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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요일에 했던 선교보고입니다.
  • 조회 수: 2349, 2006-12-23 11:55:29(2006-12-23)
  • 선교 보고.

    마라나타! 주 예수그리스도여 어서 오시옵소서!

    기도하겠습니다.
    살아계셔서 지금 이 자리에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저희에게 변함없는 신실하심으로 하루를 당신 안에 살게 하시고 이 자리에 나와 아버지를 예배할 수 있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또한 우리를 당신의 위대한 구원 계획에 참여하게 하여주시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그 땅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에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 오늘 이 시간 주님께서 지난 2개월 반이라는 시간 동안 저에게 보여주신 아버지의 일들을, 지금도 그곳에서 생생하게 역사하고 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살아계심을 증거하려고 합니다. 부족한 저의 입술을 통해서 한마디의 가감도 없이 온전히 아버지께서 하시고자 하는 말씀들만 전하게 하여 주시길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습니다. 아멘.

    마라나타!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이 땅에 오셨습니다. 죽으셨습니다. 부활 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오실 것입니다. 아멘

    오늘 이 시간에 하나님께서 저에게 행하신 일들을 함께 나누게 되어서 어찌나 떨리는지 모릅니다. 저는 지난 9월 16일부터 12월 3일까지 P국에 다녀왔습니다. 이 시간 가기 전 준비과정, 그 곳 현지에서, 그리고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신 모습들을 교우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고등학생이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저를 가는 선교사로 부르셨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전진건 선교사님의 도움으로 미국에서 선교훈련을 받으면서 이론만이 아닌 실제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신 땅에 가서 보고 듣고 느끼고, 무엇보다도 소명점검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습니다. 그런 과정가운데에서 몇 번의 시행착오라고 부를 수도 있을 목적된 선교지가 바뀌는 상황들을 겪었고,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 맞는지에 대해서 계속적으로 씨름하고 또한 때때로 그냥 편안한 환경가운데에 안주하고 싶어하는 제 자신과도 싸워가며 마침내 밟게 된 땅이 P국이었습니다.

    P국으로 단기선교를 가기로 결정한 후(사실 케빈신부님과 전진건 선교사님께서 계신 글로벌 팀즈에서 단기로 저를 파송해 주시고, 케빈신부님께서 제자 양육하신 P국 현지인 브루스 형제 가족이 저를 받아주시기로 결정 된 후) 많은 선교사님들께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가장 큰 부담은 재정과 비자였습니다. 어차피 2006년 한해는 온전히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보고 그분께서 저를 지으신 명확한 목적을 발견하기 위해 학교는 일년을 휴학해 놓은 상태였고 부모님도 그것에 대해서 잠정적으로 동의하셨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다른 부담은 없었습니다. 다만, 재정과 비자가 어쩌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도구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재정부분은 P국을 가기까지 계속적으로 도움을 주셨던 리도스 간사님과의 상의 끝에 여태껏 부모님께 전적으로 의지해서 살아왔던 것과는 반대로 이번에는 온전히 하나님의 이끄심을 보자고 결정을 내렸고, 재정이 0이었던 상황에서 티켓팅을 하고 기도편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주 주일, 기도편지를 나누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첫 번째 응답을 주셨고 그 순간부터 재정을 전적으로 주관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결론적으로 그 땅을 향한 마음을 가지고 후원해 주신 서른 네 분을 통하여서 떠나기 바로 전날까지 2백 9십 6만 6천 6백원이라는 엄청난 재정이 채워졌습니다.

    또한 한가지 다른 문제가 비자였습니다. 아무래도 이슬람 국가이다보니 여자 혼자 비자 받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서류상 큰 하자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비자 발급이 늦어 지다 보니 사실 불안한 마음이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결국 비행기 발권 기한을 이틀 남겨두고 비자가 발급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한가지 더, 문제가 발생했는데, 비자 만료 기간이 11월 29일로 나온 것이었습니다. P국은 관광비자를 3개월 단위로 밖에 발급해 주지 않는데, 그것이 신청일로부터 3개월이 되어 만료일이 11월 29일이 된 것입니다. 그 당시 저의 한국 돌아오는 예정일은 12월 10일이었는데 말이죠. 그냥, 배째라! 하고 예정대로 발권을 하고, 만료 후 2주는 불법체류자로 남기로 하고 출국했습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아무 문제 없이 이렇게 건강히 돌아와 이 앞에서 그 은혜를 전하고 있습니다^^

