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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성공회 제자교회대한성공회 제자교회

  • [2006년 4월 2일] 요한 12:20-33
  • 청지기
    조회 수: 2939, 2006-04-03 15:58:52(2006-04-03)
  • 하느님의 관심은 결코 꽃에 있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화려하고 아름다운 꽃을 좋아하지만, 하느님은 그 결과로 나타나는 열매에 관심이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택하신 이유가 열매 맺는 삶에 있습니다.

    요한 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택하여 내세운 것이다. 그러니 너희는 세상에 나가 언제까지나 썩지 않을 열매를 맺어라. 그러면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하는 것을 다 들어주실 것이다."

    열매 맺지 못하는 성도를 향해 주님은 엄중한 경고를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3:10, "도끼가 이미 나무뿌리에 닿았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않은 나무는 다 찍혀 불 속에 던져질 것이다."

    요한복음 15:2, "나에게 붙어 있으면서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모조리 쳐내시고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많은 열매를 맺도록 잘 가꾸신다."

    한 두 개의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니라, 많은 열매를 맺는 것이 중요합니다.
    요한의 복음서 15:8, "너희가 많은 열매를 맺고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되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주님 안에 있는 우리가 맺어야 하는 하는 열매는 무엇일까요?
    인격의 열매입니다. 즉 성령의 열매(갈라 5), 빛의 열매입니다.
    (에페 5:9, "빛은 모든 선과 정의와 진실을 열매 맺습니다." )

    전도의 열매입니다.  마태 28:18, "가서 제자삼으라!"
    제자의 열매입니다.
    골로사이 1:6, "그 복음은 여러분에게 전해져서 여러분이 하느님의 은총의 말씀을 듣고 그 참뜻을 깨닫게 되면서부터 열매를 맺으며 퍼져 나갔습니다. 사실 복음은 온 세계에서 열매를 맺으며 널리 퍼져 나가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 전도의 열매, 제자의 열매를 많이 맺어 주님께 영광 돌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좀 더 깊이 들어가서 꽃은 무엇에 열매는 무엇에 비유할 수 있을까요?

    꽃도 하느님이 만드신 것입니다.
    하지만 꽃이 꼭 떨어져야만 열매가 맺어지는 것입니다.
    꽃은 아름답고 향기롭지만, 꽃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열매에는 생명이 있고 미래가 있습니다.

    첫째, 꽃은 인기와 같은 것이고 열매는 인격을 말합니다.

    인기는 매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매력이 있어야 합니다.
    매력은 좋은 것입니다. 사람도 매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합니다. 예수님도 매력이 있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주변에는 항상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라 다녔습니다.

    교회도 매력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을 끌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시설과 환경일 수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매력을 주는 요소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인기나 매력을 뛰어넘는 인격이 중요합니다.
    교회도  환경과 시설을 뛰어넘는 복음의 생명력과 사랑의 능력, 교회의 인격이 중요합니다.

    둘째, 꽃은 성장과 같은 것이고  열매는 성숙을 말합니다.

    한국교회의 문제점은 지난 70, 80년대에 엄청난 성장에도 불구하고 성숙하지 못한 것에 있었습니다. 이제는 모두 성숙을 도모해 가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

    우리는 성숙해야하고 성숙을 뛰어넘어 원숙함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원숙함이란 전체를 본다는 것입니다.
    원숙한 사람이 많은 교회는 무게가 있습니다.
    원숙하면 말이 없습니다. 미숙하다는 것은 말이 많다는 것입니다.
    유치원에 가면 얼마나 아이들이 말이 많은지 아이들 하루만 봐도 혼이 빠져 나가는 것 같습니다. 유치해서 그런 겁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미숙한 교회는 시끄럽습니다.
    특히 회의할 때 말이 많고 큰 소리가 납니다.
    원숙한 교회는 말이 없습니다. 전체를 보기 때문입니다.
    내가 지금 말을 하지 않아도 되어질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아름답고 원숙한 교회는 회의 때에는 말이 없고 찬양할 때 기도할 때 말을 하고 크게 합니다. 전도의 목소리가 큽니다.
    찬양도 적고 기도도 전도하는 목소리는 작은데 말이 많은 사람은 미숙한 사람이고 조심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미숙함과 성숙함을 분별할 줄 아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가 성숙하고 원숙한 신자가 많은 원숙한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여기서 꼭 명심할 것은 성장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성장하는 교회는 놀라운 교회입니다.
    성장하기가 참 쉽지 않습니다.
    우리가 성장해야만 하는 이유는 하느님은 나누고 베푸는 섬기는 삶을 기뻐하시는데, 성장해야만 나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개척교회나 작은 규모의 교회를 보면 자기 살림 꾸려가기도 쉽지 않습니다. 어렵습니다.

