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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년 7월 20일] 에페소서 2:11-22 그리스도의 평화를 누리라!
  • 청지기
    조회 수: 3152, 2003-07-22 17:20:28(2003-07-22)
  • 2003년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절실하게 요청되는 것은 무엇일까요?

    저는 평화라고 생각합니다.

    북한 핵문제로 불거진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는 아직도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며칠전 미국이 태도를 바꿔 북 미 중 3자회담을 수용하면서 계속되던 북미간의 대치정국에 숨통이 틔였지만, 여전히 한반도는 몇가지 시나리오에 따라 불안함을 느끼게 됩니다.

    이라크를 침공하고 단시간 내에 이라크를 정복한 미국은 북한 문제를 접근하는데도 상당히 호전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북미간에 대화와 타협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할 경우 미국이 설정하고 있는 추가적 조치라는 시나리오는 두 가지로 하나는 북한 내부의 공작을 통해 김정일 정권을 붕괴시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이라크전과 같은 전쟁을 통해 북한을 정복하는 것입니다.

    이 두가지 모두 우리 나라에 심각한 문제를 초래하게 될 것입니다. 전쟁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생각해보면 막강한 군사력을 가진 미국이 승리하겠지만 남북한 공히 치러야 하는 전쟁의 대가는 심각할 것입니다.

    어제 조간에도 나왔지만 북한의 미사일 사정거리가 일본의 오끼나와 미군 기지까지 가능하다고 합니다. 미국의 공격으로 북한이 북한의 반격으로 남한이 피해를 입고 무고한 생명이 죽고 다칠 것이기에 전쟁은 막아야만 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됩니다.  또한 북한정권의 갑작스러운 붕괴는 북한에 약 300만에 가까운 난민을 발생시키게 되고 그 난민은 남한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돌봐주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물론 지금도 북한에는 식량부족, 의약품 부족, 억압적인 통치체제로 수많은 동포들이 실제 기아와 질병에 시달리고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렇듯 남북한 공히 분단으로 인한 아픔을 겪으면서 진정한 평화를 누리지 못한 채 반세기 이상의 세월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남한 사회 내부는 어떻습니까?  남한 내부도 동서간의 지역 갈등, 노사분쟁, 정치권 여야 갈등, 교육계의 갈등 등 평화와는 반대되는 분열과 대치가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인간사회에 어떻게 갈등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어찌보면 갈등이라는 구조는 더 나은 관계와 사회를 이루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만 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서로의 의견이 다르기에 그것을 조정하고 합의를 이끌어 내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갈등은 어찌보면 필요하고도 생산적인 것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갈등이 고착되면서 분열하게 되고 편이 갈라진채 싸우기만 한다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갈등의 과정을 치나쳐서 이제는 분열이 고착되어 끝없이 갈등과 대치로 아파하고 신음하고 있습니다.

    우리 가정들은 어떻습니까?  이혼율이 세계 2위라는 수치스러운 나라가 되었습니다. 법적인 이혼이 아닌 별거까지 포함하면 가정이 얼마나 분열되고 파괴되어가고 있는지를 보게됩니다.

    영적인 관점으로 이 사회를 분석해 보면 우리 나라는 분리의 영이라는 사탄의 견고한 진이 이 사회를 다스리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의 삶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가족이나 이웃간에 평화를 누리며 살아고 있습니까?  아니면 용서하지 못하고 용서받지 못해서 담이 높게 쌓여진채 고통스러워 하십니까?  목회를 하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갈등과 분열로 아파하고 힘들어 하는지를 보게 됩니다.

    이 자리에 계신 교우들도 가족 간에 교우 간에 담을 쌓아 놓은 채 살아가고 있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렇듯 갈등과 분열 속에서 고통받는 인생들이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요?

