자들을 너무도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는 이사야에게 말씀하시길 "이 백성이 결코 마음을 돌이키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 내가 그들에게 한마디로 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 나는 네가 그들을 재촉해서 완악해 지도록 하길 바란다. 그렇게 되면 아마도 몇 사람만이 더 늦기 전에 듣게 될 것이다".

    간단히 말해,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들이 완전히 항복하도록 하십니다. 주님은 "네가 내 이름을 부르면, 네 마음을 돌이키면, 그러면 네 죄에서 너를 인도하고 너를 치유하며 모든 속박으로부터 너를 자유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진리를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예수와 함께 옳은 길을 걷기 시작한 수 많은 그리스도인들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 드립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슬픔을 알았으며 그들은 전심으로 회개했습니다. 그들이 육신의 것을 버렸을 때, 주님과 사랑에 빠졌고 주의 말씀이 자신들을 인도하는 등불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그들은 자기 자신을 완전히 주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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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환의 두 번째 종류는 "피난처 " 종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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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환의 두 번째 종류는 병사들이 전투할 때 몇 몇 병사에게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일단 그들이 총알이 날아가고 자기 주변에 폭탄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면, 그들은 얼굴이 사색이 되어 재빨리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이것은 바로가 했던 종류의 전환입니다. 바로는 성령님으로부터 일곱 번의 책망을 들었지만 여전히 이스라엘을 자유케한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나서 하나님은 여덟 번째 바로에게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모세를 통해 보내셨습니다.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어느 때까지 내 앞에 겸비치 아니하겠느냐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라"(출애굽기 10:3).

    하나님은 바로가 어떻게 반응할 지에 대해 모세에게 이미 경고하셨습니다. "...바로에게 들어가라 내가 그의 마음과 그 신하들의 마음을 완강케 함은..."(1절). 여러분은 "바로에게 어떤 기회가 있었지요? 결국 주님은 바로의 마음을 완강케 하셨군요"라고 할지도 모릅니다. 아닙니다! 여기서 잘못 오해할 수가 있습니다. 바로의 완강함은 영원 불변한 섭리로 그렇게 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보다는, 성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시길 "그러나 바로가 숨을 통할 수 있음을 볼 때에 그 마음을 완강케 하여 그들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출애굽기 8:15).
    매번 바로가 주 여호와의 명령에 순종할 것을 거절했습니다. 하나님은 가혹한 재앙을 애굽에 행하셨습니다. 그리고 바로는 "좋습니다 주님! 당신이 원하는 것을 하겠습니다. 이 재앙에서 나를 건져 주시옵소서!" 하고 부르짖었습니다. 인도함을 받기는 했어도 바로는 여전히 다시 배반했습니다.
    성경은 이스라엘의 열조에게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희와 우리 열조가 교만히 하고 목을 굳게 하여 주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고 거역하며 주께서 저희 가운데 행하신 기사를 생각지 아니하고 목을 굳게하며 패역하여 스스로 한 두목을 세우고 종 되었던 땅으로 돌아가고자 하였사오나 오직 주는 사유하시는 하나님이시라 은혜로우시며 긍휼히 여기시며 더디 노하시며 인자가 풍부하시므로 저희를 버리지 아니하셨나이다"(느헤미야 9:16-17).

    하나님은 항상 사람들의 마음속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아십니다. 그리고 어느 누군가가 주의 길을 가는 것 대신에 선택하기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만 순종하지 않을 때를 아십니다. 주님은 바로에 대해서도 이것을 아셨습니다. 일곱 번의 책망과 심판의 재앙이 있은 후여서 바로의 마음은 계속해서 완강해져 갔습니다.

