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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년 8월 1일] 에페소서 강해 3 - 1:15~ 23
  • 청지기
    조회 수: 3077, 2004-08-03 00:24:21(2004-08-03)
  • 반갑습니다. 건강하십니까?
    폭염이 날씨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을 찬양하고 예배하러 오신 여러분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가 이 성전에 모여 있는 것만으로도 하느님께 기쁨이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오늘은 에페소서 강해 세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의 내용은 사도 바울로가 에페소 교우들을 기억하며 기도하는 내용입니다.

    먼저 15절과 16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나는 여러분이 주 예수를 충실히 믿으며 모든 성도들을 사랑한다는 소식을 듣고 / 기도할 때마다 언제나 여러분을 기억하며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읍니다.”

    기도할 때마다 언제나 여러분을 기억하며

    사도 바울로는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에게는 기도하는 때가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3장 1절을 보면, 베드로와 요한도 오후 세시에 기도하는 시간에 되어 성전에 올라갔다고 하는데, 유대교 랍비 출신인 바울로는 유대교의 전통에 따라 적어도 하루에 세 번, 저녁 해질 무렵, 아침, 점심에 기도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에게도 기도의 때가 있었지요. 성경을 보면 예수님은 늘 하시던 대로 새벽에 기도하셨고 때로는 밤을 지새우며 기도하셨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정해진 기도의 때가 있으리라 믿습니다. 아멘?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기에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그 영혼이 메마르게 되고 삶이 무기력해 집니다.  때를 정하여 기도하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특별히 성경의 사람들이 다 그렇듯이 사도 바울로는 자신보다는 타인을 위해 이타적인 기도를 하는 중보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남을 위해 드리는 기도를 중보기도라고 하는데, 이 기도가 가장 이타적인 사랑의 기도입니다. 중보기도의 내용은 그 사람의 사랑의 폭을 나타내 줍니다.

    바울서신을 읽어보면 바울의 관심은 언제나 사랑하는 교우들과 믿지 않는 영혼들을 향한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은 기도할 때 누구를 기억하십니까?
    기억하는 사람이 누구냐가 바로 여러분이 사랑의 크기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이 더 큰 사랑의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면, 더 많은 사람을 위한 중보기도를 드리시면 됩니다.

    사랑의 폭을 넓힐 수 있는 중보기도의 한 형태로 ‘파장형기도’가 있습니다.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지면 물결이 퍼져가듯이 그렇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대개 우리의 기도는 나 자신과 가족에만 머무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폭을 점점 넓혀가는 것입니다.

    “나 - 나의 가족 - 친척 - 교회와 교우들 - 이웃 - 지역사회 - 나라와  민족 - 세계열방과 하느님 나라”

    이렇게 파장형기도를 드리면 기도의 폭이 넓어지면서 우리의 사랑의 크기도 커지고 하느님과 함께하는 기도의 시간도 길어질 수 있습니다.

    다시 본문을 보면, 바울은 기도 가운데 먼저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주 예수를 충실히 믿으며 모든 성도들을 사랑한다는 소식을 듣고

    기도할 때마다 에페소교우들을 생각해 보니 참 감사하다는 것입니다.

    에페소 성도들은 주님에 대한 진정한 믿음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그 믿음에 부응하는 사랑의 삶을 실천하고 있음을 듣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린 것입니다.

    믿음과 사랑, 이것이 온전한 신앙인의 덕목입니다. 바울서신들을 살펴보면, 바울은 늘 이 관점으로 교우들을 바라보며 초대교인들이 보여준 온전한 신앙의 모습에 감사를 드렸습니다.

    롬 1:8, “나는 먼저 여러분의 믿음이 온 세상에 널리 알려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의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골로 1:3-5, “우리는 여러분을 위해서 언제나 기도하고 그 때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를 믿고 모든 성도에게 사랑을 보여 주고 있다는 말을 전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 믿음과 사랑은 여러분을 위해서 하늘에 마련해 두신 축복에 대한 희망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 희망에 대해서는 여러분이 진리의 말씀 곧 복음을 받아 들였을 때에 이미 들은 바 있습니다.

