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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읽어보고 숙고하고 기도합시다 - 1.
  • * “네 토지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신현우 (성토모 자문위원,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대학교 신약학 교수)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한 사람이 예수께 질문했다. “선생님, 제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겠습니까?” 예수께서는 그에게 십계명을 지키라고 대답하셨다.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증거하지 말라, 속여 취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 사람은 대담하게도 이 계명들을 지키고 있다고 대답했다. “선생님, 이 모든 것들을 제가 어릴 때부터 지켰습니다”(마가복음 10:20).

    어린 시절부터 율법을 잘 지킨 이 사람을 예수께서는 사랑스럽게 여기신다(마가복음 10:21). 그러나 그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을 지적하신다. “가서 네 가진 것들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왜 이러한 지적을 하셨을까? 가진 것들을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주어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마가복음 10:22에 나온다. “그 사람은 토지가 많기 때문이었다.” 헬라어 kteema는 ‘재물’이라고 번역되기도 하지만 사도행전 5:1에서처럼 문맥상 토지를 가리킬 수 있다. 고대사회 속에서 재물이란 우선적으로 토지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가서 네 토지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고 명하신 셈이다.

    예수께서 보시기엔 토지가 많은 자는 계명을 잘 지키지 못하는 자이다. 도대체 어떤 계명을 어기는 것일까? “도적질 하지 말라”는 계명을 어기는 것이라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토지를 고루 분배하시고 토지를 영구 매매할 수 없도록 하셨다(레위기 25:23). 따라서 토지는 희년에 원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했다(레위기 25:28). 따라서 개인이 보유하는 토지가 많아질 수는 없었고, 오직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상황 속에서만 토지를 많이 가진 자가 발생할 수 있었다.그러므로 토지를 많이 가진 이 사람은 하나님의 법을 어긴 사람이다. 그는 남의 토지를 돌려주지 않고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도적질하는 사람이다. 따라서 십계명도 어기고 있는 사람이다.

    기업으로 물려받은 토지는 팔면 안 되겠지만, 그 이상으로 가지고 있는 토지는 한 때 다른 사람들의 것이므로 돌려주어야 한다. 그들은 누구인가? 바로 가난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토지를 잃은 후 가난하게 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토지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고 명하신 것이다.

    토지를 과다하게 보유하고 집을 과다하게 보유하는 것은 결국 토지를 갖지 못한 사람들 집을 갖지 못한 사람들의 소유를 도적질 하는 것과 다름없다. 이러한 행위는 십계명을 어기는 행위이다. 따라서 그러한 자들에게는 영생이 약속될 수 없다. 참으로 영생을 얻기 원한다면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 투기를 위해 보유하고 있는 집과 토지를 팔아 가난한 자들로부터 빼앗은 투기적 소득을 돌려주어야 한다. 내가 투기적으로 10채의 집을 사서 집값을 두 배 올렸을 때, 가난한 자들은 두배 오른 집을 사기 위해 평생 고생해야 한다. 그것은 가장 잔인한 도적질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도적질을 회개하지 않고 영생을 얻기를 바랄 수 있을까?

    예수께서는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고 하신다(마가복음 10:25). 부동산 투기자들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이처럼 어렵다. 그러나 예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을 포기하고 토지를 포기하는 자는 반드시 영생을 얻는다(마가복음 10:30). 구원의 확신은 그러한 자들을 위한 것이다. 그러한 행위는 믿음의 확실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성도들에게 토지문제는 단지 사회 윤리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도적질 하지 말라”는 십계명과 관련된 문제이며, 어떻게 구원을 얻을 것인가 하는 신앙의 문제이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을 따르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이다. 우리는 예수를 믿고 따르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해야 한다. “네 토지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남의 토지를 도적질하는 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우리는 토지를 택하지 말고 영생을 택해야만 한다.





