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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성공회 제자교회대한성공회 제자교회

  • 1년을 보내며...
  • 조회 수: 1504, 2008-03-14 10:08:33(2008-03-14)
  • 직업의 특성상 병원을 자주 갑니다.
    어제는 다음 주에 있을 학회의 Workshop에 관련한 협의를 위해 서울대학 병원에 들렀습니다.
    서울에서 차를 직접 운전해서 시간을 맞춘다는 것이 이제는 힘든 일이 되었기로 근처에서 식사할 것을 감안해서 조금 여유 있게 출발했더니만 예상과 달리 도로사정이 좋더군요...  
    점심을 간단히 때우고 시간을 보니 30분이나 남습니다.
    ‘지난번 축성식 때 못 와봤으니 이참에 대학로 교회나 좀 둘러볼까?' 하는 마음으로 발길을 옮겼는데 글쎄 건물 외관을 둘러보는 제 눈에 거슬리는 것이 띄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소변금지>라고 하얀 종이에 굵은 고딕으로 프린트하고는 그 밑에 큰 가위그림이 선명하게 찍혀서 말입니다.
    깨끗한 건물 외벽에... 그것도 두 군데나....
    평소 같으면 그냥 지나갈 일이 분명했을 텐데 자꾸 걸립니다.
    ‘얼마나 사람들이 그 짓을 해서 냄새가 났으면 저렇게 까지 했을까...’ 하는 마음과...
    ‘그래도 교회인데 가위그림까지는 유머라고 보기에는 좀 심한 거 아냐?’ 하는 마음이 나를 불편하게 하고 발걸음을 돌리게 만들더군요.
    같은 형제 교회의 신자인 내가 그것으로 인해 거부감이 드는데 그냥 지나다니며 평소 교회로 알고 있던 사람들의 눈에는 어떻게 보이며 어떤 감정이 들지 좀 착잡했습니다.
    .
    .
    이 말을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는데 서울대에 갔던 일을 얘기하다 보니 삼천포네요. ^^
    내 마음에 ‘어? 이 느낌은 나눠야겠는데?’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 사건은...

    그렇게 약간 상한 마음을 가지고 남은 시간을 그냥 소아병원 현관 앞에서 서 있었습니다.
    (제가 만날 분이 소아정형외과 과장님이셨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 좀 바라 보다가...
    쭉쭉뻗은 아름드리 나무들과 그 가지 새로 움트는 봄을 찾다가....
    점심먹고 삼삼오오 병원으로 돌아오는 간호사들의 재잘거림과 봄 옷차림을 느끼다가....  
    그런가하면 아직 겨울에서 못 벗어나 두툼한 외투에 어깨를 감추고 산보하는 노년의 환자를 바라보다가...
    문득 내 앞으로 승용차가 멈추고 뒷문이 열리며 꼬마 하나가 튀어 나옵니다.
    5살이나 되었을까요?
    “천천히~!!” 엄마의 약간 높은 목소리가 뒤 따라 나오구요...
    특별히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계속 보게 되었습니다.
    그 엄마의 손에 이끌려 또 한 아이가 나옵니다.
    그리고 이모 같은 분이 또 한분...  차가 움직입니다.
    아마 아빠이겠지요... 주차를 하러 갔을 거구요.
    뒤이어 나온 아이는 먼저 나온 아이의 형 쯤 되어 보입니다. 눈어림으로 7살 정도?...
    엄마와 이모가 아이의 주변에 뭔가를 주섬 주섬 챙기는데...  가슴이 아파왔습니다.
    대 여섯 개에 달하는 링거 주사가 아이의 팔 어림에 연결되어 있고 무슨 전기 장치도 있는지 전선 몇 가닥이 몸에 연결되어 셔츠 밑으로 빠져 나와 있습니다.
    이모는 주사용 스탠드를 끌고 엄마는 아이의 손을 잡고 걸어 옵니다.
    아이의 머리에 덮여있는 모자가 너무 크지않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소아암이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문제는 이런 눈에 보이는 현상들이 아니었습니다.
    차에서 내려 나를 스치고 현관으로 들어가는 약 10미터의 거리에서 내가 본 것 때문이었습니다.
    엄마와 이모의 얼굴에 드러난 사랑... 안타까움... 지침... 애써 태연함... 등등의 감정들이 나에게 이입이 됩니다.
    이입된 감정이 갑자기 나를 흔들어 연민의 감정이 울컥! 하고 솟아오르려는데...
    “형아~!” 앳된 동생의 부름과 고개를 돌리는 형의 눈빛이 그 감정을 역시 순식간에 몰아 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동생을 바라보며 웃음짓는 그 어린 형의 얼굴에서 어느 한 곳도...  아무런 흠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창백하지만 투명한 느낌의 뺨에 볼우물을 만들어 내며 웃습니다.
    눈썹까지 내리 덮힌 모자아래 까만 눈이 반짝입니다.
    어리지만 더 어린 동생이 달려와 내미는 손을 주사에 자유로운 손으로 붙듭니다.
    이모인 듯 보이는 분이 한마디 하십니다.  “조심~”
    그렇게 나를 지나쳐 현관으로 들어가는 가족을 보았습니다.
    아이들은 저들만의 얘기를 나누며 즐겁고 그 옆과 뒤로 중년으로 접어드는 어깨 처진 두 여자가 따라 갑니다.

    멍하니 한 동안을 서 있다가 깜짝 놀라 시간을 보고 허겁지겁 연구실로 교수님을 만나러 올라 갔습니다.
    .
    .
    .
    여기까지 어제 오전에 쓴 글입니다. 오후에 바쁜 일이 터져서 머리가 터져 나갈 정도로 열심히 일했거든요....^^


    퇴근하고 허겁지겁 밥 먹고 체스카와 처형과 엘리자벳 자매님의 시모님 상을 모신 연화장에 다녀왔습니다.

