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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교란 무엇인가 (2)? 펴옴
  • 조회 수: 1154, 2010-08-12 16:56:53(2010-08-12)
  • 2. 재(공양)

      한국불교에는 예불 외에도 재(공양)가 있습니다. 재는 원래 공양을 올리면서 행하는 불교 의례 중의 하나입니다. 본래 재는 스님들에게 공양을 올려 선근공덕을 쌓는 목적이 있으나,

    지금은 스님들에게 공양을 올리는 일보다 각종 목적을 지닌 여러 형태의 재의식으로 변했습니다.

      재를 목적에 따라 분류하면 죽은 사람의 명복을 빌기 위한 49재, 유주무주(有主無主)의

    여러 고혼을 천도함에 의하여 자신이 복락을 누릴 수 있다는 목적에서 행하는 수륙재,

    살아생전에 미리 고애덕을 쌓아서 죽어서 극락왕행하기 위하여 행하는 예수재 등 여러 가지의

    재공양이 있습니다.

      이 중 49재와 예수재에 대해서만 간단하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① 49재

      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은 후 49일이 되는 날 절에 가서 49재를 지냅니다.

    49재란, 죽은 이의 명복과 극락왕생을 기원하기 위해 울리는 재입니다. 사전에 보면 49재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습니다.

      “49재란 불교에서 사람이 죽으면 그의 명복을 빌어주는 의식으로써 돌아간 날로부터 49일이

       되는 날에 부처님께 공양하고 돌아가신 이에게 경전을 읽어 줌으로써 망령이 지혜의 눈이 열려

       좋은 곳으로 환생하도록 돕기 위한 것이다.”

      이와 같이 49재는 죽은 사람을 천도하기 위해 지내는 재입니다.

      불교신자들은 부모나 친척이 죽으면 최하 100만원에서 최고 몇 백만 원까지 들여가면서 49재를 합니다. 그런데 이때 스님들이 하는 염불 내용은 어이없게도 죽은 사람 극락가라는

    내용이 아니라 참선하는 중들이 주고받는 대화 내용이 대부분입니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면, 옛날 중국의 참선하는 중 조주는 제자나 신도들에게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차 마시게”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차 마시게’가 바로 49제 염불의 한 토막입니다.

    또한 참선하는 중 운문은 그 자신이 떡을 좋아해서 제자들과 신도들에게 “떡 자시게” 하면서

    떡을 권했습니다. 이것도 49제 염불의 한 토막입니다. 이뿐 아니라 중국의 선승 황매와 임재

    문하에서 그 제자들과 주고받던 이야기가 전부 염불로 되어있습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차 마셔라” “떡 먹어라” “엿 먹어라” 이런 염불 때문에

    과연 죽은 자가 극락왕생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49재는 사기입니다.

      우리나라에 전문적으로 각종 불교재를 올릴 때 염불만 해주고 돈을 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전국적으로 염불 잘 한다고 소문이 나서 큰 재만 있으면 뽑혀 다닙니다.

    박월정이라는 스님입니다. 그런데 그가 한번은 이렇게 실토했다고 합니다.

      “한참 염불하다보면 할 염불도 없을 때가 있다. 그때는 꽝과리를 크게 치면서 마구 욕설을 섞어하다가 간혹 나무아미타불하면 내용 모르는 신도는 돈만 잘 놓고 자기 친척 영혼 극락 가는 줄 알고 신나게 절을 꾸벅꾸벅한다. 욕하는 줄도 모르고서 참 재미있다.”

      또 이들과 한 패인 한일정이라는 스님은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습니다.

      “본서방 죽으라고 백일 산신 기도 드렸더니 본서방은 죽지 않고 샛서방만 죽었네.

    머리를 풀라하니 시가 식구 알까봐 겁이 나고 흰 댕기를 하자니 동네 여편네들 알까봐

    겁이 나고 아무도 모르는 삼베 꼬장주나 해 입을까?”

      심지어는 이렇게 부도덕하고 음탕한 내용까지도 염불이랍시고 외우는 중들도 있습니다.

    그러니 이런 염불로 무슨 극락왕생이 가능하겠습니까?

      꼭 이런 극단적인 예가 아니더라도 49재는 본래가 사기입니다.

    왜냐하면 불교는 근본적으로 무신론이고 석가 자신이 영혼문제를 부정하였기 때문

    입니다. 영혼이 없는데 내세가 있을 수 없습니다. 참선하는 승려들은 대부분 영혼이 없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일반신도들에게 영혼이 있다고 가르칩니다.

    이렇게 해야만 신도들이 시주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49재는 죽은 자의 영혼을 천도하려는 목적으로 생긴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돈을 뜯어내기 위해서 불교에서 꾸며낸 것입니다.

