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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년 3월 9일 사순 1주일, 광야로 초대하시는 하느님!
  • 2014년 3월 9일 사순 1주일 마태 4:1-11



    광야의 영성을 회복하는 사순절

     

    성공회 예배는 교회력에 따라 성경 말씀과 기도의 내용이 정해진다. 사순절 1주부터 3주까지 드리는 성체후 기도에 예수님이 이 땅에 옷신 이유가 고백된다.

    “전능하신 하느님, 주께서는 성자 예수를 우리를 위한 희생제물과 경건한 삶의 모범으로 이 땅에 보내셨나이다.”

     

    경건이란 믿음을 바로 세우는 훈련이다. 오늘 복음을 통해 예수님에게서 배우는 경건의 모범은 광야로 나가는 것이다. 성경에서 광야는 아주 중요한 영적 훈련의 장소이다.

     

     

    출애굽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 하느님의 백성으로 살기 위해서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장소가 광야였다. 이집트의 종으로 살아 왔던 옛 습관을 벗어버리고 하느님의 백성으로 살기 위해 새로운 존재로 태어나는 장소가 광야였다.

     

    예수님도 성령의 인도를 따라 광야로 나가셨다. 예수님은 광야로 나가 직전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면서 하느님의 음성을 들었다. 예수님을 향한 하느님의 사랑과 하느님 나라라는 비전을 확인했다. 그 비전을 펼치는 공생애 전에 기도하기 위하여 광야로 나가신 것이다.

     

    교회사를 보면 4, 5세기 사막의 교부들이 있었다. 예수님을 따르는 믿음의 삶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 이들이 발견한 것이 광야로 나가는 것이었다. 물론 이들은 세상과 단절한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바로 살기 위해서 사막으로 나갔던 것이다.

     

    일례로 수사들의 아버지 성안토니우스라는 분이 있다. 251년에 이집트의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18세 즈음에 교회에서 이런 성경 말씀을 들었다.

    마태 19:21, 예수께서는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라. 그러면 하늘에서 보화를 얻게 될 것이다. 그러니 내가 시키는 대로 하고 나서 나를 따라 오너라" 하셨다.

     

    안토니우스는 이 말씀을 자기에게 한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마을 변두리에서 가난한 노동자로 살다가 사막으로 들어갔다. 20년이 지난 후 그가 세상 속으로 들어오자 사람들은 그에게서 육체와 정신과 영혼의 건강한 원형을 보았다. 즉 예수를 보게 된 것이다. 그는 예수님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치유를 베풀며 기도를 해주었다.

     

    출애굽 이스라엘을 광야로 인도하신 하느님이, 성자 예수님을 광야로 인도하신 성령님이, 성안토니우스를 사막으로 인도하신 주님이 이 사순절에 여러분을 초대하고자 하는 곳이 바로 광야, 사막이다.

     

    지난 3월 5일, 재의수요일 예배를 드리면서 시작된 사순절에 여러분은 경건의 훈련을 위하여 어떤 결단과 다짐이 있는가?

     

    사순절 동안 단식과 극기의 경건 훈련을 시작한 어떤 수사님이 자기의 영적인 지도자에게서 이런 말을 들었다고 한다.

    “자네는 일상의 삶이 극기하고 기도하는 삶이니까 자네는 사순절을 지키지 않아도 되네.”

    실제로 그 수사님은 소박한 식단에 소식하며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으니 특별히 사순절이라고 경건의 삶을 더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교회의 일반 신자들은 대체로 평상시에 잘 먹고 잘 입고 잘 놀고 잘 쉬며 산다. 기도와 말씀을 통해 하느님을 만나는 시간이 부족하다.

     

    하느님은 부활전 평일로 40일, 사순절 동안만이라도 좀 호사스러운 생활을 다 버리고 광야로 나가는 경건의 훈련이 있기를 바라신다.

     

    그렇다면 광야로 나간다는 것은 무슨 말일까?

    물론 실제로 광야라는 장소로 나가자는 것이 아니다. 사순절 동안 광야의 영성으로 경건의 훈련에 집중하라는 말이다. 사막의 교부들이 제시하는 광야의 영성은 고독, 침묵, 기도. 3가지이다.

     

    1. 고독

     

    우리는 사람들 속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찾는 경향이 많다. 사람들이 자신을 인정해 주면 좋고 외면하면 슬퍼한다. 사람들과의 관계가 단절되면 외로움 가운데 괴로워한다.

     

     

    여기서 고독이란 사람들에게서 고립됨으로 오는 외로움과는 다른 것이다. 고독은 사람 속에서 찾는 자기의 존재감을 가지려는 의존성을 단절하고 나 홀로 하느님하고만 있는 시간을 말한다.

     

    우리가 고독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오직 하느님만을 만나고 하느님과 함께 하기 위해서이다. 고독 속에서 우리는 오직 구세주이신 그분만을 마음과 생각을 다해 바라보는 것이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은 따로 한적한 곳으로 가시어 기도하셨다고 한다. 습관대로 기도하셨다고 하는데 예수님은 이렇게 늘 하느님과 있기 위하여 고독한 시간과 장소를 선택하셨다는 것이다.