    * ‘집값 잡기’보다는 불로소득 환수가 우선

    김윤상(토지정의시민연대 공동대표,경북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출처: <경향신문> 10월 31일자


    추병직 건설교통부 장관이 23일 “집값 불안을 막기 위해 기존 부동산 종합대책 추진과 함께 분당 신도시 규모의 신도시를 수도권에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밝히자 논란이 일고 있다. 서로 다른 시각과 결론이 대립하고 있지만 “집값의 상승은 막아야 한다”는 정책 목표에는 모두 동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옳은 정책 목표일까?

    집값은 건물값과 땅값으로 구성된다. 이 중 건물값은 주로 건축비에 의해 결정되므로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염려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집값이 아니라 땅값을 걱정해야 옳다. 그러나 모두들 ‘집값, 집값’ 하니까 편의상 우리도 땅값 대신 집값이라고 표현하기로 한다.

    집값은 이자율과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 1990년대에 비해 지금의 이자율은 반 정도이므로 집값이 두 배 정도로 올라가는 것은 이상할 것이 없다. 이자율이 연간 10%일 때 5억원을 빌리는 것과 이자율이 5%일 때 10억원을 빌리는 것을 비교하면, 차입금액은 두 배의 차이가 나지만 차주의 이자 부담은 동일한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런데도 왜들 집값 상승을 막아야 한다고 할까? 그 이유는, 위의 예를 뒤집어 생각하면 된다. 이자율 10% 시절에 5억원을 가진 사람의 이자 수입은 연 5천만원이지만, 이자율이 5%로 하락하면 이자 수입이 반으로 줄어들고 만다. 그러나 5억원으로 집을 사두면, 이자율 하락에 의해 집값이 10억원으로 올라가면서 5억원이라는 자본이득이 생긴다. 그러니 모두들 부동산에, 그 중에서도 상품성이 좋은 아파트에, 투자하려고 기회를 엿보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집값은 정상가격과 투기가격의 합으로 형성된다. 머지않아 10억원으로 오를 가능성이 있는 집이라면 현재 가치 5억원의 집이라고 해도 8억원 정도로 거래될 수 있다. 즉 정상가격 5억원에 투기가격 3억원이 더해진다.

    지금까지는 집값에 미치는 이자율의 영향만 고려했는데, 집값에는 그밖에도 미래의 주거가치와 세금도 작용한다. 예를 들어 현 정권이 교체되면 토지세율이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면, 투기가격이 더 커진다. 사회에 투기분위기가 조성되면 사태는 더욱 악화된다.

    그렇다면 정책 목표는 명백해진다. “집값을 잡자”가 아니라 “불로소득부터 없애자”가 되어야 한다. 불로소득이 없으면 투기도 없고 따라서 투기가격도 존재할 수 없다. 시장에는 실수요만 등장하고 주택 공급도 그에 맞추어 이루어진다. 집값은 정상적인 시장원리에 따라 형성되고 투기에 몰리던 자금은 자연스럽게 생산적인 부문으로 흘러간다. 따라서 누가 정권을 잡든 부동산 정책의 최우선 목표는 토지불로소득 없애기가 되어야 한다.

    토지불로소득을 없애는 가장 좋은 수단은 높은 세율의 토지보유세다. 참여정부의 부동산 세금을 ‘세금 폭탄’이라고도 비난하는 사람도 있지만, 지금보다 훨씬 더 높은 세율의 토지보유세를 도입해야 한다. ‘세금 폭탄’이 되지 않으려면 다른 세금을 감면하면 된다. 토지보유세의 우수성은 모든 경제 교과서에 다 나오므로, 몰라서 안 하는 것이 아니다. 싫어서 안 하거나 하고 싶어도 선거에서 표가 떨어질까 무서워서 못 하는 것이다. 제발 우리 모두 욕심을 버리고 상식과 원론으로돌아가자





    * 한국교회여! 정의, 오직 정의만을 추구하라:
      - 하나님나라의 정의는 한미 FTA 저지를 촉구한다

    한미 FTA 협상은 한국교회의 본질과 정체성에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한미 FTA 체결여부는 한국 정치․경제의 미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중대사임에 틀림없다. 부와 가난을 분배하는 정치․경제의 운용방식과 구조가 그에 따라 결정지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하여 신앙과 직결되지 않는다며 중립적 입장을 택해 침묵한다고 한미 FTA가 던지는 질문을 피해갈 수 있는 것은아니다. 그것은 실질적으로 한미FTA 체결에 명운을 걸고 있는 정치․경제계의 기득권세력에 동조하는 효과를 낳기 때문이다. 역사, 아니 그보다 하나님 자신이 반드시 한국교회의 침묵에 대하여 그 책임을 물을 것이다.

