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대한성공회 제자교회대한성공회 제자교회

  • [2004년 3월 14일] (루가 13:1-9) 기다리시는 하느님
  • 청지기
    조회 수: 3362, 2004-03-19 08:15:19(2004-03-19)
  • 지난 주일 말씀에서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 날에도 계속해서 내 길을 가야 한다."는 말씀대로 '하느님이 주신 인생의 목적에 이끌리는 삶'을 살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하심으로 우리도 동일하게 '목적이 이끄는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고 계심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목적이 이끌리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하느님이 뜻이 담긴 성경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기도드리는 삶을 사는 방법 외에는 다른 길이 없음을 알았습니다.

    다시 한번 따라하실까요?

    "위대한 인생은 위대한 목적을 위해 위대한 헌신을 하는 자이다"

    오늘은 우리가 목적이 이끄는 삶, 즉 열매맺는 인생이 되기까지 오래 참고 기다리시는 하느님, '기다리시는 하느님'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복음말씀은 두 개의 단락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오늘의 중심이야기는 두 번째 단락인 열매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이야기입니다.  어떤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 한 그루를 심어 놓았습니다.  무화과나무는 뽕나뭇과의 낙엽 관목으로 과실나무의 한 가지로 높이는 2∼3m전도 자라는데, 잎은 손바닥 모양으로 깊게 갈라져 있고 봄부터 여름에 걸쳐 꽃이 피고, 꽃턱이 자라서 과실이 되는 과실나무입니다. 겉에서 꽃이 보이지 않으므로 무화과라고 부릅니다.  심은 이유는 당연히 무화과 열매를 얻고자 함입니다.  그런데 과실나무이니까 당연히 그 나무에 열매가 열렸나하고 가보았지만 열매가 하나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주인이 열매를 기대하면서 몇 년이나 농장에 왔었다고 기록되어 있나요?  7절, 벌써 삼년 째나 왔다고 합니다.

    여기서 '3년'째 왔다는 것은 365일이 세 번 지나간 그런 수평적인 시간 개념이 아닙니다. '충분한 시간을 주셨다'는 의미입니다. 본래 '3'이란 숫자의 영적 의미는 성경에서 완전수를 말합니다. '충분한 기회가 완전하게 주워졌다. 그리고 충분한 여건이 너희에게 주어졌다. 3년을 기다렸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렇듯 충분한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열매가 달린 것을 한번도 본적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주인 입장에서는 쓸데없이 땅만 썩일 필요가 없는 것이죠. 당연히 포도원지기에게 열매맺지 못하는 나무는 잘라버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농장주인은 하느님을 말하고 무화과나무는 우리 인생들을 말합니다. 농장주인인 하느님은 우리에게 이미 충분한 시간과 여건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에게 허락된 인생가운데 이미 열매를 맺는 삶이 되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우리들에게 원하는 것은 열매입니다. 구체적으로 무슨 열매입니까?  하느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는데 필요한 삶의 내용들, 더 쉽게 말하면 지난 주일 말씀대로 하느님의 섭리 가운데 발견한 "목적이 이끄는 삶"을 살아가는 것. 나를 통해서 이 땅에 하느님의 나라 확장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삶을 말합니다.

    이 비유를 하느님의 직접 화법으로 바꾸어 보면, 이렇습니다.  "내가 너에게 건강을 주고 물질을 주고 시간을 주고 지혜를 준 것은 그것을 이용해서 하느님의 나라가 이 땅에 확장되라고 너희에게 주었다!

    그런데 왜 땅만 버리고 있느냐? 왜 밥만 축내고 있는냐? 왜 목적없이 시간을 허비하고 인생을 방황하고 있느냐? 내가 만약 너에게 주었던 것을 다른 사람에게 주었다면 훨씬 더 큰 효과가 나타났을 텐데...   나를 통해 이 세상에 너가 존재하는 것이기에 내가 기뻐하는 열매가 맺어져야하고, 이 교회 또한 내 아들 예수의 피값으로 세워진 것이기에 이 세상에 내 뜻이 이루어지고 내 나라가 성취되어져야 하는 그것이 삶의 목표다!"

    그래서 실망한 주인은 "아예 잘라버려라." 사형선고를 내립니다.

    그러면 이제 끝나고 마는 것일까요?   여기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하느님의 자비를 발견하게 됩니다.  8절과 9절을 일습니다.  "포도원지기는 '주인님, 이 나무를 금년 한 해만 더 그냥 두십시오. 그 동안에 제가 그 둘레를 파고 거름을 주겠습니다. 그렇게 하면 다음 철에 열매를 맺을지도 모릅니다. 만일 그 때 가서도 열매를 맺지 못하면 베어 버리십시오' 하고 대답하였다."

    여기서 포도원지기는 누구를 말합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로마서 6잘 23절에 나와있는대로 '죄의 값은 죽음'이라는 하느님의 공의 앞에 당신자신을 십자가에 바쳐 그 거룩한 피로 우리의 죄값을 대신 치르시면서 "주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소서. 저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합니다." 라고 기도하시는 사랑의 주님!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여기서 한가지 발견하게 되는 것이 있은데, 이 무화과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은 그 나무의 생리적 현상이 아니라 병리적인 현상 때문입니다.  원래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는 아무리 1년을 더 기다려봐도 소용이 없습니다. 아무리 거름을 많이 준다 하여도 원래 열매를 맺을 수 없는 나무이면 소용이 없습니다. 그게 생리적 현상입니다.