    저녁만도를 드리는데 옆 방에서 여자의 슬픈 곡 소리가 넘어 옵니다.
    그리고 중간 중간 아이들이 장례식장 복도를 뛰어다니며 깔깔대며 소리를 지르며 놉니다.
    만도를 드리는 중에도 ‘아니 어떻게 말리는 사람이 하나도 없지?’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이들의 교성은 장례와는 아주 부적절한 조화였습니다.
    만도를 마치고 분향을 하고 맞은편의 접객실에서 다과를 먹으며 엘리자벳 자매님으로부터 옆방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울던 여자는 아이가 둘 있고 이제 남편을 잃은 스물다섯 먹은 여자라는 것...
    내가 직접 보지 못했지만 아마도 아무것도 모르고 뛰 놀던 아이들이 그 여자의 아이들이 였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슬픈 울음과 그늘 없는 웃음의 부조화의 어색함 때문에?
    아니면 그 상황이 주는 오히려 안타까움 때문에?...  
    그래서 더욱 아무도 말리지 못했겠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아침에 그제와 어제 내가 일상에서 경험한 두 사건이 묘하게도 같은 선상에 서 있군요.

    우리 주님께서 저에게 어떤 말씀을 하시려고 저의 눈길과 귀를 옮기셨을텐데요...
    설마 저에게 <인생무상>을 알려 주시려고 하신 것은 아니시겠지요?
    그저 공연한 감상을 불러 일으켜 내 안에 측은한 마음을 건드리시는 것도 아닌 것 같군요..
    그렇다고 우리 한나를 더 사랑으로 보살피라는 싸인도 아닌 것 같구요...

    뭐지?  뭘까? 하다가...

    “하늘 나라는 이런 어린이와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복음서의 예수님 말씀이 떠오릅니다.
    사실 제 머리에 떠오른 문구는 ‘어린아이와 같지 않고서는 누구도 아버지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이었는데 성경을 열어 보니 위의 구절이 정확한 구절이라 옮겨 적었습니다.

    ‘그래! 그렇구나!~ 모든 상황 가운데서도 단순함으로 웃고 즐거울 수 있는 아이들처럼 살기를 바라시는구나!... 바로 내가!’ 하는 생각이 들어옵니다.

    우리 주님의 친절한 음성이 들리는 듯합니다.

    “얘 베드로~  그래 그거란다~.  너는 내 앞에서 단순해 질 필요가 있어~...
    나에게 너를 향한 단순함이 없었다면 내가 널 위해 죽을 수 있었겠니?
    나는 너를 그저 단순하게 사랑한단다.
    이 복잡 다단하게 포위하고 있는 세상 속에 네가 있지만...  그래서 조금 안쓰럽기도 하지만...
    나는 네가 어린아이처럼 단순하게 나를 바라보기를 원한단다...“
    .
    .
    .
    교우님들,

    오늘 올리는 글로 제가 지난 해 3월에 저에게 했던 ‘1년 동안 매주 하나의 글을 게시판에 올리자.’라는 약속을 대략 지켰군요.... ^^
    뭔가 숙제한 기분... ㅎㅎ    앞으로는 조금 자유롭게 이 곳에 오겠습니다.

    우리 교회 게시판에 마음을 갖게 하신 지 1년이 지나면서 우리 교우님들께 드리고 싶은 말씀은...

    <주님 앞에 단순하자.>입니다.

    주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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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

  • 아가타

    2008.03.14 14:03

    글을 읽고 한참 울었습니다... 그아이의 엄마의 심정 너무나 이해되고 그아이를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이 정말 저의 코끝을 찡하게 하네요... 저희 모니카는 비록 청각에 장애가 있지만 처음에 아이를 바라볼때 마다의 애처로움이란 말할수 없었답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하나님이 있었어요... 지금은 하하님의 힘으로 모든걸 담담히 받아들이고 오히려 희망이 보여요... 위에 두엄마들도 그랬으면 하네요... 아멘
  • 김장환 엘리야

    2008.03.14 15:16

    수요 중보기도회 시간에 감사의 시간을 드릴 때
    자주 드려지는 고백입니다.

    하느님, 살아계셔서 감사합니다.
    하느님, 저희 아버지가 되셔서 감사합니다.

    어렵지만,
    하느님으로만 만족하는 삶이 단순한 삶이겠지요?
  • 김진현애다

    2008.03.14 15:56

    고난 가운데 바라볼 수 있는, 그 어떤 것보다 값진 고난의 아픔 가운데 느껴지는 사랑만이 참으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깨닫게 하는 것 같네요.
    아가타! 힘내세요. 모니카의 천진한 미소와 뛰는 모습을 보며 늘 마음에 주님의 사랑을 새기곤해요. 약할때 강함되시는 주님만 바라보길.....
    베드로님 설마 1년 지났다고 글쓰는 것 게을리 하지 않으실거죠? 이미 글을 기다리는 넘 많은 독자들이 있어요!!!. 베드로 홧팅!
  • 꿈꾸는 요셉

    2008.03.15 12:54

    항상 읽을 때마다 생각과 느낌을 주는 아름다운 글입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베드로 아저씨가 그들을 본 것과 같이
    하나님이 우리를 바라보는 것도
    정말 마음이 아프실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단순해야 하면서도 단순하기 힘듬.
    알면서도 그렇게 하기 힘듬.
    하나님도 참 답답하실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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