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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년 4월26일] 1요한 3:1-7, 루가 24:36-49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도우라!
  • 청지기
    조회 수: 1779, 2009-04-27 00:12:19(2009-04-27)
  •   지난주일 한신대학교회 연합예배 - 풍성하게 준비해 주신 한신대학교회에 감사드립니다! 예의 상, 축구는 4:3으로 져 드렸습니다.^^

      지난 한주는 일기도 불순했고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만드는 사건과 소식이 많았습니다. 학생들은 중간고사 준비로 힘들어 했을 것이고 어른들은 불경기에 치열한 삶으로 힘들었을 것이고... 특히 아이나 어른이나 아픈 분들이 많았던 한 주 였습니다.

      그 치열한 삶의 한 가운데서 샬롬을 누리고 노래하는 존재가 우리 신자들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삶에만 매몰되지 않고 주위를 돌아보며 사는 존재가 우리 신자들입니다.

      부활의 주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주님이 주시는 평화가 늘 가득하기에 평화를 누리고 흘러보내는 삶을 살아오신 줄로 믿습니다.

      ‘내영혼의 그윽히 깊은데서 맑은 가락이 울려나네
      하늘 곡조가 언제나 흘러나와 내영혼을 고이싸네
      평화 평화로다 하늘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오늘 저는 지난 주 제 마음을 따뜻하게 했던 엽서 한 장을 읽어드리면서 설교를 시작하고자 합니다.
      


      * 만복이네서 온 편지

      ‘기다리던 단비가 종일 내리더니 하늘이 맑게 게였네요. 산자락 바로 밑이 아니어도 청아한 새소리를 종일 들을 수 있어 참 좋습니다. 민들레 제비꽃이 지천으로 피었구요. 지난 주에 아이들과 쑥을 뜯었거든요. 오늘은 쑥개 떡을 먹을 거에요.
      화려하지도 폼 나지도 않지만 바쁜 일상을 자주 멈춰 서게 하는 빛과 바람과 소리 구수한 사투리가 있어 큰 선물을 받은 감사함을 느낍니다. 셈나시지요?
      
      자유롭게 놀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아이들과 행복하게 노는 법을 찾겠다는 제가 참 어색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 같아요. 이럴 땐 어른의 자리가 조금 부담스럽지요.
      경서네 3형제와 홍유를 차로 바래다 주는 일로 공부방 일과를 마칩니다(벌써 아이들이 초등학생 11명, 충학생 3명). 시동을 걸고 큰 소리로 기도를 하지요. 제가 잊으면 아이들이 일러줍니다.
      “하나님~ 해야지요.”하면서.  행복한 시간입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한결같이 어린 생명들을 섬길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교우들께도 우리 주 예수님의 평화로 인사드립니다.  
      
                                 2009년 4월21일 변혜숙 사라 올림.’


      시골의 소박함과 작은 평화가 전해지는 아름다운 소식입니다.


      하지만 지난 한 주, 마음을 무겁게 했던 사건들이 매스컴을 통해 들려왔습니다. 그 가운데 도미노처럼 터지고 있는 집단 자살 사건은 실로 충격적입니다.
      
      지금 이 땅을 죽음의 영이 다스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려운 경제 상황 속에서 삶의 의욕을 잃고 낙심가운데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죽음의 영인 사탄은 그런 사람들에게 속삭입니다.

      ‘더 이상 살 소망이 없다
      사는 것이 힘들지 않니?
      그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어버려라.’

      삶의 충격이나 오랜 낙심으로 인해 우울증에 앓고 있는 분들이 말하기를 내면에서 속삭이는 소리가 들린다고 합니다.
      ‘발코니로 가라! 뛰어내리라!’

      죽음의 영이 이 땅의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혹 우리 가운데 이런 속삭임을 듣는 분은 없으신지요?
      심지어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다는 신자들조차도 이 속삭임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아픈 현실이 계속되기에 알 수가 없습니다.

      분명 부활의 주님이 우리 인생들에게 주시고자 하는 것은 생명임에도 죽음의 세력이 생명을 빼앗아가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오늘 루가복음은 우리들이 어떻게 낙심과 절망, 죽음의 어둠을 이겨내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지를 알게 해 줍니다.

      오늘 루가복음 24장 36절을 보면, ‘그들이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에’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그들이’ 누구입니까?
      가롯 유다를 제외한 11제자와 그 밖의 사람들, 특히 엠마오로 가던 두 사람을 말합니다.

      ‘그런 이야기’는 무엇일까요?
      엠마오로 내려 가던 두 사람이 어떻게 발걸음을 돌이키어 다시 예루살렘으로 올라 오게 되었는지를 말합니다.

      먼저 두 사람이 왜 예루살렘을 떠나게 되었을지를 생각해 봅니다.

      예루살렘은 제자들이 불과 일주일 전에 예수님을 따라 의기양양하게 올라왔던 도시였습니다. 이제 예루살렘에 입성하면 좋은 일이 있을것이라는 희망으로 가득 차 있던 제자들이었습니다.

