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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성공회 제자교회대한성공회 제자교회

  • [2010년 2월 28일]필립 3:17-4:1 우리는 모방을 위해서 부름 받았다.
  • 청지기
    조회 수: 1832, 2010-03-02 11:51:10(2010-03-02)
  •   많은 분들의 경험도 그러하시겠지만, 제가 성공회에 와서 경험한 성공회의 예배는 환상 그 자체였습니다. 그리고 성공회 여러 교회를 보아도 같은 예전으로 드리는 예배여서 대한성공회의 예배는 전통적인 예배 외에는 없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면서 습관적으로 예배를 드리는 저를 보았습니다. 전례 성가도 외우고 순서도 외우고 있으니까 머리로는 딴 생각을 하고 마음은 딴 데 가있어도 입과 몸동작으로는 예전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신대원을 졸업하고 전도사 부제 시절에는 주일예배가 일이 되어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자가 아닌 분주한 일꾼으로 지냈습니다.

      이렇게 예배 가운데 하느님의 임재를 경험하지 못하고 있던 즈음에 관할사제셨던 신부님이 저에게 예배갱신세미나를 다녀오라고 하셨습니다. 벌써 13-4년 전 일입니다.

      ‘경배와찬양’에 관한 세미나였습니다. 전통적인 교회 안에서 새로운 예배인 경배와 찬양을 도입하여 예배 갱신에 성공한 교회 목회자들의 간증과 강의였습니다.

      찬양을 본 프로그램 전에 있는 준비순서로만 여기던 때에 찬양 자체가 주님께 드리는 예배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찬양을 드리는 가운데예전적인 예배에 참여하면서 느꼈던 감동 이상의 하느님의 임재를 경험했습니다.

      박경조신부님은 악보도 볼 줄 모르고 악기로 다룰 줄 모르는 저에게 찬양예배를 맡아서 시작하라는 미션을 주셨습니다.
      그 때 결성된 팀이 오늘 저희 교회 찬양팀의 원조입니다.
      찬양예배를 정착시키기 위해서 거의 매주 목요일에는 올내이션스 경배와찬양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찬양예배의 흐름, 찬양 리더의 역할,  찬양팀의 구성과 역할 등을 살펴보며 배웠습니다. 그때 신자회장이신 강인구 베드로 교우님도 함께 자주 참석했었습니다.

      그렇게 앞서간 경배와찬양예배를 보고 따라하면서 찬양예배를 도입하게 되었습니다.

      또 박경조신부님은 전통적인 예배가 아닌 전혀 다른 새로운 스타일로 예배를 드리는 싱가폴 성공회 교회를 다녀오게 하셨습니다.
      
      성령의 임재가 충만한 찬양으로 주일 예배드리는 싱가폴 성공회 교회를 보면서, 성공회도 꼭 전통적으로만 주일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고 새로운 도전을 받기도 했습니다.

      3년 전에는 성공회의 본산인 영국에 가서 전통과 현대 등 다양한 스타일로 예배드리는 영국교회를 돌아보면서 본질적으로 하느님의 임재가 충만한 예배들 드리기 위해서 어떤 스타일만을 고집하거나 형식에 매이지 말아야 하고 언제든지 변화할 수 있는 넓은 마음과 정신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성공회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관용이 신앙의 특징입니다.

      제가 이렇게 서론을 길게 말씀드린 이유는 교우 여러분께서 우리교회의 예배스타일에 어떤 배경이 있는지를 알게 해 드리고 싶어서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모방을 위해서 부름받았다.’라는 오늘 설교의 제목을 이해시키기 위함입니다.

      모방이라는 단어에 느끼는 감정은 대부분 부정적일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우리 삶의 모든 분야에서 발전이 있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모방입니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다.

      요즘 음식점을 보면 거의 다 프랜차이즈 지점들입니다. 원조가 있고 지점들은 그 원조가 가진 노하우를 그대로 카피하여 영업을 합니다.

      공부도 잘하려면, 공신들의 공부 노하우를 배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 둘째 딸이 ‘노트 필기하는 법’이라는 책을 사달라고 하더군요.

      앞서 말씀드린대로 오늘 저희교회가 드리는 예배도 오랜 시간 교회 안에서 경험된 다양한 모습들을 보고 모방하면서 실험해가고 있는 예배스타일인 것입니다.

      신앙의 성장과 성숙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모방은 신앙인으로 건강하게 성장하고 성숙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에페 5:2, 그리스도를 본받아 사랑의 생활을 하십시오.
      필립 2:5, 여러분은 그리스도가 지니셨던 마음을 여러분의 마음으로 간직하십시오.

      우리는 그리스도를 모방하도록 부름 받은 존재입니다.
      신앙의 목표는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입니다.
      중세에 출간된 토마스 아 캠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라는 책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많이 읽히는 기독교 고전입니다.