    오늘 에페소서가 그 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는 이 세상에 오셔서 13절 ‘피를 흘리심으로써’, 14절 ‘자신의 몸을 바쳐서’, 15절 ‘자신을 희생하여’, 16절 ‘십자가에 죽으심으로써’ 하느님과 멀리 떨어져 있던 이방인이나 유다인들 모두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같은 성령을 받아 아버지께로 가까이 나아가게 하시고 원수되어 지내던 유대인과 이방인을 화해시켜 하나의 새 민족으로 만들어 평화를 이룩하신 것입니다.  사실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은 서로 상종하지도 않던 적대적인 관계속에서 살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을 듣고 믿었을 때 하나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화해하여 하나된 새 민족을 교회라고 부릅니다. 19절에서 말하듯이 평화이신 예수님 안에서는 외국인도 없고 나그네도 없습니다. 모두가 성도들고 같은 한 시민이며 하느님의 한 가족입니다. 믿습니까?

    이것이 초대교회의 모습이었습니다. 초대 교회 안에는 인종적인 차별, 성적인 차별, 계급적인 차별이 다 사라지고 모두가 다 한 성령을 받은 한 하느님의 가족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십자가를 통한 회복의 은혜입니다.  13절의 말씀처럼, 예수님을 믿은 나 개인은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하느님과 가까워 졌습니다. 그런데 나를 부르신 주님은 우리를 교회라는 공동체로 모아 주셔서 하나되게 하셨습니다.  교회는 모든 분열이 극복되고 하나되는 곳입니다. 교회는 분열이 없는 거룩한 곳입니다. 교회는 인종과 계급과 성에 관계없이 누구나 와서 공동체를 이루는 공번된 곳입니다.  이러한 교회를 니케이신경은 ‘하나이요 거룩하고 공번된 교회’라고 고백합니다.

    비롯 오늘날 교회는 구교와 신교,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오순절, 성공회 등 여러 교단으로 갈라져 있지만, 교회 내에 여전히 분열로 인해 목회자와 교인, 교인들 사이에 싸우는 분열이라는 죄악이 있지만, 또 돈 없고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 가서 주눅들고 누구나 와서 주님을 예배할 수 있는 공번된 교회가 되지 못했지만, 예수님은 여전히 하나이요 거룩하고 공번된 초대교회와 같은 주님의 교회를 세우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교회가 이 갈라진 세상에 여전히 유효한 대안이 되길 원하십니다.

    오늘 서신 에페소서 2장 20절부터 22절까지의 말씀이 그 뜻입니다.  예수님이 모퉁이돌이 되고 사도와 예언자들은 기초가 되고 우리들은 서로 연결되면 우리는 거룩한 성전이 되고 신령한 하느님의 집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초대교회와 같은 완전한 평화가 이룩된 주님의 교회가 세워지고 교회는 이 땅에 소망이 되고 교회를 통해서 이땅에 주님의 평화가 흘러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21절의 ‘서로 연결된다’는 말이 중요합니다. 마치 집집마다 전선이 연결되어 전기가 흐르듯이 수도관이 연결되어 물이 흐르듯이 성도의 삶이 열결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막히는 것이 없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흘러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삶을 통해서 우리에게 부어진 영적인 축복이, 하느님의 사랑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가 막히지 않고 흘러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어떻게 내 안에 부어진 주님이 은혜가 막히지 않고 흘러나갈 수있을까요?

    그 답은 서두에서 던진 질문 - 분열의 상처로 고통받는 이 세상이 그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에 대한 답과 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유일한 길입니다.

    예수님이 취하신 모범을 보십시오.  13절 ‘피를 흘리심’, 14절 ‘자신의 몸을 바치심’, 15절 ‘자신을 희생하심’, 16절 ‘십자가에서 죽으심’.  바로 이 모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우리의 담을 허물고 주의 은혜가 흘러감으로 모든 분열의 아픔을 씻고 하나되게 하는 유일한 길이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예수님의 십자가가 유일한 답이 되는 것일까요?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희생으로 엄청난 하느님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지난 주에 설명드린 하늘의 영적인 축복 말입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하느님의 자녀 삼으시고자 예정하시고 택하여 주시고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씻고자 피흘리시고 성령님이 하느님의 자녀라고 인치시고 하느님의 후사라고 보증하시는 엄청난 복 말입니다.  이러한 영적인 축복을 진정으로 깨달았다면 우리의 시각이 바뀌게 됩니다. 이제 우리가 가족이나 성도들을 볼 때 이전의 세속적인 관점으로 보지 않게 됩니다. 가진 재물이나 학벌이나 외모나 나에게 얼마나 잘해 줬는가 등 세속적인 시각은 우리에게서 사라지게 됩니다.  나란 존재가 하느님이 예수님의 생명과 맞바꾼 존귀한 존재임을 알았듯이 이제 우리는 우리가 만나는 모든 인생들 또한 하느님께서 예수님의 생명과 맞바꾼 하느님이 사랑하시는 존귀한 존재로 보게 됩니다.

