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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읽어보고 숙고하고 기도합시다 -2.
  • 이웃집 따라 아이 망치지 않기 운동 - 양승훈(http://www.view.edu)

    저는 연구와 관련해서 화석이나 운석, 생체 표본 등을 전시하는 자연사 박물관에 갈 일이 많습니다. 밴쿠버 인근에는 제대로 된 자연사 박물관이 없지만 인근 앨버타에는 공룡 박물관으로서는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티렐공룡박물관이 있고, 미국에는 시카고 자연사박물관, 워싱턴의 국립자연사박물관, 뉴욕의 미국자연사박물관을 비롯하여 크고 작은 수많은 박물관들이 있습니다. 물론 유럽이나 호주에도 많은 자연사 박물관들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국립 자연사박물관은 없지만 경희대자연사박물관, 서대문자연사박물관,계룡산자연사박물관 등 개인이나 자치단체, 대학 등에서 설립한 소규모 자연사 박물관들은 여러 개 있습니다.

    국내외 많은 자연사 박물관들을 돌아다니면서 제가 관찰한 흥미 있는 사실은 관람객들입니다. 국내 박물관에는 어린아이들과 이들을 데리고 온 젊은 엄마, 아빠들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개중에는 아이들에게 전시물들을 설명해주는 엄마들도 있지만 많은 경우, 공룡이나 그 외 큰 전시물들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 위해 옵니다. 차근차근 설명문들을 읽으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드물게 손자의 손을 잡고 오는 할아버지들이 있기는 하지만 혼자 온 노인들은 거의 없습니다. 특히 할머니들만 오는 경우는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미국, 캐나다는 물론 유럽 등지의 많은 박물관을 돌아다니다 보면 관람객들 중에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비율이 상당히 높습니다. 학교에서 단체로 탐사여행을 오는 아이들을 제외한다면 아이들과 거의 비슷한 숫자의 노인들이 오는 것 같습니다.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들이 휠체어를 굴리면서 전시품 하나하나를 돌아보고 설명문들을 읽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그 분야의 글을 쓰거나 전문적인 연구를 하는 사람들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그 불편한 몸을 이끌고 왜 박물관엘 올까요? 도대체 저들의 마르지 않는 호기심의 원천은 무엇일까요?

    일반적으로 심리학자들은 호기심은 생득적인 것으로 기존의 인지구조와 새롭게 받아들인 정보 사이의 간격에 의해 생긴다고 합니다. 즉 호기심은 신기하고, 의외이며, 복잡하게 느껴지는 것을 접하게 되면 촉발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 이것은 호기심에 대한 절반의 설명일 뿐입니다. 아무리 기존의 인지구조와 새로운 정보 사이에 틈새가 있어도 인지구조가 살아있지 않으면 호기심이 생길 수 없습니다. 호기심(好奇心)은 말 그대로 진기한 것을 좋아하는 마음을 말하는데 여기서 좋아하는 마음이란 곧 살아있고 개방된 인지구조를 전제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째서 선진국 국민들은 우리들에 비해 나이가 들면서도 개방된 인지구조, 다시 말해 마르지 않는 호기심을 갖고 있을까요? 이것은 저들의 교육제도로부터 찾아볼 수 있습니다. 누구에게라도 공부라는 것은 힘든 것이지만 서양에서는 어릴 때부터 아이들에게 공부를 강요하지 않습니다. 물론 부모나 교사들이 공부를 격려는 하지만 아이들을 숨 쉴 틈도 없이 과외에 내몰지는 않습니다.

    유치원에서부터 시작해서 초등학교 저학년까지 아이들은 학교를 재미있는 놀이터라고 생각합니다. 이들은 친구들이 있는 학교 가는 것을 좋아하고, 힘들기는 하지만 공부는 즐거운 것임을 체험하면서 학교를 다닙니다. 중, 고등학교를 지나면서 점점 공부의 양이 많아지고 때로 과외도 하지만 그렇다고 호기심을 짓밟을 정도로 타율적이지는 않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도 여전히 오후 3시 전후가 되면 모든 학생들은 학교 일과를 마치고 귀가합니다. 대학부터는 엄청난 공부가 쏟아지지만 이 때는 이미 호기심이 굵은 나무가 되어 쉽게 시들지 않습니다.

    서양인들의 마르지 않는 호기심을 보면서 저는 한국인들의 과외문화를 생각해 봅니다. 어릴 때부터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타율에 젖은 공부를 하는 동안 파릇파릇 돋아나던 우리 아이들의 여린 호기심의 싹은 고사합니다. 그렇게 학교생활을 하게 되면 아이들은 공부에 대한 진절머리를 내고, 결국 지적으로 화석나 관솔이 되어 학교를 졸업합니다. 그래서 대학생이 되더라도 취직 시험 준비를 비롯하여 직업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것이 아니면 공부와 담을 쌓습니다. 그러니 어른이 되어서도 먹고 사는 데 관련이 없는 박물관 같은 데는 아예 가질 않습니다.

    어느 부모도 아이들을 망치기 위해 돈을 쓰고 싶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는 천금보다 귀중한 아이들의 호기심의 싹을 죽이기 위해 엄청난 교육비를 쓰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웃에 사는 철이 엄마가 그렇기 때문에 영미 엄마도 아이들을 화석화 시키는 대열에 합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문맹 퇴치 운동처럼, 기생충 박멸 운동처럼 어쩌면 우리에게 거름 지고 장에 가지 않기 운동, 즉 이웃집 따라 아이 망치지 않기 운동을 벌여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호기심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피조세계에 대한 선한 청지기가 되라고, 그리고 이웃을 사랑하는 도구로 삼으라고 주신 생득적인 은사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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