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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년 민족화해주간 설교문

  • 평화의 바다로 인도하시는 하나님 -  시편 107:23-30, 야고보서 3:13-18, 마태복음 12:39-41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가 오늘 남북화해와 평화를 위해 예배하는 우리 모두와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지금 우리 민족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무엇일까요? 평화입니다. 올해는 6.25 전쟁이 끝난 지 벌써 59년이 됩니다. 내년이면 어느 새 60 주년을 맞이합니다. 그동안 우리 민족이 겪은 긴장과 불화, 대결과 갈등은 이루 말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오랫동안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노래하였습니까? 얼마나 평화로운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였습니까? 바라기는 온 민족의 염원대로 평화로운 통일을 위해 정성을 다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남북화해주간을 지키며, 예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평화를 이루는 사람은 복이 있다. 하나님이 그들을 자기의 자녀라고 부르실 것이다”(마 5:9, 새번역 성경) 라고 말씀하십니다. 복음은 평화의 옷을 입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입니다. 그래서 유대교의 랍비들은 샬롬을 하나님의 이름이라고 불렀습니다.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는 “평화란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곧 바로 주어진 계명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 시대에서 교회는 산상수훈의 말씀을 소홀히 하고 있습니다. 평화를 위해 일하라는 예수의 말씀을 인정하고 믿지만, 사람들은 평화에 대해 늘 이중적 태도를 갖습니다. 경우에 따라 하나님의 뜻과 자신의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극복할 것은 이러한 이중, 삼중적인 복음에 대한 태도입니다. 한국정교회 본부 교육관 벽에는 이런 글이 쓰여 있습니다. “평화를 찾아라. 그리하면 네 주위의 많은 사람이 구원을 얻을 것이다”(Find Peace! Thousends of around you will be saved.). 우리는 말씀을 쫒아 구원을 받은 사람입니다. 이제 우리는 말씀을 따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이러한 대표적인 인물이 구약성경의 요나입니다. 그는 앗시리아 니느웨 백성을 구원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구원을 편협하게 이해하였습니다. 요나는 자기 민족만 구원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국수주의자였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선민을 고집하면서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린 유대인들을 향해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다고 사람들의 불신앙을 책망하고 계십니다.

    처음에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였습니다. 그는 니느웨 사람들에게 회개를 촉구하도록 부름을 받았지만, 그러나 그는 니느웨가 회개하여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결국 그는 니느웨와 정반대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그가 하나님의 뜻을 외면하였을 때, 그가 만난 것은 저주의 바다였고, 절망의 파도였습니다.

    그러나 요나는 죽음 직전에서 고집스러운 마음을 고치게 되었습니다. 시련의 한 복판에서 비로소 하나님의 뜻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요나가 하나님께로 마음을 돌이킨 것은 바로 고래 뱃속에서였습니다. 우리가 마음을 다시 하나님께로 향하고, 그 분의 뜻을 따를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절망의 바다에서 평화의 바다로, 죽임의 바다에서 생명의 바다로 인도해 주십니다.

    시편 107편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명령하신즉 광풍이 일어나 바다 물결을 일으키는도다 그들이 하늘로 솟구쳤다가 깊은 곳으로 내려가나니 그 위험 때문에 그들의 영혼이 녹는도다 .. 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시고 광풍을 고요하게 하사 물결도 잔잔하게 하시는도다”(시 107:25-29).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요나처럼 고집을 부리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평화였는데, 우리는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그것을 안보요, 안전이라고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헐벗은 동포에게 나누기를 원하시는데, 우리는 일방적인 퍼주기라고 오해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르는 수많은 목이 곧은 요나들 때문에, 니느웨가 아니라 다시스를 고집하는 요나의 비뚤어진 신념 때문에, 오랫동안 우리는 절망의 파도와 씨름해야 하였고 죽음의 풍랑과 맞서 씨름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 결과 우리는 벌써 분단 68년 동안 평화가 없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있지만 그들이 믿는 것은 평화가 없는 복음이었습니다. 이웃이 빠진 구원이었던 것입니다.

    그 요나들은 남이 아닙니다. 바로 나 자신이었음을 고백합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갈등과 미움의 한 복판에 있었던 수많은 요나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우리 교회도 너무나 오랫동안 다시스로 가는 앞바다에서 헤매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들이 평온함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중에 여호와께서 그들이 바라는 항구로 인도하시는”(시 107:30) 하나님의 역사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동안 우리의 불순종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불신앙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다시 우리를 부르셔서 평화의 전도자로, 화해의 사명자로 세워주셨음을 감사드립니다. 요나에게 하셨던 것처럼 자기 민족뿐만 아니라 이방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명령하고 계심을 믿습니다.  

    한반도에는 중국과 마주한 서해바다가 있습니다. 애초에 바다는 분단선이 없었지만 그동안 이 바다는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전쟁의 바다요, 갈등의 바다요, 서로 오고 가지 못하는 이산의 바다가 되었습니다. 몇 해 전에도 두 차례의 군사적 충돌로 여러 명의 젊은 군인들이 전사하고, 가족들은 커다란 불행을 겪었습니다. 또 연평도의 비극과 아픔을 우리는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가족들이 바로 우리 곁에 있습니다.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군인들과 함정들이 밀집한 이 지역이 전쟁의 바다에서 평화의 바다로 탈바꿈하게 될 유일한 열쇠는 바로 평화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하였습니다. 우리는 먼저 요나의 바다, 바로 한반도 서해바다를 바꾸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만약 서해바다에 평화가 찾아오게 된다면 한국인들의 삶은 엄청나게 변화 할 것입니다. 한강 하구가 열리고, 뱃길로 남과 북의 무역선이 왕래하고, 자유롭고 평화로운 바다어장이 열린다면 남북관계에도 획기적인 전환점이 될 것입니다. 더 나아가 동아시아와 세계를 향한 평화수출국이 될 것입니다.

    사실 세계 곳곳에는 여전히 요나의 바다가 존재합니다. 요나의 바다인 지중해는 오랫동안 전쟁과 갈등의 바다였습니다. 그리스와 터키의 전쟁, 키프러스 분쟁은 이미 과거가 되었으나 여전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는 평화가 없습니다. 사실 평화의 원칙에서 본다면 중동의 분쟁과 한반도의 갈등은 결코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본다면 두 곳은 하나님이 개입하셔야 할 평화가 필요한 곳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평화의 길을 가르쳐 주시길 희망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의 분단 때문에 고통 겪어 온 사람들을 도우시고, 은혜를 베푸시며, 평화롭게 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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