    이제 8번째 재앙이 애굽인들 위에 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점점 두렵게 했던 것이 있었는데 바로 메뚜기였습니다. 성경을 통해볼 때, 메뚜기는 파멸과 멸망을 의미합니다. 몇 가지 예를 살펴볼 때, 그것은 백성 위에 하나님의 징벌이 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실, 요엘 선지자는 특별한 침략군을 메뚜기 떼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내가 전에 너희에게 보낸 큰 군대 곧 메뚜기와 ...먹은 햇수대로 너희에게 갚아 주리니 ... 그 명령을 행하는 자는..."(요엘 2:25, 11).

    하나님은 항상 단지 징벌하시기 위해 그러한 재앙을 보내시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명령과 뜻을 이루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디모데의 집과 사라의 집에 거주하는 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직접 체험했습니다. 그들은 그들 삶에서 모든 것을 파멸시키는 알콜과 마약의 메뚜기 때문에 모든 것, 즉, 직장, 재정, 건강, 결혼생활, 집을 잃었습니다. 아직도 그러한 재앙들을 통해 남자와 여자들이 예수께 돌아옵니다.

    애굽에서, 메뚜기 떼가 삽시간에 온 땅에 뒤덮더니 농작물, 채소, 그리고 심지어 나무껍질까지 눈 앞에서 모든 것을 갉아먹었습니다. 그 때 그 곤충들은 하나도 남김없이 식물을 먹어 치웠습니다.
    "메뚜기가 애굽 온 땅에 이르러 그 사방에 내리매 그 해가 심하니 이런 메뚜기는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을러라... 메뚜기가 온 지면에 덮여 날으매 땅이 어둡게 되었고 메뚜기가 우박에 상하지 아니한 밭의 채소와 나무 열매를 다 먹었으므로 애굽 전경에 나무나 밭의 채소나 푸른 것은 남지 아니하였더라"(출애굽기 10:14-15).

    이 엄청난 메뚜기 떼는 애굽 사람들의 집을 가득 메웠습니다. 사람이 있는 곳마다 메뚜기들이 있었습니다. 마루, 반죽 통, 우유, 옷, 그리고 침실에까지, 이러한 메뚜기 떼의 날개짓은 무시무시한 소리를 냈으며 보이는 모든 것을 갉아먹고 씹어 먹었습니다. 몇 일이 지나지 않아 애굽은 완전히 파멸 가운데 놓였습니다.
    이 때, 작지만 상당히 중요한 말, "그 때"라는 단어가 성서에 나타납니다.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급히 불러서 이르되 내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와 너희에게 득죄하였으니"(16절).
    바로는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시인하면서 자신의 죄를 자백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회개가 충분하고 완전한 것처럼 들렸습니다. 그러나 그를 회개하게한 동기는 무엇입니까? 성서는 이것을 바로 자신의 말로 명확히 언급하고 있습니다, "청컨대 나의 죄를 이번만 용서하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여 이 죽음만을 내게서 떠나게 하라"(17절). 바로는 말합니다, "내가 죄를 지었으니 용서하라. 자, 서둘러 주시오, 모세, 그리고 이 곤경에서 나를 건지라. 너의 하나님께 나를 위해 기도하라. 내가 환란 가운데 있으니 나를 구원케 하라".

    바로는 모든 것을 잃을지도 모른다고 생각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여호와 하나님이 곤경에 빠진 자신을 건져 줄 것을 소망하며 후회했습니다. 그가 원했던 것은 자신이 당하는 고난으로부터 구원받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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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이 주님께 우선적으로 가져왔던 것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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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분은 바로처럼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것을 원했을 때만 주님께 나왔었나요? 마약의 습관을 끊기위해, 결혼생활을 회복하기 위해, 재정적인 어려움으로부터 구원받기 위해 주님께로 돌아섰습니까? 스스로에게 "내가 예수께로 나온다면 아마도 주님은 모든 것을 잘 해결해 주실거야"라고 말했습니까?

