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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년 6월13일] 루가 7:36-8:3 구원을 이루는 믿음이란?
  • 청지기
    조회 수: 3373, 2004-06-14 10:00:05(2004-06-14)
  • 먼저 두 가지 그림을 보겠습니다.  어떻게 이해가 되시나요?



    이 그림에 대한 교회 홈페이지에 올라온 글들을 읽어드리겠습니다.

    강피터 : 내가 늙었나? 아님 단순해지지 못하는 데서 오는 이해 부족인가...
             설명 좀 해줘잉!
    임마르코 :  저두 @@? 이~잉
    김바울 : 위에 어거스틴님이 올린 해석이 하나의 모범 답안이 될 듯 합니다만....

    이어거스틴 : 하느님은 성당에만 계신 분이 아닙니다.   성서에 예수께서는
           세리나 창녀 같은 죄인들의 친구셨으며, 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간음하다 걸린 여인 앞에서 조차 정죄치 않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정죄할 권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창조주 하느님을 편견 속에서 신자들만의 하느님으로
           만들어버리고 있는 시간에도 그 분은 우리의 정죄한 죄인들과 함께
           하시는 참 하느님이십니다.
           우리는 하느님 앞에 나갈 때에 죄를 벗어버리고 난 후에 그분 앞에 설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루가 9장 57~62절의 말씀에서처럼, 가장 중요하고 먼저 해야
           할 것은 주님 앞에 서는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의 태도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이 없음입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느님께서 주신 명령은 우리 편견 속의 죄인들을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로 이끄는 것입니다.

    강피터 : 정말 이해가 안갔단 말여!
          내가 이해가 안 가는 것은 다른게 아니라 예수님 표정.
          마약 중독, 동성연애, 폭주족, 알콜중독, 테러, 악마숭배, 전쟁, 기아,
          음란, 가난과 장애...
          그런 문화의 가운데 계신 예수님의 해맑은 표정.
          애통하는 표정이 아닌 ...오히려 역설적인 표현이라면 억지로라도 이해
          를 하겠지만  내 단순한 사고로는 인자로 오신 하느님은 사람의 감정을
          표현해야만 맞을 듯..!

    박마리아 :  어쨋거나 . . . 마약중독, 동성연애 . . . 등 등.
           이런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 구원 받았으니 놀라운 은혜 아닐까요.
           그래서 예수님은 기뻐하시겠지요.

    강피터 : 그림 하나가 주는 메시지가 상당히 크군요.
          박마리아 댓글에 또 댓글을 달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시작했지요....
         「나 토 달기 싫어하는데 할 수 없이 한마디 더.
          내가 보기에는 전혀 구원받지 않은 것 같음.
          알콜 중독자는 계속  헹야랴 딩야라 부어! 마셔! 하고 있고
          동성연애자는 '흥 내가 어때서!' 하고 있으며
          폭주족의 늘어진 혓바닥은 가히 압권이고 마약중독자는 즐기고 있으며
          소년병은 총을 안 내려 놓았고  창녀는 가슴 부위에 달러를 꽂고 있고
          가난한 아이는 계속 멜로디언을 불어야 하는 상황이며
          장애인은 그 등의 무거운 짐을 못 내려놓은 ......
          구원 받았다고 말 할 수 있을까요?

          과연 구원이 뭘까?  뭐 이렇게 쓰다가 갑자기 덜컥! 했습니다.  
          가슴이 콱 무너지면서 아리고 저려 오는 거예요.  
          밥 먹고 남는 시간에 여유 부리다가,
          알량한 신앙을 자랑하다가  한방 맞았습니다.
          직원들이 있건 없건 중요하지 않았어요.  많이 울었습니다.
          제 속에 동일하게 있는 죄의 덩어리들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건 이렇고 저건 저래 하고 평가하던 나의 마음을 헤집고
          그 안의 나를 보여 주셨습니다.
         그 그림에 주욱하니 둘러 서있던 사람들이 결국 나였습니다.
         ‘주님 제가 죄인입니다.’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의 교만과 위선을 들추어 내 안의 어두움을 본 후,
         그런 나를 받아 들여 주시고
         변화시켜 주시는  주님의 크신 마음을 느꼈습니다.
         은혜다. 은혜야!  나 자신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알았습니다.