    이슬람. 무슬림이라고 하면 어떤 것들이 떠오르세요?
    이슬람.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철의 장벽이라고 부릅니다. 두드려도 열리지 않는 문, 기독교의 적, 테러리스트, 오사마 빈라덴, etc.
    지난 주에 오셨던 선교사님께서도 말씀하셨듯이 이 땅에 남아있는 미전도 종족의 80퍼센트가 이 10/40창 이슬람 권에 있습니다.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 들을 기회조차 박탈 당한 사람들이 이 이슬람 권에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 곳에서 그분의 사람들을 통하여 지금도 일하고 계십니다.

    얼마 전에 아주 기쁜 소식을 들었습니다. 미국에서 있었던 어떤 선교대회에서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사역하고 계신 선교사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만약 사우디 아라비아에 종교의 자유가 온다면 적어도 10만의 기독교인이 일어날 것이다.”
    저는 이 선교사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이 현장들을 직접 보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있었던 P국에도 이와 같은 전초 기지들이 세워지고 있습니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P국에서 제가 보고 온 사역의 성경적 배경을 먼저 말씀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요한복음 4장 39절~43절입니다.

    요한복음 4장에서는 사마리아 여인과 예수님의 대화가 나옵니다. 그 당시 유대인은 사마리아 사람들과 상종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을 “더러운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예수님께서 대화를 시도하신 것은 “여자”였습니다. 그 당시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었죠.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에게 다가가 물을 달라고 청하십니다. 그 여자에게 다가가기 위해 깨끗함을 버리신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방법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더러운 인간의 몸을 입으셨고, 사마리아 여인에게 다가가기 위해 당신의 깨끗함을 버리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에게 인격적으로 다가가십니다. 그의 아픔까지도 만지시며, 남편이 없다고 어쩌면 거짓말이라고 추궁할 수 있을 만한 대답을 한 그 여인에게 “네 말이 참되도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분께서는 절대 그 여인을 변증법적으로 몰아붙이지 않으셨습니다. 그 여인을 한 인격체로 존중하시고 그의 모든 환경까지도 존중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여인의 입술에서 진정한 예배에 관한 질문을 이끌어 내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예배의 본질은 관례나 장소, 형식에 있는 것이 아닌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것에 있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여인은 그의 마을로 돌아가 사람들에게 “내가 우리가 그렇게도 기다리던 메시야를 만났습니다!”라고 전합니다. 그리고 그 마을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그분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그분을 모셔가 이틀간 말씀을 듣습니다.

    이 성경 구절이 P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역의 성서적 근거이자 배경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배할 처소를 묻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예루살렘으로 오라 하지 않으십니다. 대신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여인은 사마리아로 돌아가 외칩니다. 내가 그렇게도 기다리던 메시야를 만났다고.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듣고 그 동네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습니다.

    P국에는 크게 두 종류의 예수님을 따르는 그분의 제자들이 있습니다.
    첫째로 크리스챤입니다. 이 크리스챤들은 P국이 인도로부터 분리될 당시 힌두 종교를 가지고 있던 하층민들이 집단 개종을 한 경우가 대부분 입니다. 기독교인들이 사는 구역 내에서 살아가고 법으로도 그들의 종교를 보장 받습니다. 물론 기독교인으로서 받는 기본적인 불이익이 있지만, P국 헌법에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의 기본권에는 크게 불이익을 받지 않고 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160년의 P국 선교역사를 돌아보면 사실상 많은 선교사들이 이 기독교인들을 제자 훈련시켜 무슬림들에게 접근하게 하고 무슬림들을 크리스챤 구역 내로 들어오게 하는 사역에 집중하였으나, 이들은 겉으로 보기에도 인종의 차이가 있을 뿐 아니라 사실상 이슬람 문화나 관습을 잘 모르기에 무슬림들과 접촉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P국에서 만난 한국 선교사님 중에서 가장 P국에 오래 계셨던 부부선교사님도 같은 말씀을 하시더라구요..