      ‘모방한다.’, 즉 ‘본 받는다.’는 말은 글자를 배울 때 글자에 습자지를 대고 글자를 그대로 쓰는 베끼는 것을 말합니다.
      원형을 그대로 베끼는 반복을 통해서 글자를 습득하듯이 신앙도 끊임없이 그리스도를 보고 그대로 행하는 훈련이 반복되어야만 성장하고 성숙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매일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하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내 생활 속에서 주님을 카피하는 것입니다.
      너새이얼 호손이 쓴 ‘큰 바위 얼굴’이라는 단편소설의 스토리를 아실 것입니다.
      <남북전쟁 직후, 어니스트란 소년은 어머니로부터 바위 언덕에 새겨진 큰 바위 얼굴을 닮은 아이가 태어나 훌륭한 인물이 될 것이라는 전설(傳說)을 듣습니다. 어니스트는 커서 그런 사람을 만나보았으면 하는 기대를 가지고, 자신도 어떻게 살아야 큰 바위 얼굴처럼 될까 생각하면서 진실하고 겸손하게 살아갑니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돈 많은 부자, 싸움 잘하는 장군, 말을 잘하는 정치인, 글을 잘 쓰는 시인들을 만났으나 큰 바위 얼굴처럼 훌륭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니스트의 설교를 듣던 시인이 어니스트가 바로 ‘큰 바위 얼굴’이라고 소리칩니다. 하지만 할 말을 다 마친 어니스트는 집으로 돌아가면서 자기보다 더 현명하고 나은 사람이 큰 바위 얼굴과 같은 용모를 가지고 나타나기를 마음속으로 바란다는 스토리입니다.>

      오늘 서신 말씀에 그리스도를 본받아가는 아주 효과적인 하나의 방법을 제시해 줍니다.
      17절 말씀입니다.
      “형제 여러분, 나를 본받으십시오. 그리고 여러분과 같이 우리를 모범으로 삼고 따르는 사람들을 눈여겨보십시오.”

      그리스도를 본받아가는 사람이 되기 위하여 믿음의 본이 되는 사람들을 눈여겨보고 본 받으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서 받는 영향력이 가장 절대적입니다.
      순복음교회 부목사님들의 설교스타일은 거의 조용기목사님과 흡사합니다.
      “주님께서 오늘 여러분을 축복해 주실줄로 믿쓉니다.”
      “축복해 주시옵쇼써”
      ‘자녀는 부모의 거울’이라는 말처럼 자녀들은 부모의 언행을 그대로 따라합니다. 아이들을 보면 그 부모의 어떠함을 알 수 있습니다.
      <희망의 교육, 사유하는 부모 - 교육은 뒤에서 이루어진다. 결국 부모가 자녀에게 어떻게 해 줄 것인가보다, 부모가 어떤 존재로 살것이냐가 중요하다. 아이들은 변화된 부모를 통해 세상을 맞이한다.>

      부모들은 나중에는 본인도 싫어하는 언행이 자녀들 안에 있는 것을 보며 놀랍니다.

      “형제 여러분, 나를 본받으십시오. 그리고 여러분과 같이 우리를 모범으로 삼고 따르는 사람들을 눈여겨보십시오.”

      필립비서 3장 17절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묵상할 때 하느님은 저에게 두 가지의 질문을 하셨습니다.

      “너는 누구를 눈 여겨 보며 누구를 본받고 있니?”
      “누군가가 너를 눈 여겨 볼 때 너는 그 사람에게 본이 되고 있니?”

      이 질문을 받는 순간 숨이 턱 막혔습니다.
      얼마나 제 얼굴이 화끈거렸는지 모릅니다.
      이 시대에도 예수님처럼 살고 싶어서 몸부림치는 많은 산 증인들을 있는데 나는 그들을 눈여겨보며 본받으려고 하고 있는지...
      내가 교우들이나 나의 자녀들에게 본이 되는 신앙인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저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예리한 질문이었습니다.

      이 시간, 동일한 질문을 여러분 모두에게 던지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누구를 눈 여겨 보며 본받아가고 있는지요?”
      “그리고 누구에게 본이 되고 있는지요?”

      우리 교회가 ‘믿으려면 저 사람처럼 믿는 것이구나.’ 이런 말을 듣는 신앙의 모본이 되는 신자들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부모는 가정에서 자녀들의 모본이 되고 직장에서 본이 되고 이 자리에 있는 청년 학생들은 친구들에게 본이 되는 신앙인이 되면 좋겠습니다.
      제가 주님으로부터 이 질문을 받고 묵상하는 중에 우리가 그리스도를 본받아 성장하는 신앙인이 되기 위해서 아주 중요한 사실이 있음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그 마음에 담겨져 있는 그것을 눈여겨보고 본 받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세상 사람들 대부분은 잘 산다는 개념을 돈 많은 것을 생각합니다.
      넓은 집에 살고 좋은 차를 굴리는 사람을 눈여겨봅니다.
      그래서 자칫 오늘 서신 필립비 3장 18-19절에서 말하고 있듯이 자기네 뱃속을 하느님으로 생각하고 세상일에만 마음을 쓰는 십자가의 원수 된 사람들을 눈여겨보고 그들을 닮아가기도 합니다.

