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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년 11월 16일 루가 15:11-32 The Prodigal God
  • 20141116일 루가 15:11-32

     

      

    1. 지난 주일 설교를 기억하는가? 인생은 여정이다. 자신의 업적을 향한 외적여정, 하느님을 찾기 위한 내적여정. 내적 여정 중에 있는 여러분이 되기를

     

    2. 하느님이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이유가 무엇인가? 1) 영혼의 빈 방 - 점검 : 인생의 만족을 주는 목적이 있는가? 흔들리지 않는 평안이 있는가? 언제나 사랑받는 존재라는 느낌이 있는가? 2) 정의를 향한 갈망, 3) 영원을 향한 갈망

     

    3. 오늘 복음이 지난 주일과 같은 본문인데, 오늘 복음에서 아버지는 하느님을 상징한다. 아버지의 면모를 살펴보면 하느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 수 있다. 아버지를 집중 조명해 보면서 하느님의 사랑을 깨달아 알기를.

     

    4. 먼저 12절을 보자. 당대의 유산 상속 은 큰 아들에게 2/3, 작은 아들에게 1/3이 상속되었다. 단 재산 분배는 아버지가 죽었을 때 일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둘째는 지금 그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아버지에 대한 깊은 경멸을 나타낸다.

     

    5. 둘째 아들의 요구는 본질적으로 아버지의 소유는 원하지만, 아버지자체는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둘째에게 아버지는 단지 부를 누리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아버지와의 관계는 지겨운 것일 뿐이다.

     

    6. 누구의 모습인가? 온 우주와 생명의 창조주이시고 인생의 주인이신 하느님을 무시하고 경멸하며 단지 하느님이 만들어 주신 자연을 마음대로 사용하며 살아가는 인간들의 모습이 아닌가?

     

    7. 오늘날 교회 안에도 이런 둘째의 모습을 지닌 이가 있지 않을까? 하느님 아버지와의 인격적인 관계보다는 그가 베풀어주는 축복만을 바라고 누리기를 원하는 교인들이 둘째 같지 않을까?

     

    8. 그런데 아버지의 반응은 둘째가 보여준 배은망덕한 행동보다도 더 놀란 만한 것이다. 당시에는 연장자 특히 부모에 대한 존경과 경의를 넘치도록 표현하는 것이 중요한 것으로 여겨지는 가부장적인 사회였다. 특히 전통적인 중동의 가장이라면 둘째 같은 요구를 하는 아들은 두들겨 패서 내쫓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다. 호적에서 파버려야 한다.

     

    9. 그런데 아버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저 재산을 두 아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이었다.”(12). 여기서 우리는 재산으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가 생명이라는 뜻을 가진 bios라는 단어라는 것에 주목하게 된다. 재산을 나타내는 다른 단어가 있었는데, 이 단어로 쓰여 졌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10. 아버지의 재산은 주로 부동산일 것이다. 큰 아들에게는 문서로 넘겨주고 되지만, 둘째에게 1/3의 재산을 주기 위해서는 그것들을 처분해야 한다. 그런데 당시 땅이란 자기 자신과도 같은 소중한 것이었다. 땅의 일부를 잃는 일은 자신의 일부를 잃어버리는 일과도 같다.

     

    11. 이렇듯 둘째는 아버지에게 아버지의 생명을 쪼개어 달라고 한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는 그 요구대로 자신의 생명을 쪼개어 주었다. 이 비유를 듣고 있는 당대의 사람들은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아버지의 모습이다.

     

    12. 아버지는 왜 둘째의 요구대로 자신의 생명과도 같은 땅을 팔아주었는가? 사랑 때문이다.

     

    13. 아버지는 둘째로부터 거절당한 사랑의 고통, 명예의 손실, 자기 생명과도 같은 땅을 팔아 넘겨주는 경제적인 손실을 감당하고 있다. 우리는 사랑이 거절당하면 참을 수 없다. 서운하고 분노하고 나를 거절한 상대방에 대한 나의 사랑이나 호감을 없애버림으로 상처받지 않으려고 한다. 그런데 아버지는 아들에 대한 사랑을 지키며 그 고통을 감당한다.

     

    14. 이제 자기 몫을 챙긴 둘째는 먼 고장으로 떠나갔다. 무절제한 생활로 가진 것을 다 탕진해 버렸다. 말 그대로 인생의 밑바닥까지 내려간 신세가 되었다.

     

    15. 그제야 제정신이 들어 단지 먹고 살기 위한 생존계획을 세운다. 자신이 더 이상 아들의 자격이 없음을 스스로 인정하고 자신을 아버지 집의 품꾼으로 써달라고 아버지께 간청하려는 계획이다.

     

    16. 당시 문화로는 공동체의 규례를 깬 사람은 사과만으로 안 된다. 보상을 해야만 했다. 둘째 아들은 생존을 위해서 일단 아버지집의 품꾼으로 들어감으로 배고픔을 해결하고 일한 삯으로는 빚을 갚도록 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이다.