    두번째로는 소위 MBB라고 불리우는 무슬림 배경의 신자들입니다. 이들은 무슬림이었다가 예수님을 그들의 주님으로 영접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이슬람 문화도 잘 알뿐만 아니라 무슬림과도 접촉하기 쉬운 환경에 있습니다. 지난 P국 선교의 시간 동안 기독교로 개종한 이들을 기독교인 커뮤니티로 빼내 오는 사역들이 주로 이루어졌었습니다. 그로 인해 많은 MBB들이 그들 자신의 친 가족들과의 접촉 점을 잃어버렸고 모진 박해는 물론이거니와 그들 주위에 있던 많은 무슬림들에게 오히려 반감을 사게 된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루어 지고 있는 무슬림 선교운동이 바로 개종자를 무슬림 커뮤니티 안에 그대로 두는 C5 혹은 내부자 운동입니다. 자신의 마을로 돌아갔던 사마리아 여인처럼 말입니다. 제가 함께 생활했던 브루스 형제와 그의 가족들도 계속 무슬림들이 살고 있는 구역에 거주하고 있으며, 지금까지도 많은 무슬림 친구들과 교제하고 또한 그 교제들을 통해 많은 무슬림들이 예수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그분을 따르기로 결정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처음 P국에 도착하던 날부터 저를 위한 그분의 특별 트레이닝은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작년 이맘때쯤 P국북부 발라콧이라는 지역 (브루스 형제의 집인 카라치와는 차로 30시간정도가 걸리는 곳)에 아주 큰 지진이 있었습니다. 거의 모든 것이 평지가 되어버렸었다고 합니다. 그 때 많은 NGO들이 구호작업을 위해 그곳에 들어갔는데, 그와 함께 복음이 그 메말랐던 북쪽에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 곳에서 브루스 형제와 그의 팀은 난민 캠프를 만들어주고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지역에 1000권 이상의 성경이 나누어지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돌아오는 역사가 있었습니다. 바로 그곳에서 제가 P국에 가던 그날 아침에 난민 캠프를 관리하는 MBB 리더급 형제 두 명이 경찰에 잡혀가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슬람이 아닌 다른 믿음을 전한다는 이유였습니다. 그 형제들을 빨리 풀어주지 못해서 혹시 그 형제들이 고문을 받아 MBB네트워크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경찰에 이야기 하게 되면 큰 문제로 번지게 될 수 있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그들을 풀어주어야 한다고, 공항에서 저를 보자마자 브루스 형제가 말했습니다. 그리고 저도 함께 가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했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날 비행기를 타고 P국의 수도인 이슬라마바드로 향했습니다. 그곳 공항에 세워져 있던 브루스 형제 친구의 차를 찾아 시동을 걸려고 했는데 배터리가 나갔는지 시동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고치느라 시간을 한참 보내는 동안 브루스의 MBB 친구가 한 명 찾아왔습니다. 그 친구는 P국 보안센터에서 상당한 권위를 가진 사람이었고 그것이 정확한 타이밍이 되어 우리는 그 북쪽 형제들의 상황을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 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한가지 P국의 특별한 관계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슬람 안에 있는 사람들은 공동체 의식이 매우 강합니다. 잠깐만 인사를 하고 소개를 해도 아주 절친한 친구로 여길 뿐더러, 비록 단 한번 만난 사람이라 할 지라도 몇 년이 지난 뒤 그 사람의 집에 찾아가 하루쯤 머물러도 전혀 실례가 되지 않습니다. 또, 아주 낯선 사람이 집에 찾아왔다 하더라도 차 한잔 대접하지 않고 돌려보낸다면 아주 무례한 행동이 됩니다. 왜냐하면 이슬람 안에서 그들은 서로를 진정 한 형제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이런 모습들을 보며 저에게는 사실 한가지 고민이 생겼습니다. 저렇게 진정으로 서로를 한 형제로 여기며 사는 저들에게 개인주의가 만연한 현대 기독교를 어떻게 전할 것인가, 사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은 이런 모습인데 말입니다.

    아무튼 그 형제가 고리가 되어 북쪽 형제들을 잡아간 경찰서에 연락이 되었고, 그 쪽 경찰서에서 잡아갔던 형제들을 풀어주겠다고 연락이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로 형제들이 풀려났고 그 형제들은 북쪽 캠프 본부에 있던 성경책과 모든 기독교 관련 물건들을 가지고 이슬라마바드로 내려왔습니다. 이들이 무슬림들과 함께 살고 그들에게 접근하기 위해서는 그 북쪽에 남아있어야 하는데 만약 경찰이 들이닥쳐 수색이라도 하게 되면 큰일이기 때문입니다.