      그 결과는 우리 사회가 하느님의 공의는 외면당하고 모든 것이 돈으로 결정되어지는 맘몬이 다스리는 사회가 되어 정직한 사람은 손해를 입는 잘못된 세상이 되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마음 안에 담겨져 있는 것이 돈이기 때문입니다.

      그 마음에 주인으로 있는 것이 무엇이냐에 따라 그 눈여겨보는 것이 달라지고 그 결과가 나타나게 됩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눈여겨보시나요?
      누구를 본 받으려교 하시나요?
      누구에게 본이 되시나요?
      지금 무엇이 누가 여러분의 마음을 차지하고 있나요?

      20세기 영국성공회 위대한 평신도였던 C. S. 루이스가 켐브리지 대학 채플에서 ‘예수의 구주되심’이라는 주제로 설교를 했습니다. 설교 후 한 학생이 루이스에게 말했습니다.
      ‘만일 오늘 선생님께서 예수는 본 받아야 할 위대한 스승이라고 말했다면 우리 모두는 선생님에게 박수를 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선생님께서는 ‘예수는 구세주이다’라는 케케묵은 기독교 교리를 설교했으므로 우리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루이스는 청년에게 반문했습니다.
      ‘자네는 정말 예수는 완벽한 모델, 모본이라고 생각하는가?’
      ‘아, 그럼요!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지요.’
      ‘그러면 이 완벽한 모본이신 예수를 따라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는가?’
      ‘그렇지요.’
      ‘그렇다면 자네에게 묻겠네. 도덕적으로 완벽하신 예수를 자네가 따라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청년은 한참을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완전하게 따라갈 수는 없겠지요.’
      ‘아, 그러면 자네도 도덕적 실패를 인정하는군. 그렇다면 자네의 삶 속에 실수와 죄가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는가?‘
      ‘아, 인정하지요.’
      ‘그렇다면 자네에게 필요한 것은 도덕적 모델로서의 예수가 아니네.자네의 도덕적 실패와 죄에서 자네를 구원할 수 있는 구세주 예수가 먼저 필요하다네. 죄인에게는 도덕적 예수가 아니라 구세주 예수가 필요하다네.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다음에 비로소 예수 그분은 자네에게 도덕적인 모델이 될 수 있다네.’

      가장 완전하신 삶의 모본이신 예수님을 따라 가장 가치있고 의미있는 삶을 살기를 원하시는 분은 아멘합시다.
      
      그렇다면 이 시간 점검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여러분의 삶에 주인으로 계신지요?

      예수님이 주인이 아니라면, 회개하고 여러분의 죄와 허물을 용서하시고 구원하시는 구세주로 예수님을 영접하십시오.

      예수님이 여러분의 마음에 들어와 주인으로 살아계시는 그 순간부터 여러분이 눈여겨보는 것이 달라질 것입니다.
      예수님을 닮아가는 지체들을 눈여겨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신자로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삶도 자녀와 이웃들에게 본이 되는 아름다은 인생을 살게 될 것입니다.

      이 시간 다 눈을 감아 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기를 원하시는 분은  손을 들어 주십시오.
      그리고 마음속으로 저의 기도를 따라해 주십시오.

      “예수님 이 시간, 제가 주인 삼았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예수님을 제 삶의 구세주로 영접합니다.
      저를 성령으로 이끌어주셔서 삶의 모본이신 예수님을 닮아가고
      또 자녀와 이웃에게 본이 되는 복된 인생이 되게 도와주소서.”
      아멘!

      찬양팀과 함께 기도하는 마음으로 드립시다.

      - 예수 닮기를...
      “내 삶의 소망 내가 바라는 한 분 예수 닮기를 내가 원하네
      자비하시고 풍성한 긍휼 예수 닮기를 내가 원하네
      예수 닮기를 예수 보기를 예수만 높이길 내가 원하네
      내 평생 소원 예수 닮기를 예수만 닮기를 내가 원하네

      온유하시고 겸손하신 성품 예수 닮기를 내가 원하네
      자비하시고 위로자 되시는 예수 닮기를 내가 원하네  
      예수 닮기를 예수 보기를 예수만 높이길 내가 원하네
      내 평생 소원 예수 닮기를 예수만 닮기를 내가 원하네

      완전하신 예수 새롭게 하시네. 연약한 내 영혼 온전하게 되리
      예수 닮기를 예수 보기를 예수만 높이길 내가 원하네
      내 평생 소원 예수 닮기를 예수만 닮기를 내가 원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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