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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성공회 제자교회대한성공회 제자교회

  • [2012년 3월 11일] 요한 2:13-22
  • 청지기
    조회 수: 1662, 2012-03-14 13:57:16(2012-03-14)
  •   사진을 하나 보겠습니다. 틀린 것과 옳은 것.

      이 사진을 본 이유를 짐작하시겠는지요?

      지금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로 사회적인 갈등이 첨예화되고 있습니다. 이 때 우리 크리스챤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기도해야 할지를 생각해 보고자 함입니다.

      해군기지 건설은 노무현 정부 때 자주국방을 기치로 논의되고 추진되었던 사안이라고 합니다. 작년 이재정신부님이 통일 특강 오셨을 때, 여쭤보니 국제적인 관계가 얽혀 있는 문제라 쉽지 않은 사안이라고 하시더군요. 추진하게 되는 어쩔 수 없는 논리가 있다는 것이죠. 다만. 진행절차와 합의 과정이 잘 되어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크리스챤들은 정치적인 관계나 세상의 논리가 아닌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하는지? 주님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를 묻고 고민하고 기도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이 역시 어려운 문제입니다. 수많은 성직자들이 반대집회를 할 때 서경석목사같은 분은 찬성집회를 하는 것을 봅니다. 같은 신앙인이지만 너무나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미국의 아버지 부시대통령이 성공회신자였습니다. 아버지 부시대통령이 여러 논리와 명분으로 걸프전을 일으킬 때 미국성공회 주교에게 와서 자문을 구하고 축복 기도를 부탁했다고 합니다. 그때 미국성공회 주교는 전쟁은 하느님의 뜻이 아니니 전쟁을 일으키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 부시는 빌리 그래함 목사님에게 가서 축복기도를 받았다는 애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이렇듯 성경을 읽고 해석하는 관점이 다르면 그에 따라 기도도 달라지고 삶도 달라집니다.

      제가 읽은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은 손수 지으신 창조질서를 잘 보전하라고 우리를 청지기로 세우셨습니다. 모든 것은 다 하느님의 것이고 우리는 다만 관리인일 뿐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자신이 주인이고 최고인양 피조세계를 탐욕에 따라 개발해오는 죄악을 범해 왔습니다.    

      오늘 본 그림은 간단하지만, 성경적인 관점을 알게 해줍니다.

      바라기는 자연도 최대한 보전하면서 국익을 위한 최선의 길이 무엇인지를 더 검토하고 대화하여 갈등이 잘 극복되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본문에 따라 설교를 하기 앞서 성공회기도서에 있는 기도문으로 기도하고 말씀을 간단히 나누겠습니다.
      
      기도 : 창조주 하느님,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우리에게 이를 돌보라 명하셨나이다. 비오니,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어 어리석은 욕심을 버리고 자연과 환경을 파괴하지 않고 주님의 창조질서를 보전하게 하소서.

      오늘 복음을 보면, 예루살렘 성전 안에 장사꾼들과 환전상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성전 안에 있게 된 명분은 그럴듯할 것입니다.

      제사의식을 드리러 오는 사람들에게 흠이 없는 제물을 제공해 주고 또 로마의 화폐를 사용하는 시민들이 성전에 바칠 유다인의 화폐로 바꿔주는 등 성전제사를 통한 예배에 편리를 제공하자는 명분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모든 편의 제공이 하느님께 진정한 예배를 드리는 성전의 본질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소나 양이나 염소를 드릴 재력이 없어 비둘기를 가지고 오면, 제사장들이 심사해서 흠이 있다고 퇴짜를 놓습니다. 그리고는 시중 가격보다 몇 배 비싼 가격으로 비둘기를 팝니다. 로마 화폐를 성전세를 바칠 유대 화폐를 바꿔주면서도 폭리를 취합니다. 그리고 그 이윤은 성전계급들인 제사장들과 사두가이파 사람들이 가져갔던 것입니다.

      겉으로 드러난 명분은 그럴듯해보이지만, 그속에는 사람들을 수탈하는 탐욕이 감춰져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당시 예루살렘 성전에서 보여주는 모습이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이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시어 양이나 소나 다 성전에서 쫓아내고 돈을 쏟아내시고 상을 엎으셨습니다.

      우리는 늘 예수님을 사랑 자비 온유 등의 부드러운 이미지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오늘 이 장면에서 예수님의 얼굴은 어땠을까요? 가난한 사람들의 등을 쳐 먹는 종교귀족들을 향해 분노하고 표효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분명합니다.
      회복! 본질의 회복! 원형의 회복!입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

      착취의 수단이 되어버린 성전 제사, 마음은 없이 형식화되어버린 제사가 드려지는 성전 시대를 끝내고 성전의 본질인 참된 예배가 회복되는 새로운 시대를 여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이 외치십니다.
      19절, 예수께서는 "이 성전을 허물어라.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하고 대답하셨다.

      무슨 말입니까?
      21절,  그런데 예수께서 성전이라 하신 것은 당신의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예수님은 자기 자신을 희생제물로 바치시어 죄로 죽은 우리의 영혼을 살리시고 새롭게 하셨습니다. 자신이 성전이 되시어 자기 자신을 통해서 누구든지 하느님과 화해하게 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하느님과 화해한 사람들 속에 성령으로 거하시며 타락한 피조세계를 회복하시는 구원의 일을 행하십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고전 6:19-20, 여러분의 몸은 여러분이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성령이 계시는 성전이라는 것을 모르십니까? 여러분의 몸은 여러분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 하느님께서는 값을 치르고 여러분의 몸을 사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자기 몸으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십시오.