     

    17. 아들은 자기 생존의 계획을 세우고 아버지를 만났을 때 할 말들도 연습했을 것이다. 그리고 일어나 집을 향해 간다. 드디어 자신이 살던 동네 어귀에 다다랐다. 그런데 아버지가 둘째를 보고는 뛰어 온다.

     

    18. 우리나라 양반들도 결코 뛰는 일이 없었지만, 중동의 유력한 가부장들은 결코 뛰지 않았다. 뛰려면 길게 늘어져 있는 겉옷을 집어 들어야 했다. 다리 정강이 무릎이 보여야 뛰는 것이다. 도대체 체통머리가 없는 행동이다. 이 비유를 듣는 이들은 이런 아버지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는다.

     

    19. 그런데 아버지는 옷자락을 집어 들고 정강이와 무릎을 보이며 어린 아이처럼 뛰어갔다. 아들의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었다. 둘째를 향한 그 어떤 꾸지람이나 호통이 없다. 둘째는 오기 전부터 연습한대로 자기의 생존을 위한 협상을 시도하지만, 아버지는 그런 아들의 말에 관심이 없다.

     

    20. 단지 아버지가 하는 말들은 하인들을 불러, 좋은 옷을 꺼내 입히라고 한다. 좋은 옷이란 아버지의 옷일 것이다. 이 옷을 입는다는 것은 가족 내에서 그의 위치가 회복되었다는 것을 나타내는 명백한 징표이다. 가락지, 신 모두 둘째가 품꾼이 아니라 이 집의 아들임을 보여주는 징표들이다.

     

    21. 이 모든 것들은 품꾼으로라도 써달라는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메시지이다. 나는 너가 빚을 다 갚기까지 기다리지 않겠다. 나는 네가 나에게 종처럼 굽실거리며 사는 것을 보지 않겠다. 나는 너를 그냥 다시 나의 아들로 받아들이겠다. 나는 너의 궁핍함, 벌거벗음, 누더기 같은 인생을 나의 지위와 명예의 옷으로 덮을 것이다.”

     

    22. 또 아버지는 하인들에게 살진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준비하라고 했다. 당시 사회에서 값비싼 고기가 식탁에 오르는 일은 드문 일이었다. 아주 특별한 날이나 잔치를 위한 음식이었다. 게다가 살진 송아지는 가장 비싼 고기였다. 이런 잔치를 벌이는 일은 아주 드문 일이었다. 동네 사람들이 다 초청되었을 것이다. 잔치는 동네 사람들로부터 둘째를 향한 그 어떤 비난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아버지의 의지이다.

     

    23. 이 모든 장면들은 아버지의 사랑으로 용서하지 못할 죄가 없다는 것이다. 그 사랑으로 덮을 수 없는 그 어떤 악도 없다는 것이다. 그의 은혜에 필적한 만한 죄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느님의 아낌없고 풍성한 은혜를 보여주는 것이다.

     

    24. 예수님은 이 비유에서 아들이 자기 생활을 반성하고 심경의 변화를 보이지도 않았는데, 잘못을 뉘우치는 고백을 하기도 전에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으로 감싸는 모습을 보여준다. 아버지는 무한한 하느님의 용서와 사랑을 보여준다.

     

    25. 21세기 C. S. Lewiss라고 불리는 티머시 켈러는 이런 사랑의 하느님을 영어로 이렇게 표현했다. The Prodigal God. 프라디걸이라는 단어의 뜻은 앞 뒤 가리지 않고 마구 써버리는’, ‘남김없이 다 써버린이다. 둘째 아들이 프라디갈한 사람이다. 그런데 컬러는 하느님의 사랑이 바로 프로디걸이라고 한다. 아버지는 아들의 죄를 계산하거나 헤아리지 않으며 보상도 요구하지 않았다.

     

    26. 이 하느님의 사랑이 나타난 곳이 십자가이다. 하느님은 자신을 무시하고 살아가는 죄인들이 돌아와 자신과 함께 먹고 마시는 사랑의 관계로 회복하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자기 생명과도 같은 외아들 예수를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내어주셨다. 아들이 죽어가는 처절한 고통을 견디시며 그 아들의 피로 우리의 죄 값을 치르시고 우리의 죄를 용서하셨다. 우리가 세상 속에서 여전히 하느님을 배반하는 삶을 살아가도 용서하고 용납하신다.

     

    27. 하느님은 마르지 않는 사랑의 샘이시다. 프로디걸 하느님의 십자가의 은혜가 우리의 가장 큰 희망이며 삶을 바꾸어 놓는 능력이다. 이 사랑에 응답하며 하느님의 자녀로 주님과 함께 먹고 마시는 행복하고 풍요로운 삶울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기를.

     

    28. 이 사랑을 깨달은 바울의 고백을 묵상하자.

    로마서 5:8,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죄많은 인간을 위해서 죽으셨읍니다. 이리하여 하느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당신의 사랑을 확실히 보여 주셨습니다. - 이 시간 성령께서 여러분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시고 그 사랑으로 부어주시기를.... (묵상 후) ‘그 사랑찬양

댓글 1

  • 김장환엘리야

    2014.11.16 17:41

    티머시 켈러의 The Prodigal God이란 책의 내용을 중심으로 설교문을 구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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