         직원들이 ‘무슨 일이 있냐?’ 네요.  
         웃었습니다. 시시 때때로 나를 인도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 내가 은혜로 나아가겠습니다.


    저 또한 은혜를 받았습니다.
    저도 두 번째 그림에 나오는 사람들 중의 하나임을 고백합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행실이 나쁜 여인도 바로 두 번째 그림에 들러선 사람들의 모습이지요.
    진정 예수님이 필요한 사람들!  예수님이 찾으러 온 사람들!

    오늘 성경에서 예수님을 초대한 시몬이라는 바리사이파 사람은 구원을 받지 못했지만, 행실이 나쁜 여인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50절,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 여자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라하고 말씀하셨다"

    오늘 서신성경 갈라디아서에서도 구원은 믿음으로 얻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저는 오늘 성경말씀을 묵상하면서 두 가지의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하나는 구원이란 무엇일까?
      둘째는 그 구원을 얻게 하는 믿음이란 또 어떤 것일까?

      여러분, 구원이 무엇입니까?  

    갈라 2:16, “그러나 우리는 사람이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에 놓이는 길이 율법을 지키는 데 있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데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읍니다. 그래서 우리는 율법을 지킴으로써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가지려고 그리스도 예수를 믿은 것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는 누구를 막론하고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가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에서는 구원이란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라고 말합니다.

    인간은 본래 하느님과의 친밀한 관계 속에서 살아가도록 창조된 피조물입니다. 그러나 죄를 지음으로 그 관계가 깨어지고 인간은 하느님을 떠나 죄 가운데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하느님을 떠난 인간에게는 하느님이 아니고는 채울 수 없는 빈자리가 크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빈자리를 채우고자 여러 종교를 만들고 세상의 눈에 보이는 것으로 만족하려고 하지만, 여전히 공허함이 드리우고 인생을 방황하게 만드는 것이지요.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란   창조의 질서대로 인간이 하느님께 돌아가 하느님과의 친밀한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삶을 말하는 것이지요.  이것을 성경은 구원이라고 말하고 영원한 생명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요한 17:3, “영원한 생명은 곧 참되시고 오직 한 분이신 하느님 아버지를 알고 또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여기서 “안다”라는 말은 마치 부부가 서로를 알듯이 경험을 통해 서로를 인격적으로 깊이 아는 친밀함을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구원이란 하느님과의 관계가 올바르게 회복된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이렇듯 한 인간이 어떻게 이러한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회복하고 구원을 받게 되는 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행실이 나쁜 여인도 아마 그 공허함 속에서 방황하던 인생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몸을 육체의 쾌락 가운데 함부로 굴리면서 도대체 인생의 해답이 어디에 있을까 몸부림치던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이 여인을 통해 우리는 구원을 얻는 믿음이 무엇인지를 배우게 됩니다.

    오늘 복음성경은 구원을 얻는 믿음이란 다음의 세가지 내용을 포함하는 것임을 가르쳐 줍니다.

    첫째로 믿음이란 자기 자신이 용서가 필요한 죄인임을 깨닫고 주님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바리사이파 사람이 예수님을 초대했음에도 구원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단 하나 자신이 용서가 필요한 죄인임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지요.  

      ‘이 정도면 하느님을 잘 믿고 있고 나는 의인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의롭게 여기기 때문에 당연히 자신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을 보면 죄인으로 판단하고 엎신 여기며 정죄하게 됩니다.  오늘날에도 이 바리사이파 사람은 교회 안에 존재합니다. 혹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고 있다면 자신이 바리사이파 사람이 되었음을 알아야합니다.