    그 모든 물건들을 가지고 브루스 형제와 저는 차로 30시간이 걸리는 카라치로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집에 도착하기까지 약 4일정도가 걸렸는데, 그 때, 저는 여자 싱글 선교사로서 무슬림권에서 사역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실감했습니다. 4일에 걸쳐 카라치로 내려가는 동안 이 형제가 몇몇 자신의 친구 집을 들렸는데 여자는 왠만해서 밖으로 나오지 않는 이슬람 문화인데다가 같이 다니는 사람이 형제이기에 친구들도 모두 남자들이었고 잠도 형제들과 같은 공간에서 자야 했습니다. 게다가 그때 도착한 직후였기에 현지 옷도 없어서 반팔을 입고, 머리에 도빠따도 쓰지 않은 채 돌아다녔는데, 머리를 가리지 않는 것은 옷을 벗은 것과 같게 여기는 이 곳에서 서양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은 “저 이상한 여자입니다~”하고 광고하는 것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사실 외국인이기에 어느정도 “신기한”사람으로 보여졌을지 모르지만 그 기간 동안 무슬림권에서 여자 싱글 선교사로서의 한계점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렇게 일주일을 보내고, 브루스 형제가 싱가포르에 훈련을 받으러 가는 일주일 동안에 다시 북쪽으로 올라가 리도스 간사님께서 소개시켜 주셨던 에스더 선교사님을 만났습니다. 선교사님께서는 개인적으로 아주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셨습니다. 원래의 계획으로는 모든 일정이 끝난 후 선교사님을 뵙고 한국에 돌아갈 예정이었는데, 미리 그곳에 가서 시간을 보내게 된 것 또한 하나님의 계획이셨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저에게는 새로운 사역의 방법들과 여러 선교사님들이 이 땅에서 살아가고 계신 모습들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고, 언젠가 선교사님을 위로하고 오는 것도 제가 그곳에서 해야 할 일중의 하나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선교사님께도 그 시간이 조금은 회복하고 힘든 일들을 잊을 수 있는 시간이 되었음을 기억하며,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 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라는 잠언 말씀을 실감했습니다.

    또한 9월 25일부터 10월 24일까지 라마단 기간이었습니다. 저는 이 기간을 또한 이슬람 연합의 때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이 라마단 기간 가운데에 이들 가운데에 이루어지는 연합은 또한 더욱 특별합니다. 아침에 4시에 일어나서 씻고 밥을 먹고 기도하고 다시 잠자리에 들어가 2~3시간 정도를 더 자고 일어납니다. 그리고 금식이 풀리는 종이 울리면 모두 준비를 하고 있다가 함께 모여서 음식을 나눕니다. 함께 금식하고 기도함으로, 그리고 금식이 풀릴 때에 온 가족, 또는 여러 사람이 모여서 식사하고 마치 회포를 푸는 듯한 그런 것들이 이들의 연합을 더욱 강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이 금식이 이들 자발적으로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니라 연례 행사 중의 하나라고 할지라도 이들 가운데에서 공동체성과 연합됨을 보며 현대 기독교가 가지지 못한 부족함을 또한 보게 되었습니다. 또한, 형식일 지라도 매일 아침 4시에 일어나서 하루 종일 물도 마시지 않고 기도하는 그들에게 진정한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이 들어간다면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것이라는 사실을 의심할 수 없었습니다.