    2006년 1분기를 지내면서 교회 살림을 보면서 드는 고민이 있습니다.
    더 많이 나누고 베푸는 교회가 되고 싶어도 교회자체를 기본적으로 유지해가는 고정 비용을 있기에 그것을 제하면 나눌 수 있는 것이 그렇게 크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예산의 25%정도를 선교와 구제로 교회 밖을 향해 사용하는 것도 벅찹니다.

    아직도 많은 교우들이 신앙생활의 연수도 많고 제자훈련을 받아도 주님의 말씀대로 재정을 관리하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들이 모두 주님의 말씀대로 온전한 십일조 생활과 나눔의 생활을 하여 어려운 이웃과 하느님의 선교를 위해 더 많이 베푸는 교회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믿음으로 결단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다시 한번 권면합니다.
    말씀대로 재정을 사용하는 것은 신앙의 성숙에 결정적인 요소입니다.

    하느님의 관심은 우리가 성장하기를 원하시지만, 성장을 뛰어 넘어 전체를 보는 눈을 갖는 원숙한 사람, 원숙한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성장을 뛰어넘어 성숙으로, 원숙함으로 열매 맺기를 바랍니다.

    셋째. 꽃은 성공을 말하고 열매는 섬김을 말합니다.

    성공,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제가 가만히 보면, 성장을 싫어하는 관점이 우리 성공회 교회 내부에 있습니다. 큰 교회를 싫어하고 오히려 비판합니다. 물론 큰 교회가 갖고 있는 문제점이 많습니다. 하지만 성공을 싫어하면 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교회성장은 하느님의 뜻입니다. 살아있는 것은 성장하는 것입니다.
    혹시 성공을 싫어한다거나 교회에서 형통함을 말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하느님보다 더 경건해지려는 교만입니다.

    성공하기를 원해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좋아하는 것을 품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것만 품게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허락하시는 축복에는 형통이 있고 부요함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주님이 주시는 형통함의 축복으로 어떻게 이웃과 세상을 섬기는가가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성공해야하는 이유는 바로 섬김을 위해서입니다.
    섬김의 열매로 주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하느님이 원하시는 신자의 삶, 열매 맺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인기를 뛰어 넘는 인격으로, 성장을 뛰어 넘는 성숙과 원숙함으로, 성공을 뛰어 넘는 섬김으로 풍성한 열매를 맺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도합시다.

    이렇듯 열매를 맺는 우리가 되기 위해서 우리가 지녀야 하는 영적인 원리가 3가지 있습니다.

    첫째, 작은 밀알을 소중히 보시는 예수님의 관점을 갖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말씀을 하신 상황은 이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천국복음을 전파하시고 많은 병자를 고치시며 제자들을 3년을 넘게 제자들을 훈련시키신 갈릴리의 사역을 마치시고 이제 온 인류의 죄를 대신한 십자가의 죽음을 맞이하시고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습니다.

    ‘호산나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미 받으소서!’  환호성을 지르는 백성들의 영접을 받으며 예루살렘에 나귀를 타고 입성하신 뒤 아마도 수요일 쯤 되었을 지도 모르는 어느 날, 헬라 사람 몇을 만나셨을 때 바로 죽음을 앞두고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바로 오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왜 밀알을 보시며 감격하고 계실까요?
    십자가에 죽으실 날이 가까운 절박한 상황인데, 그런 상황에서 예수님께서 밀알을 말씀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십자가의 죽음을 앞둔 그 절박한 시점에서 예수님은 밀알 속에 있는 영광에 대해서 이야기하시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영광은 큰 것, 잘되는 것, 높아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밀알 하나에서 영원한 영광을 보고 계십니다.