    살전 1:2-4, “우리는 언제나 여러분 모두를 생각하면서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여러분을 위해서 기도할 때마다 여러분의 믿음의 활동과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꾸준한 희망을 하느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살후 1:3-4, “교우 여러분, 우리는 여러분을 생각할 때에 언제나 하느님께 감사를 드릴 수밖에 없고 또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믿음이 놀랍게 자라고 또 여러분 서로 사이의 사랑이 더욱 더 두터워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모든 박해와 환난을 당하면서도 잘 견디어 내며 믿음을 지켜 온 것에 대해서 우리는 하느님의 여러 교회에서 여러분을 자랑합니다.

    성도들이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살며 이웃을 사랑하고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모습을 듣고 바울은 하느님께 감사를 드린 것입니다. 이것은 성도의 삶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덕목이 무엇인지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믿음의 활동’과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꾸준한 희망’이 넘쳐나기를 기도합니다.

    이제 17절 말씀을 봅니다.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느님, 영광스러운 아버지께서 여러분에게 영적인 지혜와 통찰력을 내려 주셔서 하느님을 참으로 알게 하시고

    이 말씀에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 누구신지가 나와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기도를 합니다.
    하지만 기도를 누구에게 하느냐에 따라서 구원과 멸망이 결정됩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은 누구입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느님, 영광스러운 아버지”

    우리를 사랑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어 십자가의 죽음으로 구원을 이루게 하시고 사흘 만에 다시 살리시어 하느님 우편으로 높여 주신 하느님. 바로 그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자녀삼아주신 하느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영광스러운 아버지이십니다.

    우리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에게 기도합니다.
    그분은 우리를 자녀 삼으셔서 스스로 우리의 아바 아버지가 되시어 항상 선한 길로 인도하시고 모든 좋은 것을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분이십니다.

    바로 여기에 우리 크리스챤에게 환경과 상황을 초월하는 감사와 소망의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사도 바울이 에페소 교우들을 위해서 하느님 아버지에게 드린 기도의 첫 번째 내용은 ‘영적인 지혜와 통찰력을 내려 주시어 하느님을 참으로 알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영적인 지혜와 통찰력이란 우리의 이성적인 정신의 힘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개역성경으로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 번역되듯이 성령님을 말하는 것입니다.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이 우리 삶 속에 더 깊이 더 강력하게 역사하시기를 기도한 것입니다.

    “the Spirit of wisdom and revelation”

    하느님을 참으로 알기 위해서는 지혜와 계시의 영이신 성령님이 충만하게 임해야 합니다.  

    하느님을 깊이 아는 것, 여기서 앎은 단순한 지식이 획득이나 어떤 정보를 얻어 알게 되었다는 의미의 앎이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경험적인 앎’입니다.

    제가 연애를 3년 정도 했는데요. 누구보다도 아내를 알았습니다. 하지만, 결혼하고 나서 알게 된 아내하고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결혼 전의 앎은 먼 거리를 두고 상대방의 어떤 정보를 얻어서 알게 된 앎이지만, 결혼 후에는 살아가면서 깊은 관계 속에서 경험적으로 알게 된 앎입니다.

    17절의 ‘안다’는 것은 후자의 ‘경험적이고 관계적인 앎’을 말합니다.

    바울은 지금 에페소교우들이 하느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에페소교우들이 지금도 하느님을 알고 있지만 더 깊이 체험적으로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정보적이고 지식적인 앎과 관계적이고 체험적인 앎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제가 아는 게신교 사모님이 이런 간증을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분이 개척교회를 섬길 때 저녁식사 준비를 위해 시장을 가려고 지갑을 열어보니 만 원짜리 한 장도 없이 천 원짜리만 몇 장 있더랍니다. 그 순간 털퍼덕 주저앉아 서러움에 주저앉아 신세한탄을 했답니다. 한참 울고 있는데 마음으로부터 이런 생각이 들더랍니다.