      그 증거로, 그들은 49재 염불중에 죽은 영혼이 목욕을 해야만 깨끗한 몸으로 극락에 간다고

    하며 목탁과 징을 쳐가면서 목욕 비를 가족들로부터 받는데 그 비용이 산 사람 사우나 비용보다 비쌉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종이로 인형 옷을 접어놓고서 옷 갈아입으니 부처 앞에 돈 놓아라. 또 죽은 영혼 머리를 단장하여야 하니 ‘빚 가지고 오라. 양말 수건 비누 치약을 가지고 오라.

    ” 저승 가는데 마차를 타고 가야하니 “말 먹는 풀을 베어 오라. 그렇지 않으면 돈을 가져오라”고 합니다. 어떻게 불교에는 교통수단이 현대화 되지 않아서 항상 말만 타고 저승에 가는 지?

    한 마디로 웃기는 이야기입니다.

      이것도 부족해서 그들은 옛날 만화 같은 ‘전생록’이라는 책을 만들어놓고는

    음력으로 생년, 월, 일, 시를 넣으면 “당신은 전생에 남에게 빚진 돈이 100만 냥이요

    금강경 1000부, 이것을 갚지 않으면 지옥도 여러 곳이 있는데 당신이 갈 곳은 독사 지옥이다.”

    하는 등 해괴 망측한 말로써 시주를 내도록 합니다.

      무엇보다도 49재는 석가의 가르침에도 없습니다. 따라서 49재는 뒤늦게 승려들이 영혼을

    속이고 돈을 갈취하기 위해 만들어낸 사기극에 불과합니다.


      ② 예수재(預修齋)

      49재나 영산재 등은 모두 죽은 이들을 위하 재 의식인데 반해, 예수재는 특이하게도 살아 있는 사람을 위한 재입니다. 죽은 후 극락에 태어나기를 기원하며 살아있을 때 미리 지내는 재가

    예수재입니다. 예수재를 지내는 이유는 자신이 죽은 후에 자식들이 자신을 위해 49제를 지낼 것인지 아닌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예수재에는 돈이면 다 된다는 황금만능주의 사상이 짙게 깔려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돈으로 구원을 사는 것이 예수재입니다. 예수재 때 스님들에게 진짜 돈을 주면 스님은 가까 종이돈 두 장을 그에게 주어 한 장은 그날 예수재를 지냈다는 증표로,

    또 한 장은 머리에 이고 탑돌이를 하고 시왕전에 올림으로써 극락왕생을 기원합니다.

    즉 예수재를 지냈으므로 극락세계로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속된 말로 염라대왕도 돈 앞에는 약하다는 말이 됩니다. 염라대왕이 돈을 받고

    지옥갈 사람을 극락으로 보내준다니 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말입니까?

      “유전 무죄요 무전 유죄”라는 말이 있는데 사회에서는 법정의 불의함을 꼬집는데 사용되는

    이 말이 불교에서는 진리요 염라대왕 앞에서는 재판의 기준이 되는 셈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누가 보아도 말도 안 되는 사기극입니다.

      여러분, 불교의 근본 교리는 무구소욕(無救小欲), 즉 구하는 것이 없고 욕심이 적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와서 이런 불교가 국가적으로는 호국불교로, 개인적으로는 복을 준다는 기복 불교로 변해 버렸습니다. 쉽게 말해서 욕심을 버리라는 불타의 가르침이 욕심대로 복을 구하는 기괴한 불교로 변한 것입니다.

      그 증거가 바로 49재와 예수재 외에도 절에서 행해지는 각종 재수불공, 병 낫는 불공,

    생남불공입니다. 또 부적을 파는 것 또한 그 증거 중 하나입니다.

      만해선사는 ‘불교 유신론’에서 불교에서 행해지는 재공양 의식을 “매우 번잡하여 질서가 없고 비열 잡박한 연극”이라고 까지 힐난했습니다. 왜냐하면 순수 불교에는 불공 의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순수 불교는 바른 깨달음으로 자아 완성의 길로 나아가는 것을 지양합니다.

    그러므로 위의 것들은 신도들을 속여서 재물을 갈취하려는 무당들과 야합된 해괴망측한 유희일 뿐입니다.


    3. 부적


      시내의 식당이나 가게에 가보면 출입구에 붉은 색 부적이 붙어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재수있는 일들이 많이 생기고 사업이 번창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꽤 비싼 돈을 주고 구해다

    붙인 것입니다.   부적은 무속 종교의 대표적인 행위입니다.

