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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년 5월 25일] (요한 15:9-17) 사랑의 기쁨
  • 청지기
    조회 수: 3337, 2003-05-30 12:16:55(2003-05-30)
  • 교우 여러분은 언제 기쁘십니까?

    전도서 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5: 17, "내가 깨달은 것은 바로 이것이다. 멋지게 잘 사는 것은 하늘 아래서 수고한 보람으로 먹고 마시며 즐기는 일이라는 것이다. 인생은 비록 짧아도 하나님께 허락 받은 것이니, 그렇게 살 일이다."

    인생은 즐기며 사는 것, 기쁨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 평생 살다가는데, 기쁨이 없다면 그 인생만큼 허무한 인생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쁘고 즐겁고 싶은 것은 모든 인간의 소망이 됩니다. 어떻게 보면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이 기쁨과 즐거움을 찾아 오늘도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사람은 권력을 잡으면 거기 기쁨이 있을 걸로 생각합니다.  어떤 이는 출세하면 거기 기쁨이 있는 줄 압니다.  명문 대학을 가면, 1등하면, 높은 지위에 오르면 거기에 기쁨이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이는 소유가 이것을 가져다 주려니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일 수록 모든 것을 소유의 관점으로 대합니다.  심지어 아내와 남편, 자녀와 친구들 까지도 다 소유개념으로 봅니다.  멋진 아내를 '소유'하면 기쁠 줄 압니다. 잘 생기고 돈 많은 남자를 소유하면 행복도 소유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많은 것을 소유해 보지만, 거기서 기쁨을 찾았다는 소릴 아직 듣지 못했습니다.

    TV 드라마도 사람들에게 재미있고 웃겨야 시청률이 높아지기 때문에 시트콤과 같은 오락성 드라마가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웃기는 연예인들의 인기가 높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개그맨을 지향하고 있음이 이를 반증하고 있습니다.  TV광고도 마찬가지입니다. 광고에서 웃음이란 요소는 굉장히 중요하다고 합니다. 사람들의 기억에서 웃음이 가지는 연상작용이 결국 구매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이런 현상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분위기와 결코 배치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이 세상에서 별다른 삶의 재미를 못 느끼고 기쁨과 웃음의 대상이 부재한 가운데 사람들은 대리만족의 대상을 찾고 이를 충족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창 요즘 유행하고 있는 것이 패러디 기법입니다.  광고의 기법중 하나인 이것은 특히 인터넷을 타고 많은 사람들에게 확산되고 있습니다. 대통령이나 국가 지도자, 또는 연예인이나 화제의 인물 등이 패러디의 주요 대상으로 등장합니다.  요사이 패러디의 최고 대상은 대통령들이죠.  '맞습니다. 맞고요.' '이렇다면 막가자는 거지요.'

    작년 이 맘때는 월드컵 경기로 한껏 달아올랐었는데, 1년이 지난 지금 그 자리를 대체하는 마땅한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 세상에 참된 기쁨이 없어 보입니다.

    이제 성경을 봅니다.  오늘 요한복음 5장 11절을 보니까, 예수님이 기쁘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 기쁨을 나누어 우리의 마음에도 넘치게 하길 원하신다고 합니다.  "내가 이 말을 한 것은 내 기쁨을 같이 나누어 너희 마음에 기쁨이 넘치게 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나 기쁘다고 말하시는 예수님의 객관적인 상황은 인간적인 관점에서 볼 때 전혀 기뻐할 수 있는 상황이 아인 것 같습니다.

    오늘의 장면은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나누시고, 제자들에게 고별사와 같은 마지막 대화를 나누고 계시는 장면입니다.

    이제 곧 3년반을 함께 보낸 제자들과 헤어져야 합니다.  가롯 유다의 배반으로 예수님은 잡혀가실 것입니다.  모진 고문과 십자가의 고통 속에 죽어가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곧 전개될 이런 상황을 다 알고 계십니다.  자기가 곧 죽게 될 것인데, 그 순간에도 예수님은 기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인간적으로 낙심하고 고통스러울 수 밖에 없는 상황속에서도 기쁨을 소유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요?

    저는 예수님께서 누린 기쁨은 사랑의 관계에서 오는 기쁨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느님 아버지와의 사랑, 그리고 제자들과 그를 통해 하느님께 돌아오게 될 영혼들을 향한 사랑말입니다.  그 사랑의 관계 머무름에서 솟아나는 기쁨이 예수님의 기쁨이었습니다.

    하느님 아버지와 예수님 사이에는 오직 사랑 밖에는 없습니다.  9절,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다.  10절, 그래서 나도 아버지의 계명을 지킴으로 그 사랑안에 머물러 있다.

    하느님 아버지는 예수님을 사랑하시고 예수님도 아버지 하느님을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를 사랑했기에 그의 말씀에 순종했고 그럼으로 그 분의 사랑 안에서 머물러 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사랑하는 아버지가 제일 원하시는 것이 죄로 인해 죽을 수 밖에 없는 인생들을 구원하는 것임을 예수님은 아셨습니다.