    그 다음 주에 케빈신부님께서 오셔서 함께 시간을 보내고, 그로부터 2주 후 어느 날 자고 일어났는데 브루스 형제가 보이질 않았습니다. 집안에 있는 사람 어느 누구에게 물어보아도 아무도 형제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아! 잠시 형제 가족을 소개하면, 그 형제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계시고, 그 형제는 11남 4녀 중 장남입니다. 브루스 형제에게는 3명의 아들과 3명의 딸이 있습니다. 결혼한 형제들도 이 집에 다 같이 사는데, 그렇게 해서 총 40명이 그 집에 함께 삽니다. 아무튼, 어느 누구도 형제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났고 그 다음날 저에게 형제로부터 지금 경찰서에 있다고 기도를 부탁한다는 문자가 왔습니다. MBB 형제 다섯 명이 경찰에 붙잡혀 가서 그들을 풀어주기 위해 경찰서에 갔다가 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 전 일주일 동안 브루스 형제가 가정교회 지도자들을 훈련하고 다시 그들의 지역으로 파송하였는데, 그 지도자 중 한 명이 자신이 속한 공동체로 돌아가 여섯 명의 MBB들과 말씀을 나누고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두 명의 낯선 사람이 들어와 자신들도 함께 듣겠다고 했고, 이야기를 듣던 중 이슬람이 아닌 믿음을 나눈다는 이유로 그 자리에 있던 형제들을 체포하였습니다. 여섯 명중 한 명의 형제가 그 상황으로부터 도망쳤고 브루스형제에게 이 상황을 알렸습니다. 그 것을 들은 브루스 형제가 그의 동생 두 명과 함께 일단 그 지역으로 찾아갔습니다. 가는 길에 그 지역에 잇는 브루스의 친구 가게에 잠시 들렸는데 잠시 뒤 그 가게로 총을 든 경찰들이 들어왔고 브루스 형제와 동생들을 둘러싸고 경찰서로 연행했습니다.

    브루스형제는 이미 경찰의 주요 관찰대상이었고, 전날 붙잡혔던 형제들을 심문한 결과 브루스 형제가 성경책을 그들에게 주었다는 것과 그들을 가르친 적이 있다는 것을 알아낸 경찰들은 브루스형제에게 질문들을 하기 시작했고, 케빈신부님과 그 외의 외국인들과의 관계도 묻기 시작했습니다. 경찰은 브루스 형제가 접촉하는 외국인들이 선교사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만, 실제적으로 브루스 형제는 이 나라에서 농장 사업을 하고 있기에 그 관계를 사업으로 설명 할 수 있었습니다. 그 이후에도 브루스형제는 나흘동안 경찰서에 조사를 받기 위해 가야했습니다. 그 심문과정 중에 경찰이 형제에게 폭력을 가하여 형제는 며칠간 앉을 수도 없게 되었지만, 하나님께서 많은 권위자들을 보내주셨고(브루스 형제는 이 나라를 구성하고 있는 부족들중 한 부족의 리더입니다. 이 형제가 속한 부족은 상당히 호전적이고 과격한 부족이어서 이 부족의 장로들이 경찰에 압력을 가하기도 했습니다.) 붙잡혀갔던 형제들에게 지혜를 주셔서 잡혀간 지 나흘 만에 모든 형제들이 풀려날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경찰서에 가던 날, 저도 함께 동행하였었는데, 대개 이 나라 사람들은 아시안계 사람들은 선교사라는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에, 저를 통해서 브루스 형제와 다른 백인계 외국인들과의 관계도 조금 더 부드럽게 인식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제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하던지요. ^^ 앞으로도 주님께서는 한국과 다른 아시안계의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나가실 것을 확신 합니다.

    형제가 경찰서에 다녀온 후 약 열흘 후 아침 일찍 형제가 저를 깨웠습니다. 그리고 대뜸 오래된 MBB형제중에 한 명이 총에 맞았다고 말하면서 급히 북쪽에 올라가 보아야겠다고 말했습니다. 이 형제는 오래된 MBB중의 한 명이었습니다. 이 일이 있기 일주일쯤 전에 미국이 북부 페샤와르라는 지역의 이슬라믹 학교를 알카에다 조직을 키운다는 이유로 폭격해 학생 80명이 죽은 일이 있었습니다. 많은 무슬림들이 매우 화가 난 상태였는데, 그 때에 이 형제가 모스크에 가서 흥분하여 기독교인들을 죽이겠다는 무슬림들에게 진짜 알라(이슬람에서 신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용어이기 때문에 크리스챤들은 하나님을 알라라고 부르지 않고 다른 용어로 바꿔부릅니다만 MBB들은 무슬림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이 용어를 그대로 사용합니다.)는 이슬람이 말하는 보복을 명하는 알라가 아니라 사랑의 알라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 한마디 했을 뿐인데 밤에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6명의 괴한에게 공격을 당한 것입니다. 아프가니스탄 국경 쪽에 있는 쿠에타 지역에서 일어난 일이었고, 다친 형제의 가족들은 전화가 없어서 연락이 되지 않아, 브루스 형제와 행크(브루스 형제의 동생) 그리고 제가 병원으로 찾아갔었습니다.

