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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퍼온 글 - 거제교회 신기호 신부님의 '복음기도모임' 간증문
  • 복음의 삶 - 신기호(성공회 거제교회)

    할렐루야!

      저를 이 고귀한 자리에 세워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그래서 이제 더 이상 어떤 여지도 남기지 못하게 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저의 공식 직함은 이렇습니다. 대한성공회 부산교구 거제교회 보좌사제 신기호 신부입니다.
      지난 2월 14일 계산제일감리교회에서 있었던 섬김이 수련회를 마치고 거제도로 내려가는 고속도로에서 한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박종진 선교사님께서 제게 생전 처음으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기도하다가 생각이 나서 전화를 했다는 것입니다. 내용의 요지는 2월 복음기도모임에서 복음의 증인으로 세울 테니 ‘복음의 삶’을 나누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저는 두말 않고 아멘으로 순종하였습니다. 그리고 원고를 작성해서 17일 토요일까지 복음기도팀으로 보내 달라 하셨습니다. 그 말씀에도 아멘 하였습니다. 제 속으로 ‘제 편에서 준비된 것은 순종밖에 없습니다’. 라는 말을 읊조리며 와! 나도 이런 말을 쓸 날이 오는구나 하며 스스로 대견해 하였습니다. 전화를 받기 전까지 아내와 저는 2박 3일 동안의 섬김이 수련회를 통하여 주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셨던 은혜와 삶의 자리에서의 확고한 믿음의 자세에 대하여 나누고 이었습니다. 그런데 전화를 받고 난 후 부터는 제 입에서 말이 멈추었습니다. 그리고 내 영적인 시스템이 일반모드에서 내면여행 모드로 변환되어 작동되기 시작하였습니다.

      복음학교에서 큰 은혜를 받고 십자가의 완전하고 총제적인 복음을 깨달은 후 나의 삶의 모습이 어떻게 변화되어져 갔는지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내면여행을 하면 할수록 어디선가 이러한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너는 복음의 증인으로 설 자격이 없다!, 네가 복음의 증인이라고 외치면 지나가는 개가 웃겠다!, 네가 한 짓들을 돌아 봐! 너는 안 될 놈이야!, 봐라!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너는 음란한 생각, 거짓된 것, 자아도취, 혈기, 나태, 게으름, 이 모든 게 네 안에 고스란히 있잖니?, 이제 그만 펜 놓고, 못한다고 전화해라! 하나님의 영광 가리지 말고!”

      이 소리들이 어디서 오는 소리인가? 이 소리들의 실체는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소리는 십자가에서 죽은 옛 자아의 신음소리처럼, 십자가에서 내려달라는 옛 자아의 패악한 소리처럼 들렸습니다.

      작년에 지금 살고 있는 교회사택을 리모델링하면서 안방 창문 쪽 벽에 곰팡이가 있는 것을 보고도 대충 정리하여 도배로 마감하였습니다. 도배로 마감한 방은 깔끔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지금 그 벽은 곰팡이들로 지저분하기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확실히 죽이지 않고 덮어버렸던 것들이 시간은 걸렸지만 다시 그 정체를 들어내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곰팡이라는 것은 참으로 그 뿌리까지 잡아내기가 쉽지 않다고 합니다. 오래 놔두면 벽 자체가 곰팡이화되어 버리기 때문에 아무리 약을 뿌리고 말려도 그 근원을 잡아 없애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그 벽을 허물어 버리는 방법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 가지 문제들과 재정난 때문에 도배나 페인트로 대충 마감해 버리는 것이 대부분의 영세업자들의 마감이 아닌가 합니다.

      이러한 일상의 일화를 통하여 저는 저의 내면여행 가운데 내 안에 있는 문제들과 대면하여 보았습니다. 분명히 십자가의 완전한 복음을 통하여 나의 옛 자아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고 완전히 죽었음을 확인하였는데 이처럼 옛 자아의 소리가 나를 사로잡고 있음이 무슨 일인가? 그 실체의 진실은 무엇인가?