    반대로 행실이 나쁜 여인은 거룩하니 주님 앞에서 자신은 마주대할 자격 조차 없는 죄인임을 깨닫고 주님의 발치에 서서 엎드려 울며 그 눈물로 주님의 발을 적시웁니다.

    20세기 전반부 영국성공회의 영적 거장 C.S,루이스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만약 내가 생각과 말과 행실로 지은 죄를 다 적는다면 사람들은 나를 사악한 괴물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우리는 정직해야 합니다.
    나 자신이 용서가 필요한 죄인임을 깨닫고 주님 앞에 정직하게 나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구원에 이르는 믿음의 두 번쩨 내용은 죄를 사해주시는 주님께 극진한 사랑을 드리는 것입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주님 앞에 나아가는 것은 우리의 최고의 사랑을 고백하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여인은 주님 앞에 향유가 든 옥합을 들고 나갔습니다. 발치에 서서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시며 정조의 상징이기도한 여인의 머리카락으로 주님의 발을 닦고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어 드렸습니다.

    (나드 navrdou는 히말리야의 "보탄"과 "네팔의 산중" 그리고 인도에서 나는 감송향의 뿌리에서 짜서 나오는 향유이다. 이스라엘에서 쉽게 구하기 어려운 이 향유는 어머니에게서 딸에게로 물려져 가보처럼 취급되어 보통 귀인들이나, 값이 비싸 부자 중에 일부만 가질 수 있는 것이었다(레인).

    옥합ajlavbastron(알라바스트론)에는 많은 량의 나드 향유가 담겨있었으며(요12:3) 옥합은 석고로 된 매우 귀품 있는 흰색 단지였다.  그 가치는 삼백 데나리온이었다. 당시 한 데나리온은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었으므로 오늘날 약5만원으로 계산하면 1,500만원이 된다.)

    이렇듯 여인은 죄를 용서해 주시는 주님 앞에 극진한 사랑을 드렸습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이 자신에게 가장 극진한 사랑을 주었다고 칭찬했습니다.

    죄를 사하시는 주님께 죄고의 사랑을 드리는 것이 믿음입니다.
      
    주님께 드리는 최고의 사랑은 예배로 표현됩니다.

    오늘 여인이 보여준 모습은 가장 아름다운 예배의 모습입니다.

    히브리어로 “샤카흐”, 헬라어로 “프로스퀴네오”라고 하는 예배는 주님 앞에 엎드려 그분께 입 맞추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배는 창조주이고 구원자이신 하느님을 인정하고 그분께 경배와 찬양을 드리는 것이고 피조물이자 죄인인 사람의 가장 기본적인 행위인 것입니다.

    구주되신 주님께 최고의 사랑을 드리는 예배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세 번째로 죄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는 믿음은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동참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8장 1절부터 3절은 구원받은 믿음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갔는지를 보여줍니다. 특별히 2절 3절을 읽어보면, 구원받은 여인들이 얼마나 헌신적이 제자였는지를 알게 됩니다.
      
    “또 악령이나 질병으로 시달리다가 나은 여자들도 따라 다녔는데 그들 중에는 일곱 마귀가 나간 막달라 여자라고 하는 마리아, 헤로데의 신하 쿠자의 아내인 요안나, 그리고 수산나라는 여자를 비롯하여 다른 여자들도 여럿 있었다. 그들은 자기네 재산을 바쳐 예수의 일행을 돕고 있었다.”


      여러분의 믿음은 어느 단계에 있습니까?

      1) 죄사함이 필요한 죄인임을 깨닫는 믿음이 필요하다.
      2) 죄사함 받은 확신은 있지만, 주님께 최고의 사랑을 드리는 믿음이 필요하다.
      3) 이제 복음을 전파하는 전도사업에 헌신하는 믿음이 필요하다.

      주님께서 여러분의 믿음을 더욱 굳세게 해 주시길 축원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더욱 굳건해지도록 함께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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