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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가 회복해야 할 세가지 기도 퍼옴
  • 조회 수: 1160, 2006-01-27 19:37:07(2006-01-27)
  • 생전의 대신부님께 이러한 기도를 배운 것을 감사드리며...
    <현재 한국의 영성운동들이 보충할 기도들>
    요즘은 보통사람들도 유전자 이야기를 많이 한다.
    한민족의 유전자도 독특한 부분이 많지만
    한국교회는 영성이라는 측면에서도 보존해야 할 부분이 많다.
    한국교회의 보배는 “땅에서 부르짖는” 기도의 영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는 예수님의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리신
    히브리서 5장7절의 전범(典範)을 따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르짖는 영성을 이어가야 한다.
    부르짖음 속에는 힘쓰고 애쓰는 기도가 녹아 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겟세마네의 핏방울 기도가 그 속에 담겨 있고
    남을 구원하는 그리스도의 기도가 그 안에 숨겨 있는 것이다.
    절박하게 소리만 크게 지르는 것이 아니라
    목청만 죽어라 울리는 것이 아니라
    내 전 존재가 와들와들 떨리면서 올려 드려야 하는 기도이다.
    그 전신의 진동은 나와 우리들의 고통이 내장(內臟) 속에서 비집고 나와
    하늘로 노란 기름처럼 엉겨서 올라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 죄를 고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이 죄에서 벗어 날 수 없는 우리를 대속하고 해방해 달라는
    “인간 쪽에서 하늘로 넝쿨처럼 뻗어 보낸” 손길인 것이다.
    그래서 한민족은 가톨릭도 프로테스탄트도 스스로
    복음을 나아가 맞아들이는 초유의 역사를 가지게 된 것이다.
    이는 “그리스도의 기도”다.
    왜냐 ?
    아무도 하나님을 찾지 않는 그 시기, 그 장소에서
    초월자(超越者) 하나님께 홀로 먼저 나아가는 기도이기 때문이다.
    (10년전 예수원에서 가진 수련회에서 나는
    초월자 아버지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몸의 모든 힘을 다하여 목숨을 바치며 나아가야 한다고
    설파한 일이 기억난다.)
    그러므로 한민족의 영성 중에 첫째로 중요한 부분은
    힘쓰고, 애쓰고, 부르짖는,
    세계를 위해 중보하는 그리스도의 기도인 것이다.
    이것은 공격하는 창과 검 같은 기도다.
    두 번째의 기도는 어머니와 같은 기도다.
    우리의 어머니와 할머니들이
    성심, 성의를 바쳐, 많은 기도의 제사를 드리셨지만
    이는 품는 여인의 난소(卵巢)와 같은 기도를 말한다.
    난소는 일생에 미리 배란(排卵)의 숫자가 결정되어 있다.
    어머니의 몸에서 극미(極微)의 난자(卵子)들이
    차례대로 자라나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여인들은 미래를 몸속에 품고 기도하는 제사장들이다.
    아이들과 가정과 민족과 세계의 미래가 그들의 비비는 손바닥에
    정화수 맑은 물에 비친 보름달님 같은 그들의 소원에 있었다.
    이러한 체온이 실린 인간적 정감의 기도가
    여인들이 자기들이 서야 할 어머니의 자리를 버리는 세태 속에서
    이제는 상실되어져 가고 있다.
    시간의 축을 자기의 영혼 속에 갈무리하여 품고
    생을 봉헌하며 섭리자(攝理者)이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영원한 승부(勝負)의 주인공들이 바로 여인의 모습인데
    주님께서는 교회를 여인의 모습으로 설계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주의 영광을 나타내고자 하는 모든 이들은
    시간의 축을 보듬고 역사를 품어 미래를 승부하는
    뱃 속에 자라는 태아를 느끼는듯 기도하는
    여인의 기도, 교회의 기도를 저버리면 안 된다.
    이 기도의 형태는 한민족의 심정 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으므로
    그 보배를 잘 지켜야 한다.
    그것은 내가 경건히 모두어 기도하는 두 손바닥 사이에
    따스한 체온같이 미래가 자라나오는 것을 느끼고
    내 사랑이 거기 쏟아 부어지는 기도인 것이다.
    이것은 주의 몸 된 “교회의 기도”라 이름 한다.
    세 번째는 “광대무변(廣大無邊)한 기도”로서
    보편자(普遍者), 편재자(遍在者)이신 하나님의 마음을 수납하는 기도다.
    이는 자기의 진실을 결국 성령님 안에서 만나고
    반드시 찾아내어 알게 인도해 주는
    씨토(Citeaux) 수도원의 침묵의 기도나
    14세기 동방정교회의 정적주의(靜寂主義, Hesychism)나
    17세기 서유럽 정적주의자들의 관상(觀想, Contemplation) 가운데
    마지막 단계에 들어가게 되면 만나게 되는 기도의 궁극적 형태다.
    깊은 겸손과 자기부인을 통해서만 이를 수 있는
    하나님의 마음을 배울 수 있는 기도다.
    그러나 한민족에게 있는 광대한 기도의 마음은
    영적인 부분도 깊이 감지하지만
    물질현상계의 영원, 무한한 시공간에 대하여
    하나님이 가지신 전능의 권세를 구체적으로 감지하는
    매우 독특한 측면이 있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 부분이 한민족의 교회 속에 지속적으로 전승되어 가게 해야 한다.
    이렇게 어렵고 심오한 기도를
    우리 같은 영적인 상놈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선물로
    나사렛 예수의 성령님이 임재하신 상태에서
    예수님의 마음이 덧입힌바 되어 저절로 배워 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보통 성도들의 생활에서 은혜의 체험이라고 부르는 현상이다.
    광대한 기도는 하나님의 전능 무한 영원하심을 알아
    참된 자녀의 성품을 회복하는 기도다.
    양자의 영을 받은 이들만 아는 일인데
    보통 중생의 체험을 한 이들이 정직한 영이 회복되었을 때
    감격 중에 삶을 살면서 경험하는 영적 생활이다.
    이는 욕심과 죄 때문에 이미 상실되어진
    자기 자신의 육신이나 정신에 대한 제어를 통해
    마음이 마음을 살피게 하여
    참된 인식을 회복하고자 하는 혼의 기도와는 다르다.
    혼의 기도는 내가 느끼기로는
    보통은 참선(參禪)과 같은 형태로 내재자(內在者) 하나님을 찾아가는 것이고
    깊이는 잘 모르는 일이지만 그 초입(初入)은 좀 알 듯도 한데
    하나님의 성령 외의 다른 존재들과 소통케 하는 혼란스러움이 끼어 있다.
    광대한 기도의 본질을 살피면
    이는 타력주의(他力主義)로 분류되는 종교적 현상이고
    또 돈오돈수(頓悟頓修)와 유사한 측면이 있는데
    한민족에게는 대승(大乘)의 여유와
    하나님의 개입을 마다 않는 타력(他力)의 수납과
    즉각적 깨달음이라는 돈오적(頓悟的)인 기적적 개입을 성령께 의탁하는
    조금은 타민족과 비교해 남다른 종교성이 온존되어 왔다.
    한민족은 이 세상에서 다스리는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어
    공동체적인 삶의 모범을 보여주는 길을 걸어야 한다.
    이것이 한민족이 마음의 기술에 있어서
    남보다 뛰어 났다는 선인들의 지적을 잘 살려내는 길이다.
    우리는 부르짖는 “그리스도의 기도”,
    어머니된 “교회의 기도”,
    하나님의 차원을 느끼는 “광대무변한 기도”를 잘 살리고
    한민족에 특유한 영성적 유전자를 잘 보존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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