      그 질문의 답은 저에게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완전한 십자가의 복음을 제가 믿음으로 완전하게 취하지 않았으며, 여러 여지들을 그대로 제 안에 품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옛 자아가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2천 년 전 십자가에서 죽었음은 확실한 역사적 진실이며 진리입니다. 하지만 생활 속에서 조금의 여지만 있으면 십자가에서 죽은 옛 자아를 회상하며 “그때가 좋았어!” “얼마나 즐겁냐, 짜릿하냐...” “야~ 옛 생각난다 그치?” 죽은 옛 자아는 아무말 없는데 내 스스로 그 주검 앞에 반응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복음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만으로 만족하지 못한 모습이 내안에 그대로 남아 있음을 직시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만으로 만족하지 못한다는 여지가 내안에 남아있기에 그 어떠한 믿음의 반응 앞에서도 빈틈이 발생하고 그 빈틈으로 인해 더욱 처절한 좌절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스스로 나아감을 보게 되었습니다. 어중간한 믿음, 어중간한 확신, 어중간한 신뢰로는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그때가 바로 지금입니다. 지금 바로 이시간이 내가 믿음을 써야할 시간임을 이제야 깨닫게 됩니다. 믿음을 쓴다고 하는 말이 저는 너무나 생경하였습니다. 그래서 누구에게 이것을 물어볼까 한참 망설이다가 제일 만만한 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은, 아내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믿음을 쓴다는 표현들을 유독 신도팀들이 많이 하는데 그게 무슨 말인지 설명해 달라고 했습니다. 아내는 제게 아주 쉽게 설명하여 주었습니다. 그녀의 말이 어떤 권위자로부터도 고증이 된 건 아닙니다만, 저는 그 말을 아멘으로 취했습니다. 아내는 이렇게 말해주었습니다. “믿음을 쓴다는 것은 다시 십자가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십자가로 나아가는 것! 그것은 나의 존재의 실체를 확인 하는 자리입니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는 것과 그의 완전한 은혜 앞에 서는 자리입니다. 마귀는 나에게 십자가로 나아가지 말고 자유 하라고 속삭입니다. 괴로운 십자가를 왜 바라보냐고 회유합니다. 십자가는 속박이며 구속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내 옛 자아가 살아있을 그 때가 내가 죄의 종노릇 하던 때이며, 2천 년 전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옛 자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어 주셨음을 믿음으로 취하지 않고 있을 때가 죄의 올무가 나를 휘감고 있던 때이며 자유한 것 같지만 진정한 자유함을 누리지 못할 때임을 알게 되는 진실의 자리입니다.

      이제 나는 십자가 앞에서 그리고 참된 복음 앞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참된 자유함은 영원한 것을 영원히 누리고자 사모하는 것임을 이제 알게 되었습니다. 유한한 이생의 자랑을 찾아 헤매는 나의 옛 자아는 오래전 죽었음을 선포합니다. 나는 이제 오직 영원한 것만을 사모하여 그 모든 이생의 자랑이 이제 부끄러움이 되는 자임을 선포합니다. 세상으로 죽은 자요, 복음 앞에서 산자임을 선포합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찌어다 [롬 6:11]

      이 시간을 통하여 제 존재의 실체를 다시 한 번 바라보게 하신 주님과 허다한 증인들 앞에서 나의 삶을 돌이켜 봅니다. 거짓으로 얼룩졌던 부분들을 예수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어내며 주님께서 인도하여 주셨던 그 길들을 회상해 봅니다. 그 길들 중 주님께서 온전히 인도하여 주셨던 사역은 바로 복음선교관학교 13기 인도 비전트립을 통한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보여주신 일이라 생각되어 집니다.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될지 모르는 비전트립 신참인 저에게 주님께서는 저를 확고하게 붙드셨고, 당신의 사역을 당신 스스로 인도하여 가셨음을 목도하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저희 인도 1팀은 주님께서 오직 예배자로 서기를 원하시는 말씀을 부어주셔서 성령의 인도하심 없이는 한 걸음도 띄지 않겠다는 선포를 받아내시고 준비기간 내내 시종일관 찬양과 예배와 기도에 전념하게 만드셨고 남은 짬 시간에 기타의 필요를 준비하게 만드셨습니다.