      더 이상 자기 탐욕을 위한 삶이 아닌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삶이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원형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죽고 예수님이 내 안에 사시어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능력으로 타락한 피조세계를 회복시켜가는 삶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죄의 고백으로 함께 읽은 십계명이 오늘 1독서 출애 20:1-7말씀인데, 십계명은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삶의 원형을 제시합니다.

      십계명은 400년 넘게 애굽에서 종살이하여 그저 노예의식에 사로잡혀 하느님도 잘 모르고 사람과 사람, 사람과 피조세계가 서로 더불어 살아가는 것을 알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떤 가치와 기준으로 살아가야 할지를 제시해 주시는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 사랑으로 사람과 사람, 사람과 피조세계가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사는 것이 인간의 본질이고 삶의 원형임을 알게해 주십니다.

      십계명을 잠깐 살펴보면, 하느님의 관심이 평화와 안식에 있음을 알게 됩니다.

      4절, 본떠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라!
      애굽에서 노예로 시달린 일이 이런 우상을 만드는 것이었기에...

      10절, 안식일에는 가축까지도 식객까지도 쉬게하라!
      안식일이 안식년으로 안식년이 희년으로 발전하며 참된 구원과 해방의 길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특별히 17절을 보면, 외적인 행위의 금지가 아닌 인간 내면을 다루는 말씀을 주십니다. “탐내지 말라!”

      이 탐심이 인간의 원죄였습니다.
      창세 3:6, 여자가 그 나무를 쳐다보니 과연 먹음직하고 보기에 탐스러울 뿐더러 사람을 영리하게 해줄 것 같아서, 그 열매를 따먹고 같이 사는 남편에게도 따주었다. 남편도 받아먹었다

      이 탐심이 인생으로 하느님 앞에 범죄하게 하고 죽음을 가져옵니다.

      야고보 1:15,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자라면 죽음을 가져옵니다.

      그래서 제사법을 율법으로 주시며 탐심으로부터 해뱅된 인간의 삶을 바라셨습니다. 희생제물이 죽는 모습을 보며 죄로 인해 내가 죽어야 함을 깨닫게 하시고 죄사하시는 주님의 은혜로 탐심이 아닌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삶을 바라셨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 희생제사가 드려지는 성전이 본질을 잃어버리고 장사하는 집으로 타락한 것도, / 인간들이 사람을 노예화하고 피조세계를 파괴하는 것도, / 십자가의 복음으로 구원받은 신자들조차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지 못하고 자기 욕심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는 이유가 바로 이 탐욕 때문임을 보게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사순절을 보내는 우리가 이 탐욕을 버리고 창조의 원형으로 회복되기를 바라십니다. 에덴에서 하느님을 예배하고 모든 피조세계와 더불어 살았던 창조의 원형을 회복하기를 원하십니다.

      어떻게 우리가 원형으로 회복될 수 있을까요?

      하느님께 예배드리던 예루살렘 성전의 본질을 회복하면 됩니다.

      먼저, 우리의 중심에 하느님의 말씀이 충만해야 합니다.
      예루살렘 성전 가장 중심에는 십계명이 있었습니다.지성소 안에 언약궤 속에는 아론의 지팡이와 돌판이 두 개 놓여 있었습니다. 이렇듯이 이제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이 된 우리의 가장 중심에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육신이 되신 말씀입니다. 성령님은 진리의 성령이십니다.

      세상의 지식, 논리, 명분, 철학 등이 아닌 오직 생명의 말씀 진리의 말씀이 내 안에 가득해야 합니다.
      
      골로 3:16, 그리스도의 말씀이 풍부한 생명력으로 여러분 안에 살아 있기를 빕니다. 여러분은 모든 지혜를 다하여 서로 가르치고 충고하십시오. 그리고 성시와 찬송가와 영가를 부르며 감사에 넘치는 진정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찬양하십시오.

      이것이 성경통독과 묵상과 암송의 이유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예루살렘 성전은 희생제사가 드려지는 곳입니다. 죽을 수 밖에 없는 자신을 대신해서 희생제물에 안수해서 자신의 죄를 전가시키고 그것을 잡아 태우고 피를 뿌렸습니다. 이 모든 희생제사를 통해 죄사하시는 하느님의 은혜를 되새겼던 것입니다.

      이렇듯이 우리는 더욱 십자가를 바라보며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치르신 예수님의 은혜를 되새겨야 합니다. 십자가의 보혈을 의지해야 합니다.
      히브 9:14,  하물며 성령을 통하여 당신 자신을 하느님께 흠없는 제물로 바치신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의 양심을 깨끗하게 하는 데나 죽음의 행실을 버리게 하고 살아 계신 하느님을 섬기게 하는 데 얼마나 큰 힘이 되겠습니까?

      주님을 바라보는 것이 기도입니다.

      진리의 말씀으로, 십자가 보혈의 능력으로 우리가 원형을 회복하고 삶의 본질을 살아갈 때 우리를 통해 이 땅이 회복되고 모든 피조세계가 하느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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