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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성공회 제자교회대한성공회 제자교회

  • [2010년 7월 25일] 루가 11:1-13 그리스도인은 기도하는 사람!
  • 청지기
    조회 수: 1420, 2010-07-26 11:25:56(2010-07-26)
  •   모든 크리스챤들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것임에도 소홀히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기도입니다.

      확실히 하느님은 우리의 모든 필요들을 아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전히 기도해야 하는 이유는, 기도함으로 우리의 태도가 불평에서 찬양으로 바뀌고, 우리 삶을 향한 하느님의 계획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많은 크리스챤들이 기도하지 않음으로, 우리의 삶을 향한 주님의 계획과 사랑을 알지 못한 채 감사보다는 원망과 불평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비극입니다.

      성경을 보면 제자들이 기도하고 있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반면에 예수님은 기도하는 것이 늘 하시던 대로의 습관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정한 장소, 정한 시간의 기도가 그 삶의 중심에 있으셨기에 용기있는 사랑의 삶을 살아가시며 하느님의 뜻을 완성하는 가장 모범적인 삶을 살아가셨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하느님의 계획을 성취해가며 감사가 넘치는 인생을 살고 싶으신가요?

      여러분에게는 정한 장소, 정한 시간의 기도를 시작하십시오.

      오늘 복음을 보면, 오늘도 예수님은 기도하고 계셨습니다. 그때 제자 중 하나가 세례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준 것 같이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오늘 주님께서 말씀하신 기도의 가르침을 통해 기도에 관한 세 가지 사실을 마음에 새기며 기도의 삶을 새롭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1. 우리의 기도는 아버지께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께 기도한다고 하지 않으시고 아버지를 부르십니다.
      2절, 아버지 /  13절,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느님, 즉 신은 많습니다. 모든 종교마다 신이 있고 모두 하느님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모든 종교에 기도가 있고 그 종교의 기도 대상이 바로 이 하느님들입니다.
      하지만 기독교에서 우리 기도를 들으시는 분은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 사랑의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특권은 오직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만 주어진 것입니다.
      요한 1:12, 그러나 그분을 맞아들이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다.

      기도가 아버지께 드리는 것이라는 말은 ‘나’라는 존재가 창조주이신 절대자 하느님의 자녀라는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의 기도에는 예수님을 통해서 회복된 아버지와 자녀라는 사랑의 관계가 전제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확신있고 능력있는 기도가 시작됩니다.

      <미국의 남북전쟁이 한참일 때, 백악관 앞에 공원 벤취에 한 장교가 시무룩하게 앉아 있었다. 그 때 한 소년이 그 장교에게 가서 ‘왜? 이렇게 울상으로 앉아 있냐?’고 물었다. 장교는 고향에 어머님이 위독하셔서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전쟁 중이어 귀대 명령을 받을 수 없어 슬퍼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그 소년이 자기를 따라오라고 했다. 소년은 백안관 뒤뜰로 들어가더니 문을 지키는 군인에게 인사하고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몇 개의 문을 지나 한 문을 노크하고 들어가더니, 반갑게 맞이하는 한 신사에게 말했다. ‘아빠, 아빠면 이 아저씨의 문제를 들어줄 수 있는 같아 함께 왔어요. 이 아저씨의 소원을 들어주세요.’ 바로 이 신사가 당시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링컨이었다.>
      이것이 자녀의 특권입니다.  우리가 지닌 특권입니다.

      주의기도 뒤에 나오는 예수님의 비유에서도 이것을 말해줍니다.
      “이렇게 우정만으로는 일어나서 빵을 내어주지 않겠지만 귀찮게 졸라대면 마침내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청을 들어주지 않겠느냐?”

      “귀찮게 졸라대면”, ‘그 강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소용대로 주리라.’
      원어 ‘아나이데이아’ 란 말은 수치심을 상실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당시 사회가 명예를 최고의 가치로 여겼던 것에 비추어 보면, 수치심을 상실한다고 하는 것은 당사자에게는 매우 치명적인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는 기도를 가르치시면서 수치심을 상실할 정도로 뻔뻔스럽게 강청하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하느님 앞에서 수치심을 상실할 정도로 뻔뻔스럽게, 귀찮게 졸라댈 수 있는 존재가 누구겠습니까?