    밀알 하나 이것은 가치로 따진다면 정말 미약한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작을 지라도 그 안에 생명이 있는 것입니다.
    작을지라도 땅에 심어져 죽으면 30, 60, 100 여 개의 알이 생기지 않습니까? 다시 이것들을 심으면 또 무수한 열매들이 생겨서 많은 사람들을 살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밀알이 갖고 있는 영원한 영광입니다.

    작은 밀알 하나일지라도 그것에는 말할 수 없는 가치가 있고 비전을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밀알 하나에 주목하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천국을 밀알 하나같은 겨자씨에 비유하기도 하셨습니다. 겨자씨가 모든 씨앗 중에 가장 작은 씨앗일지라도 그것이 심어져 싹이 트고 자라나면 새들이 깃들여 쉬고 사람들이 쉴 수 있는 그늘을 만드는 큰 나무가 된다고 하시며 겨자씨를 주목하셨습니다.

    밀알 하나, 그것이 비록 작아 보일지라도 무한한 가치와 비전을 소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밀알을 보는 예수님의 관점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바로 그 밀알과 같은 존재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육신하신 예수님은 스스로가 미약한 개인에 불과하지만, 예수님 한 분이 스스로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그 예수님의 생명이 많은 사람들의 생명의 양식이 되는 것을 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비록 십자가에 죽을 지라도 자신의 죽음을 통해서 이 땅에 죄와 죽음의 권세에 메여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영적인 생명을 줄 수 있는 자기 자신이 얼마나 위대한 존재인지를 알았습니다.

    요한 6: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이 빵을 먹는 사람은 누구든지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곧 나의 살이다. 세상은 그것으로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

    한 알의 밀알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맺어진 열매가 교회입니다.
    교회 안에는 있는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밀알입니다.

    예수님은 한 알의 밀알을 말씀하실 때 자기 자신을 말씀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를 통해 맺어진 열매인 교회 속에 있는 씨앗들인 우리들까지도 보고 계신 것입니다.

    “한 알의 밀알이 떨어져 ---”
    이 말씀을 하시는 예수님은 스스로 밀알이 되신 자신을 통해 맺어진 열매인 교회 안에 있는 우리 각자에게 말씀하시는 것이죠.
    ‘썩어지는 밀알 되어 열매 맺는 사람이 되어라!’

    그래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관점은 바로 내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생명을 지닌 존귀한 존재라는 자각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내가 썩는 밀알이 됐을 때 맺어질 수많은 열매를 바라보는 비전을 갖는 것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은 자기 자신을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생명을 지닌 존귀한 자로 보고 계십니까?
    나를 통해서 이루어질 영광을 바라보는 비전을 지니고 계십니까?
    스스로 보잘 것 없다고 여겨질 지라도 내 안에 있는 이 하느님의 생명과 비전을 보는 자만이 열매를 맺는 삶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나의 존재의 가치와 비전을 발견하고 열매 맺는 삶을 살기위해 전진하는 우리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둘째, 열매 맺는 삶이되기 위한 두 번째 영적인 원리는 ‘땅에 떨어지는 원리’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겸손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겸손하신 분이셨습니다. 주님은 항상 아래로 떨어지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항상 높이 올라가려고 합니다.
    올라가는 것, 높아지는 것은 마귀의 속성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느님처럼 높아지려다가 추방당한 천사장이 마귀라고 합니다.
    그래서 마귀는 예수님을 유혹할 때 성전 꼭대기로 데리고 갑니다.
    높은 곳에서 온 천하를 내려다보게 합니다.
    스스로 높아지려는 마음은 마귀가 주는 마음입니다.

    하느님의 속성은 낮아지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수차례 말씀하셨습니다.
    마태오 20:26-28,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사이에서 높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종이 되어야 한다. 사실은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 몸값을 치르러 온 것이다.’ 하셨다.”

    열매는 겸손한 자가 맺게 되는 것이 하느님의 법칙입니다.

    하느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는 것입니다.
    잠언 16:18,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라고 했습니다.
    하느님은 자기를 낮추는 자를 기뻐하십니다.
    때로는 하느님께서 그 삶에 열매를 맺게 하시고자 그 사람을 떨어뜨리기도 합니다. 겸손한 자가 열매를 맺을 수 있기에 깨뜨리시는 것입니다.

