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대한성공회 제자교회대한성공회 제자교회

  • [2004년 2월 1일] (고린도전서 13장) 영적 성숙의 동력 - 사랑
  • 청지기
    조회 수: 2317, 2004-02-02 08:53:02(2004-02-02)
  • 2004년도 벌써 한 달이 지나갔습니다. 여러분 각자 설정한 목표와 계획에 충실한 삶을 살아가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여러분의 목표와 마음의 소원이 주님의 뜻 안에서 성취되기를 축복하구요. 아울러 그것과 함께 우리 교회의 목표 또한 함께 이루어 가기를 바랍니다.

    우리교회 2004년 표어를 함께 외쳐 봅시다.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며 제자 삼아 양육하는 교회를 세우자!

    거듭 말씀드리지만, 제자란 성숙한 사람을 말합니다. 옛 생활의 습관을 버리고 새로운 습관으로 살아가는 성숙한 믿음의 사람말입니다.

    묵상, 기도, 십일조, 그리고 교제.” 이 네가지의 새로운 습관이 체질화되었을 때 성숙한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네 가지의 신앙 영역을 살펴보면, 모두 다 관계의 문제입니다.  하느님과의 관계, 사람과의 관계를 다루는 것입니다. 하느님과의 수직적인 관계를 중심으로 출발해서 사람과의 수평적인 관계로 확장되는 신앙의 요소들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기도하는 사람은 인간관계 속에서도 그리스도의 성품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청지기의식으로 드리는 십일조를 통해, 사람을 구원하는 하느님의 일인 구제와 선교가 교회를 통해서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서 이루어지는 교제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지체들은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느님과의 관계이며 사람과의 관계인 묵상, 기도, 십일조, 교제라는 새로운 습관을 내 삶에 자리잡히도록 하는 힘, 동력은 무엇일까요?  사랑입니다. 사랑의 힘으로, 우리는 새로운 습관을 실천해가면서 성숙해지고 제자도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오직 사랑만이, 우리를 제자로 세워주고 교회를 건강한 그리스도의 몸으로 세워줍니다.   그래서 믿음 소망 사랑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랑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우리교회가 사랑이 흘러넘치는 공동체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특별히 우리가 셀과 단체같은 소그룹모임을 통해 바로 이 사랑을 경험하고 배워서 그 사랑을 실천함으로 사랑의 공동체인 교회를 세워가고 이 세상에 사랑을 흘러 보내는 성숙한 제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기 위해 먼저 우리는 사랑에 대해서 보다 깊이 성경적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사랑에 대해서 정의하고 있는 오늘의 서신 말씀을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조용히 눈을 감고 묵상해보시기 바랍니다.

    4 사랑은 오래 참습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자랑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교만하지 않습니다.   5 사랑은 무례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사욕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은 성을 내지 않습니다. 사랑은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   6 사랑은 불의를 보고 기뻐하지 아니하고 진리를 보고 기뻐합니다.   7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고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   8 사랑은 가실 줄을 모릅니다. 말씀을 받아 전하는 특권도 사라지고 이상한 언어를 말하는 능력도 끊어지고 지식도 사라질 것입니다.

    어떤 말씀이 가장 마음에 와 닿습니까?    사랑에 대한 이해를 돕는 ‘피’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피의 질병인 혈액암, 백혈병으로 고생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강신호교우님도 그렇고 제 둘째 매형도 혈액암 투병 중에 있습니다.

    야훼 라파, ‘치료하시는 하느님’께서 이 분들 치유하시고 구원하여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백혈병이란 백혈구가 자기의 기능을 잃어버리고 혈액 안에 백혈구 수치가 정상보다 10배 내지 30배로 증가하게 되어 마침내는 생명까지 잃게 되는 무서운 질병입니다.   하지만 백혈구의 본래의 기능을 잘 살펴보면, 깊은 사랑의 지혜를 얻을 수 있을 수 있습니다.  백혈구는 우리 몸에 어떤 이상한 침입자(병균)가 들어오면 얼른 그 침입자를 처리하는 일을 합니다. 백혈구는 과연 어떠한 방법으로 침입자를 처치할까요? 얼핏 생각하면 아주 강력한 어떤 방법을 쓸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백혈구는 침입자를 향해 절대 무력을 쓰지 않습니다. 대포도 쏘지 않고 기관총을 갈겨대지도 않습니다. 화학약품을 쓰지도 않고 그렇다고 심한 욕설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백혈구는 그저 그 침입자를 품에 푹 껴 안아버립니다. 그리고 아주 아주 깊은 사랑으로 그를 감싸줍니다. 백혈구에게 안긴 그 침입자는 아마 황홀해서 정신이 없을것 같지 않습니까?   침입자는 백혈구의 사랑에 감동하여 그냥 녹아버립니다. 참으로 백혈구의 사랑은 놀랍습니다. 보기 싫든 지저분하든 가리지 않고 모두 다 껴안아줍니다.