      사랑받는 아들 딸은 부모 앞에서 수치심이 없습니다. 비록 잘못한 일이 있더라도 언제든지 용서받을 수 있고, 뭐 잘한 일이 없어도 언제나 뻔뻔할 정도로 아빠에게 요구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 4:16, 그러므로 용기를 내어 하느님의 은총의 옥좌로 가까이 나아갑시다. 그러면 우리는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을 받아서 필요한 때에 도움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용기를 내어’ = 담대하게

      기도가 멈추게 되는 많은 이유는 사랑으로 우리를 용서하시고 언제나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아버지를 보지 않고 연약한 자신을 보기 때문입니다.

      죄책감, 자괴감 등 자신의 연약함으로 인해 기도를 멈추게 됩니다.
      ‘나 같은 죄인이 감히 어떻게?’
      ‘뭐 이런 것까지도 기도해야 하나?’
      ‘과연 들어주시기나 하겠어?’

      “하느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이유가 우리가 정직하기 때문이 아니고, 우리가 고통을 겪고 있기 때문도 아니라 예수님께서 받으신 고난 때문임을 기억해야 한다.” - 오스왈드 챔버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공로로 죄사함 받고 하느님의 자녀된 우리는   우리가 하느님께 합당한 거룩한 삶을 살아가지는 못해도 예수님의 공로를 의지하여 하느님 앞에 나갈 수 있습니다. 내가 바로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비록 연약함이 있을 지라도 하느님의 자녀된 자로서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자녀의 특권이고 기도자의 자세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말은 하느님이 아버지되심에 대한 믿음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그분의 자녀가 된 나의 정체성에 대한 확신입니다. 이것이 강하면 강할수록 우리의 기도는 강해진다.

      2. 성숙한 기도는 ‘아버지의 나라와 아버지의 뜻을 구하는 것’입니다.

      어렸을 때는 자기 소원 성취가 우선순위이죠. ‘우는 아이 젖 준다’는 말은 하느님 아버지와 우리와의 관계에서도 적용됩니다. 아버지되신 하느님은 자녀된 우리의 소원을 들어주십니다.

      그러나 신앙이 성장하고 성숙하게 되면 우리의 기도하는 내용이 달라집니다.

      하느님 아버지의 계획을 알게 되며 주기도문에 나와 있듯이 아버지의 나라가 임하는 것이 기도의 우선순위가 됩니다. 그리고 어떤 기도이든지 하느님의 나라의 관점으로 기도하게 됩니다.

      하느님 나라의 관점이 없는 기도, 아버지의 뜻과 상관없는 기도는 허다한 경우 자기만족을 위한 소원 성취의 기도입니다.

      이런 기도는 사실 모든 종교에서 하는 기도와 같습니다. 기복적인 기도, 샤머니즘적인 기도라는 말입니다.

      우리교회에 고3이 많습니다. 제 딸도 고3입니다. 이제 수능이 다가오면 여기저기에서 수험생을 위한 기도를 집중적으로 드리게 됩니다.
      ‘수험생을 위한 100일기도’ 가까운 조계종 보적사에서도 100일기도를 드리고 도처에 있는 교회에서도 수험생을 위한 100일 기도가 드려집니다.
      기도의 내용도 동일합니다.
      ‘내 자식이 시험 잘 봐서 좋은 대학 들어가게 도와주세요.’

      이렇게 기도하는 것이 잘못됐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자기소원성취를 위한 어린 아이 단계의 기도입니다. 성숙한 기도가 아닙니다. 하느님 나라의 관점이 빠져있기 때문입니다.

      보다 바른 기도는 당장의 시험의 결과에 집중하기 보다는, 자녀의 삶을 통해서 하느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하느님 아버지, 아버지께서 제게 맡겨주신 자녀가 하느님의 계획대로 진학하고 준비된 인생이 되어 하느님께 쓰임 받는 삶을 살게 해주세요.’

      이것이 하느님 나라의 관점에서 올려드리는 기도입니다.
      이런 기도를 드리는 사람은 혹 자식이 바라던 대학에 낙방하고 당장은 실패하는 것 같아도 기도를 멈추지 않습니다. 하느님이 맡겨주신 자녀를 향한 하느님의 선한 계획을 믿기에 꾸준한 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다.

      많은 목회자들이나 신자들이 자기가 섬기는 교회가 성장하기를 원합니다. 저도 목회자로서 제가 섬기는 교회가 성장하고 부흥하기를 바라며 기도합니다.  
      
