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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성공회 제자교회대한성공회 제자교회

  • 2일차 강의를 듣고
  • 조회 수: 1223, 2005-03-04 15:51:17(2005-03-04)
  • 문득 신학을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좀 더 체계적으로 그 분의 말씀과 기록을 통해 하느님의 속성에 대해 제대로 알고 싶다는 생각이요...   피상적인 지식이나 체험 때문에 오는 혼동이 싫군요...  내 중심적으로 하느님을 만들어 놓고 그 곳에 빠져 있는 것도 하나의 우상이 아닌가 싶기도 하구요....  
    이번 사순절 강연이 저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줍니다.
    어제는 늦었지만 오는 길에 운전 중에도 '주님 제 마음이 닫히지 않도록, 부정적으로 바라보지 않도록 도와 주세요. 작은것에 걸려서 전체를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도록 도와 주세요' 라고 기도하면서 왔어요.  분주함을 신부님 기도로 가라앉히고 찬양, 그리고 말씀....

    ㅠ ㅠ....  또 걸렸습니다.  장관 때문에요...
    노무현대통령과 친하면 장관 되는 세상이 당연한 것에 걸렸구요...  같은 논리가 하느님 나라에도 적용된다는 것이 걸렸습니다. 우리 모두 장관 됩시다 라고 강조하시는 것 같아서 걸렸습니다. 이 곳에 초막을 짖고 살자던 베드로나, 부활 전의 예수를 따르던 제자들의 마음에 있던 '왕이 되시면 나도 한자리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그 인간적인 욕심과 뭐가 다를까? 하는 생각이 나를 걸고 넘어졌습니다. 하느님 나라에는 경쟁 논리가 없어야 하는데....  전부다 장관 되는 건 아닐 테고...
    그렇다면 치열하게 버리고 또 버리고, 결국 더 많이 버리는 사람이 장관 되는 건가?  장관은 한 명일텐데 그럼 나머지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거지?

    얼마 전 수요 예배 부산교구 이대용 주교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왕소금만 소금이 아니라 작은 소금도 소금이다. 라는 말씀....  주님은 작은 소금도 소금으로 인정해 주신다는 말씀...  얼마나 저에게 큰 위안이 되었던 말씀인지 모릅니다.

    왜 신학 얘기를 했냐하면,
    하느님은 믿음을 보고 아브라함을 축복하신 것이지 버린 것을 보고 축복한 것은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
    전지하시고 중심을 이미 아시는 하느님이 왜 구태여 아들의 가슴에 칼을 꽂기 전 상황까지 몰고 가시는지...
    물론 훈련시키기 위해서 라는 답은 저도 교육을 통해서 알고는 있지만...
    그렇다면 이미 다 아시는 하느님이 왜 에덴에서는 아담을 훈련시키지 아니하고 내어 쫒으셨는지...
    혹시 하느님은 장난꾸러기? (흑! ㅠㅠ  죄송)

    제가 이런 좀 쎈 강연을 들을 때마다 마음 속에 이성적으로는 긍정, 감성적으로는 거부하는 마음이 드는 것은 아마도 저에 대한 하느님의 계획이 사도직의 계승같은 그런 어마 어마한 것이 아니라서 그런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출애굽시 하느님께 모든 것을 올인한 모세와 같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모세 얼굴도 못 봤지만 가자면 가고 멈추라면 멈추었던 백성들도 동일하게 홍해를 건넜다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신실하신 주님이 너무 여러 모습으로 역사 하시는 것 같아 혼란스럽습니다. 한편으로 이렇게도 이해 했었지요... '나는 너희를 풀빵 찍듯 찍어내지 않았다. 하나 하나가 귀하고 소중하며 특별하단다. 자녀라는 신분은 똑같지만 너희는 다른 존재들이야...' 라고 말이죠.  그래서 이 사람에게는 이렇게, 저 사람에게는 또 저렇게 나타나기도 하고, 훈련도 시키는가 하면, 고된 시련도 주고,  축복도 주었다가...
    이렇게 그 분의 계획을 당신의 자녀들을 통해서 이루어 가고 계셨던 것이고, 지금도 진행 중에 있는 것인데, 그저 우리의 노력으로 그분이 특별한 자녀에게 특별하게 역사하신 사실을 아무에게나 똑 같이 적용시키고자 하는 것은 아닌지... 풀빵을 만들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도 하게되더라는 거죠...  

    꼭 양자 택일을 해야만 하는 겁니까? 나는 세상에 속한 사람입니까? 아니면 하늘에 속한 사람입니까?

    "나는 이미 구원받았습니다. 나는 새 사람입니다."라고 말하지만

    확실해?  하고 점점 큰소리로 물으면  
    "네"소리가 점점 작아지게 되더군요...ㅠㅠ

    예... 저는 믿음이 약한 사람입니다.

    믿음장이라는 히브리서 11장에서는 예수 천당 불신 지옥 같은 단호한 믿음의 경계를 보여주지만  저는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통해서 믿음의 분량을 이야기하고 그 믿음이 약한 이들을 돌보아 주어야 한다는 말씀에 위안을 받습니다.

    장로님 강의를 듣고  저의 바닥과 약한 믿음을 온라인을 통해 공유하는 것이 유쾌한 일은 아니지만, 때로는 우리가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지체들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겠다 싶어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올립니다.

    정보의 홍수 속에 무늬는 그리스도인인데 그릇은 작아서 담아낼 수 있는 것이 한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몸에 좋다니까 계속 먹어대다가 소화 불량으로 좋지 않은 속을 그럴듯한 얼굴로 가리고 있는데, 또 먹으라니까  "못해요!"라고 소리치는 나 자신을 보면서 말이죠....

    기도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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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 김장환 엘리야

    2005.03.04 16:37

    우선 하느님께서 베드로님의 정직함을 보시고 기뻐하시리라고 믿습니다.
    스스로 말씀하신대로 전체의 맥락보다는 작은 예화에 걸리신 것 같네요.
    이런 예는 어떨까요? 우리에게 자녀가 한명이든 열명이든 아니 그 이상이든 자녀가 많다고 우리의 사랑이 줄어들까요? 장관의 얘기는 그렇게 하느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아가는 자들을 주님은 사랑하시고 축복하신다는 말이라고 생각이 되네요.
    또한 주님은 우리의 중심을 아시지만, 또한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셨기에 우리가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하는 것을 침범하지는 않으시지요. 믿음은 우리의 의지적인 결단과 행동을 반드시 동반하는 것이기에, 스스로의 결단을 통한 행동이 우리의 믿음을 확인해 주고 그 믿음으로 하느님께서는 나를 통해 이 땅에 축복을 흘러보내는 일을 하시기에, 반드시 우리의 믿음은 행동으로 나타나야만 하고 그 실천을 통해서 세상이 주님을 보게 되는 것이지요.
    이사야 말씀이 기억납니다. 41장 14~16.
    문득 떠오른 생각을 적어보았습니다. 다음에 더 긴 대화로 함게 해요.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 김장환 엘리야

    2005.03.05 09:19

    또 장관에 관한 예는 사명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의 대사'라는 표현과 유사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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