    교주, 교전도 없으면서 거의 모든 우상종교에 다 있고, 마치 그것은 카페인과 같아서

    사람들의 영혼을 휘어잡는 묘한 마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부적의 상당수는 절에서 생산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부적을 구입한 출처를 조사해

    보았더니 점쟁이나 무당이 30%인데 비해 암자가 45%였다고 합니다.

    또. 한 부적 연구가가 불교신자 3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부적을 지닌 사람이 1852명으로 전체의 2/3에 가까운 숫자였다고 합니다.

      현재 불교에서는, 왕생정토부, 금강부, 존제부, 관음부, 염불부, 당득견불부, 구도부 등

    수많은 종류의 부적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이 중 존제부는 불교의 존제진언을 부적화 한 것으로, 복과 수명이 산과 바다와 같아진다고

    합니다. 부적 하나 지닌다고 복과 수명이 산과 바다 같아 진다니! 이게 사실이라면 부자 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으며, 장수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한 마디로 황당한 주장입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황당한 것이 왕생정토부와 당득견불부입니다. 왕생정토부는 죽음에 임박한 사람이 가지는 부적인데 설혹 죄가 있다고 해도 이 부적을 지니면 극락세계에 탄생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도적이 도적질해서 그 돈으로 왕생정토부라는 부적을

    하나 사면 그는 극락에 가게 될 것입니다. 부적하나 지닌다고 지옥 갈 사람이 극락에 간다니

    그게 말이 됩니까? 그리고 당득견불부라는 부적은 그 부적을 지닌 사람은 부처님을 볼 수 있다고 하는데 그 부적을 가지고 부처님을 본 사람이 과연 있기나 한지 참 궁금합니다.

    이렇듯 부적들은 터무니없는 것들을 약속하는 허무한 것입니다.

    이러한 부적들이 효험이 있을 리 만무합니다.

    부적이 아무런 효험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은 우리나라의 역사에도 잘 나타납니다.

      그 한 예로 사도세자는 이조 제21대 영조대왕의 아들입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건강이 좋지 않은데다가 말이 없고 우울하고 행동이 날쌔지 못하여 아버지로

    부터 꾸지람을 받고 살았습니다. 그의 병은 날로 깊어갔고 그로 인해 그는 영부사 이천보와

    박시민 등의 권유를 받아 천존부적을 가지고 무당 푸닥거리하는 옥추경을 읽었는데

    그 후로 옷을 입지 못하는 병이 겹쳐 완전히 미치광이가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하는 수 없이 영조대왕은 1762년 5월 13일 그를 폐세자하고 뒤주 속에 넣어 죽였습니다. 그 결과 그 후로 세자빈 혜경궁 홍씨는 영부사들을 원망하고 부적과 푸닥거리하는 옥추경을 마귀보다도 더 무섭게 대하였다고 ‘한중록’은 전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비극의 왕비들 역시 부적이 효험 없음을 잘 드러내줍니다.

    이조 500년의 역사 중 가장 비극의 왕비는 장희빈과 민비일 것입니다. 장희빈은 사약을 받았고, 민비는 칼로 시해를 당해 비극적인 종말을 고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공통점은 무당 푸닥거리를 심하게 하고 부적을 몸의 구석구석에 지녔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도 왜 그토록 비참하게 죽었을까요? 그것은 부적이 그들의 생명을 지켜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효력이 없던 부적이 지금이라고 효력을 발휘할리 만무합니다.

    몇 해 전 어느 은행의 지점장이 소양호에서 투신자살을 했습니다.

    그런데 시체를 건져보니 그 지갑 속에 여러 장의 부적이 들어 있었습니다.

    재수부적, 관재부적 등 나쁜 액을 피하게 하는 부적들이 지갑에 가득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였고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또 몇 해 전 대구 서문지상에서 큰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그런데 피해 상인들의 상당수가 불교신자로서 팔공산 갓바위에 1개월에 한번씩은 꼭 정성을 드렸고 부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마산 부림시장의 화재 때와 부산의 자갈치시장의 화재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중 많은 상인들이 불교신자였고 부적을 소유하고 있었으나 그것은 아무런 효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부적의 효험 여부를 떠나 사실은 절에서 부적을 취급하는 것 자체가 문제입니다.

    불교의 절이라는 곳은 부처의 가르침을 받들고 본인이 부처가 되기 위해 수양하는데 전념하는 곳이며, 불자에게 석가모니 부처의 가르침을 가르치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부처의 가르침이 아닌 다른 것을 해서는 안 되는 곳입니다. 물론 불교의 교리에 부적을 그려 팔라는 내용이 있다면

    그렇게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그러나 결코 불교의 교리에는 그런 내용이 없습니다.

    이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지금 우리나라 불교의 승려들은 부적을 그려서 팔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한국불교가 무속신앙과 하나가 되어 무당화되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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