    정말 감사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 형제를 분명히 지키셨다는 것입니다. 목 뒷부분 두 번, 팔, 다리 등 네 군데의 관통상이 있으나 정말 신기하게도 뼈에 손상이 간 곳은 다리 한 군데뿐이며 나머지 세 곳은 살만 뚫고 지나갔다는 것입니다. 저는 아직도 목 뒷부분에 있는 총상을 생각할 때마다, 이것이 정말 가능한 일이었는지 신기하기만 합니다. 정말 단 1mm라도 안쪽으로 들어갔다면 이 형제는 그 자리에서 죽었을 것인데 하나님께서 지키셨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습니다. 다행히도 부상이 심각하지는 않으나, 이 형제가 아직 살아 있는 것을 알면 다시 공격 당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이 형제는 매우 불안해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카라치(브루스형제의 집이 있는 곳)의 병원으로 옮기려고도 해 보았으나, 쿠에타 경찰에서 보호를 해주겠다고 하여 그곳의 병원에 계속 머물고, 퇴원하던 날 눈에 띄지 않는 루트로 형제의 집까지 데려다 주었습니다.

    그 병원에서 있었던 한가지 부끄러운 일을 고백하고 싶습니다. 총을 맞은 형제가 입원한지 이틀째 되던 날에 브루스 형제와 같은 부족인 온몸에 화상을 입은 시크교도 여자가 병원으로 실려 왔습니다. 그 날이 마침 공휴일이어서 그 큰 병원에 의사가 한 명도 없었고, 의사들에게 계속 연락을 했으나 가난한 환자라고 해서 의사들은 오지 않았습니다. 여자 환자여서 가족들이 브루스 형제가 병실로 들어오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에 형제는 저에게 혼자 들어가 기도해 주고 오라고 하였습니다. 들어가서 그 자매를 보는 순간 저는 겁에 질렸습니다. 얼굴도 모두 화상을 입어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문드러져 있었고 그 극심한 고통에도 진통제 한 통 맞지 못해서 몸이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습니다. 손을 뻗어 기도하던 중 “손을 얹고 기도하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면 이 자매가 이렇게까지 아파하지 않을 것이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자매 주위에 가족들이 둘러서서 모르는 외국인인 저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고, 제가 하는 행동들을 살펴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상황에서 그 자매에게 손을 얹을 용기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손을 뻗어 기도하고 저는 그 병실에서 나왔지만, 그 밤 새 내내 저는 그 자매의 모습을 머릿속에서 지울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매는 그 다음날 아침에 죽었습니다. 그 때 저는 저의 믿음 없음과 용기 없음을 보며 하나님께서 일하시고자 해도 제가 순종하지 않으면 일하시지 않는 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제가 제한 했다는 자책감과 함께 그 자매를 제가 죽인 것이라는 죄책감에 한동안 힘들었습니다. 다음부터는 하나님의 능력을 제가 제한하는 일은 없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선교지에서 한번쯤은 겪는다던 그 외로움과 우울증이 저에게도 어김없이 찾아왔습니다. 아무래도 편히 이야기할 상대도 없고 여자 혼자 밖에 나갈 수도 없어서 며칠간 집에만 있다 보니 별의 별 잡생각을 다하게 되고, 아주 근본적인 물음에서부터 시작해서 외로움과 우울의 구덩이를 파기 시작 했는데, 나중에는 그 구덩이의 깊이가 너무 깊어 혼자 힘으로 빠져나올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사실 가기 전에 기도한 것 중에 두 가지가 저의 바닥을 보고 겸손해질 수 있도록, 그리고 가물어 메마른 그 바닥에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할 수 있는 그 시원한 빗줄기를 경험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과 그곳에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을 많이 볼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기도는 조심해서 해야 하는 것이라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첫 번째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바닥은 보여서 바짝바짝 말라가는데 빗줄기는 보이질 않아 어찌나 속이 타던지요. 아직도 먹여주거나 음식을 만들어 주지 않으면 먹을 수 없는 어린아이라는 것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공급처가 적다 보니.. (주일 예배라고 해도 함께 교제하고 말씀보고 기도하는 것이었고, 하다 보니.. 신부님의 말씀을 듣고 받아 먹던 때와는 달리 혼자 재배해서 키워서 음식 만들어 먹으려니 기술을 몰라 배고픔에 허덕이는 내 자신을 발견하고 겸손해 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한동안 그렇게 슬럼프에 빠져있는데, 크고 작은 일들이 계속해서 터지다 보니 결국엔 원망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왜 이렇게 힘들게 하시냐고, 제 감정 하나 추스리기도 힘이 드는데 왜 이런 일들까지 보게 하시냐고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나님께 불만을 토로하던 중 하나님께서는 제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의 기도에 응답한 것이라고, 내가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너에게 내가 이 땅에 이렇게 살아 역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제 마음 가운데 말씀하셨습니다. 브루스 형제도 같은 말을 했습니다. 이렇게 제대로 훈련 받는 훈련생은 처음 본다고, 하나님이 정말 많은 것들은 계획해 주신 것 같다고 저를 격려 해 주었습니다. 거의 한 달간의 슬럼프를 겪은 후에야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한국에 돌아오기 이틀 전에 브루스 형제의 집에 두 명의 전혀 낯선 무슬림이 찾아왔습니다. 이 형제를 쏜 사람들이 탈레반(국제 명 알카에다)라는 사실이 밝혀졌다며, 총을 맞은 형제에게 성경을 주고 가르친 리더를 찾고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물론 그 리더는 브루스 형제이지요. 그들은 브루스형제에게 리더를 찾고 있다고 말했지만, 이미 그들은 브루스 형제를 “아다”라고 불렀습니다. “아다”라는 말은 우르드 어로 가족의 큰 형 또는 큰 오빠를 지칭하는 말인데, 형제가 아닌 사람이 부를 때에는 영적인 리더를 뜻하는 말이 됩니다. 이미 그 낯선 사람들은 브루스 형제가 총을 맞은 형제의 영적인 리더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뜻이었고, 브루스 형제의 위치가 탈레반에게 파악이 되었다는 의미와도 상통하는 것이었습니다. 언제든 그들이 원할 때 공격할 수 있다는 뜻이었죠.