      이러한 비전트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오직 하나님만을 신뢰해야함을 실제적인 일을 통하여 가르쳐 주셨습니다. 가깝지 않은 곳에서 오고 가는 일을 통하여, 재정적인 문제에 봉착했을 때 나의 중심을 보게 하신 일, 지체들 상호간의 의견과 형편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주님께서 지혜 주셨던 일 등을 통하여 세밀한 부분마저도 주님께서 일일이 간섭하시고 챙겨주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시면서 나로 하여금 집중하게 만들어 주시는 주님의 배려하심이 참으로 놀랍고 감사하였습니다.

      비전트립을 놓고 제가 받은 말씀은 갈2:20 말씀이었습니다. 이번 비전트립을 통하여 이 말씀이 더욱 나의 삶에 실체가 되기를 소망하며 나아갔습니다. 이러한 준비과정이 끝나고 인도로 향하여 나아가기 일주일전 주님께서는 저에게 민수기 1장의 말씀을 허락하여 주셨고 인도로 출국하는 당일 아침에 눅7:24 말씀을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민수기 1장을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이 평시체제에서 전시체제로 전환하는 장면을 보여주시며 11지파는 하나님의 군대로 조성되고 그 조성에서 제외된 한 지파인 레위지파에게는 성막을 목숨을 걸고 사수하라는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모든 전쟁의 중심이 최전방에 있는 것이 아니라 거룩한 성막 가운데 모든 전쟁의 성패가 좌우됨을 보여주고 계셨습니다. 최전방은 하나님의 영광을 목도하는 곳임을 덤으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영광을 목도하기 위하여 나를 땅 끝으로 보내시는 것이라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모든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는 말씀을 통하여 내가 온전히 사수하여야 할 것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예배하는 것임을 말씀해 주셨다. 오직 그 하나님만을 기억하고 예배하며 찬양할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또 하나의 말씀은 누가복음 7장 24장의 예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너희는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이 말씀을 통하여 온전한 초점 집중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어떠한 상황과 조건 가운데서도 오직 하나님만을 예배하라고, 하나님만으로 만족하는 예배자로 서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 말씀을 부여잡고 나의 땅 끝 인도로 인도하여 주셨습니다. 그 땅 끝 인도에서 사역할 때 부어진 하나님의 은혜는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상황과 조건은 열악했지만, 그 모든 것을 넘어서 하나님의 선교완성을 목도하며 찬양할 수 있어서 너무나 은혜로운 시간들이었습니다.

      인도로 향하여 나아갈 때 저에게 허락하셨던 말씀을 오늘 다시 묵상하며 나아갑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로 하여금 레위지파로 부르셨고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성막을 거룩히 그리고 목숨을 걸고 철저하게 지켜 나아갈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저는 개인적으로 오해를 했던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 성막이 예배터이며 기도터임을 인지하고 나서는 저는 거제교회를 생각했고, 인도의 바라나시 겐지스강가를 생각하며 마음에 품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제게 말씀하시는 예배터와 기도터는 나를 두고 하신 말씀임을 이제 깨닫게 되었습니다. 유형의 교회와 지역을 향해 말씀하신 것이 아닌, 내 안에서 예배와 기도가 살아나서 내가 하나님의 온전한 교회로 설 것을 말씀하셨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가 섬기는 유형의 교회는 거제도에 위치한 조그마한 개척교회입니다. 그 교회는 지난 한해 6개월 동안 저와 교우들이 하나하나 리모델링한 정말 우리의 피땀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교회입니다. 3년동안 비어있던 시골 교회를 인수하여 리모델링을 한 것 이었습니다. 지금 교회를 보면 작지만 그래도 예쁜 교회라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습니다. 이 교회를 인수할 때 교회적인 여러 절차를 무시했다는 것입니다. 능력도 안 되는 개척교회가 무슨 교회를 인수하느냐는 주교님의 말씀을 무시하며 하나님께서 허락하셨다는 자기믿음만으로 밀어붙였고  그로인해 그 부채가 2,500만원이 남아있으며, 오는 3월 2일까지 모두 갚아 주어야 하는 상황입니다. 저희교회는 갚을 능력이 전혀 없습니다. 주일 출석 교인수도 평균 10명을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가운데 주님께서는 말씀을 허락하셨고, 정말 제게 필요한 교회가 어떤 교회인지를 깨닫게 하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제안에 감추어져있던 선한 자아를 발견하게 하셨으며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가 아닌 내 선한 자아가 세운 교회를 보게 하셨습니다.

