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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사람의 삶! (퍼온 글!)

  • [이 사람의 삶]"모두 우리의 아들·딸… 함께 보듬어야”
      
    “탈북 청소년들도 우리의 아들 딸들이에요. 이들이 한국 사회에서 제대로 정착할 수 있도록 모두가 관심 갖고 배려해야 합니다.” 탈북 청소년에게 더 많은 관심과 지원을 강조하는 한꿈학교 김성원(39) 교장.

      그는 요즘 하루하루가 고통스럽다. 폐교 위기에 처한 학교가 남양주시의 배려로 수업을 계속할 수 있게 됐지만 탈북 청소년들의 거처를 아직 마련 못해 동분서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학교는 학생 17명 전원이 공동생활하는 기숙사형 대안학교. 이들을 수용하려면 최소한 아파트 2채가 필요한데 전세금도 턱없이 부족해 앞길이 막막한 실정이다.

      그나마 어려움 속에서도 이곳에서 공부한 탈북 청소년 8명이 대학에 진학한 것이 김 교장에겐 큰 힘이 되고 있다. 일반학생들도 어려운데 대입 검정고시를 거쳐 고려대 2명, 외국어대 1명, 중앙대 1명, 숙명여대 1명, 총신대 2명, 장신대 1명이 합격했다. 이런 결실 뒤에는 자원봉사교사 18명의 숨은 헌신이 있다.

      “우리 학교 교사들은 대학생, 은퇴교사, 전문직업인, 주부 등 다양합니다. 대가 없이 서울에서 매일 남양주까지 빠지지 않고 나오시는 이분들을 볼 때면 저절로 고개가 숙여져요.”

      목사의 길을 걷던 김 교장이 탈북 청소년의 교육에 나선 사연은 눈물겹다.

      그리스도신학대 2학년 때 미국 시애틀의 신학대로 유학해 1997년 졸업한 그는 이듬해 귀국, 온누리교회 소속 선교사로 중국 단둥지방에 파견돼 구호물자를 북한으로 보내는 일을 맡았다. 자연히 그곳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국경을 넘어온 탈북자들을 만나게 됐고 이들을 보호하는 일도 함께 했다. 그러다가 장춘으로 옮겨 본격적으로 탈북자 신변보호에 나서게 됐다. 당시 중국 공안의 검열도 점점 엄해져 그곳에서 탈북자들을 보살펴 주던 그는 결국 공안에게 발각돼 추방당했다. 그때 탈북 청소년들을 많이 만나게 됐고 이들과 정도 많이 들었다고 한다.

      “중국 공안에 쫓기는 탈북자들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비참하게 목숨을 부지하지요. 엄지발가락이 동상에 걸려도 검거될까봐 치료를 받지 못해 무릎까지 썩어들어가 다리를 절단한 사람에서부터, 충치로 고생하던 사람도 제때 병원엘 못가 충치균이 턱뼈까지 파고들어간 경우도 있었어요. 13세 여아는 중국사람에게 네 번이나 팔려가 낮에는 개처럼 묶여 지내고 밤에는 성노리개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야기를 하면서 눈물을 글썽이는 김 교장은 가슴 아픈 사례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고 털어놓았다.

      2001년에는 사랑의 교회 후원으로 태국으로 가 탈북자들의 피난처를 마련하는 등 힘을 보탠 결과, 이들 중 400여명이 안전하게 한국으로 올 수 있게 했다.

      하지만 2002년 중국, 태국 등지에서 정들었던 탈북 청소년들을 서울에서 재회한 김 교장은 기쁨보다 충격에 휩싸였다. 한국에 들어가면 모두가 잘 생활할 줄 알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했던 것. 남북한의 커다란 사회환경 차이 탓에 대부분이 적응하지 못해 방황하고 있어 몹시 가슴이 아팠다고 한다.

      그 길로 그는 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가르치는 학교를 생각하게 됐으며, (사)한민족세계선교원으로부터 학교 건물을 임대받아 2004년 5월 문을 열게 됐다.

      탈북 청소년 대안학교는 이곳을 비롯해 천안의 하늘꿈학교, 서울 여명·셋넷학교, 안성의 한겨레학교 등 전국에 모두 5곳. 정부에서 전액 지원하는 한겨레학교를 빼고 나머지는 사립으로 운영돼 재정이 어려운 형편이다.

      이들 학교는 교육 효과를 감안해 특성에 맞는 소규모 학교의 증설과 함께 공립화해 줄 것을 정부에 줄곧 건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은 상태다. 정부가 일정 부분 해야 할 몫을 이들 학교에 떠넘기고 외면한다고 이들 학교 관계자는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한꿈학교는 특히 교인이나 개인, 교회후원금 등으로 근근이 꾸려가지만 언제 문을 닫을지 몰라 미래가 불투명하다. 남양주시가 내준 강의건물도 택지개발지역 내에 있어 연말이나 내년 초에 철거될 예정이다. 신앙심과 사명감으로 이 일을 떠맡고 있는 김 교장이지만 재정난이 그의 의욕을 꺾고 있다.

      그래도 교육 프로그램만은 철저히 탈북 청소년의 입장을 고려해 짜여진다. 학력을 인정받는 학교가 아니어서 고입·대입 검정고시 준비 위주로 이뤄지나 상담, 인성교육 등에도 소홀히 하지 않고 있다.

      “탈북 청소년 대부분은 폐쇄적인 성향이 강해요. 이들에게 마음의 문을 열게 하기 위해선 직접 다양한 경험을 해보게 해야 합니다.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방과 후에는 특별활동을 활성화하고 있어요. 서예, 컴퓨터, 꽃꽂이, 사물놀이 등 취미활동뿐 아니라 농촌 일손 돕기, 또래집단과 자매 결연, 해외 연수 등의 활동도 하지요. 아무리 어려워도 후원금의 10%를 따로 떼어 이들에게 견문을 넓혀 주기 위해 1년에 한두 차례 해외 연수 경비로 씁니다.”

      교회와 학교 일에 매달리다 뒤늦게 결혼해 17개월 된 딸을 둔 김 교장은 가장으로선 ‘빵점아빠’다. 생활비도 작은 사업체를 운영하는 아버지에게 신세를 진다. 하지만 목사가 된 아들을 자랑스러워하는 부모가 그의 든든한 후원자이기도 하다.

      이 학교에서 김 교장의 별명은 ‘돼지아빠’다. 학생들 모두가 그를 아빠로 여기는 데다 김 교장이 학생들을 부를 때 돼지라고 부른다. 탈북 청소년들 대부분의 체격이 왜소해 그는 늘 ‘많이 먹고 돼지가 되라’고 강조하기 때문이다.

       “성장기에 제대로 먹지 못해 남한 학생들보다 보통 키는 10cm 이상 작고 몸무게 또한 20kg 가까이 적게 나가는 게 마음에 걸려요. 그래서 먹는 데는 가급적 돈을 아끼려 하지 않습니다.”

      학교 이름처럼 탈북 청소년들에게 큰 꿈을 갖도록 여건을 마련해 주고 싶다는 김 교장은 “이들이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받는 자에서 베푸는 자의 위치에 설 수 있게 힘닿는 데까지 도와 줄 것”이라며 “대학에 진학해 반듯하게 자신의 길을 개척해 나가는 탈북 청소년들을 볼 때면 그간의 시름이 눈녹듯 사라지고 보람을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황금돼지해인 정해년에는 탈북 청소년의 몸과 마음이 살찌는 한해가 돼 ‘돼지아빠’의 웃음소리가 이 학교에 가득 울려퍼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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