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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제 밤에...
  • 조회 수: 1552, 2007-05-11 17:59:56(2007-05-11)
  • 체스카하고 소꿉장난 비스름한 예식을 치렀습니다.

    회사에 한 달에 한번 있는 전 직원 참석 영업회의가 있어서 회식을 하고 집에
    돌아오니 밤 10시가 좀 넘었습니다.

    집에 들어갈 때 아내가 소파에 앉아 있으면 손을 흔들어 주지만 주방 쪽에 있거나
    방에 들어가 있어서 제 눈에 바로 안 보이면.... ㅎㅎ 좀 쪽팔리지만.... *^^*
    “꿀돼지~ 나 왔다~” 합니다. ‘꿀돼지!!’ 처럼 밥만 많이 먹고 공부도 못하는 느낌이
    아니라 ‘달링~’ 의 Intonation에다가 ‘꿀돼지~’에는 뭔가 꿀처럼 달콤하고 오동통한
    내 너구리를 보는 듯한 사랑스런 감정을 듬뿍 담고 ‘나 왔다~’에 나 하루 온종일
    일해서 힘드니까 얼른 뛰어 나와서 좀 위로 해주길 바라는 느낌을 담아서 말이죠...

    저는 스스로 이 인사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면서 아내가 동일한 감정으로 이 호칭을
    받아들이기를 바라지만 이상하게도 계속적으로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체스카입니다.^^
    ‘꿀’은 좋지만 ‘돼지’가 영~ 싫다는 뭐 그런 뜻이 아닌가 싶습니다만....  적극적이고도
    도저히 수용하지 않으면 안 될 만한 거부 의사가 없는 관계로(퍽!~*) 계속 쓰고 있습니다.

    지난주에 저녁 먹고 우리 심심한데 쇼핑이나 할까? 하고 홈에버에 함께 들렸다가
    식품 매장에 들어가기도 전에 체스카 눈에 Jewelry shop에 큰 글씨로 써 있는
    “커플링 할인 판매”가 띄게 되었고 전설의 고향에 자주 나오는 가마가 땅에 딱 붙어서
    안 떨어 진대나 뭐래나 처럼 머뭇머뭇하며 그 앞을 못 지나가는 겁니다.
    딱 15초 후에 매장 앞에 서 있는 우리를 발견했고, 거기에서 딱 15분 후에는 카드를
    긁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뭐 기분이 좋은 것 같기도 하고 쫌 참았으면 어땠을까하는 감정을 수없이 교차시키면서
    말입니다.^^

    그 반지를 어제 찾아 왔습니다.
    우리 결혼반지는 다른 분들은 어떨지 모르겠는데 약간 파란 만장하다가 지금은
    어느 곳으로 갔는지도 모르거든요...   그나저나 잘들 끼고 계시죠?

    제 꺼는 사회 초년병 시절... 거의 일이 세상의 전부였던 시절...  사흘이 멀다하고
    술 퍼먹고 외박하던 그 시절에  제 밑으로 쫄따구가 하나 들어 왔는데 전라도 이리가
    고향인(지금은 익산인가 그렇죠?...) 친구였어요...
    나이도 나하구 같은데 팀장님 팀장님...하면서 잘따랐(?)었거든요... 이 친구가 술자리
    말미에... 이제 정착하고 열심히 해볼라구 방을 얻으려 하는데 돈이 좀 모자란다고...
    팀장님이 도와 달라는 겁니다.  술김인데다 돈은 없고... 성격은 급하고... 결국 술집
    옆에 붙어 있는 전당포에 가서 반지를 빼고 그 친구한테 그때 돈으로 15만원을
    줬어요...(대졸 초봉이 40만원을 안 넘을 때 였죠...)  그 친구 3일 뒤에 날랐습니다.
    저도 15만원 갚을 길 없어서 차일 피일 미루다가 어렵게 돈 모아서 찾으러 갔더니만
    주인 아저씨 하시는 말씀...    “보관 기간 초과여~ 가봐~” ㅠㅠ

    우리 체스카 반지는 제가 IMF를 맞이하여 사업에 실패하고 계속 집을 줄여가다가
    내가 태어난 수원을 떠나 당시에는 완전 촌 동네였던 화성군 병점리로... 시민에서
    리민으로...  마구 전락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던 시기였습니다.