      내 안에 예배 터가 없고 기도터가 없는 없는데, 유형의 교회가 무슨 소용인가를 절실히 보게 하셨습니다. 아무리 교회가 아름답게 지어 졌다 할지라도 내 안에 예배와 기도의 자리가 없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교회라 할 수 없음을 알게 하셨습니다. 유형의 교회는 무형의 교회가 세워졌을 때 비로소 그 가치가 인정됨을 알게 하여 주셨습니다.

      이에 선교 또한 마찬가지임을 알게 하여 주셨습니다. 선교는 목적이 아니며 수단이며, 그 선교의 목적은 열방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예배하게 하는 것임을 복음선교관학교를 통하여 배웠습니다. 이 선교의 시작은 오늘 내가 예배자로 기도자로 온전히 서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서는 안 새겠냐?’는 인도 펀잡주에서 사역하시는 선교사님의 말씀이 기억납니다.

      지금 내가 목숨 걸고 사수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유형의 교회와 사역인가? 아니면 예배자로 기도자로 서는 것인가?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요1 2:16]

      이제 이 모든 것에 결론을 내릴 때가 되었습니다.
      저는 이제 예배자로 기도자로 서겠습니다. 예배자는 하나님만으로 만족하는 자입니다. 하나님만으로 만족하기에 세상의 그 어떤 가치도 이제는 따르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걸어가신 그 좁은 길로 나아갈 것입니다. 이 마음을 지켜주시고 이루어 주실 분이 하나님 아버지이심을 다시 한 번 가슴에 새기며 당신과 영원토록 동행하기를 소원합니다.

      이제 저는 제 스스로 선하다는 일에 전념하지 않겠습니다.
      내안에 예배가 살아있는 자로, 기도가 살아있는 자로 그래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로 살기를 소망합니다.

      성막은 고정된 장소가 없었음을 기억하며, 예배자로서 기도자로서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곳으로, 땅 끝으로 잠잠히 잠잠히 나아가겠습니다. 예배가 없는 곳, 기도가 없는 곳으로 저를 이끌어 주시고 그곳에서 예배하며 기도하며 하나님의 선교완성을 목도하기를 원합니다.

      이제 저에게 없던 하나님께서 주신 꿈이 생겼습니다. 그것은 제 생애에 주님이 오시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꼭 보고 싶습니다.

      그리스도는 죽으셨고, 그리스도는 부활하셨고, 그리스도는 다시오십니다.
      이것은 성공회 예배에서 드려지는 성찬식 때 마다 선포되는 신앙의 신비이며 고백입니다.
    이제 이 선포를 믿음으로 취합니다. 주님 곧 오십니다.

      그리고 눅 7:24 말씀을 통해 주님께서 이제 초점집중을 명하십니다. “너희는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주님! 결코 아닙니다. 흔들리는 제가 결론 아니고, 다시 오실 주님이 결론이십니다!

      주님! 저로 하여금 당신이 오심을 보게 하여 주십시오!
      이 꿈을 허락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댓글 2

  • 임용우

    2007.03.21 17:42

    열방의 모든 족속이 하느님을 예배할 때까지 신신부님과 함께 하실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 이병준

    2007.03.24 08:30

    아멘!! 주여 속히 오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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