    하나님나라의 복음은 한국교회가 이 중대사안에 직면하여 정의의 입장에서 응답할 것을 을 요청하고 있다. 물론 기독교회의 최고가치는 사랑이다.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그 사랑에 힘입어 하나님과 이웃을 전적으로 사랑하는 것이 신앙의 본질이다. 그러나 사랑과 정의는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다. 사랑의 절정인 십자가에는 불의에 대항하여 하나님나라의 정의를온 몸으로 추구했던 예수님의 열정과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웃사랑은 당연히 불의하게 고통당하는 이들의 권익을 회복하고 보호하는 정의를 실현할 것을 강력하게 요청한다. 한국교회는 지금이야말로 ‘정의, 오직 정의만을 추구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철저히 순종해야 할 때이다. 그 때야 비로소 한국교회는 신앙적 정체성을 확립하고 살길을 찾게 될 것이다(신 16:20). 그렇다면 하나님나라의 정의는 한미 FTA에 직면한 한국교회에 무엇을 구체적으로 요구하고 있는가?


    1. 사회적 소자(小子)의 입장에서 사실 관계를 파악해야한다

    출애굽의 해방사건은 하나님께서 고통당하는 히브리 노예들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임으로 시작되었다. 노예제도는 바로로 대변되는 기득권자들의 눈에는 애굽경제의 총체적 효율성을 극대화한 탁월한 제도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노예들의 입장에선 자신들의 착취와 억압에 바탕을 둔 것이었기에 정의롭지 못한 것이었다. 이에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셔서 해방과 건설의 역사를 시작하셨다.한미 FTA가 한국사회에 미칠 영향에 대해 전문가 사이에도 의견이 나뉘고 있다. 정의는 그 중에서 고통당하는 사회적 소자의 삶의 자리와 관점에서 그리고 수준 높은 사회과학적 분석틀을 사용하여 파악된 사실관계에 무게를 둘 것을 요청한다.

    2. 한미 FTA가 심화시킬 양극화에 주목해야 한다

    한미 FTA가 한국사회에 아무리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온다고 해도 양극화 심화는 결코 피할 수 없는 결과일 것이다. 우리는 이미 지난 97년 IMF관리체제 이후 소위 영미식 자본주의 정책을 적극적으로 수용함으로 말미암아 사회적 양극화가 갈수록 심화되어 온 것을 온 몸으로 경험하고 있다. 설사 경제성장이 결국 양극화문제를 해결해 준다해도 사회적 강자는 부와 도덕적 우월감이라는이중축복을, 사회적 약자는 가난과 도덕적 열등감이라는 이중적 불행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나라의 정의는 총체적 효율성이라는 제단에 양극화라는 제물을 바칠 것을 요구하고 있는 한미 FTA를 저지할 것을 강력히 요청한다.

    3. 한미 FTA가 부추길 맘몬숭배와 경쟁절대주의를 직시해야 한다

    한미 FTA체결의 목적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미국과의 치열한 경쟁을 통해 한국경제의 성장동력을 강화하여 더 많은 부를 신속하게 축적하는데 있다. 그러나 하나님나라의 정의는 경쟁에 적절한 경계를 지우고 협력과 연대를 강조한다. 맘몬숭배를 거부하고 하나님을 섬길 것을 촉구한다. 한미 FTA저지는 하나님나라의 정의가 한국교회에 강력히 명령하는 바이다. 한국교회가 이 명령을받들어 정의, 오직 정의만을 추구하게 되길 간곡히 호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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