    전세 계약하려고 마련해 놓은 200만원과 함께 큼직한 발자국 몇 개를 남겨 놓고는
    아내의 결혼반지를 포함한 많지 않은 패물들도 그만 그분께서 가져가셨습니다.
    (여기서 그 분이란 제가 늘 말씀드리는 거룩하신 그 분이 아니라 도동×을 뜻합니다.^^)
    제가 지난번에 우리 체스카 독하다고 그랬었지요?
    설상가상이란 말이.... 엎친데 덮친다는 말이... 그렇게 실감 난 적이 없었습니다.
    집을 줄이는 과정 중에... 다 버리지 못한 자존심 때문에 영통에 38평 아파트로
    이사했다가 거기서 바닥까지 내려 보내시는 주님을 살짝 만나 뵙고... 이제 조금
    겸손해 져서 처지에 맞게 이사하려고 하는 것을 또 한번 흔드시는 주님...
    죄 없는 개구리 돌 맞아 죽는다고 주님의 타겟은 저 였는데 제 옆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그런 충격을 당한 제 아내 프란체스카...  참 강한 여자입니다.

    제 반지를 잃은 지 18년... 아내 반지를 잃은 지 10년이 지난 어제 우리 부부가 다시
    수수한 결혼반지를 끼웠습니다.

    “여보... 반지 왔어?” “응~” “어디 봅시다...”
    하얀색 케이스를 열자 주단 같은 재질의 천위에 반지 두 개가 빛을 발합니다.
    “당신 손 이리...”  “당신 건 내가 껴 주께...” 뭐 이러면서 (아~ 유치해 ^^;;) 서로의
    네 번째 손가락에 똑같이 생긴 반지를 끼워주었습니다.  
    “이뻐?..” “좋네~” “야~ 오랜만에 끼니까 새롭다 야...” “좀 굵은 거 같지않어?....
    .
    .
    자기 전에 아내의 손에 끼워져 있는 반지를 슬쩍 보았습니다.
    길고 하얀...  순정만화 주인공의 손처럼 가느다랗던 그 손...  여리기가 아이들
    피부 같았던 그 손이 이제는 살도 좀 올라 통통해지고 잔주름도 많이 늘었지만
    그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를 보고 내 손가락에 아직은 이물감이 더 큰.. 똑같이
    생긴 반지를 엄지로 만지며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어쩌면... 결혼해서 19년을 같이 살았지만...  우리 체스카가 이제서야  진정으로
    나를 인생의 동반자로 인정해 준 것 같은 생각이 문득 들면서 고마운 생각이
    샘물같이 제 마음을 적셔주었습니다.
    .
    .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중간 중간 반지를 이리저리 돌려 봅니다.
    빙 둘러 박혀있는 6개의 큐빅에 의미를 붙여볼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요...

    사랑
    충성
    감사
    포용
    참음
    기쁨
    .
    .
    뭐 이런 단어들 중에서 골라지겠지요.... ^^
    .
    .
    그리고 내가 비록 내일 아무 일도 아닌 것 가지고 아내 앞에서 삐질지라도
    이 순간만큼은...

    아내를 허락하신 주님께 감사합니다.  *^^*
    Profile

댓글 4

  • 마리스텔라

    2007.05.11 18:17

    결혼반지 ... 저 역시 언제 어디로 없어졌는지조차 기억이 없을 만큼 오래 되었답니다. 반지에 많은 의미를 부여했던 저에게는 조금은 상처가 되더라구요. 읽으면서 체스카자매님이 부럽네요. 저는4주년 반지도 잃어버린 것 같아요. 찾지 못하고 있거든요. 다니엘 들어오면 슬쩍 물어봐야 겠어요.
    다이아반지 해줄 생각 (ㅎㅎ)없냐고.... 콧소리 넣어서 ㅋㅋ

  • 김영수(엘리야)

    2007.05.11 19:25

    새로운 결혼 반지를 끼게 됨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지난 힘들었던 시간들이 참 아름답게 느껴집니다.지금의 부부사랑이 삐지지 말고 영원히 이어지기를 기도드립니다.(근데 아내에게 남편이 이렇게 자상할 수가 있을까? 나는 도저히 못하겠다.)
  • 김장환 엘리야

    2007.05.11 19:44

    가슴이 찡해오리만큼 아름답습니다.

    제가 결혼할 때는 워낙 없어서 14K 가락지로 했었는데, 그나마 신학생 시절 주일학교 아이들 캠프 때 샤워시텨 주다가 어디론가~~~.
    강피터님의 뒤를 따라 저도 한번 소꼽장난같은 예식을 해볼까나?

  • 박의숙

    2007.05.12 20:39

    부부는 모든 희노애락을 함께하는 귀한 동반자네요.
    누구와 잠깐 나눴지만, 삶의 구석구석에 잔잔히 베어있는가십들을
    모아모아서 수필집 한권 내십시요.
    많은 사람들에게 따듯한 사랑을 회복시켜 줄 것을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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