    그런데 이 나무는 그런 게 아닙니다. 병리적 현상이 원인입니다. 병리적 현상은 그 병만 고치면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 중에 원래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조금만 마음과 생각을 바꾸면 얼마든지 열매를 맺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조금만 노력을 기울이면 큰 수확을 볼 수 있는 기본적 생리현상을 다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병이 들었기 때문에, 병리적 현상 때문에 안 되는 겁니다.

    이러한 병든 인생을 보신 예수님은 이들에게 기회를 주고 은혜를 주면 능히 열매를 맺는 목적있는 인생을 살 수 있다고 기대하시면서 주인이신 하느님께 탄원하시는 것입니다.

    "주인님, 이 나무를 금년 한 해만 더 그냥 두십시오."

    예수님의 기대와 다급한 절규가 느겨지십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기대대로 우리는 원래 하느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선하고 거룩하고 존귀한 존재입니다.    병리적인 현상만 고치면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우리 안에 있는 병리적인 현상을 고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모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분이 내 삶에 들어오셔서 내 삶을 기경하시고 거름을 주시고 열매를 맺는 인생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창녀 막달라마리아를 어디에다 쓸 수 있겠습니까?  그는 일곱 귀신이 들린 여자라고 성경에 나타나 있습니다. 창녀 생활을 해서 정신과 건강이 만신창이가 되어 망가진 사람!  누구도 그를 인격 대우하지 않는데, 복음서에 나타난 여자 중에 그가 주님에게 제일 필요한 여자로, 주님을 위해서 가장 많은 일을 했던 사람으로 나타납니다.  왜? 병리적 현상을 고쳐주었잖아요.

    베드로같이 실수 많이 하고 다혈질적인 성격의 사람이 세계선교에 무슨 쓸모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이 그 인생에 주인이 되어 "그가 지니고 있는 생리적현상으로 넉넉히 할 수 있다!"고 병리적 현상을 고쳐버리니까 그렇게 되었지요?

    죄인의 집이라 해서 이웃집 사람들도 외면하던 삭개오의 인생에 예수님이 들어가시니까 그렇게 돈에 대한 애착이 강한 삭개오가 "재산의 절반을 이웃을 위해 쓰겠다."고 회개의 열매를 맺습니다.   우리가 삭개오처럼 할 수 있을끼요? 못하죠? 그러면 우리는 삭개오만도 못한 사람들입니다. 어떻게 삭개오의 인생에 이런 엄청난 변화가 왔나요? 예수님이 우리 삭개오의 병리적 현상을 고쳤기 때문입니다.

    9절 말씀을 보면, "다음 철에"라는 미래의 단어가 한마디 나타납니다. 우리에게 남아있는 시간을 말합니다. 죄의 집행이 유예된 기간입니다.   그때까지 열매맺는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 우리의 존재이유입니다.

    열매맺지 못하면 우리도 빌라도에게 학살당안 사람들처럼, 실로암 탑에 깔려 죽은 사람들처럼 덧없이 망할 것입니다.

    3절, 5절,   "아니다. 잘 들어라.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망할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은 오늘 이사야서를 통해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야훼를 찾아라. 만나 주실 때가 되었다. 그를 불러라, 옆에 와 계신다.  불의한 자는 그 가던 길을 돌이켜라. 허영에 들뜬 자는 생각을 고쳐라. 야훼께 돌아 오너라, 자비롭게 맞아 주시리라. 우리의 하나님께 돌아 오너라, 너그럽게 용서해 주시리라.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같지 않다. 나의 길은 너희 길과 같지 않다." 야훼의 말씀이시다.   하늘이 땅에서 아득하듯 나의 길은 너희 길보다 높다. 나의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다."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죄에서 돌이키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주인되지 못한 인생이 죄인 것입니다. 내가 주인인 인생이 죄인된 인생입니다. 그러기에 내 삶의 보좌에 있는 나를 내려보내고 예수님을 주인된 자리에 앉히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회개라고 말합니다.

    회개한 인생들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이제부터 열매맺지 못하게 하는 너의 병리적인 현상, 네 병은 없어졌다! 이제는 이렇게 살아가라!" 우리의 삶을 갈아 엎고 거름을 주어 하느님의 나라 확장에 큰 열매가 맺도록 주님은 소망을 가지고 우리의 남은 인생을 붙잡고 계시는 겁니다.

    이게 하느님의 자비입니다.  오늘 하느님의 자비 앞에 우리 인생을 돌이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열매맺는 인생을 살아가시길 축원합니다.

댓글 0

번호 제목 닉네임 조회  등록일 
917 청지기 6249 2003-03-07
916 청지기 6996 2003-03-17
915 청지기 7953 2003-03-24
914 청지기 5553 2003-04-09
913 청지기 6048 2003-04-09
912 청지기 6409 2003-04-15
911 청지기 6456 2003-04-21
910 청지기 6562 2003-04-28
909 청지기 5963 2003-05-06
908 청지기 4628 2003-05-20
태그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