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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성공회 제자교회대한성공회 제자교회

  • 점심 시간에...
  • 조회 수: 1404, 2008-07-09 13:52:08(2008-07-09)
  • 직장인들에게 점심시간은 참 꿀 같은 시간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짜증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왜냐구요?  ^^
    쉴 수 있다는 것...과 하루 일과의 반을 꺽는다는 것... 이것이  꿀 같다면 꿀이랄 수 있겠지만...
    제가 벌써 20년 넘게 점심을 사 먹었는데 곰곰 되짚어 보니 참 단순한 식사를 해 왔다는 사실...
    (여기서 잠깐 끊고 계산해 봤습니다. 한달 20일, 12달, 23년... 곱하기 5000원(현 시세 적용)을 안 먹고 저축했으면 복리에 복리로....  이런 된장! 점심 한끼 굶고 저축만 했어도 조그만 아파트 한 채가 생기는건데...  아깝다 아까워~)
    뻔한 반찬의 백반...  김치찌개... 된장찌개,,, 동태찌개...  부대찌개...에서 맴 돌았어요...  가끔 중식과 분식, 일식 혹은 별식을 먹지만 자주 먹을 것은 못되구요.
    그래서 점심시간에 회사 문을 나서면 뭘 먹지? 로 고민하게 됩니다.
    온통 식당 투성이인데도 불구하고 말이예요... ^^
    “어이~ 김과장...  오늘은 모 먹냐?” “....글쎄요... 쩝” 이런 비슷한 대화를 굉장히 오랫동안 해 왔다는 얘기이지요...   직장을 다니시는 교우님들~  공감이 가시나요?
    .
    .
    .
    어제 점심에도 좀 괜찮은 거 먹는다고 푹푹찌는 땡볕에 평소보다 두 배 이상 걸어서 평소 보다 두 배나 되는 식비를 감당하면서 별미를 먹으러 갔습니다.
    커다란 냄비에 온갖 해물이 가까스로 넘치지 않을 정도로 담겨 나옵니다.
    낙지, 쭈꾸미, 꽃게, 대하, 소라, 대합, 생태알, 오징어, 미더덕, 등등이 콩나물과 무, 야채들로 하나 가득입니다.
    부글보글 끓으니 아줌마가 가위질을 신들린 듯이 해 주십니다.
    “맛있게 드이소~” “예~”
    ,
    ,
    그런데요...
    제가 에어콘 팍팍돌아 가는 사무실에 있다가 푹푹찌는 포장도로를 좀 거닐어서 그런가...
    도대체 입맛이 없는겁니다.
    그래서 별 수 없이 국물 조금... 쭈꾸미 다리 한쪽... 게나 새우는 귀찮아서 패스하고... 최소한의 젓가락질로 가능한 식사를 하고 있자니...
    “아니 이사님 왜 못 드세요...? ” “속 안 좋으세요?”
    “아냐~ 입맛이 없어서 그래~ 어서들 들어~”
    깨작거리다가 밥도 반이나 남기고... 덜 접시에 물이 통통오른 콩나물만 덜어다가 관찰하고 있는 중에 제 마음 속에 이런 생각이 들어오는 거 있죠?

    “니가 배가 부르구나.. 배가 불러...”

    직원들 다 먹기를 기다려 식당을 나와서는 또 그 뜨거운 길을 되돌아 회사 근처에 오니 후식 먹는다고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돌리길래 하나 받아서는 맞은편 쌈지 공원 나무 그늘이 드리운 벤치에 앉아서 아무 생각 없이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먹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아직 점심을 먹는 시간대 였던거죠...
    공원의 대각선 방향에 큰 트럭이 돌아서 섭니다.  
    차의 뒤에는 아저씨 둘이 매달려 있구요...  네~ 청소차였습니다.
    차의 초록색과 그 초록이 음식쓰레기의 잔여물로 지저분한데 정식 작업복도 아닌 허름한 옷에 황색 모자를 눌러 쓴 아저씨들이 뭔가 다른 나라 사람인 듯 느껴졌습니다.
    숙달된 손놀림으로 쓰레기봉투를 치우고 내다 놓은 재활용 집기들을 차에 싣고는 다시 그 차의 뒤에 올라타고는 ‘오라이~’를 외치고... 내 시야에서 차가 사라졌는데...
    아래를 보니... 글쎄 제 손에 있던 아이스크림이 녹아서 바닥에 떨어져 있더군요...
    .
    .
    .
    십 여년 전에 모교회의 성가대 시절 필리핀으로 대원 연수를 떠났던 기억이 들어옵니다.
    연수 중간에 우리나라로 치면 지금은 없어졌지만 난지도쓰레기 매립장과 똑같은 스모키 마운틴이라는 곳에 갔던 기억이 정말 새삼스럽게 떠 올랐습니다.
    온통 흑백으로 이루어진 듯한 거대한 쓰레기더미... 그 곳을 생활 터전으로 사는 사람들... 쓰레기 위에서 쓰레기로 먹고사는 쓰레기처럼 버려진 사람들... 정말 어떻게 표현하기 힘든 더러움... 질척거림... 등등이요....
    한 동안 내 안에 부끄러움으로 남았던 기억이 떠 올랐습니다.
    안타까움 없이 구경꾼으로 서 있었던 제 자신을요...
    내 슬리퍼에 오물이 묻는 것을 본능적으로 피하던 저를 통해...  내가 느낀 그 들에 대한 감정들이 참으로 얄팍한 것이라는 것을 알고 우울했던 기억들이 말이지요...
    .
    .
    청소부는 점심을 먹었을까요?  부패한 음식쓰레기... 터진 쓰레기 봉투에서 풍기는 더러운 냄새... 뜨거운 한낮의 태양...  달구어진 차의 손잡이... 흐르는 땀...