    그런 형제를 남겨두고 저는 한국에 돌아왔습니다. 지금도 그 곳 P국에서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다는 것은 엄청난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에서도 그들은 날로 더욱 담대합니다. 이런 모든 일들을 겪는 가운데에서 그들은 더욱 견고해 지고, 지키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바라보며, 지금 그들이 믿고 있는 예수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또한 하나님의 본체 시라는 것을 확증해 나갑니다.

    이들은 스스로를 무슬림이라고 부릅니다. 왜냐하면 무슬림이라는 뜻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메시아닉 모스크를 꿈꿉니다. 모스크 안에서 진정한 하나님의 말씀이 나누어지고 매일 5번씩 울려 퍼지는 방송에서 예수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원자라고 외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이들은 무슬림과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옷을 입고 같은 문화권 안에서 살아가고 같은 방식으로 기도하지만, 예수그리스도에 매인 바 되었으며 그 십자가의 사랑에 감동하여 그들의 삶을 드려 그 사랑을 전하고 그 복음을 전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들을 위해 계속적으로 끊임없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늘 주위에 도사리고 있는 모진 박해 가운데에서도 예수그리스도가 주님이라고 삶을 통해 외치고 있는 그들을 위해서 또한 아브라함으로부터 내려온 우리의 형제인 무슬림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탕자의 비유에서 형은 동생이 돌아왔을 때 기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망나니 같은 동생을 품에 안아주시는 아버지에게 나는 여태까지 아버지를 위해서 이렇게 평생을 순종해 왔는데 어찌 동생만을 위하시냐고 불만을 토로합니다. 형은 진정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몰랐던 것입니다. 우리도 같습니다. 진정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은 밖에 나와 잃어버린 동생을 기다리는 아버지와 함께 나와서 동생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발자국 더 나아가 그 동생을 찾으려고 돌아다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탕자의 비유에서 저질렀던 오해와 실수를 동생 된 입장에서 반복하지 않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형 이스마엘의 후손들이 우리가 누리는 동일한 은혜를 누리고 그 분의 구원 계획에 함께 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고 더 나아가 그 선교의 현장에 동참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요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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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 안응식

    2006.12.26 22:37

    新使行傳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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