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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퍼온 글 - 나는 왜 성공회 사제가 되었는가? 부산교구 기장교회 한진구사제

  • 이미 다른 교단의 목사로 10년 가까이 섬긴 후 (더욱이 그 교단이 가족이 대대로 섬기던 교단인데) 한국에서는 잘 알려지지도 않은 교단으로 전향해서 새로 성직의 길을 걷기로 결단하게 만든 신학 여정을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

    중학교 때 강한 회심의 경험을 했던 나로서는 무엇보다도 개인 구원과 마음에서 우러나는 신앙이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미국에서 10년 간의 이민 생활을 접고 선교사로 떠날 때만해도 나는 굳이 목사 안수를 받을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목사님의 권유로 목회학 석사 과정도 마쳤고 설교 능력도 꽤 갖추었다고 믿던 나는 굳이 그런 예식을 거칠 필요 없이 목회를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특히, 내 주위에 있던 선교사들 중에 안수 제도를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으므로, 더욱 나의 생각이 옳다고 믿었었다.

    그러나, 이미 신학교 시절부터 시작한 나의 신학 여정은 선교사 시절에도 계속되었고 안수에 (‘안수’라는 표현은 손을 얹는다는 뜻만을 가졌으므로 성공회에서 쓰는 서품이라는 말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하지만 그 당시에는 그 말을 몰랐으므로 여기서는 ‘안수’라는 말을 쓰기로 한다.) 대한 나의 생각도 도전을 받았다. 안수는 인간이 만든 제도가 아니라, 사도 시대부터 내려오던 전통이고, 교회를 이끌어 갈 사람을 교회가 세우는 중요한 성사라는 것을 깨달았다. 뒤에 안 일이지만, 종교 개혁의 대표적 신학자인 칼빈도 세례와 성찬과 함께 안수를 성사(성례)의 하나로 꼽을 수 있다고 했다. 따라서, 나는 목사 안수를 받기로 결심하고 비싼 비행기표를 들여 미국에 가서 목사 고시를 보고 안수를 받게 되었다. 그런데, 이 과정 중에 마음에 걸린 한 가지는 사도 시대로부터 내려오던 전통은 안수는 주교의 권한이라는 것이었다. 따라서, 주교제를 포기한 교회에서 받은 안수가 신학적으로 옳은 안수인가 하는 질문이 계속 내 안에 있었다. 성공회에 들어 온 이후에야 많은 개신교 교회들이 주교제를 포기한 신학적인 배경을 더 명확하게 이해하게 되었고 그래서 지금은 다른 교단의 안수에 대해서 더욱 긍정적으로 보게 되었지만, 그래도 주교제가 기독교 전통에 가장 합당한 제도라는 믿음은 변하지 않았다.

    개인 구원을 강조하며 교회 공동체에 대해서는 덜 강조하는 선교사들과 주로 교제하던 나였지만, 뜻밖에도 선교사 생활 중에 동방 교회와 간접적으로 나마 접하게 되었다. 그것은, 동방 교회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가졌던 동료 선교사 (그는 결국 미국 성공회 교인이 되었다), 그리고, 동방 정교회로 전향한 신학교 동창생 (미국에 살지만 기도 후원을 해 주고 있었다), 또 아르메니아 정교회 출신의 제자를 (내가 가르치던 신학교의 학생) 통해서 였다. 동방 정교회와 아르메니아 정교회에 대한 글을 읽을 때, 나에게 충격적으로 다가온 말이 있었다. “우리들의 예배가 곧 우리의 신학이다.”라는 말이었다. 신학을 책을 통해서 하는 것으로 알고 있던 나에게는 너무도 생소한 말이었다. 그러나, 새겨 보면 새겨 볼 수록 그 말은 사실이었다. 신학이 하느님을 알려는 노력일 진데, 그 노력은 하느님을 예배하는 것으로 나타나야 하고 그 예배 자체가 신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말을 들을 후, 내가 드리는 예배가 과연 올바른 신학을 갖추고 있는가 하는 질문을 하게 되었다. 이 질문에 대해 나는 자신 있게 그렇다고 말할 수가 없었고, 그러기에 올바른 신학을 갖춘 예전의 예배를 드리기를 갈망하게 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성공회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그 때까지만 해도 주교제와 좋은 예전을 갖춘 교회를 찾고 있을 뿐이었다. 따라서, 미국 성공회에서 갈라진 작은 교단들도 고려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나는 더 중요한 부분을 보게 되었다. 그것은 성공회는 세계적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이 공동체는 하나인 교회 모습을 계속 유지하려고 지속적으로 노력한다는 점이다. 신앙 생활의 초기부터 하나의 교회라는 이상과 그에 부합하지 않는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던 나에게 성공회는 너무도 좋은 모델이었다. 그리고, 주교제와 예전도 교회 일치를 위해서 중요하다는 것도 깨달았다. 주교를 통해서 한 교구가 하나가 되고 주교들이 다른 주교들과 협의함으로써 모든 교구의 일치도 이루어지는 것이다. 또, 같은 기도서를 통해 같은 예배를 드림으로써, 교회 일치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세계적인 공동체를 가진 교회는 성공회 말고도, 천주교, 동방 정교회, 오리엔탈 정교회 등이 있다. 이 중, 천주교는 교황 무오설이나 이에서 비롯된 성모 무염시태 등의 교리가 (그 배경을 충분히 이해하기는 하지만) 고대 교회의 신학과 다르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었다. 정교회는 신학적으로 큰 문제가 없지만, 하나의 교회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정교회만이 참 교회라는 신학을 고수하는 점이 성공회와 크게 다르다. 그 신학을 이해하기는 하지만, 분열된 교회의 현 실정에서 다른 교파들도 인정을 하고 연합 운동을 펴는 성공회의 정신이 더 옳다고 생각되었다.

    이러한 신학적 여정은 단순히 내 생각 속에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성직의 특별성을 인정하지 않는 다른 평신도 선교사들과 같이 교회 개척을 하면서 현실적인 어려움에 계속 부딪힌 것이다. 다른 교파 선교사들이 같이 모여서 독립 교회를 하는 상황에서 신자들은 더 큰 의미의 교회를 경험할 수 없었고, 목회자와 신자의 관계를 목자와 양의 관계로 보지 않는 평신도 선교사들과의 사역을 통해서 내가 목자로서 활동하는 데 제약을 받아서 목회자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 또, 신학에 맞는 예배를 드리려는 나의 생각은 다른 선교사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결국, 나는 공교회의 모습을 갖춘 교회에서 섬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되었고, 11년 동안 애정을 가지고 섬기던 선교지를 떠나서 성공회 사제가 되게 되었다

댓글 1

  • 김장환 엘리야

    2007.04.29 20:31

    터키에서 10여년 선교사로 섬기셨던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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