    우리 인간과 그 방법이 너무도 다르지 않습니까?   그런 사랑이 넘치는 멋쟁이 친구가 우리 몸안에 살고 있습니다.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어주고” 모든 것을 덮어주는 백혈구와 같은 사랑이 언제나 우리의 마음 속에 함께 하기를 빕니다.

    그런데 적혈구도 백혈구처럼 아주 사랑이 넘치는 친굽니다. 적혈구는 골수에서 태어나 폐에 가서 산소를 받아들여 자기 몸에 가집니다.     우리 몸의 모든 기관은 산소를 얻어야 생명을 연장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산소는 생명과도 같은 것인데 적혈구는 언제나 이런 생명의 산소를 풍성하게 얻어서 가지고 다니는 친굽니다.   그런데 적혈구라는 친구는 언제나 혈액 속에서 이리 저리 다니면서 산소가 필요한 곳이 있으면, 세포에 가서 아낌없이 다 주고 나옵니다.  자기 것도 조금 챙겨둘만 한데 그러지 않고 100% 다 줘 버립니다. 그렇게 3개월 정도 살아있다가 비장에 가서 조용히 숨을 거둡니다.

    아마 우리 사람 같으면 자기 것은 조금 남겨두고 남에게 나누어 주었을것입니다. 우리 몸의 모든 것들은(세포 하나까지도) 자신을 위해 사는 친구가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가 남을 위해 살죠.   내가 남을 위해 100% 봉사하듯이 남도 나에게 100% 봉사한다는 원리가 우리 몸에 있기 때문에 우리는 건강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백혈구의 사랑은 모든 걸 사랑으로 감싸주는 반면, 적혈구의 사랑은 모든 걸 나누어주는 그런 사랑입니다. 이런 친구들이 혈액 속에 있고 그런 혈액은 바로 우리 인간의 생명을 좌우합니다.   이렇듯 우리의 몸은 사랑으로 그 생명이 유지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의 생각과 행동은 그렇지 않아서 안타깝숩니다.

    우리 각자는 사랑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그 생각대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관계속에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는 진리이신 하느님의 말씀에 바로 잡히지 않은 자기 나름대로의 생각으로 사랑하며 살기 때문입니다.   제가 성경을 읽고 하느님의 사랑을 묵상하며 정리한 사랑의 정의은 이렇습니다. ‘사랑이란 인격적인 관계이다.’

    인격이란 지정의(知情意)가 동반된 관계를 말하죠. 가장 흔한 예로, 남녀간의 결혼이 인격적인 관계를 말해줍니다. 상대방을 알고 - 知, 사랑이란 감정을 느끼고 - 情, 이제 하느님과 사람들 앞에서 자신들의 사랑을 고백하고 가정이란 공동체를 지켜가겠다는 언약을 선포할 때 - 意, 두사람의 결혼이 성립이 됩니다.     여기서 의지적인 결단이 아주 중요합니다. 결혼으로 한 여자를 택한다는 것은 그 여자만을 사랑하고 다른 여자들은 사랑하지 않겠다는 의지적인 결정이고 그 결정을 지속적으로 유지시켜 나가는 결혼 생활입니다.

    저도 연애 결혼을 했습니만(3년), 연애할 때는 가슴도 뛰고 뭉클했습니다. 그러나 결혼해서 오랫동안 같이 살아가는 동안(13년)에 그 감정적인 상태가 계속 유지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부부는 인격적인 관계이기에 서로를 더 깊이 알아가고 신뢰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보면요. 사랑을 그저 어떤 감정 상태로만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느낌, 필링, 가슴에 팍 꽂히는 그 어떤 것으로 말입니다.   사랑에 이런 감정도 중요하지만, 이런 감정이 느껴져야만 사랑이 실재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래서 인격적인 관계로서 사랑의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아주 중요한 요소가 의지적인 결단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요한복음 3장 16절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여 주셨다.”   이 말씀을 통해 나는 하느님의 사랑을 받은 존재라고 고백합니다.    마태오 22장 37절-40절에 나오는 ‘위대한 계명’도 잘 알고 있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첫째가는 계명이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둘째 계명도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이 두 계명이 모든 율법과 예언서의 골자이다.”   요한일서 3장 16절도 알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당신의 목숨을 내놓으셨습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형제들을 위해서 우리의 목숨을 내놓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성경말씀대로 행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나에게 잘못한 사람,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아직 믿음이 적어서, 나에게는 사랑이 부족해서 그 사람을 용서해 줄수가 없습니다.  만약, 그 사람이 먼저 진심으로 사과를 한다면 용서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 사람이 사과의 뜻으로 선물을 보내왔기 때문에 용서하겠습니다.”  이렇듯 우리의 사랑은 언제나 IfBecause, 조건적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은 그 사람이 변화되지 않고 여전히 나에게 상처를 주고 나를 힘들게 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을 용서하기를 결정하고 용서를 선포하는 의지적인 행동인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내가 용서하기로 결단하고 용서를 선포하면 용서하는  사랑의 능력이 내 마음에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사랑이란 내가 사랑이신 하느님의 진리를 알고 그 진리에 순종하기로 의지적으로 결단하고 실천할 때 사랑을 경험하게 되는 위대한 믿음의 행위인 것입니다.  동의하십니까?