    “너는 ‘주님만이 나의 힘, 나의 반석, 나의 참 소망’이라고 찬양하며 기도하지 않았니? 그런데 왜 지금 주저앉아 슬퍼하고 있니?  너는 하느님만이 너의 힘임을 진짜 믿고 있니?”

    사모님은 이런 음성에 마음을 추스러 ‘아 내가 하느님보다 다른 것, 돈을 더 의지했구나.’ 생각하며 회개했다고 합니다.

    우리에게 하느님을 아는 것이 지식적인 앎으로 머무르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라고 알지만, 정작 나는 그 사랑을 경험하지 못해 영혼이 공허하며 그러기에 용서하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합니다.

    하느님을 경험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지혜와 계시의 성령님이 충만히 임함으로 하느님을 더 깊이 알아야 합니다.

    제 경험으로는 성령의 도움 가운데 하느님을 알기 위해서 세 가지 T가 필요합니다. 첫째는 시간 Time, 둘째는 Talk, 셋째는 Trust입니다.

    Time, 주님과 함께 있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앞부분에 말씀드렸듯이 주님과 만나는 정해진 때를 말합니다. 주님 앞에 머물러 성경말씀을 묵상하면서 그분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그분을 더 깊이 알아가는 첩경이 됩니다.

    Talk, 주님과 함께 하는 시간에는 주님과 나누는 대화가 뒤따라야 합니다. 기도란 하느님과 “관계를 맺고 대화를 나누는 것”입니다. 공적인 기도 시간이나 개인적인 기도 시간이나, 일상의 삶 속에서도 주님과 대화하는 것에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Trust, 주님을 신뢰하고 의탁하는 것입니다.
    마치 목적지로 떠나는 기차에 나를 맡기듯이 나의 삶을 주님께 맡기고 그가 하라는 대로 순종하는 삶입니다. 주님을 신뢰하고 순종하는 삶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경험을 통한 앎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성경말씀은 축복이 약속되어 있는 명령인 경우가 많습니다.

    야훼를 경외하고 그의 말씀을 따르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전반부의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고는 후반부의 하느님의 형통함의 축복을 결코 경험할 수가 없는 것이죠.

    어떤 아이가 놀이터에서 놀다가 그만 놀이시설의 높은 데까지 올라가서는 내려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때 아빠가 그 아래로 가서 아빠의 품으로 뛰어내리라고 합니다. 이 아이가 뛰어 내리면 아빠가 거짓말쟁이가 아닌 진자 아빠임을 경험하고 아빠를 더 믿고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아빠 말을 듣지 않고 뛰어내리지는 않으면서 입으로만 ‘아빠, 아빠’를  외치고 있다면, 결코 신실한 아빠를 경험할 수 없습니다.

    의탁하는 것은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순종을 통해서 하느님을 경험하게 되고 그분을 더욱 알게 되며 사랑하게 됩니다.

    연애해보셨나요?
    상대방을 사랑하면 상대방을 더 알고 싶은 열망은 멈출 수 가 없습니다.  

    성도가 추구해야 하는 가장 핵심적이고 가장 우선시되는 목표는 바로 ‘하느님을 아는 것’입니다. 참된 믿음은 바른 앎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을 사랑하기에 필립비서 3: 8에서 “나에게는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무엇보다도 존귀합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모든 것을 잃었고 그것들을 모두 쓰레기로 여기고 있습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여러분의 신앙의 여정에 가장 최우선적인 가치가 하느님을 하는 것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느님을 더 깊이 알고자 그 분 앞에 무릎을 끓고 기도하며 그분의 말씀대로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주보에 실린 찬양의 노랫말을 봅시다.
    “나의 갈망은 주께서 날 알 듯 나도 주님을 온전히 아는 것
    나의 갈망은 주 날 사랑하듯 나도 주님을 사랑하는 것---”
    찬양을 듣는 가운데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시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느님, 저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을 부으사 주님을 더욱 알고 사랑하고 주의 말씀대로 행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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