      ‘혹 예수가 로마의 권력을 뒤집고 혁명에 성공하면 이스라엘이 독립되고 또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따랐던 우리들도 모든 고생이 끝나겠구나.’라는 희망말입니다.

      그런데 나자렛 예수는 힘 한번 못쓰고 처참하게 십자가에 달려 죽어버렸습니다. 제자들이 품고 있던 희망은 절망으로 변했습니다. 마음에는 낙심과 두려움이 가득한 채 이제 예수의 피자국만 선명하게 남아버린 절망의 도시 예루살렘을 떠나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무슨 소망으로 사나?
      이렇게 끝나는 것이었나?
      예수를 따라다닌 세월이 참 헛된 고생이었구나.’
      
      그런데 그렇게 낙심하고 절망하여 예루살렘을 떠났던 두 사람이 다시 아직도 예수의 피 비린내가 남아있는 죽음의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어떻게 이 일이 가능했습니까?
      어디서 용기가 왔을까?
      
      단순하게 말하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지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만 만나면 모든 낙심과 절망과 어둠과 죽음은 떠나가고 절망의 자리로 다시 돌아가 설 수 있는 용기가 생기고 희망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만나게 해야합니다.

      하지만, 성경을 보면 두 사람이 부활의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기까지 과정이 있었음을 보게 됩니다.
      
      1) 먼저 부활하신 예수님은 두 사람에게 다가오시어 성경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
      15절, 그들이 이야기를 나누며 토론하고 있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다가가서 나란히 걸어가셨다.
      17절, 예수께서 그들에게 "길을 걸으면서 무슨 이야기들을 그렇게 하고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러자 그들은 침통한 표정인 채 걸음을 멈추었다
      25-27절, 그 때에 예수께서 "너희는 어리석기도 하다!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그렇게도 믿기가 어려우냐?  그리스도는 영광을 차지하기 전에 그런 고난을 겪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 하시며 모세의 율법서와 모든 예언서를 비롯하여 성서 전체에서 당신에 관한 기사를 들어 설명해 주셨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두 사람에게 다가왔어도 두 사람은 그가 예수인지를 알아보지 못합니다. 영적인 몸인 부활체가 다른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 모두도 이렇게 영적인 몸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이 몸은 영원히 죽지 않는 영광스러운 주님의 생명입니다.
      
      그래서 오늘 서신은 말합니다.
      1요한 3:2-3,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우리가 장차 어떻게 될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리스도와 같은 사람이 되리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 때에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참모습을 뵙겠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 대하여 이런 희망을 가진 사람은 누구나 그리스도께서 순결하신 것처럼 자기 자신을 순결하게 합니다.’

      알아보지 못하는 두 사람에게 부활의 주님이 하신 일은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에 관한 성경 말씀을 들려주는 것이었습니다.
      
      성경말씀대로 예수가 부활했다면 성경의 모든 말씀이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의 모든 언약이 성취된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주시고 언약을 주신 하느님이 살아계시고 그분이 신실하시다는 것입니다.

      낙심과 절망 가운데 속삭이는 사탄의 음성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것은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신자들은 언제나 말씀을 듣고 읽고 공부하고 암송하고 묵상해야 하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이 그들과 함께 거하며 식탁의 교제를 함께 하셨습니다.
      
      30-31, 예수께서 함께 식탁에 앉아 빵을 들어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나누어주셨다. 그제서야 그들은 눈이 열려 예수를 알아보았는데 예수의 모습은 이미 사라져서 보이지 않았다.

      이는 성체성사, 성만찬을 말합니다.
      
      성사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보이는 것을 통하여 나타내 알도록 해 주는 것입니다. 성체성사란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내가 그 사랑의 삶을 보여주는 성사가 되는 예배입니다.

      우리 성공회의 예배 - 말씀과 성만찬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게 하는 하느님의 은총의 자리입니다.
      
      영적으로 참되게 예배하는 사람들은 이 예배를 통해 부활의 주님을 만나는 은혜를 풍성하게 누리게 됩니다.

      영적으로 참되게 예배드리는 예배자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그래서 예배가 생명이 되는 것입니다.
      예배가 성공하는 자가 인생을 성공하는 것입니다.
      소대신 예배를!

      이렇게 예배에 성공하는 자는 이제 예수님처럼 작은 예수가 되어 세상에 나가 낙심 가운데 절망 가운데 혹 사탄의 속삭임에 괴로워하는 인생들에게 다가가는 존재가 됩니다.

      그래서 우리 주변에 힘들고 지친 사람들에게 다가가 그들을 식탁으로 초대하고 그들의 아픔을 들어주는 친구가 되어주면서 하느님이 보내주신 사랑을 나누주는 성사가 됩니다.

      예수님은 절망의 땅 예루살렘을 떠난 두 사람에게 다가가시어 하느님의 말씀을 나누고 식탁의 교제를 나누셨습니다. 이것을 통해 두 사람은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수 있는 용기를 얻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낙심하고 절망한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어려운 시절입니다. 그들이 다시 절망의 땅 예루살렘에 우뚝 설 수 있도록 우리 모두 그들에게 다가가 생명의 말씀을 나누고 식탁의 교제를 나누는 작은 예수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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