    오스트리아의 심리학자 알프레드 애들러 박사는 그에게 찾아온 우울증 환자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두 주간만 나의 처방을 따른다면 당신은 건강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 처방이란 별로 어려운 것도 아닙니다. 당신은 매일매일 어떻게 하면 남을 기쁘게 해줄 수 있을까를 궁리해서 그걸 실천하면 됩니다.”  값비싼 약이나 까다로운 처방을 내릴 걸 기대하고 찾아온 많은 환자들은 대부분 이 싱거운 처방에 크게 실망하고 돌아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처방을 따른 사람에게는 당장 특효가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남을 돕고 어려운 이웃에게 사랑을 전했더니 우울증이 없어졌다고 고백합니다.

    이렇게 사랑하기로 결단하고 실천해 가는 방법이 있습니다.   사랑의 A, B, C, D, E, F, G입니다.   사랑의 A는 'Accept'로서 있는 그대로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상대방을 고치려고 하지 말고 용납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B는 'Believe'로서 믿는 것입니다. 신뢰를 바탕으로 한 관계가 행복합니다.   사랑의 C는 'Care'로서 돌보는 것입니다. 사랑한다면 상대방을 책임지고 돌보아야 합니다. '돌봄'은 곧 관심입니다. 기쁘고 행복할 때보다 어렵고 힘들 때에 돌보는 것이 더욱 값진 것입니다.   사랑의 D는 'Desire'로서 기대한다는 것은 소망을 갖고 꿈을 갖는 일입니다. 서로가 잘되기를 위하여 함께 달려가는 것입니다. 앞으로 크게 될 것을 기대하고 소원하고 축복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E는 'Erase'로서 지워버리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허물은 빨리 잊어야 합니다. 약점을 덮어주어야 합니다. 자꾸 들추어 내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의 F는 'Forgive'로서 용서하는 것입니다. 과거의 실수와 잘못을 용납해주는 것입니다. 용서에는 아무런 조건이 없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의 G는 'Give'로서 주는 것입니다. 주고받는 것이 사랑입니다만 더 큰 기쁨을 주는 사랑은 받는 것보다 줄 때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 현실적으로 요청되는 아주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하기 위해서 시간을 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같이 있고 싶습니다. 결혼하는 이유도 함께 있기 위함인데 시간을 함께 보내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함께 하는 시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한다면, 성경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며 하느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지체를 사랑하고자 한다면, 그 지체와 함께 간을 보내야 합니다. 함께 해야 그 사람의 장점과 단점을 알 수 있고 사랑에 대한 성경의 원리를 실천하며 사랑을 배워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0장 25절에서 이렇게 권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 처럼 같이 모이는 일을 폐지하지 말고 서로 격려해서 자주 모입시다. 더구나 그 날이 가까와 오는 것을 아는 이상 더욱 열심히 모이도록 합시다.

    흔히들 시간이 없다고 말합니다. 바쁘고 분주하고 피곤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시간표를 살펴보면, 자기가 사랑하는 것에는 시간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어떤 한 청년이 직장생활이 너무나 바빠서 묵상하고 기도할 시간도 없고 봉사할 시간도 없고 더군다나 지체들과 만나 교제할 시간도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청년이 어느 한 자매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하루가 멀다하고 전화하고 이틀이 멀다하고 만납니다.

    시간이 없다는 말은 거짓말이었습니다. 자매를 사랑하기 전에는 일을 사랑했고 직장에서 인정받고 승진하는 것을 사랑했던 것입니다.   이제는 사랑의 대상이 바뀌었을 뿐입니다.

    교우 여러분, 변치 않으시고 영원히 살아계신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한 가족이 된 믿음의 지체들이 여러분의 사랑의 대상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독교의 사랑은 인격적인 관계라고 했습니다. 하느님의 진리를 알고 그 말씀에 순종하며 실천할 때 사랑을 경험하게 되는 믿음의 행위라고 했습니다.    하느님을 더 사랑하고 이웃을 더 사랑하는 성숙한 신자가 되기 위해서 묵상, 기도, 교제에 시간을 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여러분 모두 사랑의 힘으로 살아가는 주님의 제자가 되고 우리 교회가 사랑이 흘러 넘치는 건강한 주님의 교회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함께 찬양합시다. “우리 함께 걸어요.”

댓글 0

번호 제목 닉네임 조회  등록일 
914 청지기 6243 2003-03-07
913 청지기 6977 2003-03-17
912 청지기 7918 2003-03-24
911 청지기 5543 2003-04-09
910 청지기 6038 2003-04-09
909 청지기 6394 2003-04-15
908 청지기 6447 2003-04-21
907 청지기 6535 2003-04-28
906 청지기 5953 2003-05-06
905 청지기 4622 2003-05-20
태그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