    그러니 어떻게 우리가 그들을 멸시할 수 있으며 미워하며 살 수 있으면 용서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5주 전에 수요중보기도회에 일어난 일입니다. 평소처럼 중보자들이 모였고 L형제가 새롭게 참석했습니다. 그런데 L형제와 K형제사이에 막힌 담이 있었습니다. 몇 달동안 서로 화해하지 못한채 만나면 인사도 나누지 않을 정도로 불편하게 지내왔습니다.  화해되지 않은 분열의 관계가 있는 상태에서 기도회를 시작하려니 뭔가 마음이 모아지지 않았습니다. 중보자 중에 한 자매는 계속 가슴이 아프고 어지러운 증상을 말하면서 왜 자신에게 갑자기 이런 고통이 온것인지를 분별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성령님께 원인을 묻고 기다렸습니다.  두 형제 사이에 갈등이 있는 것을 알고 있는 저에게 기도회가 깊이 들어가지 못하고 자매가 아픈 원인이 바로 두형제가 화해하지 못한 것에 있음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마태오 5장 21절부터 24절까지의 말씀을 읽어주며 이름을 거명하지 않았지만 화해할 것을 선포했습니다. 그 때 K형제가 밖으로 나가버리고 그 자매를 통해서 하느님이 방언으로 말씀하시기 시작하셨고 또 다른 자매가 통역했습니다.

    ‘오늘 밤이 지나기 전에 화해하라. 감정적으로 싫더라도 용서하고 용서를 구하라. 화해하고 하나되는 것이 내가 기뻐하는 일이다.’

    그 때 L형제가 이 말씀이 자신에게 주는 말씀이라고 그렇게 하겠다고 고백했고 K형제가 다시 들어 와서 두 형제는 예수 이름으로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며 포옹을 했습니다.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이 일을 통해서 하느님께서 얼마나 분열과 갈등의 삶이 아닌 용서하고 화해함으로 하나된 평화의 삶을 살기를 원하시는 지를 다시 한번 깊이 알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막힌 담은 허물어지고 하늘의 신령한 복이 흘러감으로 서로 사랑하고 하나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하나된 사람들이 하느님이 거하시는 성전이고 신령한 하느님의 집인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주님의 거룩한 성전이 되고 하느님의 신령한 집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동수원교회가 주님의 거룩한 성전이 되고 하느님의 신령한 집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제 우리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이 전파되고 하느님의 사랑이 흘러나감으로서 우리 이웃들의 가정에, 우리가 있는 직장에, 우리 나라와 민족에게 하나되게 하시는 그리스도의 평화가 임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기도합시다.

댓글 1

  • Profile

    김바우로

    2003.07.22 17:41

    감사하게도 이 설교에서 말씀하신 L군과 K군의 사건을 저는 그 자리에서 보았습니다. 신부님께서는 아주 담담한 문체로 말씀하셨지만, 사실 현장에서 보기에 그 일은 너무나 놀라운 광경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두 형제를 화해시키시는 아름다운 일만을 하신 것이 아니고 강퍅하고 의심 많은 제 마음도 다시 한번 무너뜨리셨답니다. ^^ 아직 중보기도회에 참석해 보지 않으신 교우님들께도 한 번 나와 보실 것을 진심으로 권합니다. 저도 처음에는 그 자리가 힘들었습니다만 요즘은 수요일 저녁이 기다려지기까지 한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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