    진리는 그리스도가 여러분을 위해 기적을 행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여러분의 삶에서 불가능한 것을 행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문제들로부터 구원되는 것처럼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만 나온다면, 여러분은 결코 믿음이 성숙하지 못할 것입니다. 반대로, 힘들게 성장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전환했던 시점으로 돌아가서 생각해 보십시오. 어떤 메뚜기가 모든 것을 먹어 치우고 난 후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여러분의 건강이 어떤 방법으로 쇠약해졌습니까? 자녀들 중 어느 누가 문제가 있습니까? 당신 주변을 맴돌고 있는 죽음과 파멸의 황폐함 가운데 서 있습니까?

    잘못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물론 하나님은 파멸 가운데 서 있는 인간을 구원하시기 원하십니다. 모든 것을 잃었을 때, 그 분은 항상 가까이 계십니다. 그리고 그 분은 구원하시기에 신실하십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단지 구원을 얻기 위해서만 예수께 나와서는 안됩니다! 그분이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분께 나아와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이 여러분의 삶과 예배와 순종을 받을 만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집에 와서 마지못해 예배를 드리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여러분은 교사로 가르칠지도 모르고, 안내위원으로 안내를 할지도 모릅니다, 또는 성가대에서 찬양을 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내가 전환했던 때를 잘 기억해! 5년 전에 내 마음에 예수님을 영접했어!"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당신이 그 때 진심으로 전환했다면, 지금의 당신의 삶 속에서 보여질 것입니다.

    여러분은 영적으로 성장하고 있을 것입니다. 성경을 자주 읽고 여러분의 필요와 문제를 하나님께 가지고 가며 여러분의 은밀한 골방에서 그분과 귀중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가오는 메뚜기에 대한 경고를 들을 때마다, 여러분은 주의하십시오. 왜냐하면 여러분을 위한 그분의 사랑으로 여러분의 하늘 아버지가 명령하시는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그래요, 데이브 형제님,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았어요. 그리고 아직도 나를 에워싸고 있는 죄로 묶여 있어요. 내가 너무 완악한가요? 주님의 치료의 손길로부터 너무 멀리 갔나요?"

    아닙니다! 결코 당신이 필요 가운데서 지금 주님을 부르기 시작한다면, 그분은 여러분에게 새롭게 하는 시간을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분을 진실되게 의지하는 심령일 때 그분은 여러분의 심판자로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조정자요 중재자로 행동하십니다. 바로 지금 그분은 여러분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나를 부르기만 하면 내가 너를 위해 행하리라. 너의 마음이 내 앞에서 온유하고 상한 심령이기위해 너의 모든 필요를 채우며 내가 네가 오겠다".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이 성숙해지기를 원하십니까? 주께서 여러분을 사랑으로 꾸짖고 삶과 경건으로 이끄시기를 원하십니까? 그러면 오늘 그분을 요청하십시오. 상하고 회개하는 심령인 당신을 위해 그분의 예정된 길로 당신을 붙드실 것입니다!

댓글 5

  • 이숙희

    2011.03.31 14:43

    주님의 말씀앞에 즉시 순종치 못하고..둔하고 완악해져..그것으로.. 주님의
    일하심을 훼방하는..주님의 걸림돌이 되는 어리석음을 자주 저지르는 이 죄인..용서하시고 제마음과 생각이 항상 주님께향하고..내 손과 발이 당신의뜻에 따르는 당신딸 되도록 견책하시고..이끌어 주소서..!!
  • Profile

    ♬♪♫강인구

    2011.03.31 16:48

    믿는 사람들이라면.... 평생에 경계가되는 외침입니다.
    .
    .
    주님 저를 주 앞에서 정결케 해 주십시오!
  • 이병준

    2011.04.01 15:21

    회개의 영을 부어주소서.
    내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성령의 생수가 예배가운데 임하시고 늘 정결한 신부의 영성이 회복되게하소서.
  • 김장환 엘리야

    2011.04.04 11:01

    아멘
  • 양은실

    2011.04.07 22:22

    예수님 내삶의 가운데 자리하소서 모든일에 당신이 앞서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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