      목회자들은 만나면 은근히 ‘몇 명 출석하냐? 재정은 얼마나 되냐?’ 물어보며 비교합니다. 이런 비교 속에서 제가 ‘큰 목회한다고 우쭐되고 싶어서? 대접받고 싶어서?’ 그래서 성장하기를 원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것은 철저히 세속적인 것이고 기복적인 기도가 될 것입니다.

      사실 교회를 위한 하느님 나라의 관점의 기도는 교회가 숫자가 늘어나는 성장을 위한 기도보다는 교회가 이 땅에 하느님의 나라가 임하도록   교회다와지는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교회로 치면, 주님이 주신 다윗비전-모세비전-예루살렘교회비전-안디옥교회비전-네스트제너레이션비전-부리스카아퀼라비전 등이 성취되어 건장한 주님의 교회로 주님께 영광 돌리는 교회가 되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느님 나라의 관점에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전 영역에 아버지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것이 성숙한 기도이고 바른 신자의 삶입니다  

      3. 우리가 하느님을 아버지로 부르며 아버지의 나라를 구하는 기도를 드릴 때 우리에게 주님이 주시는 축복이 있습니다.

      1) 하느님이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십니다.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사실 하느님의 나라를 구하는 기도는 우리의 삶을 가장 안정되게 합니다.
      보십시오. 어린아이들이 자의 소원을 이루어달라고 떼를 쓸 때 그 바라는 것이 자기에게 유익하지 않은 것이 허다합니다. 그런데 하느님나라를 구하면 하느님이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십니다.

      마태오복음을 보면 주의기도를 가르쳐주시기 전에 예수님이 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태 6:8-10, “너희의 아버지께서는 구하기도 전에 벌써 너희에게 필요한 것을 알고 계신다. 그러므로 이렇게 기도하여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온 세상이 아버지를 하느님으로 받들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기도하는 삶이 얼마나 든든한 삶입니까?

      2) 그리고 이렇게 꾸준히 기도할 때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구하는 사는 더 좋은 것, 성령을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삶을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충만한 삶은 이 땅에서 하느님의 나라를 누리는 삶을 살게 해 주십니다.
      로마서 14: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개역개정]
      
      그리고 성령님은 나를 하느님 나라의 증인으로 살게 하십니다.
      사도 1:8, 성령이 너희에게 오시면 너희는 힘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뿐만 아니라 땅 끝에 이르기까지 어디에서나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기도한대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주시어 실천적인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십니다.

      “하느님께 어떤 것을 간구하면서 그저 앉아만 있다면 하느님을 모욕하는 것이다. 우리는 기도하면서 또한 일해야 한다. 경건과 일은 함께 간다.
      건강을 위해 기도한 뒤 늦은 밤에 소화하기 힘든 만찬을 먹으러 간다면 그 기도는 하느님을 무시하는 것이다.
      옥상의 물탱크가 열린 것을 알면서도 내버려 두는 자는 가족의 안전을 위해 기도할 자격이 없다.”   - 드윗 탈미지

      기도란 하느님의 자녀된 우리의 특권입니다.
      그런데 기도하지 않는다면 예수님이 십자가의 희생으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을 무가치하게 내팽개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기도하지 않는 사람들은 자기 힘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 악한 자이고, 교만한 자이고, 하느님을 눈앞에 두고도 하느님을 거역하는 자들입니다.

      정한 시간, 정한 기도로 자녀된 특권을 누리시길 축원합니다.
      아버지되신 하느님은 우리의 소원을 응답하시며 그 신실하신 사랑을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이렇게 꾸준히 기도하면 하느님의 계획을 깨달아 알게 되며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살기 시작합니다.
      믿음이 자라나고 성숙하게 됩니다.
      그러면 이제는 자기의 소원 성취를 위한 기도가 아니라, 아버지의 나라 아버지의 뜻을 구하는 기도를 드리는 성숙한 신자로 주님 앞에 서게 됩니다.
      하느님의 나라를 구할 뿐만 아니라, 의와 평강과 희락의 삶으로 하느님의 나라를 누리는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이 됩니다.
      
      오늘은 성공회중보기도회가 있는 날!
      이 한주는 전도여행을 위한 특별기도회가 있는 한주!
      우리가 떠나는 전도여행은 기도원정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하느님의 나라를 경험하고 누리는 가장 복된 자리인 기도의 자리로 초대하고 계십니다. 오직 끓고 기도함으로 풍성한 하느님을 누리는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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