     

    사목생활을 힘들어하며 지친 한 사제가 인도의 캘커타의 마더 테레사를 찾아가 그의 고민을 말했다. 그 때 테레사수녀님은 간단하게 조언했다. “하루 한 시간 주님하고만 시간을 보내십시오.”

     

    게쎄마니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요청하신 말씀이 이것이다.

    “너희는 나와 함께 단 한 시간도 깨어있을 수 없단 말이냐?”

     

    재의수요일 복음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마태 6:6,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보이지 않는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예수님은 여러분을 고독의 시간으로 초청하신다.

    고독은 하느님의 형상으로 회복되도록 나를 정화시키는 은총의 시간이다. 하느님과 함께 지내는 고독을 갖는 자는 세상 속에서는 사람들을 공감해 주는 너그러운 사람으로 변화된다.

     

    이 은총은 고독해지는 자만이 경험하는 하느님의 선물이다.

    사순절 동안 사람들에게서 도망치라. 고독으로 들어가라!

     

    2. 침묵

     

    사막의 교부들은 침묵을 하느님께 나가는 가장 안전한 길이라고 했다. 침묵은 행동으로 실천하는 고독이다. 침묵은 고독을 현실적으로 만드는 길이다.

     

    하느님은 영원한 침묵 가운데 계시다가 말씀하셨고 그 말씀으로 온 우주 만물이 생기고 생명이 탄생했다.

     

    우리는 너무나 말이 많은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수없이 듣고 내뱉는 말들을 통해서 친교가 이루어지고 있는가? 사람을 살리는 생명을 주는가? 오히려 말을 통해서 상처를 주고 관계를 파괴하지 않는가?

     

     

    말은 우리를 참 쉽게 죄로 인도한다. 그러므로 말하지 않는 것이 죄를 짓지 않는 최선의 방법이다.

    야고 3:2, 우리는 모두 실수하는 일이 많읍니다.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은 온 몸을 잘 다스릴 수 있는 완전한 사람입니다.

    시편 39:1, "혀를 함부로 놀려 죄를 짓지 아니하리라. 악한 자 내 앞에 있는 한 나의 입에 재갈을 물리리라" 마음먹었읍니다.

     

    성베네딕트는 당신의 형제들에게 악한 말을 하지 않도록 경고했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그들에게 착하고 거룩한 말, 충고하려는 말들도 피하라고 일렀다고 한다.

    잠언 10:19, 말이 많으면 실수하게 마련, 지각있는 사람은 입에 재갈을 물린다.

     

    예수원에 가면 저녁 9시 이후에는 침묵이다. 피정에 들어가면 침묵이 절대적인 규율이다. 힘 있는 말은 침묵 가운데 나온 말이다.

     

    사순절 동안, 말을 줄여보자. 침묵으로 있는 고독의 시간을 갖도록 하자. 단 10분이라도... 할 수만 있다면 한 시간.

     

    3. 기도

     

    성경은 우리에게 “쉬지말고 기도하라”고 한다. 이것이 고독 가운데 침묵하는 목적이다. 만일 단순히 고독이 분주한 일에서의 도피이고 침묵이 시끄러운 환경으로부터의 도피라고 한다면, 고독과 침묵은 쉽게 자기중심적인 금욕주의의 형태가 될 것이다.

     

    고독과 침묵은 기도를 위한 것이다. 사막의 교부들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성경의 말씀에 순종하고자 사막으로 들어가 고독 가운데 침묵했던 것이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을 다르게 번역하면 “와서 쉬라”는 말이다. 고독과 침묵을 통하는 바른 기도는 하느님 안에서 안식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매우 격렬한 일상의 투쟁 가운데서 하느님 안에서 갖는 쉼과 안식이 기도다.

     

    그런데 우리는 그저 기도를 하느님께 쏟아놓는 많은 말들의 시간으로만 이해한다. 우리가 다급하거나 아직 어릴 때는 부르짖고 내 말만 한다. 하지만 철이 들거나 인격적인 관계가 형성되면 대화를 한다. 서로 뜨겁게 사랑하는 신뢰의 관계에서는 그저 서로 바라보며 마음을 나눈다. 이를 관상이라고 한다. 기도학교를 통해 더 깊이 배우고 훈련하자.

     

     

    고독 침묵 기도 이 세 가지를 실천하는 것이 광야의 영성이다. 사순절에 이것에 집중하기를 바란다. 이를 위해서 T.V.를 꺼라. 페이스북 SNS를 멈추어라. 회합과 술자리 등 밤 문화를 죽이라.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새나라 하느님 나라의 백성이 되라. 새벽기도를 나와 주님 앞에 머물러라. 153기도와 10-10-10을 실천하라.

     

     

    사순절은 실로 우리가 주님의 백성으로 변화되는 은총의 시간이다. 거룩한 하느님의 초대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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