    요셉의 생애가 주는 교훈이 그것입니다.
    어린 시절 그가 얼마나 높았습니까?
    아버지가 요셉만을 귀여워하고 총애하여 그는 스스로 높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이 그의 인생을 통해 열매를 맺으시고자 떨어뜨리시고 낮추셨습니다.

    겸손이라는 것은 자기의 위치를 아는 것입니다.
    씨앗의 위치는 땅 속,  흙 속입니다.
    땅 자체가 겸손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사람과 동물들의 발에 짓밟히며 받쳐 주고 있습니다.
    또 흙은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품습니다. 똥도 받아서 비료로 만듭니다.
    씨앗은 바로 이 땅 속에 있을 때 흙의 영양분을 받아서 싹을 틔우고 자라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주님은 흙과 같은 분이십니다.
    주님은 모든 죄인도 받아주시고 용납해 주십니다.

    인간의 위치는 주님 품속입니다.
    사람이 주님 안에 있을 때, 생명을 얻고 열매를 맺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그 존재 자체가 죄인이기에 얼마나 교만한지 모릅니다.
    자기 주먹을 믿으라고 거들먹거립니다.
    재산을 의지하고 자기 꾀를 믿고 주님을 거부합니다.
    이런 사람을 주님은 아주 간단하게 겸손하게 만드실 수 있습니다.
    주먹을 피게 만드는 것, 설사 열 번만 하면 설 설 깁니다.
    진단서 한 장이면 낮아집니다.
    하느님의 보호하심을 거두시면 사람은 자기 자신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를 알게 됩니다.

    이 자리에도 하느님이 열매 맺는 사람이 되게 하시고자 다루신 인생들이 많이 있습니다. 돌아보면, 참 교만했었습니다. 하느님께 온전한 순종 한번 못했었습니다. 늘 자신의 생각과 경험만을 앞세우고 하느님이 아닌 것을 의지 했었습니다.

    겸손해야 합니다. 그래서 떨어지는 것이 축복입니다.
    실패가, 인생의 환란과 고난이 축복의 시작입니다. 할렐루야!

    하느님이 높이 올리길 원하시는 인생은 깊이 떨어뜨리십니다.
    빌딩을 높이 올리기 위해서 깊이 파듯이, 큰 나무가 깊은 뿌리를 내리듯이 바닥을 치는 인생은 하느님이 높이 쓰시려는 인생입니다.

    하느님께 높이 들리는 인생, 열매 맺는 인생이 되기를 원하시면 겸손하십니다.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며, 주님의 말씀만을 순종하고 주님 품에 거하십시오. 겸손이 축복의 그릇이며 형통함의 그릇입니다.

    세 번째 원리는 ‘죽는 원리’입니다. 깨어짐의 원립니다.
    죽는 것은 아픈 것입니다.  쓰라린 것입니다.
    그러나 껍질이 벗겨질 때 싹이 나오는 것입니다.
    깨어지고 부서져야 하는 것입니다.

    겸손의 끝이 죽음입니다. 죽어야 부활이 있는 것입니다.
    깨어질 때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깨어질 때 생명이 나오는 것입니다.
    안에 있는 값진 것은 깨어질 때 나올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바로 밀알 하나가 썩어지는 것과 맺어지는 열매를 말합니다.

    고난은 깨어지는 과정입니다. 회피하지 마십시오.
    하느님이 깨뜨리실 때 기꺼이 깨져야 합니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자기를 부인하고 매일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그리고 명심하십시오.
    이렇게 해서 맺어지는 열매는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열매가 맺어지면 그 즉시 나누어야 합니다. 열매는 놔두면 썩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인격으로 성숙한 사람은 섬기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밀알 하나의 가치와 비전을 볼 줄 아는 사람이 되십시오. 땅에 떨어지는 겸손한 사람이 되십시오. 기꺼이 죽는 사람이 되십시오.

    많은 열매를 맺어 우리가 세상을 부족함이 섬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삶이 십자가를 통과함으로 부활의 영광을 누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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