    나의 점심은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
    .
    .
    교우님들,
    사실은 더 부끄러운 것이 있었습니다.
    제가 아주 잠깐이지만 그 청소아저씨들을 통해 감사하다는 생각을 했다는 겁니다.
    저런 힘든 삶을 살지 않게 해 주셔서 얼마나 감사... 뭐 이러다가 뒤통수를 맞은 듯 깜짝 놀랐습니다.
    “속물아 속물아... 그 오랜 세월을 주님을 믿는다며 살아왔으면서도 아직도 세상의 가치 기준에 따라 비교하며 그 분께 감사하고 있다니...
    이런 상황 때문에 감사한다면  비교하위의 상황에 처하게 되면 감사는커녕 불평 불만이 하늘을 찌르겠군...“
    어처구니가 없더군요...
    저의 신앙의 현주소를 보는 듯했습니다.
    입으로는 “모든 상황 속에서 주를 찬양할지라~“라고 찬양하면서도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주님, 모든 상황은 아니구요... 안 좋은 상황은 좀 빼 주시면 안될까요? 기왕이면 좋은 상황이면 좋겠는데...” 라고 말하고 있는 제 속성을 말입니다.
    .
    .
    .
    아주 작지만 한가지 결정을 했습니다.
    좀 웃기지만...  밥을 열심히 먹기로요...  
    최소한 열심히 일하는 분들에게 죄송하지는 말아야 하겠다는 생각이요...
    나에게 일을 주시고 그 일을 통해 가정과 교회를 섬길 수 있도록 허락하신 그 분께 나태하거나 배 부른 모습으로 서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요...
    이 결정이 또 얼마나 지속될 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렇게 일깨워 주시는 친절하신 주님을 의지하며 또 감사합니다.  
    .
    .
    .
    .
    .
    그래서 오늘 점심은 힘차게 먹고 왔습니다.
    “왜 그렇게 빨리 드세요?”  “더 드실거예요?”  뭐 이런 질문까지 받으면서요.
    어제보다 더 덥고 입맛이 살아난 건 아니지만 씩씩하게... 열심히 먹으니까 힘이 나는 느낌입니다.
    일의 능률도 더 올라가는 것 같아요.

    교우님들,
    우리 모두 밥 씩씩하게 먹고 열심히 일하고 건강하게 주님께 감사하며 살아요~ ^^
    Profile

댓글 5

  • 니니안

    2008.07.10 01:48

    입 맛나게 써 놓으셨네 배 고픈데......그런데 쭈꾸미 다리한쪽에 철이 많이 들었었네......감사합니다.좋은글 재밋는 표현.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합시다.
  • 이병준

    2008.07.10 17:00

    베드로!! 패스가 눈에 들어오네.
  • 공양순

    2008.07.11 11:32

    맛갈스럽게 글도 잘 쓰시네요... 나도 혼자 먹는 점심이지만 감사하며 맛있게 먹어줘야겠네요...ㅎㅎㅎ
  • 기드온~뽄

    2008.07.15 11:18

    밥 맛있게 드세요... 전 여기서 밥 먹고 싶어 죽어납니다...ㅠㅠ
  • Profile

    강인구 ^o^

    2008.07.15 11:27

    모먹냐 그럼... 이를테면... 쌀이없어서 고기밖에 못 먹는다는...그런 썰렁한 유머가 현실이 되었다는 얘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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