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대한성공회 제자교회대한성공회 제자교회

  • 일본에서 온 편지

  • "두려워 말라!"

    3월 11일 대지진이 발생했습니다. 지진 발생 때 저는 동경의 릿쿄대학교에 있었습니다. 책장이 쓰러지고 전등이 거칠게 흔들렸습니다. TV를 켜니 사람들을 집어삼킬 듯 달려오는 쓰나미가 보였습니다. 동경의 대중교통이 마비되어, 우리는 릿쿄대학교를 시민들에게 개방했고 저는 그날 밤을 약 5,000명의 시민들과 함께 학교에서 보냈습니다. 다음날 아침 날이 밝았을 때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상황과 맞닥뜨려야 했습니다. 우리는 시편기자가 엄청난 어려움을 당했을 때 그의 혀가 목구멍에 달라붙어 하나님께 기도조차 드릴 수 없게 된 바로 그 탄식을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한 여성의 증언이 아직도 내 귀에 울립니다. 그녀는 엄청난 쓰나미를 피해 언덕으로 달려 올라가다가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수십 명의 초등학교 학생들이 울부짖으며 따라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다시 뒤돌아보았을 때 그 아이들은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대피소로 가는 행렬 속에 섞인 한 아이는 마분지에 쓴 엄마 아빠와 형제들의 이름을 들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에 마주쳤을 때 우리에게 남은 것은 그냥 막막한 침묵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지진과 쓰나미에 이어 우리는 또 다른 공포에 휩싸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후쿠시마 제1 원자력발전소의 통제 불능과 폭발로 인한 방사능 대량 유출의 공포였습니다. 일본 과학자들은 국민들에게 이 정도는 “인체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제가 교토대학교 공학부 재학중에 배운 바에 의하면 인체에 영향을 주지 않는 방사능은 없다는 것입니다.

    사실 4년 전에 후쿠시마가 원전건설 후보지로 의회에 상정되었을 때, 만약 칠레 지진 규모의 쓰나미가 발생한다면 냉각장치가 고장이 나게 되고 이는 끔찍한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된 적이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 원전에서 발생한 사고는 전적으로 인재(人災)라고 규정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방사선 물질의 낙진이라는 위험을 무릎쓰고 위기 극복을 위해 자신을 바쳐 사투를 벌이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들이 현장으로 갈 때 그 가족들이 어떤 마음일지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이런 가운데 세계의 많은 형제자매들이 저와 관련된 성공회와 다른 국제 기독교 네트워크를 통해 수많은 격려의 메시지를 보내왔습니다. 세계성공회 사무국장 테리 로빈슨 신부에 따르면 지진 발생 30시간 안에 수백 통의 격려 메일과 기도가 세계 여러 곳으로부터 쇄도했다고 합니다.

    토호쿠와 키타칸토 교구 사제들과 교인들은 아직까지도 이번 재난으로 인해 고통당하는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엄청난 고통과 슬픔 속에 빠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이루 형언할 수 없는 고통 속에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세계의 수많은 형제자매가 우리와 함께 고통을 나누고 있으며 진정으로 애끓는 아픔을 함께 나누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손을 잡고 전심을 다해 기도하면서 우리가 혼자 가도록 두지 않습니다.

    바로 이 순간에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와 다른 사람들이 두려워 떨고 있을 때 그들에게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하나님께서 절망을 영원한 생명으로 바꾸신 부활의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신 이름은 바로 “임마누엘”이란 이름입니다. 그 이름의 뜻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입니다.

    폐허가 된 지역의 기와더미 가운데서 한 소년이 양손에 물을 가득 담은 큰 양동이를 들고 이를 악물고 걷고 있습니다. 그는 기와더미의 절망 속을 걸으면서도 희망, 즉 삶의 희망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엠마오 도상에서 그랬던 것과 같이 우리 마음에 따뜻한 위로를 주시면서 이 소년과 이번 재난으로 고통 받고 있는 모든 이들과 우리들 각자와도 함께 걸어가고 계십니다.

    금년 부활절은 아주 특별한 주님의 날이 될 것 같습니다. 금년 부활절은 그 기와더미 속에 피어나는 작은 분수처럼 희망을 향해 새로운 걸음을 걷는 아주 귀한 시간이 될 것입니다. 아멘.

    니시하라 렌타 신부, 교수
    릿쿄대학교 부총장 (성공회대학교), 일본성공회 신부, 세계교회협의회(WCC) 중앙위원
    renta@rikkyo.ac.jp
    --

댓글 0

번호 제목 닉네임 조회  등록일 
3149 아그네스 1155 2006-02-14
3148 김장환 엘리야 1155 2006-07-18
3147 강인구 1155 2006-11-10
3146 김장환 엘리야 1155 2006-12-05
3145 김장환 엘리야 1155 2006-12-15
3144 김장환 엘리야 1155 2007-01-13
3143 김장환 엘리야 1155 2007-01-23
3142 김장환 엘리야 1155 2007-02-13
3141 이한나 1155 2007-06-24
3140 김장환 엘리야 1155 2007-07-25
3139 강인구 ^o^ 1155 2007-07-27
3138 김장환 엘리야 1155 2007-07-30
3137 김장환 엘리야 1155 2007-08-10
3136
오늘! +1
김장환 엘리야 1155 2007-09-19
3135 김장환 엘리야 1155 2007-10-12
3134 김장환 엘리야 1155 2007-12-22
3133 기드온~뽄 1155 2008-01-14
3132 김장환 엘리야 1155 2008-01-24
3131 김바우로 1155 2008-02-01
3130 강인구 ^o^ 1155 2008-02-22
태그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