    죄의 값은 죽음이기에, 죄의 값으로 인해 죽을 수 밖에 없는 인생들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죄없으신 성자 예수님이 인새의 죄값을 대신해서 죽는 것임을, 그 방법 외에는 도대체 하느님이 사랑하는 인생들을 구원할 수 없다는 것임을 예수님은 아셨습니다.  그래서 기꺼이 하느님 아버지 소원의 만족을 위해서, 사람을 구원하기를 원하시는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기로 작정하셨고 십자가를 지는 것이 고통스럽기도 하지만, 사랑하는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예수님의 기쁨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기쁨은 사랑하는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한 자기 희생의 기쁨이었습니다.  또 예수님의 기쁨은 제자들을 사랑하기에 누리신 기쁨이었습니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모든 인생들의 죄를 대신해서 자신이 십자가에 죽음으로서 사랑하는 제자들이 누리게 될 구원을 바라보며 누리는 기쁨 말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희생을 통해서 아버지 하느님 아버지께 돌아오게될 영혼들을 바라보며 기뻐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기쁨은 생명을 건지는 기쁨 이었습니다.

    루가복음 15장을 보면,  잃어버린 양을 찾았을때의 기쁨, 잃어버린 은화를 찾았을때의 기쁨,  집을 나갔던 아들이 돌아왔을때의 기쁨을 말하면서 천국에서 가장 큰 기쁨은 한 영혼이 주님께 돌아오는 것임을 보여 줍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 기쁨을 미리 맛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기쁨을 알기에 이제 벗이라고 부르는 제자들을 위하여 기꺼이 자신의 생명을 내어줄 수 있엇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인생들이 경험하는 대부분의 기쁨은 쾌락이라고 부르는 세상이 주는 기쁨인 것 같습니다.

    수없이 많은 돼지들이 어떤 사내를 뒤따라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 돼지들이 아무 저항없이 도살장까지 갈 수 있었던 것은 그 사내가 콩 주머니를 옆에 차고 조금씩 콩을 떨어뜨리므로 돼지들은 오직 그 콩 때문에 그들이 어디로 가는지조차 몰랐던 것입니다. 마귀가 성도를 꾀임에 있어서의 가장 좋은 무기는 쾌락이라는 것입니다.

    인생들이 아버지의 사랑을 떠나 죄를 짓는 것은 죄가 가져다 주는 쾌락이 즐겁기 때문입니다.  죄는 우리 몸에 스릴을, 영혼에 순간적인 만족을, 단조롭고 지루한 일상 생활에 흥분을 가져다 줍니다. 그것이 우리가 죄를 짓는 이유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히브리서 11장 25절에서 하느님의 사람들은 죄의 일시적인 쾌락보다 하느님을 택했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죄짓는 까닭은 비록 일시적일 망정 죄가 가져다 주는 쾌락이 순종이 가져다 주는 쾌락보다 더 만족스럽다는 거짓말을 믿기 때문이다.  유혹의 힘은 하느님보다 죄가 나를 더 행복하게 해 준다는 거짓 약속에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가 죄와 세상이 주는 쾌락이 아닌 예수님이 누리셨던 기쁨을 차고 넘치게 누리게 되길 바라십니다.

    우리가 세상이 주는 일시적인 쾌락, 죄의 쾌락을 이기고 주님의 기쁨을 소유하며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바로 예수님의 모범에 있습니다.

    더 큰 기쁨, 더 즐거운 기쁨, 예수님과 사랑에 빠질 때 오는 기쁨에 힘입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도 예수님처럼 하느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뜨겁게 하느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 매일 매일 성경를 읽고 묵상하며 그 뜻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모든 것, 하느님을 사랑하기에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향한 사랑이 나의 모든 일이 동기이자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 우리에게 하느님을 향한 사랑의 열망을 부어주소서!'

    그래서 그 사랑으로 우리가 서로 뜨겁게 사랑해야 합니다.  벗을 위하여 제 목숨을 바치듯, 뜨겁게 헌신적으로 서로 섬기며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를 이곳 세마대 성전으로 인도하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름다운 성전, 푸르른 자연, 주말농장 등 객관적인 환경을 보고 사람들이 오는 것을 보고 기뻐하지 말라!  좋은 환경으로 그들의 영혼이 구원되는 것이 아니다.  뜨거운 사랑, 너희 가운데 뜨거운 사랑이 흘러 넘칠 때,  세상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는 사랑이 너희 가운데 흘러 넘칠 때 그들이 나를 알게 되고 구원받게 될 것이다."

    우리가 하느님을 뜨겁게 사랑하고 그 사랑으로 찬양하고 경배할 때,  십자가에 나타난 주님의 사랑으로 서로 뜨겁게 사랑할 때,  그 사랑으로 잃어버린 영혼이 주님께 돌아올 것이고 그로 인해 우리 안에 누님이 누리신 참된 기쁨이 넘쳐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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